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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박종각 2017. 9. 24. 02:58


                                  곧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주일에배
                                            야고보1:13-21절 말씀입니다.


[13 누구든지 시험을 받을 때  “나는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말하지 말지니,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시험을 당하지도 아니하시고 또 그분 자신이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 14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당하는 것이니  15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16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곧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18  그분 자신의 뜻으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셔서 우리로 그의 피조 물들 가운데 첫열매들에 속한 자들이 되게 하셨으니  19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사람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이는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21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벗어 버리고, 너희 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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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지난 시간에 야고보는 1:12절에서 [시험을 견뎌 내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는 그가 시련을 거친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시험을 견뎌 내는 자] 라는  말은, 믿음의 테스트에 낙오하지 않고 합격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상이 약속돼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시험을 견뎌 내는 사람을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렇습니다. 여기 이 [시험]은, 믿음에 대한 것을,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시련]이라고 하는 것이 올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련]을 통과해야만 마침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시련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


O 왜냐하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시험은 마치, 학교에서 학생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신들이 배운 범위 내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 역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러므로 우리가 시험자체를 아예 포기하려고 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이것을 믿음으로 이기려고만 한다면, 우리가 얼마든지 그 시험을 이길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10:13절에서 [사람에게 흔히 닥치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시험을 당하면 피할 길도 마련하셔서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에서 야고보는 [누구든지 시험을 받을 때, 나는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고 말하지 말지니,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시험을 당하지도 아니하시고, 또 그분 자신이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12절에서는,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이라고 말씀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시험에 관여하시는 것으로 암시하시는 데, 그러나 여기 13절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러므로  12절과, 13절에서 같이 [시험]이라고는 말씀하지만,  그러나 12절과 13절의 시험은, 그 시험의 출제자도 다르고, 시험의 내용도 다르고, 그 시험의 성격이나  목적도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왜냐하면, 12절에서의 시험은, 지금까지의 듣고  배운 것들을,  실제 삶을 통해서 테스트를 하고 거기에 합격을 했을 때, 거기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는 것으로  이것은 100%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오는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1:3-4절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  그러나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가 온전하고 잘 갖추어져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러나 본문의 13절의 시험은, 그 출발이 악한 것입니다.  그래서 함정을 파놓고, 거기에 걸려들게 해서 망하게 하는 목적으로 오는 유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유혹의 시험은, 하나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런 시험을 받을 때, 나는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고 말하지 말지니,  하나님께서는 이런 악한 목적으로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의 목적으로 우리를  시험을 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의 시험은, 한마디로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오는  시험]인 것입니다. 요일2:15-16절에서는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욕심이 강하게 작용하는 사람은, 이 시험에 걸려들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000000000





O 그래서 야고보는  14절에서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당하는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이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여기에는 반듯이 [마귀가 개입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유혹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에 의해서, 그 마귀의 유혹에 [끌려] 들어간 것은,  어디까지나, 마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잘못이고, 따라서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마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래서 지금 야고보가 하는 말은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에 끌린 나머지, 마귀가 너희를 끌고 가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혹을 받는 다]는 말은, 바로 [유혹에 넘어 간다]는 뜻인 것입니다. 조직신학의 견지에서 볼 때, [시험]이란  우리들이  어떤 매력적인 미끼를 눈앞에 놓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매력적인 미끼가  우리의 눈앞에서 어른거릴 때, 우리들은 그것을 눈으로 보며 그것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자신의 욕심과 투쟁을  하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그 미끼를 물지 않으면, 우리는 그 [시험]을 이겨 낸 것이 되지만, 그러나 자신 앞에서 어른거리는 그 유혹과 투쟁하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 미끼에 굴복해 버리고,  이 선을 넘어 가서는  안 된다고 그어놓은 선을 넘어가면, 그는 [유혹에 넘어간 것]이 되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셨을 때, 그분께서는 결코 미끼를 물기 위해 그 선을 넘어서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험은 받으셨지만, 그러나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눈앞에 미끼가 나타났을 때, 그 미끼 뒤에 숨겨진 그 의도를 이미 훤히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미끼를 단호히 거부하셨던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눈앞에 미끼가  나타나면,  그 매력적인 미끼는 눈으로 볼지라도, 그 미끼 속에 숨겨진, 미끼의 의도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 미끼를 보는 순간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에 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시험에 넘어간] 그 책임이 모두 마귀에게 있는 게 아니라, 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명히  자신의 [욕심에 끌려] 그 유혹에 넘어간 것이기 때문입니다.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래서 야고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시험에 넘어간 것은 90% 이상의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시험이라고 하는 그 시험은,  모두 다 마귀가 덫으로 설치한 게 아니라,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넘어간 것이라는 말입니다. 00000000000000000





O 그러므로 우리들이 시험을 당할 때, 그 시험을 견뎌 내지 못하고, 뒤로 넘어 지고, 죄를 짓게 되었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지,  마귀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울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에 의해서 죄를 짓고도, 그 책임을 모두 다 마귀에게 돌려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래서 만약, 마귀가 하나님 앞에서 불평할 기회가 있다면, 아마 마귀는, [나는 단지 유혹의 미끼를 그들 앞에 놨을 뿐인데, 인간들은 자신들의 욕심에 끌어 스스로 그 시험에 걸려들었으면서도, 그 모든 책임은 항상 나한데 돌리면서 이, 악한 놈의 마귀,  이 원수 마귀라고 욕을 해댑니다. 하나님은 나는 참 억울합니다.] 라고 불평할지도 모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야고보는 다시 15절에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놓고 좀 깊이 생각해 보면,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죄가 사망에까지는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갑자기 닥쳐오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 자체가,  본래 갑자기 행해지는 게 아니라, 적어도 몇 단계를 걸쳐서 행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사실, [죄]는,  맨 처음 [생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그 [생각]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나면, 그 [죄]는 그 사람 마음속에서 자리 잡게 되고, 그리고 [마음에 자리 잡은] 이 죄가 최종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가 행동으로 옮겨지면, 결국 죄는 [사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사망]으로 완결되는 것입니다.000000000000000000


O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죽음에 이르는 데에 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리게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어떤 사람이 지금 죄의 길을 걷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죄로 인해 자신에게 사망이라고 하는 것이  오기 전에, 그는 그 죄의 길에서 돌이키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이 있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지금 죄의 길을 걸으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 사람은 그 죄의 길에서 돌리 키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1:9절에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이처럼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비록 죄를 짓고, 사망으로 향해 나가고 있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수도 없이 많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길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그는 자신의 인생을 파멸과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다시 야고보는 16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무엇에 속지 말라]는 말입니까? [죄를 이런 죄를 지었다고 설마 내가 죽기까지야 하겠느냐]라고 하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구원을  받은 진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러나 죄를 짓는다면, 물론, 우리가 받은 구원을 상실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우리들의 삶은 상당히 큰 영향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직, 할 일들을 다하지 못한 채, 중도에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래서 오늘날 [이런 죄를 지었다고 설마 내가 죽기라도 하겠어] 라는 생각으로, 마치 제 세상이라고 만난 것처럼 까불면서 인생을 제 멋대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생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자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17절에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곧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이 두 종류로 분류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좋은 선물]과 그리고 [모든 온전한 선물]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래서 [온전한 선물]과 [좋은 선물]은 다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온전한 선물]에 해당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영생]과 [성령]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온전한 선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갖가지 [좋은 선물]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은혜 위에 은혜와 같은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우리가 주 예수를 믿었을 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구원을 베푸시지만, 그러나 주님은, 이 구원의 은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베푸시는 여러 가지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삶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의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고, 우리의 간구를 들어 주시면서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은혜위에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마찬가지로,  주께서  우리에게 [영생과 성령]이라고 하는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그 은혜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름답고  여러 가지의 [좋은 선물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이 좋은 선물들은 [지혜]나, 갖가지 [재능]같은 것들이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17절에 보면,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순수하고 그 다음은 화평하며, 친절하고 양순하며,  자비와 선한 열매들로 가득 하고 편견이 없고 위선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야고보는 17절에서 말하기를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곧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빛들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빛의 아버지]가 아니라,  [빛들의 아버지] 라고 말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별들의 아버지]이실 수도 있고, 또 모든  [영적인 빛들의 아버지]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17절에서는 문맥상으로 볼 때, [빛들의 아버지]는, 바로 [별들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야고보는 우리에게 말한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래서 야고보는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는 다르십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무엇이 좋으냐를 따져 보고, 또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하시기로 작정하시면, 그대로 하실 뿐, 뒤로 물러서시는  법도 없으시고,  계획을 취소하시는 법도 없으시며 역행하시는 법도 없으신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우리들은 반드시 주님께로부터 어떤 은사를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가지고, 그것을 갈고 닦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은사를 받으면, 그 은사가 원숙한 상태로,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어떤 은사는 원숙한 상태로 받은 것이 아니라,  예를 든다면,  완성된 제품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완성품을 만들 수 있는 원석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어떠한 은사를 받았을 때,  그 순간부터 우리가 원숙한 재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재능의 영감만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일찍이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토마스 에디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의 재능 가운데 1%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받은 것이라면, 나머지 99% 는,  그 사람 자신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래서 구원받은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일단, 그 사람에게 어떤 소질과 재능의 빛이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남다르게 나타나는 그 소질과 재능의 빛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사의 원석, 영감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0000


O 그래서 [하나님, 나는 사랑이 부족합니다.  나에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은사를 주십시오] 라고 해서 주님께서 [그래, 여기 사랑이 있다. 사랑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보자기에 사랑을 [사랑]을 던져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사랑하고자 하는 작은 빛과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담대함이 부족합니다. 나에게 담대함을 주십시오,]0000000000





O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래 여기 네가 원하는 담대함이 있다, 자 담대함을 받아라, 하시고서 [담대함]을 보자기에 싸서 던져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담대해 질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그리고 점차 담대함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재료인 원석을 주실 뿐인 것입니다. 이 재료를 가지고 완숙한 은사로 성장시키는 것은 나의 책임인 것입니다.  000000000


O 그러므로 이제 그는 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의 원석을 갈고,  닦은 노력을 하면서,  그리고 때로는 시행착오를 일으키기도 하고, 실패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재능을 완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빛을 발하게 되었을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왜냐하면, 그것은 좋은 선물과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곧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발전시키고 얼마나 열심히 그 은사를 활용하여 주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느냐, 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설 때, 우리들은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에 얼마나 선하게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러므로 주께서 주신 그 은사라고 하는 원석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활용도, 발전시키지도 않았다면. 그는  마치 주인이 멀리 떠나시면서 종들을 불러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준 원금을, 주인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땅에 묻어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마25장)00000000000000


O 그렇습니다. 오늘날 타고난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부르거나,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없는 관찰력과 표현력을 갖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거나,  글을 잘 쓴다거나,  목재를 다듬고 돌을 잘 다루어서 멋들어진 집을 짓는 건축의 재능을 갖고 있다거나, 기계를 잘 다루고 고치는 기술자로서의 탁월한 재주가 있다거나,  사업 운영의 재능이 있어  이익을  올리는 장사 재능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등등의 재능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좋은 선물]들로서  모두가 [위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좋은 선물을, 마치 자기가 똑똑해서 아니면, 자신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서 생긴 것으로  착각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삼아 자신의

영광으로 생각한다면, 그가 비록 구원받았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다시 야고보는 18절에서 [그분 자신의 뜻으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셔서 우리로 그의 피조물들 가운데 첫 열매들에 속한 자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셔서]라는 말씀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말씀 하시는 것이 아니라, 대 환란 시대에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감이 없이,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거듭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관련되는 말씀으로서, 대 환란 기간에 진리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출생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래서 야고보는 지금 [우리로 그의 피조물들 가운데 첫 열매들에 속한 자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는 말씀을 통하여  대 환란 시대에 구원받게 될 유대인들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 [첫 열매들]이란, 죽었다가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 부활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을, 바로 첫 열매라고 말합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이런 점에서 진짜   [첫 열매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15:21-23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 열매들이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사람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아담으로부터 죄와 죽음도 물려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남으로 써 그분의 몸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부활하신 그분으로부터 그분의 부활과 영생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아담의 후손인 채 그대로 남아 있다면,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죄로 인하여 죽고 멸망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아담에게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오면, 그분께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아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런데, 이렇게 [첫 열매들]이, 부활하는 데에도 서열이  있다고 고린도전서 15:23절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서열의 첫 번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셨고,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무덤에서 살아 일어난 구약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마27:52-53절에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두 번째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사람들로서, 그분께서 공중으로 내려오실 때 부활하게 될 성도들입니다. O 그리고 세 번째가 대 환란 기간에 구원받아 부활하게  될 환란 성도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농사를 짓고 나서 열매가 익어 가는 순서에 따라 수확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한 나무에서 여는 열매라도 처음 익은 열매가 있고,  나중에 익은 열매가 있어서 그 익는 것부터 거둬들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러므로 약1:18절은 대 환란 시대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이 말씀에서의 [첫 열매들]이란, 바로 대 환란 시대에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낳으셔서]  구원받고 부활하게 될 유대인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이 은혜 시대에 구원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환란 기간에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을 수는 있지만,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처럼 그리스도의 몸에는 들어가지는 못 하는 것입니다.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야고보는 다시 21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벗어 버리고,]고 말합니다. 엡 4:22-24절에서는  [이전  행실에 관해서는 기만의 욕망에 따라 썩어진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 엡5:8절에서는[너희가 한때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행하라.]고 말씀 하십니다.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난 날 썩어진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 버리고 빛의 자녀들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는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벗어 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리고 나서 [너희 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라는 말씀에서 [말씀이 심겨졌다]는 것은, 가지가 다른 나무에 접목되어서 한 나무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역사가 우리에게 확실하게 제대로  이루어 졌다면,  우리는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벗어 버리고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러나 이 역사가 우리에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마치, 수도 파이프가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물이 자꾸 세는 것처럼,  그 말씀이 나에게 제대로  접목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 세어 나가고, 반면에 세상으로부터 더러움과 넘치는 악이 우리에게 계속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은 나에게 접목되어 나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접목되었을 때, 마침내 그 가지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게 되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O 그러나 이 열매들이 비록 나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열매가  나의 열매가 아니라,  이것은 바로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5:22-23절에서 [성령의 열매]는 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00000000000000


O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이미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심겨지고 접목된 그 말씀이신 우리 주님과 한 몸 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000000000


O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제 내게서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벗어 버리고, 마침내 아름답고 귀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주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실 때, 주와 만나기 위하여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000000000000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