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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자들이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간 후,

박종각 2019. 2. 17. 00:01

                      구원받은 자들이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간 후,  

 

                               주     일     예     배.
                                         히11:14-22절 말씀입니다.


[14이는 이런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낸 것임이라. 15만일 그들이 실로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되돌아갈 기회가 있었겠지만, 16 이제 그들이 사모하는 곳은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그들을 위하여 한 도성을 예비하셨음이라. 17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제물로 드렸으니, 그 약속들을 받은  자가  그의 독생자를  드린 것이라. 18 그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네 씨라 불릴 자는 이삭에게서 난 자라.”고 하셨으니 19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살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음이라. 이로써 그는 모형으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이니라. 20믿음으로 이삭은 다가올 일들에 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고, 21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두 아들 하나하나에게  축복하였으며,  그의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드렸느니라. 22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이 떠날  것에  관하여  말하였고, 또 자기 유골에 관하여 명하였느니라.]


                                               ******* * ******* * *******


O 본문 14-16절을 보면 [이는 이런 것들을 말하는(나는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그리스도인들) 자신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낸 것임이라. 만일 그들이 실로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되돌아갈 기회가 있었겠지만, 이제 그들이 사모하는 곳은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그들을 위하여 한 도성을 예비하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O 바울은 13절에서 [이들은  모두 믿음 안에서 죽었으나 모두가 그 약속들을 받은 것은 아니로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았고 확신하여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또 이 땅 위에서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에 대한 약속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외에 여러 약속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 이뤄진 것들도 있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이  죽은 후,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후에 그의 자손들에게 이뤄질 약속들도 있었습니다.


O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아무 흔들림 없이, 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확신하고 있었고,그리고 이 약속들을 대대로 내려오면서 소중히 간직하였습니다.그러기에 그들은 멀리서 그 약속들을 바라보며 소망스럽게 기다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약속을 바라만 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후손들은 대대로 내려오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일에 있어서 매우 신실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러한 기다리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자신들을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어디서나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O 그런데 오늘 본문 14절에서 [이는 이런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 즉 나는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낸 것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13절까지는,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근거로, 그들이 장차 올 도성을 기다리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여기 본문 14절은, 앞에서  말하고는  사람들하고는 다른 사람들에 관한 내용으로 그들도 마치, 아브라함의 육신의 후손들처럼,  자신들을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또 다른 도성]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도성]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땅에 있는 도성인[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도성, 즉 [새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입니다. O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11:10절에서 아브라함이 기다렸던 도성을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16절에서  [하늘에 있는 본향]을 말하고 있는 구절 때문입니다. 그러나 14절에서의 말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이 [이런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 즉[아브라함이나 사라]처럼, 자신을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고백하는 바로 [그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이 교회시대에 성령으로 거듭난 바로 우리 [그리그도인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과 야곱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타국인]이요,[순례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민권은 바로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3:20-21절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시리라]고 말합니다. O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분명 이  땅에서의 [타국인]이요, [나그네요 순례자]인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이 저 하늘로 데려가겠다고 하신 그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는 불가불  우리는 [타국인이요 순례자]로 이 땅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3:1-2절에서  우리에게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을 구하라.거기 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O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한 도성을 예비 하셨습니다.그래서 16절에서[이

는 그들을 위하여 한 도성을 예비하셨음이라.]고 말씀 하십니다.앞으로 예비 하실 것이 아니라[이

미 예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에는 주를  믿는  성도들이 들어갈 이

[도성]인,[새 예루살렘]은 아직 예비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을 위한 이[새 예루살렘]

은,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그들 믿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요14:1-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O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집에는 수많은  저택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자들, 즉 바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거할 처소는,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그 도성이 예비 되었음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11:16절에 [...이는 그들을 위하여 한 도성을 예비하셨음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아름다운 도성, 주님의 신부를 위해[새 예루살렘]이 예비 되었음을 요한을 통해서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계21:2절에 [나 요한은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 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같이 예비되었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

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는 자신의 신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네모가  반듯하며  길이와 너

비가 모두 2400km나 되고, 그 성의 재료가 온갖 보석으로 심지어는 길조차도 금으로 만들러진[새 예루살렘]을 마련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고 말씀하시고 주께서 하늘로 올라 가셔서 거의 달 만한 크기의 [새 예루살렘]을 우리를 위해 마련하셨음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 하시고 그리고 이제 그 처소인 새 예루살렘이 마련되었음을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데려가시려고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속히 오리라고 (계 22:7,12,20)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우리는 마치 100m 출발선에서 줄지어 허리를 구부리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앞을 주시하면서 심판의 출발 신호가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달리기 선수들 것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주의 신부인 그리스도인들은 긴장하면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도성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약속입니다.  만약 우리가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나는 타국인이요 순례자요 나그네]라고 고백할 수만 있으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의 영적인 자손들에게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영적인]약속들이 주어지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처럼 땅에 있는 도성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에 있는 도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의 이 말씀은 이 시대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른 성경으로 전하는 올바른 말씀을 듣고, 올바른  성경으로 공부하고, 그리고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딤후2:15절에[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고 바울은 디모데 목사에게 권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O 성경은 아브라함을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육적인 후손들과, 영적인 후손들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그러나 이 두 부류의 사람들과 이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0 그래서 로마서 4장은 전장을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 즉, 그리스도인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말을 분명하게 말씀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우리가 같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구원이,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구원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가 믿고 난후에 그의 행위가  따른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일단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로 여김을 받았기는 했으나 (창15:l-6), 그러나 일이 있는지 무려 l5년 이상이 지난 후, 그의 아들이삭을 제단에 바친 [행위]를 보였을 때,  비로소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었다고 증명이 된 것입니다. (약2:21)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을(롬5,10장) 믿는 순간, 즉시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의 의를 전가 받아(롬4,5장) 우리가 의롭게 되었고 (칭의), 그리고 우리가 의롭게 되 는 순간 즉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이나,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브라함의 구원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구원과 꼭 같은 것은 아니라는 말인 것입니다.


O 다시 15절에 [만일 그들이 실로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되돌아갈 기회가  있었겠지만]이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적인 자손이든 영적인 자손이든,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자신들을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고백하면서, 자신들이 떠나온 곳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결코 갈데아 우르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O 그런데 그들이 [하늘의 도성]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지 성령으로 거듭난  이방인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포함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교회시대에 구원받은 방법은 어느 누구든지 단 한 가지 방법인 성령으로 거듭나므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비록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들과 똑같이 [약속의 땅]이 아니라, 우리와 똑 같이 [새 예루살렘]을 유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똑 같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3:28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도 없고 종이나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도 없으니 이는 너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 고전12:13절에서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날 구원받은 이스라엘인들, 유대인들, 즉 히브리인들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 그 외의 모든 구약의 성도들과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하늘에 있는 영적 유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구원받은 자들이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간 후(살전4:17) 이 땅에 남아 왕국을 기다리는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받을 유업인 땅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유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휴거되지 못하고 이  땅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닌  것입니다. 다시 17-19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제물로 드렸으니, 그 약속들을 받은 자가 그의 독생자를 드린 것이라. 그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네 씨라 불릴 자는 이삭에게서 난 자라.”고 하셨으니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살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음이라. 이로써 그는 모형으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약속들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이 사건을 자세히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땅으로 가서 산들 중에서 내가 네게 알려 줄 한 산에서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두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기 위해이삭과 함께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로 갔습니다.


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  미리 숫양 한 마리를  준비하시고  아브라함을 기

다리고 계셨으며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 이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렸다]고 말씀  하시면서,  그것도[독생자]

를 드렸다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아브라함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0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이삭을 번제물로 드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한 산으로 가서 그곳에 단을 쌓고 그를 죽이려고 이삭을 제단 위에 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리는데 어떠한 다른 생각을 결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삭을 드리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러나 막판에 가서는 이삭을 드리지 말라고  말씀 하실 것이다, 아니면 내가 이삭을 죽이기 직전에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멈추게  하실 것이다.  라는 생각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그런 상황이 있기를 바리지도,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 하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삭은 그저 단순한 아브라함의 외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약속들을 이 이삭을 통해서 이어받은 약속의 아들이었습니다.(1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드리기를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놓고 아브라함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약2:21절에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바울은 오늘 본문 17절에서 이것을 [행위]라고 말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0 그래서 본문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렸으니]라고 마합니다. 그렇다면, 이때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이었습니까?하나님께서 죽은 이삭대신, 또 다른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 대신 다른 아들을 주실 것을  믿은  것이 아니라, 불에 태워 번제로 드린 그 재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에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살리 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은 이삭이 [죽음에서 부활 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런 [부활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들리기에 조금도 주저할 필요도, 불평할 이유도 시끄럽게  떠들거나  하나님께 따지려고 들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독자 아들인 이삭을 죽이기 위해 칼을 높이 쳐들고 내리 치려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 손을 멈추게 하시고 이삭을  대신하여  미리 예비해 놓으신 숫양을 주시고,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돌려주었던 것입니다.


0 그리고 19절에서 [...이로써 그는 모형으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O 그가 받은 [모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받는 것에 대한 모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모형]으로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것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이 사실을 요8:56절에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 보기를 기뻐하다가 그 후, 그것을 보고 즐거워하였느니라]고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0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드림으로써 주님의 시험을 통과했고, 그리고 그의 그 행동은, [믿음]이라고 여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약1: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시험을 받을 때“나는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말하지 말지니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시험을 당하지도 아니하시고 또 그분 자신이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 본문 17절에서는 그는 [시험을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약1:13절과, 여기 히11:17절의 말씀이 모순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약1:13절에서 말씀 하시는 이 시험은, 하나님께서[악으로] 시험당하지 않으시고 또[악으로] 우리를 시험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시험하지  않으시는 것은 뱀처럼 간교하고 사악하게 [악으로] 유혹해서 멸망하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지, 그의 믿음을 단련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해서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시험받지 않는 믿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믿음이 작든지 크든지 그 믿음에  대한 시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을 받지 않은 믿음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O 그래서 벧전1: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써 단련될지라도 없어져 버리는 금보다  훨씬 더 귀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그리고 야고보는 이러한 시련을 견딘 자에게 주는 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약1:12절에서[시험을 견뎌 내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는 그가 시련을 거친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20-22절에  보면  [믿음으로 이삭은 다가올 일들에 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고,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두 아들 하나하나에게 축복하였으며,그의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드렸느니라.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이 떠날 것에 관하여 말하였고, 또 자기 유골에 관하여  명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창27장에 보면, 이삭은 야곱이 가져온 음식을 먹을 때 의심하면서 먹었습니다. 그것도 다섯 번이나 의심한  다음에 야곱에게 축복을 하였습니다. (창27:18,27:20,27:21,27:22,27:24)


O 그런데 성경은 이삭은[믿음으로]야곱에게 축복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구약의 죄를 감추는 신약의 은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의 죄들이  신약에  와서는 모두 감추어졌습니다. 모든 죄가 감추어 졌다는 것은 모든 죄는 용서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들의 모든 죄는 용서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는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0 이것이 바로 신약 교리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께서 인간들의 모든 죄들을 걸머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인간이 그것을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인간들의 모든 죄들은 완전하게 제거 되었고 모든 죄들은 용서가 된 것입니다.그래서 인간들이 지옥에 가는 것은 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제거하신 주를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진실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그러나 그 모든 죄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청산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며, 그분을 자신의 구원의 주 구세로 영접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그런데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이 일을 못해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행2:38절에서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외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침례인 요한도 막1:4절에 [죄들을 사함 받은 것으로 인하여]외칩니다. 마26:28절에  주님도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라고 말씀 하십니다. 바울도 롬3:25절에서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라고 말합니다.





0 그래서 주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부활하신 주의 첫째 날은, 주께서 인간의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날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영과 진리로 주를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즉 율법은 죄를 들추어내지만, 그러나 신약, 즉 은혜는 모든 죄들을 감추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부분적으로 순종했고, 또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웃었습니다. 이삭은 의심했고, 그리고 야곱은 거짓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죄들은 11장에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그냥 넘어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그들의 죄는 모두 감추어버리고, 그들의 의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 자신의 죄들이 그 당시에 어린 양의 피로 제거되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들을 묘사하는 이 히브리서11장에서 우리는 신약, 즉 은혜는  모든  죄들을  없앤다는 하나의 영적 원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창27장을 보면 이삭이 야곱을  의심하면서  고기를 먹었고 그를 축복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짜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은, 창28장입니다.


0 이때는 야곱이, 에서를 피해 밧단 아람으로 도망갈 때 이삭이 믿음으로 그를 축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창18:1-4절에 [이삭이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여 그에게 말하기를...아브라함의 복을 네게 주시되 너에게와 너와 함께한 네 씨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땅, 곧 네가 타국인으로 있는 그 땅을 상속받게 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O 이렇게 해서 야곱은 이삭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복을 이어받게 되었고, 그리고 야곱은 아브라함의 고백과 같이 [타국인]으로 있던 그 [땅]을, 유업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땅]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 야곱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삭이 야곱을 의심하면서 한 축복이 아닙니다. 이삭은 그가 야곱임을 분명히 알고 축복하였습니다.그 축복이 바로 창28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히11:20절에서 말한 대로 이삭이 [믿음으로]한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 에서에게 믿음으로 축복한 것은 창27:39-40절에 나와  있습니다. 다시 22

절에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이 떠날 것에 관하여 말하였고, 또 자기 유골에 관하여 명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야 할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뼈를 하나라도 그 땅에 남겨두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 땅에서 나오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렘42:19절에 [오 너희 유다의 남은 자들아, 주께서 너희에 관하여 말씀하시느니라. 너희는 이집트 땅으로 가지 말라.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분명히 알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이집트는 세상의 유형이요, 이집트는 죄의 유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집트에서 나와야 하고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에서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서령 그곳으로부터 나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후4:10절에 [데마는 이 현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믿음으로 한 예언을 합니다. 그래서 출l3:19절에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엄히 맹세시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뼈들을 너희와 함께 가지고 나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죽은 자를 앞세우고 (요셉의 뼈들을 가지고) 홍해를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죽은 자와 산자]가 함께 이집트를 떠나 홍해를 건너가고 있는 것은 보고 있는 것입니다.


0 이 말씀을 들을 때, 성령으로 거듭났으며 주 오심을 열망하며 주를 고대하는 성도들은  지금 성령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 하시는가를 알 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도의 휴거입니다. 그래서 살전4:16-17절에[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산자들이 죽은 자를 앞세워 이집트를 떠나 홍해를 통과 하고 있는  이  광경은 정확히 성도들의 휴거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었던 성도들이 죽음에서 먼저 일어나 살아있는 우리 성도들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 공중에서 주를 만나 주와 함께 깊음의 강을 건너 셋째 하늘로 갈 날이 멀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되지 모릅니다. 그 날이  금년이  될지 아니면, 내년이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아는 한 가지는 지금 그날이 신속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O 그러므로 우리가 이날을 믿음으로 준비하고 이 날을 고대하며 열망하면서 우리의 남은 날들을 의미 있게 보내고, 주의 선한 기쁘신 뜻에 따라 주의  성도로써 합당하게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