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며,
주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며,
시131:l-3절 말씀입니다.
[주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며, 내 눈도 거만하지 아니하오니, 나는 큰 일들과 내가 하기에 너무 높은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2 진실로 내가 나 자신을 평온하고 고요케 하기를 마치 자기 어머니에게서 젖뗀 아이같이 하였으니 내 혼이 젖뗀 아이 같나이다.3 이스라엘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주를 바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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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시편127펀처럼 이 시편도 거의 경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3절에 천년왕국에 대해 아주 약간의 암
시가 나오는데,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지금부터 영원까지]라는 말이 또 나와 있는 것입니다.1절에 [주여,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며 내 눈도 거만하지 아니하오니, 나는 큰일들과 내가 하 기에 너
무 높은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1절은 단순하지만 매우 심오합니다.왜냐
하면,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지식인들을 (과학자들, 대 부분의 정치인들, 의사들, 변호사
들을) 꾸짖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과장하는 말]은 이런 부류의 죄인들의 특징입니다.
O 그래서 벧후2:18절에 [그들은 헛된 말로 자랑하며, 잘못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온전히 피해
나온 자들을 육신의 정욕과 더 많은 방탕함으로 유혹하며,]라고 말하면서, 유16절에서는 [이들은
원망하는 자들이요, 불평하는 자들이요, 그들의 정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 또 그들의 입으로는 과장하는 말을 하고, 유익을 위해 사람들의 외모를 칭찬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O 롬16:18절에 [그러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것이니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처럼 장사꾼들에게 자주 미혹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만한 기독교인들은(1절).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며 그곳을 바라볼 만큼, 새 예루살렘이 좋아 보이지도 않고, 높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들어 위에 있는 것을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향해 위에 있는 것을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골3:14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본문1-2절에 [주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며, 내 눈도 거만하지 아니하오니, 나는 큰일들과 내가 하기에 너무 높은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나이다.2 진실로 내가 나 자신을 평온하고 고요케 하기를 마치 자기 어머니에게서 젖뗀 아이같이 하였으니 내 혼이 젖뗀 아이 같나이다.]이라고 말씀 합니다.
O 여기에 묘사되어있는 사람은 “자기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않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달성 하려는“목표들”이나, 자기의 능력에 대한 믿음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그는 자기 자신을 가장 무능한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다섯 살도 안 된 “아기”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0 그래서 2절에[진실로 내가 나 자신을 평온하고 고요케 하기를 마치 자기 어머니에게서 젖뗀 아이
같이 하였으니 내 혼이 젖뗀 아이 같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립심도 없고, 자만심도 없고, 능력도 없고, 지식도 거의 없고, 아무런 교육도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유형의 사람에게 성경의 진리들을 계시하십니다.
0사28:9절에[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그가 누구에게 교리를 깨닫게 해줄 것인가? 젖을 떼고 젖가슴에서 물러난 자들에게로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다시 마11:25절에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시여,이런 일들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기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O[자기 어머니에게서 젖뗀 아이]가 신약적인 개념으로는 젖이 필요한(히5:12) “그리스도 안의 아기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2:2절에 [갓난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고 그 어머니는 “교회”나, “믿음” 또는 그 밖에[새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그래서 갈4:26절에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우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3절에 [이스라엘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주를 바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 시편은 환란 끝의 이스라엘에게 그 후로 계속, 즉 그때로부터 요한계시록 21-22장에 걸쳐 계속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도록 권고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O “소망”에 관한 주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져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 8:20,24절에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요,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시는 그분 때문이며 24이는 우리가 소망에 의하여 구
원을 받았음이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 사람이 보는 것을 왜 바라리요?]라고 말합니다.(요
일3:1-3,히6:19).
O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복된 소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딛2:13절에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라고 말합
니다.
O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 내 소망을 둘 곳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인 것입니다. 주 반
석 외엔 모두가 흩어질 모래 같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짓습니다.(마7:26).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 복된 소망이신 주 예수만을 바라시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끊임없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