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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박종각 2023. 2. 5. 00:00

 

                                                   행악자의 말을 무너뜨리시느니라.    

                                                                      주일예배

                                                행악자의 말을 무너뜨리시느니라.

                                                           잠22:1-12절말씀입니다.

 

O 먼저 1-7절을 보겠습니다. [선한 이름을 택하는 것이 많은 재물을 택하는 것보다 낫고, 은총을 사랑하는 것이 은과 금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만나거니와, 그들 모두를 지으신 분은 주시니라.3 총명한 사람은 악을 미리 보고 자신을 숨기나, 우매한 자는 계속 가다가 벌을 받느니라.4 겸손함과 주를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부와 명예와 생명이 있느니라. 5 마음이 비뚤어진 자의 길에는 가시와 덫이 있으나, 혼을 지키는 자는 그것들로부터 멀리 있게 되리라.6 아이를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육하라. 그리하면 그가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7 부자는 가난한 자를 다스리고 빚진 자는 빌려 준 자의 종이 되느니라.]

 

O 1절에 [선한 이름을 택하는 것이 많은 재물을 택하는 것보다 낫고, 은총을 사랑하는 것이 은과 금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이름을 얻는 것은 명예를 얻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명예를 얻는 것은 많은 돈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이, 돈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4:3.6.9절에 보면 [주께서는 베다니에 있는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앉아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매우 값진 감송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병을 깨뜨려 주의 머리에 붓더라.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온 세상에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녀가 행한 이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구약에서선한 이름, 그의 명성에 어울리는 인품을 암시합니다.“명성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품은,“자신에 의해서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인에 의해서 자신의명성에 손상이 가면, 그때부터 그의 명성은금이 간 항아리처럼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 금이 가면 땜질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오래토록 흠집이 난 부분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명성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명성을 얻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얻어진 명성이 단 한 순간에 금이 가고 깨져버리면, 그 명성을 다시 온전하게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 사람의 흠집 난 곳만 보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인품을 잘 관리하고 돌보면 명성은 저절로 오래토록 잘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선한 이름은 가만히 앉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최고의 명성은 사람에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께로부터 얻어져야 한다는 것이 본문 1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인간들에게서 명성을 얻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의 이름이 알려지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인간들은, 아무리 세상으로부터 위대한 명성을 얻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종교계에서 명성을 얻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듣는다 할지라도 주께서나는 너를 모르노라(13:27)고 하신다면, 그는 지옥으로 떨어져야하기 때문입니다.

 

O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주께서나는 너를 아노라(2:3.3:8.13:18)고 말씀하신다면, 그는 최고의 명예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최고의 능력은, 많은 지식과, 뛰어난 재능과, 많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를 철저히 의뢰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를 의뢰하는 그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2절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만나거니와, 그들 모두를 지으신 분은 주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그래서 잠17:5절에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누구라도 그를 지으신 분을 비방하느니라.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그들의 기원, 인간적인 본성, 죄들, 구원, 심판에 있어서 모든 것들이 다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어디서나 구원과 관련해서하나님께서는 외모를 존중치 않으시는것입니다. 그래서 롬2:11절에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0:34절에서 베드로도,[참으로 내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3:25절에서도 보면.[그러나 악을 행하는 자는 자기가 행한 악에 대하여 받으리니 거기에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이런 말씀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은, 모든 사람은동등하게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요즘 흔히 하는 말 대로, 이 땅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모두 다 입에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는 자들마다 모두 다 건강하게 태어나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뇌성 마비로 태어납니다. 저는 발이 세 개로 태어나는 사람도 봤습니다. 심장이 배 밖으로 뛰어나온 채로 태어난 사람도 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빈민가에서 태어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왕궁에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 가정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들은 마귀적인 우상 숭배자들의 가정에 태어납니다.

 

O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알고 계시며, 그에 따라 판단하시고 행동하셨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2:14절에서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 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만나거니와, 그들 모두를 지으신 분은 주시니라](2)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은 누구나 부지런히 노력만하면 부자로 살수 있다고 말하면서 가난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하며 가난한 사람을 게으른 사람처럼 취급합니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게을러서 가난하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0 물론,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굶어죽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빌게이츠와 같이 부자가 되는 것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고 밤늦도록 자지 않고 죽어라고 수고할지라도 죽는 순간까지 굶어죽지는 않을 지라도 그러나 가난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는 것도 믿지 않는 것도 상관이 없이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로 이 말은 엄청난 말씀입니다.

 

O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부는 균등하게 분배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몫을 찾기 위해서는,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일어나서 파업을 해야 된다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부자가 되고, 가난하게 되는 것이, 기업이 우리에게 부를 분배해 줘서 우리가 부하게 되고, 부를 분배해 주기 안 해서 우리가 가난하게 된 것인가?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부자와 가난한 자...그들 모두를 지으신 분은 주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래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않는(과학을 숭배하는)사람들 사이에는 도저히 메꿀 수 없는 틈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만드신 바로 그 주님께서 므피보셋을 만드셨습니다. 의사 누가를 만드신 바로 그분이 소경 바디매오를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을 만드신 바로 그 주께서 태어나면서 정신지체 장애자를 만드셨고, 모태에서부터 앉은뱅이를 만드셨으며(3), 태어나면서 눈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9). 그래서 아무리 철학적으로 궤변을 늘어놓고 신학적으로 하나님과 성경을 철저히 왜곡시킨다 해도 이러한 사실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O 3절에 [총명한 사람은 악을 미리 보고 자신을 숨기나, 우매한 자는 계속 가다가 벌을 받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잠27:12절에서 반복되며, 14:15절에서도 그런 의미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총명한 사람은 제 빨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기 자신을 숨기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시17:8-9절에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싸 죽이려 하는 원수들로부터 지켜 주소서.]라고 말하면서, 3:3절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0 왜 총명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기 자신을 숨기는 것입니까? 그는 악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이 오고 있습니다. 아주 무서운 악이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17:8절에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와서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 또 땅 위에 사는 자들, 곧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그러나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O 그래서 총명한 사람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제 빨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숨기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여리고성의 창녀 라합은, 이스라엘 하나님께 자신을 숨기기를 원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스라엘의 사자들을 자기 집에 숨겨 주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리고성에 큰 재난과 하나님의 저주가 몰려오고 있음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급히 서둘러 자신의 일가친척들을 모두모두자기 집안으로 불러드렸던 것입니다.

 

O 그래서 수6:17절에 [이 성읍, 즉 성읍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주께 저주받을 것이라. 창녀 라합, 즉 그녀와 그 집 안에 그녀와 함께한 모든 사람은 살 것이니, 이는 그녀가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숨겨 주었음이라.]고 말합니다.그러나 그때에어리석은 자는 잘못된 길로 계속해서 가다가, 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1:22,32절에[“너희 우매한 자들아, 언제까지 너희가 우매함을 사랑하겠으며, 조롱하는 자들이 조롱하기를 즐기며, 어리석은 자들이 지식을 미워하겠느냐? 32 우매한 자들의 돌이킴은 그들을 죽이며, 어리석은 자들의 번영은 그들을 멸망시키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바리새인들은 분명한 경고에도 불구하고24:l-4)계속해서 성전 숭배를 하다가 티투스와 로마 군대에게 혹독하게 벌을 받고A.D.70)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이나 국가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4절에 [겸손함과 주를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부와 명예와 생명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지상에서 그들을 위해 쌓아두신 큰 선하심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31:19절에 [, 주께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신 주의 선하심이 얼마나 큰지요! 이는 주께서 사람들의 아들들 앞에서 주를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베푸신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O 두 번째는,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이방인들은(10:1-6) 결국 영원한 생명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2:6-8절에 [그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다투고 진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불의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분개와 진노로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셋째는, 신약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높임을 받는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2:26절에 [누구나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라오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의 종도 거기에 있으리니, 누구나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스테판, 야고보는 비록 장수는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5절에 [마음이 비뚤어진 자의 길에는 가시와 덫이 있으나, 혼을 지키는 자는 그것들로 부터 멀리 있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시는 바늘이 있는 철사 울타리 같은 것으로 군 부대에서 설치하는 장애물입니다. 그래서 사27:4절에 [격분은 내게 없나니 싸움에서 누가 나를 대적하여 찔레들과 가시들을 쌓아 두리요? 내가 그것들을 통과해 가고 내가 그것들을 모아 불사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가시는, 마음이 비뚤어진 자의 번영을 방해하고, 그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결국 마음이 비뚤어진 자가 맺는 열매는 가시 외에는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게 하므로 혹독한 종말을 만나게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6:8절에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서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비뚤어진 이 사람의 종말은 불에 타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을 지키는 자는 그것들로 부터 멀리 있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왜냐하면 [혼을 지키는] 사람은 [마음이 비뚤어진 자의 길]에서 행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잠2:15절에 [그들의 길들은 비뚤어졌으며, 그들은 자기들의 길에서 완고하여졌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3:32절에 [이는 마음이 비뚤어진 자는 주께 가증하나, 주의 은밀하심은 의로운 자와 함께 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6절에 [아이를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육하라. 그리하면 그가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이가 가서는 안 될 길로 가라고 훈육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이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육(19:28), 어느 길이 아이가 마땅히 가야 할 길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전제합니다.

 

O 오늘날 학교 교육체제는 진화론으로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유치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진화론으로 완전하게 물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가정에서 아이는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 가르침을 받지만, 그러나 학교에서는 인간은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배우는 것입니다.

 

0 가정에서 아이는 자신의 충동을 통제하고 훈육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러나 학교에서는 자신을 표현해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발산해야 똑똑한 학생이라고 말합니다. 가정에서 아이는 음행, 도둑질, 거짓말은 잘못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배우지만, 그러나 학교에서는 그 행동이 악할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적절하다고 가르칩니다.

 

 

O 그래서 마땅히 가서는 안 될 길에서 교육받은 아이는 노년에는 있어서는 안 될 곳에 그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육을 받은 아이도(삼상2-3)나이가 들면 때로그 길에 머물지않는 것입니다.(삼하13-14). 아이가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육한다 해도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0물론 때로 다윗과 같은 위대한 사람은 솔로몬 같은 위대한 아들을 둘 수 있고,아브라함 같은 사람은 이삭 같은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못된 르호보암을 낳고, 느부캇넷살은 못된 벨사살을 낳고, 히스키야는 못된 므낫세를 낳고, 여호사밧은 못된 여호람을 낳았던 것입니다. 7절에 [부자는 가난한 자를 다스리고 빚진 자는 빌려 준 자의 종이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6000년 동안 확증된 과학 적 사실입니다. 부자의 소득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의 소득을 올린다고 해서(러시아이 잠언의 단 한 단어도 바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려준 자가 빚진 자를 자기 권세 아래 두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O 8-14절에.[죄악을 뿌린 자는 헛된 것을 거두리니, 그의 진노의 막대기가 꺾이리라. 9 관대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그가 자기의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주기 때문이라. 10 조롱하는 자를 쫓아내라. 그러면 다툼이 없어지리니, 정녕, 싸움과 비난이 그치리라. 11 마음의 순결함을 사랑하는 자는 은혜가 그의 입술에 있어, 왕이 그의 친구가 되리라.12 주의 눈은 지식을 보존하시며 행악자의 말을 무너뜨리시느니라. 13 게으른 사람은 말하기를사자가 밖에 있으니, 내가 길거리에 나가면 죽게 되리라.”하느니라. 14 타국 여인의 입은 깊은 구덩이라, 주께서 증오하시는 자는 거기에 빠지리라.]고 말씀합니다.

 

 

 

O 8절에 [죄악을 뿌린 자는 헛된 것을 거두리니, 그의 진노의 막대기가 꺾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의를 뿌리는 사람은 수확할 때가 되면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거둬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갈6:7-8절에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 8 자신의 육신에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에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시기를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쁜 것을 심는 사람은회오리바람을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8:7절에 [이는 그들이 바람으로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으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 줄기가 없으니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설령 열매를 맺는다 해도 타국인들이 그것을 삼켜 버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의 진노의 막대기는 자신의 대적들을 향한 그의 힘이나 영향력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적들을 제압하거나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대신 적들은 그 진노의 막대기에서 피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9절에 [관대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그가 자기의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4:21절에 [자기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죄를 범하는 것이나,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는 행복하니라.]고 말합니다. 자기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그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를 멀시 하는 자는 단순한 멸시가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단순히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람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나사로는 가난했기 때문에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부유하게 되었고 높임을 받았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가난 했고 눈도 멀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더 빠른 즉각적인 치유를 경험 했습니다. 므피보셋은, 가난했지만 하나님(과 다윗)의 은혜로 왕궁에서 왕족들과 함께 왕자 중 하나처럼(삼하9:6-13)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웃은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자비의 대상인 것입니다.(20). 그리고 이렇게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하나님께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잠19: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께 빌려 드리는 것이니, 그가 베푼 것을 주께서 그에게 다시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고후9:9, 112:9. 14:31.19;17.2l:13;29:7).

 

 

 

O 10절에 [조롱하는 자를 쫓아내라. 그러면 다툼이 없어지리니, 정녕, 싸움과 비난이 그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그렇게도 우려했던(5:20) 다툼(고후12:20),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여,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무시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 자체가 진리인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상을 함께 나눠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0 11절에 [마음의 순결함을 사랑하는 자는 은혜가 그의 입술에 있어, 왕이 그의 친구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입니다. 5:8절에 [마음이 순결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삼하22:27절에[순결한 자에게는 주의 순결함을 보이시고, 완고한 자에게는 주의 불쾌하심을 보이시리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래서 잠2l:8절에서 것처럼 [사람의 길은 비뚤어지고 낯설지만, 순결한 자로 말하면, 그의 행위는 옳으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길], 분명히 비뚤어져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주님의 돌보심을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걷는 길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옳은 길, 진리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의 길에서 빗겨나가 사망의 길로 걸어갑니다. 그래서 그 길이 옳은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 길은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O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을 두시고 그들을 돌보시고 계신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8:4절에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마음에 두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고 말합니다. 욥도 욥7:17절에서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높이시나이까? 주께서 주의 마음을 그에게 두시나이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순결한 자로 말하면, 그의 행위는 옳은 것입니다.”

 

O 그러므로 8절에서 말하는 이 [순결한 자], 분명히 인간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순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20:9절에 [“나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였도다. 나는 내 죄에서 정결케 되었도다.”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냐? ]고 말씀합니다.

 

0 그래서 여기 “순결한 자”라고 하는 이 말은,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순결” 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이 세상에서든 어디든 간에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결하신 주께서 하신 그 일”은 옳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순결한 자로 말하면, 그의 행위는 옳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O 그럼 주께서 하신 그 일이 무엇입니까? 주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기 위해서 직접 육신의 옷을 입으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2:49). 그리고 그 일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끝나셨던 것입니다.(19:30)[마음의 순결함을 사랑하는 자는 은혜가 그의 입술에 있어, 왕이 그의 친구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순결하시며(1:13).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하므로(119:140),왕은마음이 순결한자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가 그의 입술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순결한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진 것들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잠8:6절에 [들으라, 내가 뛰어난 것들을 말하며 내 입술을 열어 옳은 것들을 말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10:13.21.32절에 [13 명철을 가진 자의 입술에서는 지혜가 발견되나, 명철이 없는 자의 등에는 막대기가 있느니라. 21 의로운 자의 입술은 많은 사람들을 먹이나,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가 없으므로 죽느니라. 32 의로운 자의 입술은 기쁘게 하는 것을 알지만, 악인의 입은 완고함을 말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0 12절에 [주의 눈은 지식을 보존하시며 행악자의 말을 무너뜨리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주의 눈은 어느 곳에서나 악한 자와 선한 자를 살피시는 눈입니다. 그래서 잠15:3절에 [주의 눈은 어느 곳에서나 악한 자와 선한 자를 살피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눈은, 하나님 자신이 영감을 불어 넣으시고 호흡을 불어 넣으신 그 말씀들 위에 계시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킨 자들의 말들은 무너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시12:6-7절에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0 다시 [...행악자의 말을 무너뜨리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행악자의 말을 무너뜨리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개인의사적인 대화에만 한정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행악 자는 구약의 죄인일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이며(l8,20)지상에 사는 모든 아담의 사람들입니다. 5:14절에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으니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최초의행악자, 전쟁과 살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 변개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창3:1절에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의 어떤 짐승들보다도 뱀은 더욱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말하기를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하시더냐 ?”]고 말합니다.

 

O 그러나 결국 행악자의 말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악자의 말이 무너질 때는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는 분에 의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l9:13절에 [피에 적신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그 날에 그 예수의 날, 그리스도의 날에 휴거되어 주와 영원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