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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박종각 2018. 3. 11. 02:07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주     일     예     배
                                              벧전3:16-22절 말씀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들이 행악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너희를  비방하다가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거짓되이 비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17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느니 선을 행하다가 당하는 것이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몇 명뿐이니 곧 여덟 혼들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순종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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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본문 16절에[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들이 행악 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너희를 비방 하다가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거짓되이 비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시간에 베드로는 15절에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며,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답변할 것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항상 예비]하라

고 말합니다. 여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긴다]는  이 말씀에 우리는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거룩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O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도, 그러나 그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속으로[하나님을 거룩하게]여긴다는 이 말은,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세상의 그 어떤 것과는 다르게 아주 특별한 용도에 쓰기  위해서  구별하여 놓는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긴다]고 말할 때, 나는 하나님을,  세상의  모든 것들과 뒤섞어 놓고 그것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일로 인하여 세상의 그 어떤 것 하고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면서 내 마음에서 하나님을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으로 대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대한다면, 우리는 이 하나님을 우리 몸 안에  즉 우리 마음에 모실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모셨다면, 우리는 그 거룩한  분을 모신 자로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모신 자로서  우리 자신을 [정결케]해야 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긴다]는 이 말은, 바로 내[자신을 정결케 한다]는 이차적인 의미까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벧전1:16절에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또, 15절에서는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답변할 것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항상 예비해 두라]고 말씀 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거짓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안겨 주는 자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미련하게도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지], 그 이유를 궁금해 하면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속에 있는 소망]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자들이 있어 왔습니다. O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에게나 [모든 사람에게] 당당하게  답변할 수 있도록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서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그 소망에 대해  답변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주는 사람들에게 왜 답변할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본문 16절에서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들이 행악 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너희를 비방 하다가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거짓되이 비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의를 위하여 고난당할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주는 자들은 [행악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선함에 그들의 비난은 거짓에 의한 비난입니다. 이런 행악 자들이 그리스도인을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너희 안에 있는 소망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물을 때,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담대한 답변을 들으면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드러나는 [선한 양심]을 보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을 거짓을 만들어서 거짓말로 비난하고 있는 그 일에 대해서 그들의 마음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며 소망에 관해 묻는 모든 자들에게 답변할 것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항상 예비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란,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겸손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을 낮추되, 불의에 대해서는 담대하게 대항하고, 악에 대하여 용기 있게 대적하며 복음 전파와 진리 수호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 담대함과 믿음으로 무장한 강건한 용기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

는 것, 이것이 바로 온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O그래서 엡3:12절에서 바울은[그 안에서 우리가 그분을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느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거짓 진리를 말하고 거짓이 진리인양 말하는 자들과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없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전도지 한 장 나누어  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담대하지 못하면, 그 안에 계신 주님께서 높임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1:20절에 [나의 간절한 기도와 소망에  따라 내가 어떤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고 항상 그러하듯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내 몸 안에서 늘 높임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기야  살든지 죽든지 문제 삼치 않았습니다. O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내 몸 안에서 높임을 받으시게 하려는]일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O 17절에[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느니 선을 행하다가 당하는 것이 나으니라]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하다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수는 얼마든지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꼭 선만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악을 행하든], [선을 행하든]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면, 기왕이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을 행하며] 고난을  당하는 쪽을 택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18절에[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데 중요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다음에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심판석에 섰을 때는 이미 모든 때는  늦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죄인들, 불의 한 자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전혀 죄가 없는 [의인]이십니다. 이런 분께서[불의한 자]를 살리기  위해서 그들을 [대신]하여 자기가 친히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 죽음으로써  이 땅의 모든 [불의한 자]들의 [불의]에 대한 값을 혼자 다 치러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려고, 우리 같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믿고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모든  죄들을 위해 죽으셨고, 그로 인해 나의 죄들을 사함 받고, 내가 의롭게 되었음을 믿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는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18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O 19-20절에 [그가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몇 명뿐이니 곧 여덟 혼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앞에 18절에서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라는 말씀과  연결되어  l9절의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은 한 말씀, 한 말씀을  아주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앞의 18절과 19절의 이 말씀을 이어 보면, [성령에 의하여]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에 의해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주께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시는 데, 그때, [성령]께서는 주님의 [수송 수단]이 되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있는 그 영들]에게로 가신 주께서 그[영들]에게 [전파]하신 것이 무엇인가? 보통 일반적으로  이 구절이 설명되는 것은 주께서 전파하신 것은 [복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과 말씀들을 비교해 보고, 구절과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주께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 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O 왜냐하면, 주께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 것이 [복음]이었다면, 처음부터 [복음전파]라고 말씀하시든지, 설령[복음]이라는 표현이 없다 할지라도, 앞 위의 문맥을 살펴보면, 주께서 [전파]하신 것이 [복음]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이것은 다음 4장에서도 우리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벧전4:6절에 보면,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라고 말씀하므로 여기 19절과는 분명하게 차이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벧전4:6절에서는,  주께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19절에서는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전파]하셨다는 말씀만 하시므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는  [복음]이 아니라  [무엇인가] 다른  말씀을 [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 19절과,  그리고 4:6절의  차이점은 또 이것만이 아닙니다.  19절에서는 [영들에게도]라고 말씀 하시지만, 그러나 4:6절에서는,  복음이 [죽은 자들에게도]라고 말씀 하시므로 [영들]과 [죽은 자들]이라는 차이점을  둡니다.  또, 여기 영들은 [감옥에 있지만] 그러나 4:6절에 있는 죽은 자들은 [감옥에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O 그래서 4:6절에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된 그 결과 이 [죽은 자들]은, 그 복음에 순종하여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된 사람들로 [감옥에 있는 영들]하고는, 다른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19절의 [감옥에 있는 영들]인, 이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감옥에 있는 영들]이, 언제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었는가? 본문은 이들이 [전에 노아의 날에  방주를 준비하던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었다고 말씀 하십니다.


O 오늘 본문 19절이 오늘날 성경 주석가들에게 의해서 설명되는 것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영들]이 가 있는 부분 중, 한 곳인, 지하 세계는,그 중심에는 [끝없이 깊은 구렁]이 있고, 그리고 거기에서 지표면으로 올라가는 중간쯤에는, 좌,우로 한편에는 히브리어로는 [스올]이라고 불리고, 또, 헬라어로는 [하데스]라고 불리는[지옥]이 있는데, 그래서 구약에서 구원받지 못한 혼들은 이 [지옥]에 가 있는 것이고, 또, 다른 한편에는, 구약적인 의미에서의 [아브라함의 품]즉, [낙원]이라는  것이 있는데, 구약에서 구원받은 혼들은 [아브라함의 품]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어 죽으신 직후, 예수님은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로 가셨고,  그리고  [감옥에 있는 영들], 즉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경 주석가들에게 의해서  대체로 설명되는 19절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본문 [전에 노아의 날에...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라는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신 자들은, 단순히 죄 지은 혼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를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감옥에 있는 영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셨지만, 끝내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던 인간들이 아니라, 는 것을 보여 주시고 계신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감옥에 있는 영들]은, 벧전4:6절의 [죽은 자들]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이 존재들은 그들의 처음 지위에서 떠나 당시 노아의 때에 땅에서 활동했던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께는 그들의 처음 지위로 다시 돌아오기를 그토록 오래 참고  기다렸지만, 그러나 그 기다시는 하나님을 뜻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바램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바로  [영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성경 주석가들이 설명하는 대로 구약적 지하 세계의 상황은 분명히 그러합니다. 그래서 [땅의 더 낮은 부분]인, 땅 밑 지하 세계는 그 중심에 분명히 [끝없이 깊은 구렁]이 있습니다. 지하의 세계는 인간들이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끝없이 깊은 구렁]이 있는 거기서 지표면으로 올라가는 중간쯤에는, 좌우로, 한편에는 [하데스]라고 불리는 [지옥]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구약적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품]즉 [낙원]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의 구약적인 상황입니다.


O 그러나 이들이 설명하는 대로, 19절에서 말하는 [감옥이 있는 영들]은,  결코  벧전 4:6절에 [죽은 자들]과 같은 자들이 아닙니다. O 왜냐하면, 이 [감옥에 있는 영들]은, 율법 이전의  어느 특정한 시기에 등장했던 특별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영들]은, 아브라함의 시대의 사람들도 아니고, 모세의 율법 하에서 죽었던 사람들도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19절에 나오는 이 [감옥에 있는 영들]은, 지구상에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이전, 다시 말하면 [유대인]이, 이 세상에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O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던] [노아의 날들]동안, 아직 지구상에 아브라함도 없고, 율법도 없었고, [유대인]도 없던 바로 그런 특별한 시대에 살던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품]은, 노아의 때를 훨씬 지난 이후, 유대인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에, 노아 때에는 전혀 해당 되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감옥에 있는 영들]이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인데, 우리가 히1:14절에 보면, 천사들에 대해  말씀이  나오는데, [천사들은 모두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하여 그들을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섬기는 영들이 아니냐?]고 바울은 말합니다. 또, 히1:7절에서는 [그는 자기 천사들을  영들로,  자기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씀들로 볼 때, 우리는 이들 [감옥에 있는 영들]은, 창6:1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 즉 노아의 시대에, 자기들의 처음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난 죄 지은 천사들이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벧후 2장에서 우리에게 확인 할 수가 있습니다.






O 그래서 벧후 2:4-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천사들조차 아끼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서 흑암의 사슬에 내어주어 심판 때까지 가두어 두셨으며 또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셨으나 여덟 번째 사람인 의의 전파자 노아는 구원하시고 경건치 않은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사실은, 유다서에서도 다시, 확인 시켜 주십니다. O 그래서 유1:6절에 [또 자기들의 처음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주께서 영원한 사슬로 묶어 큰 날의 심판 때까지 흑암 속에 가두어 두셨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백 보좌 심판석에서 바로 이[영들]을 심판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고전6:3절에  [너희는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 라는 말씀은, 주께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 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을 받게 될 그때까지 거기에 그대로 있으라]는 것을 말씀 하신  것이고,  그리고 [감옥에 있는 영들]은, [죽은 혼들이] 아니라, 처음 자신들의  지위를  떠난 죄를 지은 천사들]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물]즉, [침례]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에 불과할 뿐이고, 그러기 때문에[침례]는, 우리의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며], 침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는 말입니다. O 여기서 [선한 양심]이라는 것은, 단순히 착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들의 새 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않고는 우리 인간들은 결코 [선한 양심]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그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하고 착하게 천사 같은 마음으로 행동한다 할지라도 그가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면, 그의 모든 것들은 죄와 사망과  멸망으로  썩고 부패한 악한 양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 세상에서는 선한 행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환영 받을 수 있고, 칭찬을 들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러나  하나님께로 부터는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침례가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는 말은,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아 우리가 그 [새 양심]을 갖게 된 [다음에], 나를 구원에 주신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주여! 내가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행동으로 응답하는 것이 바로[침례]  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구원받기 전에는 침례에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례가,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전결케 해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행15:9절에[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케 하셨느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1절에[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다시 말하면, [침례]란,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모형]인가? 20절의 끝 부분에 [여덟 혼들이 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구원받은 이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하나의[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침례라는 말조차도 들어 본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는 [침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노아]와 물에 연결시켜 침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여덟 혼들은 [홍수의 물들] 덕분에, 그 악하고 경건치 아니한 세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고  구별되고 구원을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홍수의 물들]이 아니었더라면, 노아와 그의 가족들 역시,악하고 경건치 못한 세대와 함께 그대로 멸망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은 물 때문에 방주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리고 그들이 방주에 들어갔기 때문에 물로 멸망당할 세상으로부터 완전하게 분리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물로 멸망당하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하게  구원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O 그러나 방주에 들어가 있던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을 제외하고는, 땅 위의 모든 인간들은, 그리고 그들이 그동안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 단 하나의 것도  암지 않고, 모두 [물로] 멸망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노아의 날들로 되돌아가 보면,  우리는 어째서 침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물의 모형이 될 수 있는 가를 금방 이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지면을 덮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죄들과, 그들의 모든 것들은, 그 물로 완전하게 덮어 버리고, 물 아래로 무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수면 위에 떠 있는 노아역시, 자신의 모든 것들이 저 물속에 던져 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노아는 세상의 모든 죄들을 다 저 물속에 던져 버릴 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로써 노아의 모든 죄들은 물로 덮이고, 죽고, 장사지내지고, 그것으로 완전히 끝나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노아의 가족들은 물로 말미암아 멸망의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모든 죄들로부터 분리되어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들과 함께  죽으시고 장사지 낸 바 되셨던 것의 하나의 [모형]이요, 이것이 또한 그분께서 장사지 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켜지셨던 바로 그 부활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이러한 [모형]을, 실시해 주는 것이 바로 [침례]라는 것입니다.   22절에 [그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순종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심으로써 우리들의 죄들을  종결지으시고, 그 죄들을 땅에 묻으신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닙니다. O 그분께서는  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 일으켜지심으로써 이것을 믿고 받아들인 우리역시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 영원토록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O 그리고 주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사망 권세를 지녔던 마귀는 완전히 패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영적 세계의 모든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굴복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그것은 바로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죄로 물든  이 땅을 멸하시고, 그리고 이 세상을 지배했던 악한 마귀의 세력들을 멸하신 후,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는 일만 남게 된 것입니다.






0 그래서 지금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날, 주의 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열망하며 소망하면서 그 영광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날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러 올라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아주 갑작스럽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다가, 그리고 어디에  있다가, 그 영광의 날을 맞이할지,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날을 위해서 항상 준비하고 있을 수밖에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깨어 있으라. 믿음 안에 굳게 서라]고 고전16:13절에 말씀 하십니다. 골4:2절에서도 [꾸준히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기도에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


살전5:5-6절에서는 [너희는 모두 빛의 자녀들이며 낮의 자녀들이라. 우리는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구별되고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정신을 차리라.]고 바울은 거듭 당부를 합니다.  


주님께서도 이 날에 대해서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고 아주 강력하게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생각지 않은 시간에 내가 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눅12:40절에서 말씀 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면, 이제 모든 것은 다 끝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을 위하여 준비하고 그날을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항상 기도하고, 감사하므로 깨어 있고, 성결한 마음으로 그날을 준비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쁨으로 주를 섬기면서 한 혼이라도 더 구령하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