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리라.
그대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리라.
주 일 예 배
고전 7:18-40절 말씀입니다.
[할례를 받은 후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있느냐? 그는 무할례자가 되지 말라. 무할례시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있느냐? 그는 할례를 받지 말라. 19할례를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며 할례를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것이니라. 20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안에 거하라. 21네가 종일 때 부르심을 받았느냐? 그로 인하여 염려하지 말라.그러나 네가 자유스럽게 될 수 있거든 차라리 그것을 사용하라. 22이는 종도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으면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마찬가지로 자유인도 부르심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라. 23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형제들아, 각자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25처녀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의 명령을 받지 아니하였으나 주의 자비를 받은 신실한 자로서 내가 판단하노라. 26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것이 현재의 고난을 위해서는 좋으니, 내가 말하되 사람이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네가 아내에게 매여 있느냐? 그렇다면 놓이기를 구하지 말라. 네가 아내로부터 놓여 있느냐? 그렇다면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그러나 설령 네가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며 설령 처녀가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그럴 경우에는 육신에 고통이 있게 되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들은 없는 것같이 하며 30또 우는 사람들은 울지 않는 것같이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는 것같이 하며 또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소유하지 않은 것같이 하라. 31그리고 이 세상을 이용하는 자들은 다 이용하지 못할 것처럼 하라. 이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 감이라. 32그러나 나는 너희가 염려 없게 되기를 바라노라. 장가가지 아니한 사람은 주께 속한 일들을 염려하여 어떻게 주를 기쁘게 할까 하여도 33장가간 사람은 세상일들을 염려하여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함이라.34 부인과 처녀와는 차이가 있느니라. 혼인하지 아니한 여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지만 혼인한 여자는 세상에 속한 일들을 염려하여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함이라. 35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 자신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니 합당히 처신하여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처녀 딸이 꽃다운 시기도 지나고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어서 그녀에 대해 합당치 아니하게 처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해도 죄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혼인하게 하라. 37그러나 그가 마음을 굳게 정하고 아무런 필요성도 느끼지 아니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장할 수 있어서 자기 처녀 딸을 그대로 남겨 두기로 작정했어도 잘하는 일이라.38 그러므로 시집보내는 자도 잘하는 것이지만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아내가 자기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에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자유롭게 되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혼인하게 되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그러나 내 판단을 따라 그녀가 그대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리라. 나도 내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 * ******* * *******
O 오늘 본문 18-19절에[할례를 받은 후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있느냐? 그는 무 할례자가 되지 말라. 무 할례시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있느냐, 그는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를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며 할례를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17절에서도 역시[오직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대로, 각 사람은 주께서 부르신 대로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도 그렇게 지시하노라]고 말씀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대로, 그리고 주님께서 부르신 대로, 그리고 주어진 여건과 허용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주님께 속한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입니다. O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에는,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주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할례 받을 필요 없는 이방인으로서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고 나서 구원받았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이방인들보다 더 우월한 것은 아니고, 또 할례를 받아야만 진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는데도 할례를 받고, 안 받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며, 그런 것들은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할례를 받고 안 받고 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순종하며 신실한 성도로 사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것이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O 20-22절에[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안에 거하라 네가 종일 때 부르심을 받았느냐, 그로 인하여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스럽게 될 수 있거든 차라리 그것을 사용하라 이는 종도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으면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마찬가지로 자유인도 부르심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이 남의 집 종노릇을 할 때 구원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우리들은 노예 상태인 우리의 처지를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들이 자유인이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종도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으면,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O 그러면서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면, [그것을 사용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사용하라]는, 이 말은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남의 종 된 것에 연연하지 말고,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께 순종하며 말씀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는 데에 마음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하는 일은그분의 전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O 이 일은 그가 어디에 있든지, 그의 환경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곳에서 이뤄질 수 있고 행해 질수 있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들이 현실적으로 처해 있는 그 어떤 여건이나, 환경이나, 악 조건도, 그리스도께 순종하여 말씀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O 그것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그 여건과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이미 자유인이기 되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나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는 주께 속한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3절에,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셨습니다. 무엇으로부터 사신 것입니까? 마귀로부터, 마귀가 관장하는 죄와 사망과 멸망으로부터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O 무엇을 주고 사신 것입니까? 금이나, 은을 주고 산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생명, 주님의 그 피를 주시고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O 그래서 행20:28절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구원 받은 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피의 값을 치르고 우리들을 사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완전하게 주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소유가 되었고, 주님의 재산이 되었고,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주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유인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육신적이나 신체적인 자유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영적인 것입니다. O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죄와, 사망과 ,멸망에서의 자유인이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주님의 종으로 영적인 자유인이 되었기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의 제재를 받는 다거나, 사람의해서 복음전파가 중지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비록 육체적으로 남의 종일 때 구원받았더라도, 그러나 영적으로 우리가 우리의 주인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에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은 복음을 전하는 이 일에 있어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O 그리고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그 자유를 마음껏 사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성경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우리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통한 구원 외에는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를 진정으로 해방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전쟁이나 사회제도나 정치권력도 진정한 노예 해방을 이룩할 능력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O 우리가 일반적으로 미국의 남북 전쟁이,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으로 알고 있지만,그러나 사실 남북전쟁은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주 정부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남북전쟁은 모든 권력을 사회주의 체제의 중앙 정부 한곳으로 집중시키기 위해서 일어났던 전쟁이지, 정말 가련하고 불쌍한 처지에 놓인 노예들을 위해서 사람이면서도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 짐승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고달픈 삶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은 결코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노예해방 같은 것은 아예 입도 뻥긋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종은 주인을 잘 섬기라고 말합니다. O 그래서 사도바울은 딤전6:1-4절에서 [멍에 아래 있는 모든 종은 자기 주인들을 모든 공경을 받을 자로 여기라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교리가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믿는 주인을 섬기는 자들도 그들이 형제라고 해서 경이 여기지 말고 오히려 더욱 잘 섬겨야 하리니, 이는 그들이 신실하고 사랑받는 자들이며, 선한 일에 동참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라.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라고 말씀 합니다.
O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인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형제라고 해서 그 주인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더욱 잘 섬겨 야 하리니] 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은 구원받은 종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주인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구원받은 종은 더욱 신실하게 자신의 주인을 섬기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도망쳐 나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그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그에게 다시 돌려보내면서 이 오네시모가 내 복음 사역에 매우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는 너의 종이기 때문에, 너희 허락 없이는 내가 그를 내 옆에 둘 수가 없기에 너의 허락을 받고자 한다고 편지를 써서 그 종과 함께 오네시모에게 그의 종을 다시 돌려보내 주었던 것입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자유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 집에서 뛰쳐나가 노예의 땅을 벗어나라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O 구원받은 노예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8:34-35절에 [진실로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니라 종은 집에서 영원히 거하지 못하나 아들은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주께서는 말씀 하십니다.
O 사실,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의 종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노예 해방인 것입니다. 그리고 24절에[형제들아, 각자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은 어떤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여건 하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O 그러므로 우리들이 처해 있는 환경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라고 성경은 명령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과 조건에 불만을 느끼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마음먹는 것은 자신이 받은 구원의 참가치를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온 생각이며, 구원의 참다운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한 결과인 것입니다. O 만약, 구원받은 우리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자리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기서 반드시 빼내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이를 위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그분을 신뢰하며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O 25-26절에 [처녀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의 명령을 받지 아니하였으나 주의 자비를 받은 신실한 자로서 내가 판단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것이 현재의 고난을 위해서는 좋으나 내가 말 하노니 사람이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주의 명령을 받지 아니하였으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도 바울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자신의 의견으로 말합니다.O 하지만, [주의 자비를 받은 신실한 자]임을 분명하게 밝히므로 자기 말에는 주께로부터 온 영적 권위가 있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처녀]들이란 반드시 여자만을 말한 다기 보다는 32절의 [장가가지 아니 한 남자]와, 34절의[혼인하지 아니한 여자] 남녀들 둘 다를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남녀들 중에서 바울은 [남자]즉, 장가가지 아니한 남자에 대해서 먼저 말합니다. 그래서 26절에서 [사람]이란 바로 [남자]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장가가지 아니한 남자는 그대로 지내도 좋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32절에서 설명합니다. 남자가 결혼하여 아내를 맞아들이게 되면 남편으로서 아내를 부양하고 가정을 운영해야 될 책임을 떠맡게 되기 때문에 육신적인 고통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을 현재의 고난으로 알고, 그 고난의 삶을 통하여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 가기를 원한다면 결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O 그러나 그대로 지낼 수 있으면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령이라기보다는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는 뜻이며, 주님을 위해 일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된다면 구태여 장가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님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장가가지 않음으로써 자신에게 억지로 무리한 부담을 지울 필요 없이 순리대로 장가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O 27절에[네가 아내에게 매여 있느냐? 그렇다면 놓이기를 구하지 말라 네가 아내로부터 놓여 있느냐? 그렇다면 아내를 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번에는 결혼한 남자에게 말합니다. 결혼하여 아내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아내에게 매이게 됩니다. [매인다]는 것은, 아내에게 꼼짝 못하고 산다는 뜻이 아니라, 남편으로서 아내를 보살피고 부양해야 될 당연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남편으로서 아내로부터 놓이기를 구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헤어질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O 반면에, 어떤 사람은 결혼하였다가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게 된 남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아내를 얻어 장가가려고 하지 말고 그냥 혼자 지내라고 성경은 권면 합니다. 물론, 장가를 가거나 시집을 가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28절을 보면,[그러나 설령 네가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며 설령 처녀가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그럴 경우에는 육신에 고통이 있게 되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고 말합니다.
O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장가가고 시집가지 아니한 남녀들이 그대로 지낼 수 있다면,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고, 결혼하였다가 이혼하게 된 사람이 혼자 살수 있다면, 그냥 혼자 사는 편이 좋지만, 그러나 결혼하거나 재혼한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지만 결혼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수고해야 하는 현실적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그러한 현실적 고통에서 그들이 벗어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O 이것은 결코 이기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라, 그만큼 더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특히 29절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세상일보다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헌신하는 일이 얼마나 더 중요한가를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결혼하는 것이 결코 죄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바울은 역점을 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O 29-30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들은 없는 것같이 하며, 또 우는 사람들은 울지 않는 것같이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는 것같이 하며 또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소유하지 않은 것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라는 말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있는 사람이라도 마치 아내가 [없는 것같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신실하게 수행함으로써 그날을 기다리며 온전히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O 마지막 때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방식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의 말씀을 증거 하는 일에, 우리의 시간을 헌신적으로 사용하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실[때가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사는 사람]으로 우리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들은 성경적인 삶을 사는 신실한 성도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비 성경적인 삶을 사는 타락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O 다시 30절에서 이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의 소유에 대해 마음을 빼앗김이 없이 절제하며 온건한 삶을 살도록 하라고 성경은 권면합니다. 슬픔일이 생겼다고 해서 그 일로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지나치게 울지 말며 절도를 지키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고 그 일로 인해서 너무 좋아하고 너무 기뻐하지 말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라고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 땅의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이 땅에 남겨 두고 다른 세계로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O 누가 무엇이라고 말을 하든, 이제 이 세상일은 다 끝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 위해서 지금 저 앞에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열차처럼,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 기시기 위해서 주께서 그 발걸음을 재촉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이제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이 시작되는 새로운 세계가 예비 되어 있습니다.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다고 여겨지는 그 어떤 것도 이제는 그 모든 가치를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절도 있게 살라는 말입니다.
O 31-33절에[그리고 이 세상을 이용하는 자들은 다 이용하지 못할 것처럼 하라. 이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 감이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염려 없게 되기를 바라노라. 장가가지 아니한 사람은 주께 속한 일들을 염려하여 어떻게 주를 기쁘게 할까 하여도 장가간 사람은 세상일들을 염려하여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다 이 세상을 이용하며 살고 있습니다.O 이 세상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만나고 접촉하고 어울리며 직장을 다니며, 사업을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여 이 세상을 영원히 소유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든 것들을 그냥 그대로 놔두고 곧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기다리는 것은 멸망을 기다리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O 그래서 모든 것이 소멸되어가고 그 형체가 살아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절도를 지키며 그리스도인으로 사리에 맞게 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주 오심을 기다리며 믿음을 지키며 이 세상과 일지하지 아니하며 주님의 말씀 따라 강인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들이 살게 될 영원 세계와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있는 것을 보지 않고 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O 또, [장가가지 아니한 사람은 주께 속한 일들을 염려하여 어떻게 주를 기쁘게 할까 하여도 장가간 사람은 세상일들을 염려하여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함이라]고 말씀 합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장가가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성도라고 해서 [모두 다]주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에 전념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장가 안든 총각들이나 시집가지 않은 처녀들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이들이 모두 [주께 속한 일들을 염려하여 어떻게 주를 기쁘게 할까]하고 늘 생각하느냐 하면 결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독신 남녀들이 오히려 기혼자들만도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바울은 지금 모든 기혼자와 모든 미혼자를 포괄적으로 비교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구원받은 성도로서 주님께 속한 일들을 염려하고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국한해서 그 중에서 독신자가 기혼자에 비하여 실질적으로 주님께 속한 일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결혼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그는 다만 결혼하더라도 남편으로서 훌륭하게 아내를 보살피면서 정도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수 있다면 가급적 그렇게 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O 34-35절에 [부인과 처녀와는 차이가 있느니라. 혼인하지 아니한 여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지만 혼인한 여자는 세상에 속한 일들을 염려하여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함이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 자신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니 합당히 처신하여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O 34절에 [부인과 처녀와는 차이가 있느니라.]고 말씀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를 섬기는 데 있어서 독신인 사람이 기혼자보다는 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구원받고 성도가 된 여자라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고 싶겠지만 남편이 있고 가족이 있는 부인들은 독신으로 사는 처녀들에 비하여 세상일에 더 많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일에 그만큼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O 35절에서 바울은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 자신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가미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니 합당히 처신하여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 합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주님께 속한 일들을 염려하고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들은 모두 자신의 유익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과 관련하여 거기에만 전념할 수 있기 위해 혼인하지 말고 독신으로 지내라고 바울이 강요하거나 강력히 설득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의 관심사는 사람들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도록 하는 데에 있을 뿐, [그들이 결혼 하느냐, 독신으로 사느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의 독생자를 주시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과, [이런 일들을 증거 하신 분이 말씀 하시기를,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는 성경 말씀에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 바울은 오직 여기에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7절에서도 [사람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어서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느니라]고 하였고, 그리고 여기 35절에서도 각자가 [합당히 처신하여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이]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O36-37절에[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처녀 딸이 꽃다운 시기도 지나고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어서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처녀 딸이 꽃다운 시기도 지나고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어서 그녀에 대해 합당치 아니하게 처신하고 있다 생각한다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해도 죄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혼인하게 하라. 그러나 그가 마음을 굳게 정하고 아무런 필요성도 느끼지 아니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장할 수 있어서 자기 처녀 딸을 그대로 남겨 두기로 작정했어도 잘하는 일이라]. 고 말합니다.무슨 말인가 하면, 혼인시키지 않고 처녀로 남아 있게 함으로서 자기 딸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더 효율적으로 전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결혼 적령기가 지나도록 억지로 결혼 시키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 딸이 부모의 뜻과는 달리 결혼하기를 원할 때, 가정에 바람직하지 않은 갈등이 생길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들로 혼인하게 하라]고 성경은 권면합니다. O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결코 [죄짓는 것이 아니니]라고 성경은 분명히 못 박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일상적인 삶에 문제가 생기고 불필요한 갈등이 생겨 가정의 화평이 깨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시며 모든 것을 순리대로 처리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가 스스로에게 합당하도록 살아가기만을 요구하실 뿐, 결코 무리한 일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어떠한 특별한 뜻이 계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특별한 방향으로 적절히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
십니다.
O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하나님보다 앞질러 간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처럼 앞서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계획하고 행동하며 주님을 따라가는 사
람이지, 결코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O 38절에[그러므로 시집보내는 자도 잘하는 것이지만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딸을 시집보내지 않는 편이, 시집보내는 것보다 더 좋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딸이 시집가기를 원치도 않을 뿐더러 딸이 혼인하지 않고 주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있다면, 또, 그러한 딸의 생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부모 역시 딸의 의사를 존중해 주기로 [마음을 굳게 정하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려는 딸의 마음과 그러한 뜻을 옹호해 주려는 부모의 견고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면 거기에는 필경 하나님의 특별하신 의도가 개입되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남자건 여자건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도록 부르셨다면,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 속에는 분명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시집가고 장가가도록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의도 보다는 더 고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과 의도에 순종하여 자기 딸을 억지로 시집보내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은 [더 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O 39-40절에[아내가 자기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에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자유롭게 되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혼인하게 되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그러나 내 판단을 따라 그녀가 그대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리라. 나도 내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 말씀합니다.[아내가 자기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에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자유롭게 되어]라고 말씀 합니다.이 말씀은 여자의 재혼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내가 법에 매여 있다는 사실은 로마서 7장에서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O그래서 롬7:2절에[남편이 있는 여인은 그 남편이 살아 있는 한 그에게 법으로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그녀는 그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고 말씀 합니다. 로마서에서는 이 부분을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다루고 있지만, 그러나 본문 39절은 문자 그대로 실제적인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래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내가 법에 매여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O 그리고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된다는 것도 상식입니다. 그러나 자유롭다고 해서 다른 남자와 재혼할 경우에는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유롭게 재혼할 수 있으되, 그리스도인과 재혼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말씀의 대상은, 물론 과부가 된 그리스도인 여자입니다. 이처럼 고린도전서 7장 전체가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말씀하고 있는 장입니다.
O 그리스도인인 아내가 남편이 죽어 자유롭게 되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신의 신분마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재혼할 경우, 자신의 신분에 합당한 남자에게 시집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은 초혼일 경우에도 마찬가
지인 것입니다.
O 40절에 [그러나 내 판단을 따라 그녀가 그대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리라 나도 내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 말씀 합니다. 여자가 남편이 죽어 홀몸이 되었을 경우 바울의 판단으로는 그냥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하리라고 말합니다. [더 행복 하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혼자 사는 편이 여건상 주님께 속한 일들을 염려하며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을 하는 데에 그만큼 유리하다는 점에서 하는 말입니다. O 이처럼 바울이 [내 의견에 따라]말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밝힐 때마다 주의 [허용함에 의한 것](6절),[주의 자비를 받은 신실한 자로서](25절), 그리고 여기 40절에서처럼 [내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등과 같은 말을 반드시 덧붙임으로써 자신의 말에 영적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가 갖고 있던 [구약 성경에는 비록 기록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위임에 따라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이러한 말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신실한 성도가, 하나님의 영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밝힐 때에는 이처럼 영적 권위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눠 주신 대로, 그리고 주님께서 부르신 그대로,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과 환경과 그리고 우리에게 허용된 그 환경 속에서 죄와 사망과 멸망으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주신 주님의 종으로 구원받은 주의 종으로서 그분을 전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구령하며 혼을 이겨오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 져 들림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