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주 일 예 배
벧전4:1-6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때 우리를 위하여 육체로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이는 육체로 고난을 받은 자는 죄로부터 단절되었음이니 2이는 그가 육체 안에서 자기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3 우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혐오스런 우상 숭배를 행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도다. 4 이방인들은 너희가 그들과 함께 같은 방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너희를 비방하나 5그들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게 될 그분께 설명하게 되리라. 6이런 연유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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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지난 시간에 베드로는 벧전3:22절에서 [그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순종하느니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심으로써 우리들의 죄들을 완전하게 종결지으시고, 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올라가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신 주님께,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모두 순종하며, 그리고 오직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사망 권세를 지녔던 마귀는, 죽으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므로 완전히 패망하게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O 그리고 이제 주께 남은 것은, 한 가지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께서 다시 오셔서 죄로 물든 이 땅을 멸하시고, 이 세상을 지배했던 악한 마귀의 세력들을 완전하게 멸하신 후, 그분의 왕국, 즉 천국을 이 땅에 세우시는 일만 남게 된 것입니다.
O 오늘 본문 1절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그때 우리를 위하여 육체로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무장하라]는 명령은, 싸움터에 나가는 병사들에게나 해당하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이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영적으로 싸움터에 임한 병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딤후2:3-4절에 [그런즉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뎌 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우리는 단단히[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적은 바로 2절과 3절에서 분명하게 들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대적은 말할 것도 없이 마귀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마귀대로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자신의 군사들을 앞세워 우리에게 덤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마귀의 전략이고, 누가 그의 군사들인지를 똑바로 알고 식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어둠의 골짜기를 통과하며 어려움과 역경에 처하게 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육신의 옷을 입고 있는 이상은 어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을 겪으면서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세권의 성경책이 있는데, 그 하나가 욥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편이며, 나머지 하나는 바로 여기 베드로전서입니다.
O 사람들은 시편은 아름다운 책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실, 이 시편 속으로 계속 들어가 다 보면, 시편의 내용들은 거의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온갖 고난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갖 고난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만을 보고 고난의 골짜기 저 너머에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아름답고 귀한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시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난 그 자체의 책으로만 우리에게 남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러나 넘어지고 또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그 고난의 골짜기를 계속 걸어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 사이에 그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마침내 고난의 골짜기 저 너머에 있는 환희를 발견하고 환호하며, 하나님을 찬양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시편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역시 마찬가지로 시편처럼 고난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그러나 거기서만 끝나지 않고, 고난 저 너머에 있는 놀라운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O 베드로는 다시 [이는 육체로 고난을 받는 자는 죄로부터 단절되었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적용이 되는데, 그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그때 우리를 위하여 육체로 고난을 받으셨으니]라고 하는 말씀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죄로 삼으신바 되셔서 육체로 고난 받으시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서 인간과 죄와의 관계를 완전하게 종결지으시고, 모든 죄의 문제를 말끔히 처리 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적용됩니다.
O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는 육체로 고난을 받은 자는 죄로부터 단절되었음이니]라고 하는 말씀대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시는 것으로, 사람이 육체로 고난을 받게 되면, 열 명중, 아홉은 죄를 짓는 일에서 손을 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이 몸이 아파 꼼짝 못하고 병상에 누워 이제는 어찌할 수 없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을 때,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라면, 그런 지경이라도 여전히 악한 생각을 품고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로 이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동안의 자신의 죄를 살피면서 이제부터 그 죄로부터 손을 떼고 죄를 청산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병상에 누워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그리스도인에게 놀라운 영항을 끼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역경을 통과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놀랍게 정결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이 갖는 고유 기능이요, 그리고 고난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놀라운 효과인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 정결케 된 후에, 마침내 위로부터 생명의 생수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인만이 경험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O 반면에 그리스도인의 타락은,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그의 번영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번영을 누린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무엇인가 물질적인 필요가 충족될 수 있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 하나님을 찾는 일이 그만큼 뜸해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번영을 누릴 때, 하나님께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자신을 경계하지 않으면, 그 번영은 오히려 그에게 복이 아니라, 결국 저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O 3절에 [우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혐오스런 우상 숭배를 행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죄와 불의와 악한 것들은 지난날, 우리가 주 예수를 믿기 전의 것들로서 충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형태의 죄든 간에, 죄는 일단 지나간 한 번으로 족한 것이고, 죄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로 끝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결과가 무엇이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죄는 두 번 다시 반복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난 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혐오스런 우상 숭배] 등등은 지나간 것으로 완전히 끝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O4절에 [이방인들은 너희가 그들과 함께 같은 방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너희를 비방하나]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이방인들]이란, 구원은 받았으되,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고 [너희]란 바로 구원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O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중에는 여전히 세상에 몸을 내맡기고 사는 사람들이 허다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고 거듭나 새로 태어남과 동시에, 영적으로는 즉시 마귀와의 모든 관계가 완전하게 끊어지고, 마귀와는 손을 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의 몸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들림 받아 우리 육신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기전까지는 지난날 행했던 육신적인 나쁜 습관과 행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지난날의 모든 육신적인 것들을 털어 버리고 다시는 그것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전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구원받기 전에 하던 육신적인 일들을 마음에 죄의식도, 양심에 아무 거리낌도 없이, 여전히 계속 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옛날 과거에 행했던 방탕했던 행동을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자고 제안 해 오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면, 그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우리를 비방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에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게 될 그분께 설명하게 되리라] 고 베드로는 5절에서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을 비방하고 조롱하고 욕했던 그들은 반드시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주님께 그에 대한 분명하게 해명을 해야만 할 것이고, 그리고 그들이 당하는 부끄러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6절에 [이런 연유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3장에서도 잠시 드렸습니다. 그래서 벧전3:19절에서는 [그가 성령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 하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그때 주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한 것은 [복음]이 아니라, 백보좌 심판 날까지 계속 그 [옥]에 그대로 있어야할 것을 선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본문 6절에서는, 주께서 그들에게 전하신 것은 [복음] 즉, 기쁜 소식이 전파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죽은 자들에게] 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죽은 자들]에 대해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들], 즉, 구원받지 못한 이 세상의 불신자들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해 보면, 지금 이 말씀은 단순히 영적으로 죽은, 세상의 불신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O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처형되어 죽으셨고 장사한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셨으며,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고 그분을 자기 개인의 구주로 영접 하면 구원받아 지옥에 가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이 지구상에 사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에게 전파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본문이 말하는[죽은 자들]이 누구인지를 우리가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말씀의 표현을 잘 살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글자에 찍힌 점 하나에 따라,그 내용이 전혀 다른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그냥[죽은 자들]에게 전파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죽은 자들]에게[도], 전파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적으로는 살이 있으나 [영적으로 죽어 있는] 세상의 불신자들에게 전파되는 것이 복음이지만, 그러나 지금 베드로가 [죽은 자들]에게[도], 전파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 말고, 또 다른 [죽은 자들에게]도, 전파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이 [죽은 자들]은, 문자 그대로 육신이 죽어서 그들의 혼은 지금 지하 어딘가에 있는 그런 자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O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반 동안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 [3년 반]의 사역 기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3년 반의 사역]을 위해서, 주님은 30년 동안을, 산골 작은 마을 나사렛 동네에서 조용히 그 때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나이 30세가 되시자, 주님은 나사렛 동네에서 나오셔서, 마침내 지상에 살고 있는 죄인들을 행해서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하셨고, 그리고 마침내 주께서는 인간들의 모든 죄들을 위한 희생의 어린양이 되시어 인간들의 죄가 되셨고, 저주가 되시어서 마침내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께서는 부활하시기 전인, 바로 그 사흘 낮과, 사홀 밤 동안, 지하 세계로 내려가셔서, 거기 어딘가에 들어가 있던 그 [죽은 자들]에게 찾아 가셔서 그들에게 또 다시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직후, 부활하시기 전, 바로 그 사흘 동안, 주님께서는 지하 세계에 다녀오셨다는 사실을 성경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엡4:8-10절에 보면,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이것은 주께 부활하여 셋째하늘로 올라가실 때를 말함)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갔고 (이것은 지하에 있는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하는 바로 그 낙원에서 주를 기다리며 머물러 있는 자들을 말함) 사람들에게는 은사를 주셨다, 고 하셨느니라.(따라서 그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땅의 더 낮은 부분(이것은 지하세계를 말함)들로 먼저 내려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내려가셨던 그가 모든 하늘들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니 그가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려 함이니라]라 고 말씀합니다.
O 그렇습니다. 주께서는 지하 세계에 내려가셔서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에만 다녀오셨던 게 아니라 [고통의 장소]라 불리는[지옥]에까지 다녀오셨다는 사실을 벧전3:19절의 말씀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구약시대의 지옥과 낙원은 모두 지하 세계에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옥에서도, 저 멀리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의 세계를 바라볼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눅16:23-26절에 보면,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에 눈을 들어 저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더니 나사로가 그의 품에 있는지라. 그가 소리 질러 말하기를‘아버지 아브라함이여,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아이야, 너는 네 생전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나쁜 것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커다란 구렁이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하여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셨을 때,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는 [지옥]에까지 다녀오셨기 때문에,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던 주께서 저와 여러분과 인간들의 모든 죄들을 그곳에 내려놓으시므로 우리들의 모든 죄들을 말끔히 처리하셨던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담당하셨던 우리의 모든 죄들은 주님에 의해서 지옥으로 옮겨졌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 죄들은 지옥에 그대로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이, 셋째 하늘로 옮겨진 것처럼, 이 지구의 지하에 있는 이 지옥 역시 장차 영원한 [불 못]으로 다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20:14절에 [사망과 지옥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렇게 하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되셨고, 저주가 되시어서(갈3:13), 우리들의 모든 죄들을 청산하시기 위해서 지옥으로 내려가셨던 것입니다.(고후5:21). 그러나 오늘날 성경대로 믿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주께서 지옥으로 내려 가실수가 있겠는가라고 말합니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주께서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우리 집의 모든 더러운 쓰레기들은 청소차가 와서 모두 다 싫고 갔으므로 우리 집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청소차에 실려 있는 그 쓰레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쓰레기를 싫은 차는 곧장 쓰레기 소각장으로 달려가서 불에 태워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가 되시고,우리의 저주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들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그것으로 우리의 모든 죄들은 모두다 깨끗하게 청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짊어지신 그 죄들은 어떻게 청산하실 것인가?주께서 우리들의 죄들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해서 그 죽으시는 순간, 주께서 짊어지셨던 우리들의 죄들이 모두 공중 분해되어 다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께서 짊어지신 그 죄들로 인해서 주님은 지옥까지 내려가셔야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죄들을 청산하는 곳은 바로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죄들을 청산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육신과 함께 그 혼도 죄들을 청산하는 바로 그 지옥으로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성경대로 믿지 않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말대로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신 주께서 지옥으로 내려가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죄를 지고 가셨던 주님은 그 죄를 청산하시지 못하시고,계속 짊어지고 계셔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록 주님에 의해서 우리는 영원히 죄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 의해서 영원히 죄 있는 분이 되실 것이고, 그리고 주님께서 두 번째 오시게 될 때, 다시 말하면, 주께서 재림하실 때도, 주님은 별수 없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체 죄 있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실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분께서는 다시 오실 때는 죄 없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강조 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9:2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들의 죄들을 청산하시기 위해서 지옥으로 내려 가셨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2:31절에 보면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육신도 썩어짐을 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몸이 죽으신 채로 무덤에 그대로 있었던 것도 아니요, 주님의 혼이 지옥에 들어가신 채로 그곳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육신도 주님의 혼도 모두 거기서 다시 나오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부활이셨던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지하 세계로 내려가셨던 주님께서는 먼저 [스올]이라고도 하고, [하데스]라고도 하는 지옥으로 가셔서 지옥에 죄들을 내려놓으시고,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 다음, 그 지옥의 문들을 걸어 잠그시고, 다시 지옥의 저 멀리에 따로 있던 다시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셔서 거기에 있는 구약 성도들을 만나 그들에게 [도], 믿고 구원에 이르는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도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벧전4:6절의 [죽은 자들]이란, 바로 구약에서 구원받아 지옥의 건너편 저 멀리에 있는 소위 아브라함의 품이라 부르는 지하 낙원에 가 있던 자들인 것입니다. 짐승의 피로 구원받은 구약의 성도들은 그들의 죄들이 완전하게 제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짐승의 피는 그들의 죄들을 일시적으로 용서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짐승의 피가 그들의 모든 죄를 완전하게 제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짐승의 피로 일시적으로 죄가 없는 것처럼 가리 움을 받은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짐승의 피는 사람들의 죄들을 완전하게 제거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O 다시 말하면, 구약의 성도들은 죄를 지면,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지우게 해서 그 짐승의 죽게 하므로 그 피로 자신의 죄를 용서 받아 마치 죄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양심까지 깨끗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9:9절에 [...예물들과 희생 제물들을 드려도 양심에 관해서는 섬긴 자를 온전케 할 수 없었도다]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겉으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죄 없는 척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의 양심에는 여전히 나는 범죄자라는 사실은 없이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일정한 죄의 댓가를 치루고, 나왔기 때문에 자유의 몸이 되어 사회활동에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런 죄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전과자라는 기록이 그에게 따라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이 비록 짐승의 피로 자신들의 죄를 용서 받았을지라도,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양심까지 깨끗하게 해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완전하게 제거하시는 어린양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는 속죄가 있을 때까지, 짐승의 피는 구약의 성도들의 죄들을 유예 해 주는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그 양심까지도 완전하게 깨끗이 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전한 복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그래서 속죄의 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직후, 지하 세계에 있는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에 있는 이들에게 찾아가셔서 [나는 너희 모든 죄들을 위해 희생 제물로 드려진 어린 양이다. 희생의 제물로 드려진 나의 피로 너의 모든 죄들은 이제 완전하게 제거 되었다. 그로 인하여 이제 모든 것은 완전하게 이루어 졌다. 이제 나와 함께 저 셋째 하늘로 가자.] 바로 이 [복음] 이 [기쁜 소식]을 전하신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불안전한 구원을 받은 구약의 성도들은 주님께서 희생의 제물로 피 흘리신 그 완벽한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오셔서 자신들에게 전해 주시고, 그리고 지하 세계 낙원에서 셋째 하늘로 옮겨 주시기 위해서 자신들을 데리러 오실 때까지, 주를 기다리며, 아브라함의 품인 지하 세계의 낙원에서 일시적으로 머물러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므로 모든 죄들을 제거하시고 곧바로 땅 아래로 내려오셨고 그리고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인, 지옥에 들러 죄들을 가두어 놓으신 다음, 낙원에 들러 [죽은 자들]즉 구약 성도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지하에 사로잡혀 있던 구약의 성도들을 엡4:8-10절의 말씀과 같이, 주께서 그들을 하늘로 데리시고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자신이 죽으신 후, 땅의 더 낮은 부분들인 지옥에 다녀오실 일에 대해 요나의 표적을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예고해 주셨던 것입니다.그래서 마12:39-40절에 [악하고 음란한 세 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줄 표적이 없도다. 요나가 사홀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홀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지옥에 문들이 있다는 사실도 밝히셨습니다.
O 마16:18절에서는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지옥에는 문들이 있는데, 이 문들이 아무리 입을 크게 벌리고 죄와 죽음과 사망의 헛 바닥이 널름거리더라도 주님의 교회에게는 당해내지 못할 것임을 주님께서 친히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또 주님께서는 그 지옥의 문들을 여닫을 수 있는 열쇠를 갖고 계시다는 사실도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계1:18절에[나는 살아 있는 자며, 죽은 자였으나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졌노라]고 하셨습니다. O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후, 세상의 모든 죄들을 짊어지시고 그리로 내려가셔서 마치, 청소차가 쓰레기하치장에 가서 가득 싣고 온 쓰레기를 쏟아 놓듯이 거기에 모두 쏟아 버리신 후 빗장들을 걸고 다시 나오셔서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성경이 밝히고 있는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참으로 위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결코 육신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책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어깨 너머로 듣고, 여기저기서 들은풍월로 짓거리는 말장난이나 하는 대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그렇습니다. 지금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이 [죽은 자들]은 문자 그대로 그들 육신이 죽어서 눅23:43절에서 주께서 낙원이라 부르시고, 눅16:22절에서는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지하의 세계에 있는 구약의 성도들입니다.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신 직후 부활하시기 전, 사흘 낮과 사홀 밤 동안, 어느 시점에 주님은 그곳으로 가셔서 그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그들을 셋째 하늘로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O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막16:15절에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 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이것은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지상 최고의 명령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행11:19절에 [말씀을 전파하라]. 행14:7절에 [복음을 전파하라]. 살전2:9절에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혼을 구해 내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혼을 구해 내는 것보다 더 귀한 사랑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혼을 구해 내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 주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이 세상 오셨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0 그래서 우리는 복음 전파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공동묘지에나, 납골당에 찾아가서 복음을 전파할 수 없습니다. 육신이 살아있는 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것도 때를 놓치지 말고,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들이 죽기 전에, 그들이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시간에, 아직은 그들에게 온전한 정신이 있을 때, 시간을 놓치지 말고, 얼른, 빨리, 신속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발 거름에 머물러 있는 바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0 그래서 바울은 이 일을 딤후 4:2절에서[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견책하고 책망하며 권고하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믿는지 믿지 않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처형되어 죽으셨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셨으며,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고 그분을 자기 개인의 구주로 영접 하면 구원받아 지옥에 가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이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성령의 조명을 받아 성경이 말씀 하시고 있는 놀라운 영적 세계의 지식을 가지므로 더욱 믿음에 굳건히 서서 주의 복음을 전하고 혼을 이기어 오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