현명한 여인마다 ...
현명한 여인마다 ...
주 일 예 배
잠언14:1-35절 말씀입니다.
[1현명한 여인마다 자기 집을 세우나, 어리석은 여인은 자기 손으로 집을 무너뜨리느니라. 2 정직
하게 행하는 자는 주를 두려워하나, 행실이 패역한 자는 그를 멸시하느니라. 3어리석은 자의 입에
는 교만의 막대기가 있으나, 현명한 자들의 입술은 그들을 지키리라. 4소가 없는 곳의 구유는 깨끗
하나, 수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나, 거짓 증인
은 거짓말을 내뱉을 것이라. 6조롱하는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나, 깨닫는 자에게는 지식
이 쉬우니라. 7어리석은 사람의 앞을 떠나라. 너는 그에게서 지식의 입술을 보지 못하느니라.8 총명한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깨닫는 것이나,어리석은 자의 미련함은 속이는 것이니라. 9어리석은 자들은 죄를 비웃으나,의로운 자들 가운데는 은총이 있느니라. 10자신의 비통함은 그 마음이 알며, 그의 즐거움에 타국인이 간섭하지 못하느니라. 11 악인의 집은 무너질 것이나, 정직한 자의 장막은 번성하리라. 12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 13웃는 자일지라도 그 마음은 슬프고 그 즐거움의 끝은 근심이니라. 14마음이 타락한 자는 자기의 행위로 채워지겠고, 선
한 사람도 자기 행위로 만족하리라. 15 우매한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총명한 사람은 자기의 걸음을 살피느니라. 16현명한 사람은 두려워하여 악에서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자신만만해 하느니라. 17화를 속히 내는 자는 어리석게 행하고, 악한 계략을 꾸미는 사람은 미움을 받느니라.18 우매한 자는 어리석음을 유업으로 받으나, 총명한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쓰느니라.19악한 자는 선한 자 앞에 엎드리고, 악인은 의인의 문들에 엎드리느니라. 20가난한 자는 자기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으나, 부자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느니라. 21자기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죄를 범하는 것이나,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는 행복하니라. 22악을 꾀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선을 계획하는 자들에게는 자비와 진리가 있으리라. 23모든 수고에는 유익이 있으나, 입술의 말은 빈곤에 이를 뿐이니라. 24재물은 현명한 자들의 면류관이나, 어리석은 자들의 어리석음은 미련함이니라. 25 진실한 증인은 혼들을 구해 주나, 속이는 증인은 거짓말을 하느니라. 26주를 두려워하는 것에는 견고한 신뢰가 있으니, 그의 자녀들에게는 피난처가 있으리라. 27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사망의 덫에서 벗어나게 하는 생명의 샘이니라. 28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예이나, 백성이 적은 것은 통치자의 멸망이니라. 29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깨달은 자이나, 영이 조급한 자는 미련함을 드러내느니라. 30건전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31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분을 비방하나, 그를 영예롭게 하는 자는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느니라. 32악인은 자기의 악함 가운데 사라지나, 의인은 죽음에 있어서도 소망을 갖느니라. 33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속에 머물거니와, 어리석은 자들의 심중에 있는 것은 알려지느니라. 34의는 민족을 높이지만 죄는 모든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5 왕의 은총은 현명한 종에게 가고, 그의 진노는 수치를 일으키는 자에게 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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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여기 14장에서는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에 대해서 말씀 하시는데, 1절에 보면, [현명한
여인마다 자기 집을 세우나, 어리석은 여인은 자기 손으로 집을 무너뜨리느니라.]고 하는 이 말씀
은 말씀 자체가 설명해 주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이 필요가 없습니다. 2절에 [...행실이 패역한 자
는 그를 멸시하느니라]고 말씀 하시는데 여기 이 말씀에는 두 가지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
는, 자신의 길에서 행실이 패역한 사람은“주를 두려워하는 정직한 사람”을 멸시한다는 것이고, 다
른 하나는, 주의 길에서 패역한 사람은 주를 멸시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3절에 [어리석은 자의
입에는 교만의 막대기가 있으나...]라고 말씀 하시는데, 이 [교만의 막대기]는 교만한 태도에서 나
오는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대적한 파라오(출5:2)와, 다윗을 모독한 나발(삼상25:10)이 바로 그와
같은 사람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막대기”를 사용하셔서 교만한 사람을 벌
하시는데, 여기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막대기”는 바로 마귀입니다. (사10장과 렘 5l장에서) 게다
가 마귀는 [모든 교만의 자식들을 다스리는 왕](욥41:34)입니다. 하지만 [...현명한 자들의 입술
은, 그들을 지키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의 말에는 항상 자신의 입에다 자신
이 맞을 막대기를 달고 다니지만, 그러나 현명한 사람의 말에는 징계를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O 4절에 [소가 없는 곳의 구유는 깨끗하나...]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은, 먹이를 줄 소가 없으면, 소먹일 사료 값 걱정은 할 필요가 없지만, 그러나 [소]가 있다면, 그 소로 벌어드리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소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걱정하지 말고 소를 기르라,그리하면 그 소는 자신이 먹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유익을 가져 다 줄 것이다, 는 말씀입니다.
O 5절에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나,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내뱉을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행1:8절에서 주님은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내게 증인이 되는 사람은] 바로 주님의 종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 신실한 증인과 거짓 증인은 모두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들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신실한 증인은 오직 주의 말씀 외에는 어떤 것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증인들은 오직 진리만을, 오직 성경말씀만을 전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그랬고, 사도바울이 그랬고, 스테판이 그랬으며, 루터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신실한 증인은 오직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O 신실한 증인은 연옥이 있다고 가르치거나 침례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거나, 세상이 더 좋아지고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증인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선포합니다.(행20:27). 그래서 신실한 증인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의와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와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행24:25), 지옥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곳인가를 경고합니다.(마9:46).
0 그리고 신실한 증인은 자칭 목사라고 말면서도 성경대로 믿지도 않고 성경대로 전하지 아니하며
성경의 진리를 무너뜨리고 (약5:10,마14:4) 자기 혓바닥 돌아가는 대로 짓거리면 그가 누구든지 결
코 용납하지 아니합니다. (왕하18:29,40). 다시 6절에 [조롱하는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나...]라고 말씀하시는데, 물론 100%다는 그렇지 않지만, 그러나 이 말씀은 오늘날 과학자들, 교육
자들, 철학자들이 왜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을 얻을 수 없고, 그들이 왜 절대 진리를 찾을 수 없으며, 참된 명철도 얻지 못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래서 딤후 3:7절에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배우기는 많이 배우나, 그러나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내고 거짓 이론만 만들어 내다가 그렇게 그들의 인생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는 자] 에게는 지식이 쉽다고 말씀 합니다. 왜냐하면, [깨닫는 자는 믿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왜 깨닫는 자는 믿는 자인가 하면, [믿으면 그 사람에게 성령께서 들어오시게 되고 성령께서 들어오시면 성령의 가르침으로 깨닫게 되고, 깨닫게 되
면 진리의 지식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하나님을 [깨닫는 자]는 진리의 지식이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믿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으면 알게 되는 것이 [진리의 지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무엇인가 알기까지는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으니 깨닫게 하시는 성령이 그 안에 들어갈 수 없고, 그 사람 안에 성령께서 계시지 아니하니 그 사람은 깨달을 수 없게 되고, 깨달을 수 없으니 진리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진리의 지식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O 7절에 [어리석은 사람의 앞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사람이 성경이나
하나님에 대해서 어리석은 말로 짓거릴 때는 그 어리석은 자와 싸우지 말고[실례한다]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어리석은 자에게서 떠나는 사람을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 합니다. 그래서 시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조롱하는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도다]라고 말씀합니다.O 8절에 총명한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깨닫는 것이나, 어리석은 자의 미련함은 속이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총명한 자”는 지혜를 써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며,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자기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으며, 그런 행동들의 마지막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지만, (엡5:15). 그러나“어리석은 자”은 다른 사람들을 속이려고 시도하다가 스스로 망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한 일로 결국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O 다시 9절에 [어리석은 자들은 죄를 비웃으나...]고 말씀 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죄들의 일에 오히려 명예로운 이름들을 붙이고, 범죄의 행각을 문화라는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범죄를 저지르도록 충동질을 한다는 말입니다.
0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은, 죄악을 범하고서도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문화라고 생각하고, 선교하고는 아무 관련도 없는 짓을 하면서도 선교라고 말하며, 세상의 잡답이나 짓거리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의로운 자들 가운데는 은총이 있느니라]. 고 말씀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주를 두려워하고 주를 신뢰하는 사람은 항상 주의 보살핌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O 또, 10절에 [자신의 비통함은 그 마음이 알며...]라고 말씀 하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신의 비통함은 오직 자신밖에 오른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탄생, 거듭남, 죽음을 포함해서 우리의 수많은 경험들은 사실 모두 개인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 사람은 철저하게 서로 분리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각각의 개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각의 사람들이 우리들의 죄들을 대속해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드리지 않는다면,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을 위해 대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의 즐거움에 타국인이 간섭하지 못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롬12: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즐거움과 슬픔에 완전히 참여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그 사람 안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O 그래서 오직 우리의 진실한 친구는 오직 한분 바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밖
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 그리스도인이 된 다름에는 우리 자신의 모든 것들을 지속적으로 주님과 함
께 나눌 수 있고 주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우리의
실망과 외로움과 배신과 굶주림과 죽음의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에 시달리는 일과 또한 즐거움과 함
께할 사람이 없을지라도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위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입니
다.
O 11절에 [악인의 집은 무너질 것이나...]라고 말씀 합니다. 그렇습니다.악인의 집은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왕국이 분열된 이후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은 좋은 본보기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무너졌고 (왕상13:33) 바아사가 무너졌으며 (왕상l6:12) 유다 왕 시드기아가 무너졌습니다.(왕하 25:7), 하지만 [...정직한 자의 장막은 번성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윗의 보좌에서 통치하며 (행l5:16).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공식적인 왕의 자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는 것입니다. 12절에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라고 말씀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 길이 옳게 보이고, 좋게 보이고, 행복하게 보이고,성공의 길로 보이고, 승리의 길로 보이는 그런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길이 불행의 길, 실패의 길,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 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는 길은 결국은 죽음의 길, 즉 멸망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평생을 옳게 보이는 길로 걸어갔고, 선하게 보이는 길로 걸어갔으며, 인류사회에 공헌을 하며 평생을 남을 위한 헌신의 삶의 길에서 살다가 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가 실패한 사람, 멸망의 사람이 되는 것은,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이 되는 그 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우리 인생의 길은 수도 없이 많다고 말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수도 없이 많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로 우리 인생이 사는 길은 오직 한길, 삶의 방식도 오직 한 방식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길이며, 믿음으로 사는 삶 의 방식뿐입니다. 이 외의 모든 길과 모든 삶의 방식은 멸망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13절에 [웃는 자일지라도 그 마음은 슬프고...]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마음이 상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최소한 예의를 차리
기 위해 웃는 웃음입니다. 그러나 이 웃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또, [그 즐거움의 끝은 근심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즐거움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세상의 즐거움을 피하는 것입니다. 14절에 [마음이 타락한 자는 자기의 행위로 채워지겠고...]라고 말씀 하십니다. [마음이 타락한 자]는 성령님께서 그들 통해하시고자 하는 뜻을 저버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거부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타락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지,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타락한 자는 불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
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타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나와 엘리야가“타락”했을 때 하나님을“버리지는”않았습니다. 요나는 설교해야 할 임무를 버리고 다시스로 도망을 쳤으며,(욘1:3) 엘리야는 이세벨이 무서워서 영적인 전쟁터에서 벗어나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왕상19:4)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타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또한 그 타락
은 만연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야곱이 일어나 다시 벧엘로 올라간 것처럼 우
리의 타락한 마음을 바로 잡기 위해서 벧엘로 되돌아가야”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우리는 나에게 타락의 징조들이 있나 살펴봐야 합니다. 1. 어떤 일에 대해 구원받은 것보다 더 흥미를 느끼게 되는 징조가 있는가? 2. 성경 읽기와 기도를 태만히 하는 징조가 있는가? 3. 하늘나라에 가고자 하는 소망이 줄어들고 있는가? 4.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시기, 질투, 정죄하는 일을 즐기고 있는가? 5. 구령과 전도지를 나눠주는 일에 무관 하는 징조가 있는가? 6.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을 등한히 하는 징조가 보이는가? 그렇다면, 빨리 그런 마음을 수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베들레헴을 떠났던 엘레멜렉과 나오미 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5절에 [우매한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총명한 사람은...]이라고 말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보는 입장은 [성경의 모든 말을 믿는 사람은 바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성경적인 시각은 전혀 다릅니다. 총명한 사람은 성경과 모순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16절 [현명한 사람은 두려워하여 악에서 떠나나....] 라고 말씀 합니다.“총명한 사람”이란 높은 지식을 습득한 사람도 아니며, 그렇다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탁월하게 지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총명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 것입니다.(잠 13:15.3:7.14:6).
O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자신만만해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신만만해 하는 것입니다.쓸데없이 자신만만하며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을 두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고상한 말로 [긍정적인 사람] 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불신자의 세계에서는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어리석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자신만만해 하느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방자하여 자신만만해 하며 허세를 부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살며, 믿음으로 행하는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O 17절에 [화를 속히 내는 자는 어리석게 행하고 악한 계략을 꾸미는 사람은 미움을 받느니라]. 다
시 말하면, 화를 속히 내는 자는 조금 지나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행했는가가 곧 들어나게 되는 것이고, 또, 악한 사람은 항상 악한 계략만을 꾸며 악한 짓만 만들어 내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
은 그를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18절에 [우매한 자는 어리석음을 유업으로 받으나]
라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행한 그 어리석음의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총명한]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잠4:9,12:4).
그래서 총명한 사람은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유업으로 받지 않는 것입니다. 19절에 [악한 자는 선한 자 앞에 엎드리고...]라고 말합니다. 마치 다윗의 발 앞에 절하는 시므이와 같은 자입니다. 20절에 [가난한 자는 자기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으나, 부자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가난한 사람은 나를 도울 수 없는데, 내가 왜 그를 나의 이웃으로 삼아 그를 도와 줘야 되겠는가? 하지만,부자는 나에게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를 생각하면서 그 부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사람들이 부자에게 몰려든다는 말입니다.
O 21절에 [자기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죄를 범하는 것이나,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는 행
복하니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람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
다. 나사로는 가난했기 때문에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부유하게 되었고 높임을 받았
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가난 했고 눈도 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보다도 더 빠른 “즉각적
인 치유”를 경험 했습니다. 므피보셋은 가난했지만 하나님(과 다윗)의 은혜로 왕궁에서 왕족들과
함께 왕자 중 하나처럼(삼하9:6-13)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웃은 “멸시”의 대상이 아
니라, “자비”의 대상인 것입니다.(20절). 그리고 이렇게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하나님께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잠19: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께 빌
려 드리는 것이니, 그가 베푼 것을 주께서 그에게 다시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고후9:9, 시112:9. 잠14:31.19;17.2l:13;29:7).
22절에 [악을 꾀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선을 계획하는 자들에게는]이라고 말씀 합니다. “꾀한다”는 말은 어떤 사람이 악한 행위를 계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한 행위를 “계획”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선한 행위를 계획한 다는 것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큰 복 중, 하나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그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23절에 [모든 수고에는 유익이 있으나, 입술의 말은 빈곤에 이를 뿐이니라.]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심어 주는 말이나, 사람들로 하여금 정직한 일을 멸시케 하는 말이나, 무리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하나님에 대한 개인의 책무를 잊어버리게 하는 말은 [빈곤에 이를 뿐]인 것입니다.
0 24절에 [재물은 현명한 자의 면류관이나, 어리석은 자들의 어리석음은 미련함이니라]고 말합니
다. 본문의 문맥을(18절, 잠4:9.12:4) 보면, [재물이 현명한 자의 면류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명
한 자는 재물 [하늘에 쌓아두기 때문에] 그는“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그가 받을 면류관이 있음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5절에 [진실한 증인은 혼들을 구해 주나, 속이는 증인은 거짓말을
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증인”은 혼들을 이겨옵니다.그래서 잠11:30절에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니, 혼들을 이겨오는 자는 현명하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을“구원시켜”줍니다. 그래서 고전9:22절에 [내가 약한 사람들에게 약한 사람같이 된 것은 약한 사람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26절에 [주를 두려워하는 것에는 견고한 신뢰가 있으니 그의 자
녀들에게는 피난처가 있으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아 보통 말하는 것처럼 즉, 부모가 주를 두려워 하니까 주께서 그것을 기쁘게 여기시고 그의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대 환란 기간 중 이스라엘을 위한 [피난처]인 셀라(페트라)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27절에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생명의 샘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샘”은 사람을 내부에서 충족시킵니다.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사망의 덫]을 피할 만한 지혜와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있는 샘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요4: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그에게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그 샘에 참예하는 모든 사람을“사망의 덫”에서 구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1:25-26절에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29절에[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깨달은 자이나...]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깨달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사람이 화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깨달은 자입니다. 그는 화를 빨리 내는 자는 후회가 뒤따르게 될 것을 깨달은 자입니다.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화부터 내는 자는 많은 손해가 있을 것을 깨달은 자입니다. 그는 조금한 사람은 반듯이 미련한 행동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입니다. 그래서 [영이 조급한 자는 결국 미련함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30절에 [건전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라고 말씀 하십니다. [건전한 마음]은 어떤 것입니까? 1), 하나님을 사랑하고(마22:37) 2), 그분의 말씀(시119:11)을 사랑하고 3),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고(요13:35). 4), 믿음으로 정결케 되고(행15:9), 5),위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골3:1-3) 마음입니다.그래서 이런 건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육신의 생명에 보호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왜냐하면, 시기는 모든 것을 다 깨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O 다시 31절에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분을 비방하나 그를 영예롭게 하는 자는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풉니다. 32절에 [악인은 자기의 악함 가운데 사라지나..의인은...소망을 갖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악인은 말 그대로 지옥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의인이 죽을 때는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고후5:4-9)[복된 소망](딛2:13). 이 있으며, 그래서 의인은 죽음에 있어서도 죄 없고 영화롭게 된 몸을 얻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고전15:30- 38) .또, 33절에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속에 머물거니와...]라고 말씀 하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명철”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지혜를 드러낼 적절한 시기가 될 때까지는 자신의 지혜를 함부로 말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다시 34절에 [의는 민족을 높이지만 죄는 모든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씀 합니다. 민족들의 역사는 의와 죄의 역사입니다. 이 범주에서 제외되는 민족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든 그 역사를 보면, 영적, 도덕적 상태와, 경제적 물질적 부가 서로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O 그리고 35절에서 [왕의 은총은 현명한 종에게 가고] 라는 말씀하십니다. [현명한 종]은, 구령자로서, 신중하게 행하고, 왕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 주인을 두려워하고 신뢰하며 주인을 사랑하고 기뻐하며, 그리고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자신의 주인에게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수치를 일으키는 종은 (삼하12:14) 자신의 주인의 뜻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짓을 하게 되므로 결국 주인의 진노에 놓이게 된 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수치를 당하게 된 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우리의 왕이신 주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현명한 종들로서 구령하고 혼을 이겨오고 신중하게 행하며 주를 두려워하며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고 주를 신뢰하고 사랑하며 주를 기뻐하고 존경하면서 성실과 진리로 주를 섬기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