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주일예배
요5:25-34절 말씀입니다.
[진실로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나니 바로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 26 이는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 생명을 지니신 것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시어 아들 안에 지니게 하심이라. 27 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그가 인자임이라. 28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무덤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하노라. 또 나의 심판이 의로운 것은 내가 나의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기 때문이라. 31 만일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거하면 나의 증거는 옳지 않은 것이라. 32 나에 관하여 증거하시는 다른 분이 계시니,나는 그분이 나에 관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옳은 줄 아노라.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더니 그가 진리에 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34 그러나 나는 사람으로부터 증거를 받지 않지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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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25절에 [진실로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나니 바로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시간에 요5:24절에서 주님은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들은 주님의 말을 들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또,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말씀 하신대로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않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구원의 문제는 이제 완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O 그런데 25절에서 주님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나니 바로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바로 지금이라]는 이 [지금]은, [지금 이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영원토록 사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처럼 촌각을 다투시는 시간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신 [지금]이라는 말은, 매우 넓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다릅니다. 인간들은 시간이라고 하는 틀 속에 사는 존재들입니다.
O 그래서 인간은, 시간 안에서 살고, 그 시간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며, 시간이 정해준 대로 일하고, 시간이 계산해서 지불하는 대로 받으면서. 그리고 일 년이라고 하는 것을 한 단위로 계산하면서 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가 바뀔 때마다 인간들은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서 막연하지만 오는 해에 대한 큰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을 어리석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일 년이 아니라,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살만큼 자신들의 생을 보장받고 사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주께서는 잠27:1절에[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내일에 대한 멋진 계획을 자랑하던 어리석은 농부에게 해줄 말씀은 [너는 오늘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뿐 이었던 것입니다. 왜 주께서 그 생명을 부르시는 것입니까? 주께서는 그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 생명의 주인이신 주께서는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을 부르시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자들만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주님의 음성은 죽은 자들까지 포함하십니다.
O 그래서 [죽은 자라 할지라도 내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나니]라고 말합니다.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 있는 자들처럼,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주께서는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아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죽은 나사로의 장면입니다.
O 그래서 요11:43-44절에 [주께서 죽은 사나로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너라. 고 하시니 죽었던 자가 손발이 수의로 동여지고 얼굴이 수건으로 가려진 채 나오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왜, 죽은 자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것입니까? 주님의 음성은, 바로 생명을 주시는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O 이것은 육신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명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죄인이 주의 음성을 들으면, 그 영이 살아나고 혼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주의 음성은, 바로 성경을 통하여 세상에 전파되는 복음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인 것입니다.
O 다시 26절에 [이는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 생명을 지니신 것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시어 아들 안에 지니게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주께서 말씀 하신 대로 하나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 받으신 것도 아니고, 어디로부터 얻은 것이 아니라,생명은 하나님의 본성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핵심적인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생명은 오직 하나님, 그분 안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생명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을 그분의 모든 창조물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하늘이나, 땅 위의 모든 생명체들은, 그 생명을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스스로가 진화해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갖게 되는 것은 결코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지 아니하면, 그 어떤 것도 생명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 말씀에서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시어]라는 이 말씀을 우리가 얻듯 들으면 마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다른 창조물들처럼, 아버지께로부터 생명을 받았다는 뜻으로 들을 수가 있습니다.
O 그러나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시어]라는 이 말씀은, 주 예수의 생명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 생명을 지니신 것같이, 아들도 생명이 되시어]란 뜻입니다. O 그래서 요1: 4절에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시라는 점에서도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14:6절에서 주님은 [나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O 또, 27절에 [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그가 인자이심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는 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자가 되신 주께서는 사람들에 의해서 멸시받으셨고 거부되셨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에 익숙한 사람이 되셨고 극한 형벌을 받으시므로 그분의 영광이 가장 낮은 곳에 떨어져 짓밟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께서 지극히 높으신 영광과 권위의 자리에서 만물을 심판하셔야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주께서는 다름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O 28절에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무덤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이 말씀을 보면, 주의 음성을 듣는 자들의 범위가 무덤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평범한 말씀이 아니라, [최후의 심판]이 될 바로 [큰 백보좌]심판 때의 상황을 지금 말씀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계20:11-12절에[또 내가 큰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고 말씀합니다. O 구원받지 못한 채, 죽었던 죄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시대의 [행위로]구원받고 죽은 사람들 역시, 주의 음성을 듣고 [부활]하여 [큰 백 보좌]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러나 이 심판은, 이미 판결이 끝난 형을 집행하는 심판인 것입니다.
O 그러나 오늘날 이 교회 시대에서, 믿음으로 구원받고 죽어 무덤 속에 잠들어 있던 성도들은, 이[큰 백보좌 심판]이 오기 전에, 주께서 공중으로 내려오실 때, 이미 다 부활하여 하늘로 올 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15:52절에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여기 28절에서 말하는 [주의 음성을 듣는 무덤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은] 바로 [백 보좌 심판] 때 부활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이러한 진리를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다시 29절에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구절의 말씀을 잘 듣고, 이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선을 행한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한 자]들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 사람들은, 믿음에 의한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행위로]인한 구원받은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선을 행한 자]의 [생명의 부활]을,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부활로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마치 선을 행하여 구원받은 것처럼 말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백보 좌 심판석에 나가서 심판을 받는 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생명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성경적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우리는, 이 생명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기 [생명의 부활]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건 간에, 일단 구원받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살게 되는 부활을 바로 [생명의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한가지의 방법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구원은 각 시대에 따라서 그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O 그래서 율법이 있기 전과, 율법이 있을 때와,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의 구원의 방법과, 그리고 앞으로 있을 천년왕국 기간에도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이 [생명의 부활]이 네 번이나 걸쳐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네 번의 생명의 부활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면, 첫 번째 생명의 부활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직후, 구약 성도들 중 [많은 성도들]이 부활한, 그 부활입니다. O 그래서 마27:50-52절에 [예수께서 다지 큰 음성으로 소리 지르신 후, 숨을 거두시더라.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생명의 부활은, 고전15:52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 재림하질 때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다시 일으켜지는 바로 그 부활입니다. 그래서 살전4:16-l7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또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O 세 번째 생명의 부활은, 대환란 기간에 구원받고 순교한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즉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은 자들이 7년 대 환란 때, 죽은 성도들이 그 대 환란 끝 무렵에 있는 부활을 말합니다.
O 그래서 히11:25절에 [어떤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함이라]고 말합니다. O 계11:12절에도 [그들이 하늘로부터 나는 큰 음성을 들었는데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리 올라오라]하므로 그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바라보더라]고 말합니다. 계7:14절에[이들은 대 환란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O 네 번째 생명의 부활은, 행위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육체를 가지고 천년왕국으로 들어가서 살다가 죽은 후, 그 천년 기간 끝에, 백 보좌 심판 때에 다시[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부활을 말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천년 기간 중에는 전혀 죽은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다스리시는 그 천년 왕국시대에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단지 육신으로 구원받아 왕국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있습니다. O 그래서 이사야 65:20절에 [거기에는 날 수로 되는 아기도, 자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노인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니 이는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요, 백세가 된 죄인은 저주를 받은 것이 될 것임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이처럼 이 백보 좌 심판석 앞에는 천년 기간 중에 죽은 구원받은 성도들도 끼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O 그래서 계20:12절에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이 백 보좌 심판 때에는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을 성도들, 다시 말해서, 행위로 구원받은 성도들도 분명히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문 29절에서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네 번째 해당하는 자들의 생명의 부활인 것입니다.
O 이처럼 네 번에 걸쳐 구원받은 자들의 부활을 하나로 묶어 이것을 [생명의 부활] 이라고 말하고, 계20:6절에서는 [첫 번째 부활]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여기 29절에서 말씀하시는 이[생명의 부활]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한,모든 행위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부활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을 행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O그리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약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때 이미 하늘로 들려 올라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상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행위로 구원받은 이 성도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석에 나와서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O 계11:18절에[민족들이 분노하나 주의 진노가 임하였고 죽은 자들의 때가 임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심판받으며 주께서 주의 종들인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크고 작은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며, 땅을 훼손한 자들을 멸망시키려 하심이니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백 보좌 심판 때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상을 주시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주의 종들], [선지자들], [성도들],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크고 작은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교회 시대의 거듭난 성도들은, 이들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0 구약의 성도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구원받은 성도들도 있고, 환란 시대에 구원받게 될 성도들도 있는가 하면, 천년왕국 시대에 구원받게 될 성도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따라,율법이 있기 전까지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율법이 주어진 뒤에는 행위로 구원을 받았고,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지만, 그러나 환란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구약의 십계명을 지켜야 구원받고 천년 기간에는 산상수훈과 계명들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O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교회 시대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 재림하실 때, 무덤에 잠든 자들일 경우, 육신이 완전하게 변화된 새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나 들려 올라가고, 아직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일 경우에는 산 채로 몸이 변화되어 휴거된 후, 대 환란 기간 중에 하늘에서 베풀어지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나아가 그의 수고에 따라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 보좌에 나가 하나님을 섬기며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심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6:2절에[너희는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천년 기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통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리고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 하신 이[악을 행한 자]들이란, 구원받지 못한 모든 죄인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죽었다가 백 보좌 심판 때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O그리고 이들이 부활해서 심판을 받은 것은, 이들을 [멸망시키려]는 심판이므로, 이것은 [저주의 부활]인 것입니다. [저주의 부활]로 나오는 자들은, 그 심판에 의해서 영원한 불바다의 지옥으로 던져지는 것입니다.
O 30절에 [나의 심판이 의로운 것은 내가 나의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심판은 의로우십니다. 의롭다는 것은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참작한다든지, 특혜를 베푼다든지 하는 그런 심판이 아니라, 조금도 예외가 없고 융통성이 없는 심판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하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심판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 역시 그러할 수밖에 없습니다.
O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리시면서 의를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분의 심판에 대해 억울하다고 불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심판에서 은혜를 구하고 자비를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그분께서는 갈보리에서 이미 우리들을 위하여 베푸실 수 있는 모든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아낌없이 다 쏟아 놓으셨습니다. 이제는 의로 심판하실 차례만 남은 것입니다. O 다시 31절에[만일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거 하면 나의 증거는 옳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고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분께서는 얼마든지 [자신에 관하여 증거]하시더라도 그 증거는 옳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여기서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되는 분이시기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19, 30절).
O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분리해서 독립적으로 무슨 일을 하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주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되 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분리되어서 단독으로 무슨 일을 하신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에 관한 증거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 자신이 증거 하시는 증거가 옳은 증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O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증인들을 갖고 계시는 것입니다. 먼저 침례인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증거보다도 더 큰 증거인 아버지께서도 증거 하십니다. 그래서 37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에 관하여 증거 하셨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한 성경도 증거 합니다. 그래서 39절에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증거들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는 증거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백 보좌심판석에서 [나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몰랐노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O 33절에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더니 그가 진리에 관하여 증거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요1:19절에서 유대인들(바리새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을 침례인 요한에게 보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침례인 요한은 진리를 증거 했습니다. 그래서 요1:29절에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합니다. 또, 요1:34절에서는 [내가 보았고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O그리고 34절에[그러나 나는 사람으로부터 증거를 받지 않지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침례인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고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O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증인으로 먼저 보내신 것은 인간이란, 본래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잘 믿는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예수님의 말은 믿지 않았어도, 사람인 요한의 말은 믿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좋아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좋아합니다. 인간은 그 태생이 죄인이라 죄의 냄새를 좋아하고 그 죄인인 인간의 냄새를 더 좋아 하는 좋아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계속에서 인간미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거룩한 것 보다는 더러운 것, 구별보다는 모든 것을 합치는 것, 진리보다는, 거짓을, 영적인 것보다는 육적인 것, 하늘의 것 보다는 세상 적인 것을 더 좋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인간적인 면을 더 좋아 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43절에[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가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도다. 만일 다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영접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인간들은 진리의 지식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재미있는 인간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은혜를 받지를 못하지만, 그러나 우스갯소리도 하고, 세상에 돌아가는 애기도 하고,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면서 세상의 유명 인사, 심지어는 성철이라는 중애기도 하면, 은혜를 받았다고, 감동받았다고 떠들어 댄다는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부터 증거를 받지 않으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증거 할 능력 자체가 전혀 없습니다.
O 하나님을 증거 할 능력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시오, 그분 자신이 행하신 일들과,그분 자신의 말씀만이 그분을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보다는 인간을 더 믿는 것입니다.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는...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경대로 오셨고, 그리고 주님은 성경대로 우리들의 죄들을 위해 죽으셨고, 장사되셨고, 그리고 주님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O 그리고 우리의 옛것들은 모두 다 지나갔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주를 따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주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대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O 그래서 요일2:6절에 [그분 안에 거한다고 말하는 자는 그가 행하신 대로 자기도 행해야 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단하나, 그것은 바로 죄와 사망과 멸망에 처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인간들의 모든 죄들을 완벽하게 제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안에 거한다면, 우리도 주께서 행하신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주님은 눅9:23절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당장 주님께서 지셨던 그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산으로 가서 죽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신 그 갈보리의 그 십자가를 질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를 질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갈보리의 십자가는 오직 주님만이 지셔야 하는 온 우주 전체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주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는 우리가 짊어지고 싶어도 우리는 결코 짊어질 수 없는 오직, 주님만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O 그래서 바울은, 물론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만약 [내 육신의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 내가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 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내게 있기라도 했다면 내가 얼마나 좋았겠는가]라고 롬9:3절에서 말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그들의 죄들을 짊어지고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을 수 있는 자격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위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들을 대신해서 자신이 저주를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은, 온 우주에서 오직 단 한분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바로,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어린 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의 죄들로 안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들을 완전하게 제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O 주님은 이 복음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이 복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으며 그리고 이 복음을 위해 주님은 다시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는 복음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죄와 사망과 멸망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이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해서 그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들의 혼을 이겨오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네가 짊어져야 하는 [네 십자가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일을 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라오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이 일을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교회를 지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거리에 나가서 걸인들에게 밥이나 펴주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부리신 것은 이 세상 정치판에 뛰어 들어가 썩은 정치를 바로 잡고 이 세상에 공의가 강같이 흐르게 해서 불쌍한 백성들이 정의로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O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오직 주 만을 바라보고 그 길을 따르며, 주가 하신대로 행하게 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우리의 십자가는 바로 주께서 인간들의 모든 죄들을 제거하시기 위해서 짊어지셨던 바로 그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의 양 어깨에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시며, 복음을 위해 죽으시고, 복음을 위해다시 살아나셨던 그 위대한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위임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은 곧 나의 십자가의 복음이 되어, 우리는 이 복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더 늦기 전에 그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파해서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의 혼을 이겨 와야 하는 것입니다.
O 늦기 전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서 그 혼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우리가 그 기회를 놓쳐 버렸다면, 그래서 그가 나로부터 들어야할 그 십자가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었다면, 그는 자신의 죄로 죽어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지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내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른 사람이 되지 못한 자로 주의 호된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0 그래서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여러분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해서 더 늦기 전에 한 혼이라도 더 주께로 이겨 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주님의 충성된 복음의 전사로서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