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수에로 때의 일이라.
에1:1-3절 말씀입니다.
[아하수에로 때의 일이라. (이는 인도에서부터 에디오피아까지 일백이십칠 개의 지방을 치리한 아하수에로라.) 그 당시에 아하수에로왕이 수산궁에서 그의 왕국의 보좌에 앉았는데 그의 치리 제 삼년에 그가 그의 모든 고관들과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으니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권세 있는 자와 지방들의 귀족들과 고관들이 그의 앞에 있더라.]
O 에스더는,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 기록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이렇게 세권의 역사적인 책들 가운데 마지막 책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바빌론 포로에서 유대 땅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고 있고, 에스더는, 바빌론과 페르시아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던 유대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약 B.C 485-455년경기록)
O 에스더에서는, 성경 대부분의 다른 책들과는 구별되는 특징들이 있는데, 먼저, 책 이름에 여성 이름이 들어 있는 두 권의 책들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룻기”입니다. 이 두 책은, 모두 예언적면이나, 역사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결혼”을 다루고 있습니다. O 룻기에서는, 모압의 한 이방 여인이, 한 유대인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모형 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O 그런데 에스더에서는, 반대로 한 이방인 왕과, 결혼할 유대인 처녀를 보여 줍니다. 결과론 적으로 본다면, 이 유대인 처녀는 유대인들을 대학살로부터 구원할 임무를 띠고 왕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이 오기까지는 하나님 외에는 본인이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인간들에게는 숨겨져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에스더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이나, 혹은 “주”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에스더에서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강물처럼 흘러넘치고 있으면서 매 순간 마다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에스더에서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우리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우리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우리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을 지라도, 그러나 주께서는 주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의 삶의 모든 환경을 관장하고 계시시면서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에스더에서는 전면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 마치“무대 뒤에서” 땀 흘리시며 분주하시게 일하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에스더는, 구약이면서도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에게서 실제적으로 적용 되는 것입니다. O 그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성령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의 지극히 평범한 매일의 삶 속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통해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강력하게 역사하시고 계시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O 그렇습니다. 에스더에서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거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시는 것이나,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으며, 중풍병자가 치유되어 자리를 들고 일어나는 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일들만이 일어납니다.
O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잔치를 하거나, 어떤 사람은 그 잔치에 초대를 받고도 거부하거나, 어떤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이리 뒤 척, 저리 뒤척거리다가 날을 샌 다거나, 어떤 사람은 자기 목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면서 누구를 찾아 가는 일 들입니다.
O 그래서 겉으로 보면, 이들 중 어떤 것도 특별한 것이 없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보통의 일들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이들 각 사람들이, 그때그때 내린 자신들의 결정들은, 한 민족 전체의 생명과,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들이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O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면, 우리의 삶의 모습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이 매일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면서 다람쥐 체바귀도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 또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의해서 행해지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뒤에서 역사하시고 계시는 바로 그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이요,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이 만나는 각각의 사건들 배후에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에서는 우리를 위해 우리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을 그대로 보여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O 성경의 배열 순서를 보면, 에스더는, 욥기 앞에 나옵니다. 욥기서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복과 대 환란 때 있을 유대인을 향한 사탄의 박해 사건을 예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욥기서입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예언적으로 주님의 재림에 바로 앞서 일어날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에스더에 나오는 사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어느 때라도 일어날 수 있는 내용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O 본문 1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이방인 왕의 통치를 받고 있는 상황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는 당시 세계를 제패하던 이방 왕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적으로 페르시아는, 바로 영국을 예표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칙령을 내린 두 왕이 있었는데, 한 왕은, 페르시아의 코레스 왕이고, 다른 한 왕은, 이방인 왕인 영국의 조지 5세입니다.
O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한 가지 특별한 일을 먼저 행하셔야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할, 한 왕을 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O 그래서 유럽의 왕들 가운데 한 왕 즉, 페르시아 코레스 왕의 모형인 영국 왕을 제외하고는 모든 다른 왕은 다 죽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만이 왕이 있는 유일한 세계 강국으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O 1절의 아하수에로는, 세상의 역사에서는 “크세르크세스”를 말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침공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리스의 침공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런 세상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별 의미를 두시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유명하지도 않고, 별 보일 없는 그것도 포로로 잡혀온 한 유대인 소녀에 관해서 하나님의 시간을 집중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대단하게 생각하고 호들갑을 떠는 일이나, 또 어떤 한 사람을 내세우며 그를 평화주의자라고 떠들어 대며, 그는 극히 서민적이고, 순한 어린 양 같이 겸손과 온유한 사람이라고 추겨 세우는 어떤 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사5:8)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또, 지구상에 어떤 국가와 국가가 전쟁을 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전쟁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그러나 하늘 위에서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 주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 그것은 바로 구원받은 한 혼에 대해서입니다.
O 그래서 우리들이 어떤 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오면, 하늘 위에서는 영광중에 천사들이 환호하고 소리치며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눅15:7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 명의 의인들보다 회개하는 한 사람의 죄인을 더 기뻐하리라.] 고 말씀 하십니다.
O 이처럼 어떤 상황에 대해 보는 관점에 있어서 하늘과 땅,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이 만큼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사5:8)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