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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나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리니,

박종각 2018. 2. 3. 01:52

                                 연기 나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리니, 

 

                              마12:14-24절 말씀입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그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그에 대하여 모의하더라. 그러나 예수께서 이를 아시고 그곳을 떠나시니, 큰 무리가 그를 따르더라. 주께서 그들을 다 고쳐 주시고, 자기를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시더라.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니, 말씀하시기를“내가 택한 나의 종을 보라. 그는 나의 사랑하는 자로, 그 안에서 내 혼이 매우 기뻐하노라. 내가 내 영을 그에게 두리니, 그가 이방인들에게 심판을 보이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고 울부짖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한 아무도 그의 음성을 길거리에서 들을 수 없으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할 것이며, 연기 나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리니,  그가 심판하여 승리할 때까지 하리라. 또 이방인들이 그의 이름에 소망을 두리라.”하신  것이라. 그 후에 눈멀고 벙어리 된,  한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을 주께 데려오니, 그를 고쳐 주시니라. 그러므로 그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이 말도 하고 보기도 하니, 무리들이 다 놀라서 말하기를“이분이 다윗의 아들이 아니냐?”고 하더라.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이 사람이  마귀들의  통치자인  비엘세붑을  힘입지  않고서는  마귀들을 쫓아낼 수 없느니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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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직접적으로 자극받은 것은 안식일에 관한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을 굳지 나눈다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법]과 모든 규례를 지키는 [의식 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의식 법]에 속하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대적할 때, 도덕법 보다는, 손 씻고 먹어야 한다든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든지 하는 그런 [의식 법] 문제를 더 내 세워서 대적했던 것입니다. 15절에 [그러나 예수께서 이를 아시고 그곳을 떠나시니]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곳을 떠나신 이유는 사람들이 주님의 의지를 꺾고 주님을 죽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요10:18). 주님께선 이미 자신이 죽 으실 조건들과, 그리고 그 때를 처음부터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17-21절의 말씀은,  바로  16절에서 주께서 [자신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신]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조용히 오시는 주님의 초림에 대해서 말씀 하신으로 주께서 사42:1-4절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여기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시는 것을 이미 예언 적으로 말씀 하신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할 것이며, 연기 나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리니, 그가 심판하여 승리할 때까지 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상한 갈대]는 보통 마음이 상한 성도들을 말씀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꺾거나  내버리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치유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또, [연기 나는 심지]는 성도들 안에 계시는 성령의 유형을 말씀 하이며 그래서 성령은 [하나님께서 구속의 날까지  그들을 인치 신다, 는 약속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O 22절에 [눈멀고 벙어리 된, 한 마귀에게 사로잡힌]이 사람은 예언적인 의미로 본다면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주님은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그러나 주님의 백성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1:11절에 [그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방인에게로 돌이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일시적인 불행이,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영원한 행복이 된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주를 영접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12절에서 [누구든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니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찰 때까지는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귀는 둔하게 되고, 눈은 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28;26-28절에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라.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 귀는 듣는 데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회심하지도  못하게 되어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방인들에게 보낸 것과 그들이 그것을 들을 것을 너희가 알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지만, 22절에서 [그 후에 눈멀고  벙어리 된, 한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을 고쳐 주시니라.]고 말씀 하시므로, 주께서 대 환란 이후에는  눈멀고 벙어리 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보여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23절에 [무리들이 다 놀라서 말하기를 “이분이 다윗의 아들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 앞에서 한 무리들은, 주께서 [다윗의 아들]임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극심한 모독을 퍼 붓습니다 그래서 24절에서 그들은 [마귀들의 통치자인 비엘세붑을 힘입지 않고서는  마귀들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마귀의 왕인 비엘세붑을 힘입었다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든 간에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님을“다윗의 아들”로 부릅니다. [다윗의 아들]은,  다윗의 보좌에 대한 정통성을 가지고 치리하시는 유대인의 왕, 즉 메시야로 강조하는 말입니다.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아들]인 동시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주님은  이 두 가지 조건들을  모두 성취시키셨습니다.


O 그렇습니다. 주님은 마리아를 통한 육적 출생을 가진 다윗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윗의 보좌에 대한 상속권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주는 동시에 영적인 보좌에 대한 상속권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 이 두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신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세인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이 사람이 마귀들의 통치자인  비엘세붑을 힘입지 않고서는 마귀들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하면서 예수는 마귀 들린 자라고 말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항상 두려워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의식]법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그 예수가, 자기들이 일생을 다해서 헌신하는 바로 그 [의식 법] 들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이분이 다윗의 아들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지금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만약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의식 법]들을 지키지 않게 된다면, 일생을 통해 율법을 지키며, 율법에 매달려 사는 바리새인들로서는 아주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맙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그에 대하여 모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주님은  안식일 날  열심히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손 마른 자를 고치시며, 눈멀고, 벙어리 된 마귀 들린 자를  고치면서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 요일2:6절에 보면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그분이 행하신대로  자신도 행해야 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면, 우리도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무엇인가를 행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곧 복음 전파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