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박종각 2018. 7. 8. 02:44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주   일   예   배              
                                              마10:24-42절 말씀입니다.


[24제자가 그 선생보다, 종이 그 주인보다 높지 못하니라. 25 제자가 자기의  선생같이 되고 종이 그 주인같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니라. 그들이 그 집 주인을 비엘세붑이라  불렀다면 그 집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그러므로 그들을 두려워 말라. 가려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움  속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빛 가운데서 말하고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전파하라. 28  또 너희는 몸은 죽여도 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 없이는 그 중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그러나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나니 31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나, 33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34 내가  땅 위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그 어머니와,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서로 대적하게 하려 함이니라.  36 사람의 원수들은 그의 가족 중에 있으리라. 37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자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자기 생명을 찾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로 인하여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라.40너희를 영접하는 사람은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며, 또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라. 41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사람은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사람은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 42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마실 냉수 한 잔이라도 주면,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는 결코 자기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더라.]


                                               ******* * ******* * *******


O 오늘 본문 24-25절에 보면 [제자가 그 선생보다, 종이 그 주인보다  높지 못하니라. 제자가 자기의 선생같이 되고 종이 그 주인같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니라. 그들이 그 집 주인을 비엘세붑이라 불렀다면, 그 집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23절에서 [이 성읍에서 사람들이 너희를 박해하면, 곧 바로 다른 성읍으로 피하라, 그렇게 계속 피해 다려라,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가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곳도 도망 갈 곳도 없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올 것이라] 고 말씀하신 주님은 오늘 본문 24절에서 [제자가 그 선생보다, 종이 그 주인보다  높지 못하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O 실제로 그렇습니다. 물론, 제자가 선생보다 더 많이 알지 못하고, 제자가 선생보다 뛰어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아무것도 발전할 수 없게 될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제자가 그 선생보다 못하다] 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전1:9-10절에서 보면,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 어떤 것을  가리켜 “보라, 새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느냐? 그것은 우리 앞에 있었던 옛 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이라]고 또, 말씀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새것이다, 저것이 새것이다.] 라고 아무리 떠들어 봐도 사실 알고 보면,그것들은 이미 다 있었던 것들이고, 해아래 새 것은 아무것 없다는 말입니다.


O 그리고 [제자가 그 선생보다, 종이 그 주인보다 높지 못하니라]는  이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가 더욱 그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역을 통해서 그들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지만, 그러나 주님 이상으로 놀라운 일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비방을 받고 핍박을 받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25절에서 주인인 자신을 [비엘세붑]이라 불렀다면, 그 집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더 심하겠는가, 고 말씀 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종들이 비방을 받는다 해도, 주인이셨던 예수님  이상으로 비방 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주인을 [마귀들의 왕]인 비엘세붑이라고 비방을 받았다면, 그 집종들이 아무리 비방을 받는다 해도 그보다는 더 큰 비방은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기 말입니다.


그래서 26절에서[그러므로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그리고 [가려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어두움 속에서 몰래 행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어두움 속에서  악한 일을 하고, 또 아무리 악을 숨기고 좋게 보이도록 일을 꾸밀지라도 그들의 종말은 지옥인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님의 말씀은 아무리 은밀히 가르치신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퍼질 것이며, 그분의 예언들은 그것들이 주님의 입에서 나온 이상, 기록된 문자적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도 설교하셨고,  광야에서도  설교 하셨고, 또 집에서 설교하셨지만, 때로는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그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은, 다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그리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7절에서[내가 너희에게 어두움 속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빛 가운데서 말하고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전파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복음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서, 산에서, 들에서, 사거리에서, 골목에서, 좁은 길에서, 넓은 길에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전파하라는 말입니다.




O 28절에 [또 너희는 몸은 죽일 수 있으나 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차라리 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O 주님은 제자들에게 “두려워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서는 구약에서  아주 많은 예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이 말을, 보통으로 하나님과 관련해서 말할 때는 [경외] 라는 말로 씁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경외] 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공경]하는 의미에서의 [두려움], 또,  존경하는 의미에서의 [두려움] 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실제로 [경외]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고 두려워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두려움]라는 이 말은, 신, 구약 어디에서나  절대자 앞에서의 두려움, 무서움, 떨림, 이 외에 어떤 뜻도 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두려움이란,   문자 그대로 그냥 [두려움]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움] 이라고 하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라는 말 자체를 빼버립니다.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이라고만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요일4:18절에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느니라...]는  구절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바로 앞 절인요일4:17절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 날]의 상황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서 사용된 말씀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요일4:17절에 [우리의 사랑이 온전해졌나니, 이는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 하시면서. 18절에 가서는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느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의 백 보좌 심판이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심판 날]이라고 할 때는, 항상 구원받지 않은 자들의 마지막 심판을 말한다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후2:9절에 [주께서는 어떻게 경건한 자들을 시험에서 구해 내시고 불의한 자들을 형벌에 처할 심판의  날까지 가두실 것을 아시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O 그래서 요일4:18절의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하나님, 그분 자신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요일4:18절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앞에서 그분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를 두려워하므로  주님  앞에서 [경건하게]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하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마음으로부터 진정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사랑하고 두려워함, 이 두 가지를 우리는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O 그리고  28절에서 [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혼과 몸을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과, 혼과 몸이 둘 다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씀  하십니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 이렇게 세 구분으로 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배웠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존재입니다. 몸은, 보이는 물리적인 육체입니다. 혼은, [자아]라고 하는  인격체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의 영은, 다시 살아서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지만, 그러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영은, 아담 때부터 죽어있는 것입니다. O 다시 혼은, [지, 정, 의]를 가지고 있는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람을 인격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육신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그 육신  안에 있는 [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혼은, 육신과 똑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혼은,  육신과 같이, 보고, 듣고,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은, 육신처럼, 뜨거움도, 목마름도, 고통과 괴로움을, 육신처럼 그대로  느낍니다. 그러

기 때문에 눅l6:24절에 보면, 지옥에 떨어진 부자가 아브라함을 향해서 [소리질러 말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고 울부짖습니다. 이처럼 혼은, 몸과 똑같이 생겨서 눈도, 귀도, 입도, 손도, 있습니다.(계6:9,눅16:19.24).  사람이 죽으면, 육신의 몸은, 땅을 파고 무덤으로 들어가서 썩든지, 아니면, 화장을 해서 작은 항아리로 들어가든지 하지만, 그러나 혼은 하늘나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는다] 또는, [지옥에 간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바로 육신 속에 있는 그[혼]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8절에서는 혼, 뿐만 아니라 몸도, 지옥에 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혼과, 몸이 같이 취급받고 있는 것입니다.이것은 구약에서 종종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몸과, 혼이 동일

시되었습니다.(겔18:4,레7:18;20:6). 왜 구약에서 몸과 혼이 동일시되었는가를 우리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혼이, 몸에 마치 하나처럼 완전하게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레위기에서는 음식을 먹은 것은 몸이고, 죄를 지은 것도 몸인데 혼이 그러한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그래서 혼과 몸이 함께 지옥에 간다는 말은 혼과 몸이 붙어 있는 아직 구약적인 마태복음의 상황에서만 가능한 말인 것입니다.

O 그러나 신약에서 사람이 거듭나게 되면, 몸에 포로가 되어, 몸에 붙어있던 혼은, 그 몸에서 완전하게 풀어져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거듭날 때, 영은, 살아나서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고, 육신과 분리된 혼은, 구원을 받게 되는데, 바로 이때 혼은, 죄의 육신에서 완전하게 분리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골로새서 2장에서는 영적 할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골2:11절에 [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버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O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버리게 되리라]가 아니라, 이미 [육신의 죄들을 벗어버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받을 때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인 것입니다. O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그 즉시, 몸속에 있는 우리의 혼은, 이미 그 죄의 몸을 완전하게 벗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할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육신을 입고 살고 있고, 그리고 우리의 혼이 아직은 죄의 육신 안에 그대로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이 육신 안에 있는 구원받은 우리의 혼은,  죄의 몸인 육신과는 이미 완전하게 분리되어 구원받은 우리의 혼은 이제 다시는 죄를 질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O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께로 태어난 사람이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O그래서 요일3:9절에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함이요, 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그러나 오늘 본문28절의 본문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좀더 특별한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이 상황이 단지 구약적인 상황일 뿐 아니라, 왕국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왕국 복음 즉,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그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설교를 통해서 왕국의 법령을 선포하시고, 그리고 10장에서는 제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위임하십니다. 그래서 이 상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신약 시대와는 많은 부분이 다른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지옥에 관한 문제입니다. O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신약시대는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혼이 하늘로 가거나 아니면, 지옥에 가게 되지만, 그러나 주께서 재림하시므로 이 땅에  세워지는 천년왕국 때에는 죄를 지으면, 죽어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이, 혼과  함께 그냥 산체로 그 지옥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산채로 지옥에 던져진다는 것은 마태복음 5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5:29-30절에 보면, [한쪽 눈과 한쪽 손이 실족케 하면 그 지체를 잘라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과 손을 가지고 [몸]이 지옥에 던져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계19:20절에서는 거짓 선지자와 짐승이 [산 채로]불 못에 던져집니다. 혼과 몸이 지옥에 들어갔던 일은 구약에도 있었습니다.


O 그래서 민16:31-33절에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쳤을 때,그들의 밑에 있는 땅이 갈라지고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들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물건들을 삼키니라.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이 산 채로 구렁으로 내려가고 땅이 그 위에서 닫아 버리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멸망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진이 아닙니다. 그들이 산 채로 떨어진 구렁은 바로 지옥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멸한다]는 말은 [소멸시킨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O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구절을 [소멸]로 말하면서, 혼은, 영원히 살지 않고  소멸되기 때문에 지옥에서의 고통은 없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멸망]이라는 말은 [소멸]즉,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서 [멸망]이라는 것은, 저주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멸망한다는 말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며, 성읍이 멸망한다는  말은 성읍이 파괴된다는 말이고, 혼이 멸망한다는 말은 혼이 지옥에서 고통당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범죄 하므로 그 [영이 죽었다]는 것은, 아담의 [영의 존재] 자체가 소멸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은 결코 소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영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은 짐승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3:21절에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누가 알리요?]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짐승의 영은 인간의 영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래서 짐승의 영은, 인간의 영과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O 사람의 영은(고전2:11)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영의 소유주이신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십니다. 그래서 전12:7절에 [그때에 흙은, 예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 직관 (대상이나 어떤 현상을 보고 즉각적으로 느끼는 깨달음), 양심 등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욥은32:8절에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이 있고 전능하신 분의 영감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도다.]라고 말씀 합니다. 또, 사람의 [영]은, [앎]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은, 그 자체가 주님의 촛불이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잠20:27절에[사람의 영은 주의 촛불이라.뱃속에 있는 모든 깊은 부분들을 살피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을, 각 개인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들, 동기들, 의도들, 상상들을 살피시는 접촉점으로 사용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전2:11절에서 [사람의 일을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러므로 주의 촛불이신 인간의 영은, 인간을  하나님과 연결 하고,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타락하기 전, 주의 촛불인 인간의 영은 하늘로부터 빛을 받아 그 빛의 의해서  완전하게 감싸여 있었던 것입니다.


O 그런데 타락 이후, 인간의 영은 [죽은 영]이 된 것입니다. 소멸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서만 죽은 것]이라는 말입니다그래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살아 있는 육체 안에 “죽은 영”을 지었기 때문에 비록, 육신은 살아있으나 실제로는 “죽은 자”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2:1절에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이라고 말씀합니다. 영이 죽은 사람은 전혀  하나님의 거룩함, 정의, 자비, 선함, 능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고전2:12)


O 마치 짐승들이 사람들의 일을 이해할 수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죽은  인간의 영은, 하나님에 관한한 모든 것이 완전하게 차단되고 하나님께로 향했던 모든 영의 문은 닫쳐버리고, 사람의 영인 [주의 촛불]은 껴져버린 채, 인간의[영의 방]은 칠흑같이 어두운 캄캄한 암흑으로 감싸이게 되어 인간의 [영의 방]은, 완전하게 죽음의 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은 인간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영의 문이 완전하게 차단이 되고 그 영이 하나님과는 철저하게 단절되어 흑암에 묻혀 있으나 그렇다고 [인간의 영]이 소멸되어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영은, 죄와 사망과 멸망 아래서 악령이나, 마귀에 대하여, 또는 죄에 대하여, 이 세상에  대해서 여전히 활동하는 것입니다. O 이런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사람의 영]은 반드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과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우리의 [영의 방]에 거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은, 캄캄했던 우리의 [영의 방]에 주께서 [생명의 빛으로]오셔서 거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죄와 사망과 멸망으로 인한 죽음의 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우리의 [영의 방]은, 마침내, 다시 주님의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리고 우리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고, 하나님과 교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예배와 찬양과 기도들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구원받은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그리고 비로소 우리들이 영적인 일들을 이해할 수 가 있는 영의 사람, 영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영적인 사람, 비로써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은 우리 안에, 다시 말하면, 주님은 우리의 [영의 방] 안에 생명의 빛으로  와 계시는 것입니다.  29-33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 없이는 그 중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28절에서는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여기 31절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모든  일 앞에서는 결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사랑은 항상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분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속에서는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이고, 또, 두려움 속에는 사랑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과 더불어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대하12:4-10).


O 34절에[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O 눅2:14절에서는 [...땅 위에는 화평이요 사람들에게는 호의로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러한 목적으로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칼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평

화와 사랑과 세계평화를 외치고 있으나,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외침하고는  관계도  예수님께서는 [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화평]이라는 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평화]는 적그리스도의 슬로건인 것입니다.(단9:25,11:24).  물론,  예수님께서는  재림 때에 분명히 [화평의 통치자]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34-36절에 보면 초림 때 예수님은 처음부터 [화평케 하는 자]가 아니셨습니다. O 그래서 눅2:34-35절에서 시므온은 이 [찌르는 칼]을 깨달았고 바울은 히4:2절에서 그 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동일시했으며, 요한은 그 말씀을 성육신한  그리스도로 보았습니다.(요1:1-2). O 그러므로 예수님은 칼을 주러 오셨고, 그는 칼이시며,  그 칼로 진리와 비 진리를 나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실제적인 평화를 가져오실  분이지만, 그러나  그 앞서 칼을 주시는 일을 선행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서로 종교를 인정해 주고, 상대방을  존중해 주며,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지내자고  말합니다. 언듯 들어보면, 이치에 맞고 퍽이나 옳은 말 같고, 예의 바르고 학식 있고 신사적인 품위 있는 아주 근사하고 멋진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세계에서나 그런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헛소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37절에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며]라고 말씀 하십니다. 일반적인 윤리나 철학을 초월하는 이 말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우선인가, 어떤 일이 급한 일이며, 어떤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가 하는 우선순위를 말할 때는 이 세상 그 무엇도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앞 설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은 오직 그 길, 그 하나의 길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O 다시 38절에 [또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자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자아도 죽이고, 또 죽기까지 신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죽기까지 신실 하라는 말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범죄자들이 받는 형벌입니다. 특별히 당시에는 로마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처해지는 극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친히 범죄자 아닌 범죄자가 되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

가 만약 주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정말 진리를 전한다고 한다면, 우리 역시 그 길을 걸어야 하고, 또한 세상은 주를 미워하듯이 우리를 미워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파하면 세상에서 우리들을 미워합니다. 진리를 전하는 우리들은 세상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는  미워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어

떤 평화계획을 믿지도 동조하지도 않기 때문이 미워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구할 단 하나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미워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처럼 그들

의 혼을 구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때문에 세상은 예수님처럼 우리도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0-42절에[너희를 영접하는 사람은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며 또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사람은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사람은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마실 냉수 한 잔이라도 주면,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는 결코 자기상을 잃지 아니하리라.하시더라.]고 말씀하십니다.


O 대 환란 기간 중에는 예수님께서 전파하셨던 것과 똑같은, 열두 사도들에게 위임되었던 것과 똑같은 천국 복음이 다시 전파될 것입니다. O그리고 이때 이 복음을 전파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도들에게 주어졌던 것과 똑같은 권세와 [표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병 고침의 이적을  행하고, 마귀들을 쫓아내며, 새 방언들을 말 할 것이며, 뱀을 집을 것이고, 어떤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입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0 만약,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이 말씀을 오해서 어리석게, 나는 믿음이 있노라고 떠들어 대면서 손으로 독사를 집으면, 독사는 그를 물어 죽일 것이며, 독을 마시면, 그는 그 독으로 즉시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 환란 기간 중일 때는 다릅니다. 그때는 예수님께서 전파하셨던 것과 똑같은, 열두 사도들에게 위임되었던 것과 똑같은 권세와 [표적]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막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들이 따르리니, 즉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쫓아내고 또 새 방언들로 말하리라. 그들은 뱀들을 집을 것이요, 어떤 독을 마실지라도  결코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병자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회복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이때  40-42절의 말씀처럼 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영접하고 이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겐 화평이 임할 것이고, 그들은 선지자의 상과 의인의 상을 받을 것입니다. 또 이 기간 중에는 많은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전쟁을 하고 또 핍박 할  것이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민족은양과 염소로 가르실 때, 그들은 양으로 분류되어 구원을 받게 것입니다.(마25:31-46).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이후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비록  지금 이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반역으로 떨어져 나갔을지라도,그러나 성경 예언에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위대한 민족으로 재건될 것입니다.그리고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그들과 화친했던 나라들이 복을 받아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핍박한 나라들이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어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해 환란 중에 남게 될 정치가라면, 반드시 유대인 보호정책을 써야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코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동조하거나 그 세력인 바티칸 교황청과 협약  같은 것은 결코 맺지 말아야 합니다.


UN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합의할 때, 그들과 결코 동조하지 말아야하며,  이스라엘이 고립될 때,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을 원하든지 그것을 최대한 지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환란을 겪은 다음에도 마25:31-46절의 말씀에 따라서 [양]에 속한 민족으로 구원받아 천년왕국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런데 이 대 환란은 곧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앞서 공중으로 이끌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일이 있습니다. 주님은 42절에서[이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마실 냉수 한 잔이라도 주면,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는 결코 자기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사람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물을 마시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 날이 있기까지 죄와 사망과 멸망에 처한 자들의 혼을 구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파해서  그들에게 주께서 주시는 영생의 물을 마시게 하므로 그 혼을 구원해  내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지는, 들림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