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주일 예배

박종각 2022. 1. 16. 00:00

                                                      주일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 지어다.

                                         

                                                  주일 예배

                                        고전16:1-24절 말씀입니다.

 

먼저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해서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라. 2 매주 첫날에 너희 각자가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따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는 모금하는 일이 없게 하라. 3 그리고 내가 도착하면 너희가 서신을 통하여 승인한 사람 편에다 너희의 위로금을 예루살렘에 보내리라.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적합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5 이제 내가 마케도니아를 지나갈 때에 너희에게로 가리니 이는 내가 마케도니아를 반드시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라. 6 그때는 아마 내가 너희와 함께 머무르거나 아니면 겨울까지도 나리니 그 후에 너희가 나의 가고자 하는 곳으로 나를 보내 주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O 본문 1절에서 바울은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해서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동안, 결코 소홀이해서는 안 되는 일 중에 하나는, 바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어려운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즉 그들을 돕는 것을 소홀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O 그래서 갈2:10절에서 바울은 [다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된다는 것이니 이것은 또한 내가 부지런히 행한 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의 연보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데에 있었음을 말하면서, 자신도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힘닿는 데까지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O 다시 2절에 [매주 첫날에 너희 각자가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따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는 모금하는 일이 없게 하라]고 말씀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역을 실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성도들이 연보를 할 경우 우리가 보통“주일”이라고 말하는 [매주 첫 날에]하되,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하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고린도후서 8장에서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어떻게 하였는지 더 상세히 그 사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8:2-5절을 보면.[큰 환난의 시련 가운데서도 그들의 기쁨이 넘치고 그들이 심한 궁핍에도 풍부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 하노니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에 따라 하였고 또 능력 이상으로 자원하여 하였으며 우리가 은혜를 받을 것과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동참할 것을 많은 애원으로 우리에게 간청하였느니라. 그들이 이것을 행하였으니 우리가 바라던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먼저 자신들을 주께 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었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먼저 자신들을 주께 드리고 그 다음에] 모금하였고, 그리고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하였으며, 능력에 따라 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사람의 뜻에 따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라는 말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또, 강제적으로나 마지못해 한 것이 아니라,[자원하여 하였으며], 재물이 넘쳐서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들도[심한 궁핍에도]하였고, 또 보잘 것 없이 낸 것이 아니라 [넘치게] 하였으며, 그리고 [능력에 따라 하였으되, 또 능력 이상으로] 하였고, 그것도[큰 환난의 시련 가운데서도]넘치는 기쁨으로“연보”를 하였음을 바울은 지금[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O 연보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고전l6:2절에서도 말씀하듯이[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하는 모금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어떻게 번성케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고, 그에 따라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유대인들이 했던 것보다는 더 [넘치게] 연보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고후9:6-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넉넉하게 심는 자는 넉넉하게 거둔다는 것이라. 각 사람은 미리 마음속에 청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실 수 있나니 모든 것을 언제나 너희가 필요한 대로 가칠 수 있게 하심으로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시려는 것이라.(기록되기를“그가 멀리 흩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남음이라.”함과 같으니 10 이제 씨 뿌리는 자에게 씨앗을 공급하시는 분이 너희의 양식으로 빵을 공급하시며 또한 너희가 뿌린 씨를 번성케 하시고 너희의 의의 열매를 증가시키시리라.)11 모든 일에 부요하게 되어 관대한 연보를 함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하는 것이라.]

 

 

 

O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기쁨으로 드리되,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약이“연보”에 동참하는 자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훈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고후9:8절에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실 수 있나니 모든 것을 언제나 너희가 필요한 대로 가질 수 있게 하심으로,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시려는 것이라]는 이 말씀과, 또, 롬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이 두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가장 위대한 약속의 말씀 가운 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언제나] 우리들이 [필요한 대로]가질 수 있도록 하시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것이 그분의 뜻이라고 고후8:5절에서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참으로 엄청난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O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기쁨으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큰 은혜로 우리에게“보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비단 돈만은 아닙니다.그래서 우리들은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0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먼저 자신들을 주께 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이 은혜를]준 마케도니아 교회들을 칭찬과 함께 소개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후8:5절에[그들이 이것을 행하였으니 우리가 바라던 대로만이 아니라 먼저 자신들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이 은혜를 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형제들이 이러한 마음으로“연보”를 하되,[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따로 저축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미리 준비해 둠으로써 자기가 방문할 연보한 다고 떠들어 대며 법 썩을 떠는 일이 없기를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 3절에[그리고 내가 도착하면 너희가 서신을 통하여 승인한 사람 편에다 너희의 위로금을 예루살렘에 보내리라]고 말씀 합니다. 그래서 신약 교회의“연보”는, 두 가지 목적으로 쓰여 집니다. 하나는,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일입니다. 그래서 롬15:26절에 [이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얼마를 기부하였음이니라]고 말씀 합니다.

 

 

 

O 다시 행11:29-30절에 서는[그때에 제자들은 각자 능력에 따라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그들이 모은 것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을 통해 장로들에게 보내더라]고 말합니다. 0 그리고 연보의 또 다른 하나는, 교회 사역자들을 돕는 데에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에서 이것을 아주 상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주님의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 웅장한 교회로 만든다거나, 사치스럽게 교회를 치장하기 위해서 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4절에 [만일 나도 가는 것이 적합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고 말씀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모금한 돈을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데 쓰도록 그곳으로 보낼 때, 만약의 의혹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도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말합니다.

 

O 그래서 4-6절에 [이제 내가 마케도니아틀 지나갈 때에 너희에게로 가리니 이는 내가 마케도니아를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라 그때는 아마 내가 너희와 함께 머무르거나 아니면 겨울까지도 나리니 그 후에 너희가 나의 가고자 하는 곳으로 나를 보내 주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회를 바로 잡기 위해 잠시 방문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겨울까지 나면서 그곳 성도들과 함께 지내기를 바랐고, 봄이 오면 다른 지역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O 다시 7-12절에 [지금은 그곳을 지나면서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라노라. 8 그러나 내가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무를 것이라. 9 이는 내게 크고도 효과적인 문이 열렸으며 또 대적하는 자들도 많기 때문이라.10 이제 디모데가 가거든 주의하여 너희는 그가 두려움이 없이 너희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라. 그도 나처럼 주의 일에 수고함이라. 11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업신여기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내가 형제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겠노라.12 우리 형제 아폴로에 관해서는 내가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그에게 많이 권유하였으되 지금은 전혀 갈 의사가 없으나 적절한 때가 오면 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약에서 [문]이란, 항상 말씀을 선포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들을 영적으로 가리킵니다. 그래서 계3:7절에서 이[문]에 대하여 [거룩하신 분, 진실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 면 아무도 닫을 수 없고 또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는 분]께서 관장하시는 문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0 그렇습니다.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기회를 여시는 분은“주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모든 것들을 여시고 닫으시는 열쇠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역자들이 말씀을 선포 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주께서 이 문을 열어 주셔야만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행16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시아에게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서 행16:6절에[그들이 프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통과하였을 때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금하셨으며]라고 말씀합니다.

 

0 그래서 바울과 그 일행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그만두고 무시아로가서 비두니아 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성령께서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행16:7-8절에 보면 [무시아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였으나 성령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므로 8 무시아를 지나서 트로아로 내려왔더라.]고 말씀합니다. 0 그런데 바울이 밤에 기도 할 때 환상 중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서“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0 이 환상을 본 바울은 주께서 마케도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지시로 알고 그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행16:9ㅡ10절에 [그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서서 그에게 간청하여 말하기를“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하니라. 10 그가 그 환상을 본 뒤에 우리는 즉시 마케도니아로 떠나려고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자 우리를 부르셨다고 확신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주께서 역사해 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O 9절에 [내게 크고도 효과적인 문이 열렸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 할 수 있는 큰 기회가 주님에 의해 열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려진 문으로 별의별 사람들이 다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바울을“대적하기 위해서”들어온 사람들도 많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기회를 활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뿐만 아니라,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로부터 성도들을 지키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고린도를 지나면서도 바울은 그곳에 들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기로 합니다.0 그래서 10-11절에 [이제 디모데가 가거든 그가 두려움이 없이 너희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보살피라 그도 나처럼 주의 일에 수고함이라 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업신여기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내가 형제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말합니다.

 

0 지금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디모데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디모데는 나이가 너무 어렸습니다.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겨우 16-18살 정도밖에 안 되는 앳된 젊은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무시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0 그래서 바울은 딤전4:12절에서 [아무도 너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너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영과 믿음과 순결에 있어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디모데는 아직 스무 살도 채 안 되는 젊은이였지만, 그러나 주의 일에 매우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나처럼 주의 일에 수고]하는 청년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면서 그를 업신여기지 말고 함께 평안히 지낸 후, 자신에게 다시 보내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0 그래서 주의 일을 하는 데는 나이가 많든 적은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주에 대한 그의 신실함이 어떠한가에 있는 것입니다.

 

O 12절에 [우리 형제 아폴로에 관해서는 내가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그에게 많이 권유하였으되 지금은 전혀 갈 의사가 없으나 기회가 오면 갈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아폴로라는 이름을 가진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유대인에 대해서는 행l8:24-28절에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성경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공개적으로 증거 함으로, 유대인들을 강력하게 논박]하였던 인물입니다. 다시 13-17절에 [깨어 있으라. 믿음 안에 굳게 서라. 남자답게 처신하라. 강건하라. 14 너희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도 알다시피 스테파나의 집안은 아카야에서의 첫 열매들인데 성도들을 섬기려고 헌신하였느니라.) 16 그러므로 너희도 그런 사람들에게 복종하고 또 우리와 함께 일하고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복종하라. 17 내가 스테파나와 포투나토와 아카이코가 오는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O 13-14절에[깨어 있으라. 믿음 안에 굳게 서라 남자답게 처신하라, 강건하라. 너희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 말씀 합니다. 깨어 있고, 믿음 안에 굳게 서며, 남자답게 처신 하고, 강건하되, 그러면서도 [모든 일을 사랑으로]행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깨어 있고, 믿음 안에 굳게 서며, 남자답게 처신 하고, 강건하되, 행하지 않으면 균형을 잃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건하되, 그렇다고 무례하거나 불친절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남자답되, 감사할 줄 아는 부드럽고 상냥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강건한 삶을 살되, 다른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은 진리 안에서 진리를 증거 할 때, 언제나“사랑 가운데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행하든지 사랑으로 행하라고 14절에 말씀합니다.

 

O 15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도 알다시피 스테파나의 집안은 아카야에서의 첫 열매들인데 성도들을 섬기려고 헌신 하였느니라]고 말씀 합니다. 스테파나 집안 식구들은, 아가야에서 맨 처음으로 거듭나고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O 고전1:16절에서 바울은 [내가 스테파나의 가족에게도 침례를 주었으나 그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침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테파나의 집안은 아가야에서의 첫 열매들]이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아가야”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강퍅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0 그리고 구원받은“스테파나”의 가족들은 구원받은 이후, 성도들을 헌신적으로 섬기고 돕는 사역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사역자들로 인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0 이런 사역자들이 있어야 교회는 주님의 일들을 많이 감당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기꺼이 주께 헌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바로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견고하게 토대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에 토대하고 있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권위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결국 육신을 따라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근거하고 있지 않은, 어떤 일이든, 어떤 설교든 그것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 권위를 전혀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의 모든 영적 권위는 성경에 근거하는 것에만 있고, 성경에 근거하는 것에만 성경의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O 16절에 [그러므로 너희도 그런 사람들에게 복종하고 또 우리와 함께 일하고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복종하라]고 말씀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헌신적으로 섬기는 사역자들에게 성도들이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위하여 일하는 가운데 주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O 17절에 [내가 “스데바나”와 “포투 나토”와 “아가이고”가 오는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 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스데 바나와 포투나토와 아가이고]와 같은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일함으로써 고린도 교회의 부족한 점들이 이들을 통해서 보완되고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0 다시 말하면, 몇몇 사람이 헌신적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함으로써 교회 전체가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것을 메울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헌신적으로 일을 감당하는 것이 좋지만, 그러나 사실은 바울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 사람의 헌신적인 사람들이 주님을 일을 감당해 오므로 교회 전체의 부족한 점들을 매워 왔다는 것입니다.

 

O 다시 18-20절에 [그들이 나와 너희의 영을 새롭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도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라. 19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아퀼라와 프리스킬라가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와 더불어 주 안에서 진심으로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0 모든 형제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고 말씀합니다.

 

 

 

O 18절에 [그들이 나와 너희의 영을 새롭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도 그런 사람들을 인정 하라]고 말씀합니다.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보충하였는지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그들은 부족한 사람들의 [영을 새롭게]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수고를,“그들은 원래 그렇게 하는 사람처럼 생각하지 말고”그들의 수고를 인정해 주라는 것입니다. 19절에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 하느니라 아퀼라와 프리스킬라가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와 더불어 주 안에서 진심으로 너희에게 문안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시아의 교회]라고 간판을 달고 있는 교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입니다. 롬l6:l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 바울이 말합니다. 여기“교회”라고 하는 말에‘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무슨 교회”라고 하는 간판을 달고 예배를 드리는“예배 처소”들이,“문안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문안하는 자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교회들”즉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0 바로 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된 성도들이“너희에게 문안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교회”라면, 모두가“그리스도의 몸”을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들림 받는 다는 말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들림받는 다는 말입니다.또 바울은[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된 사람들이 그들의 집에 모여 집회를 가졌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교회란 어떤“집회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된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20절에 [모든 형제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합니다. 터키나, 그리스 사람들같이, 소아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인사할 때 남자가 남자의 뺨에 입을 맞추고, 여자가 여자의 뺨에 입을 맞추는 것은 그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에서는 [거룩한 입맞춤]을, [평화의 입맞춤]이라고 부릅니다.

 

O 이것이 그럴듯하게 들릴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에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지 않겠다는 가증스러운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모두가 [평화의 아비]로 가장한 적그리스도를 예표 하는“압살롬의 후예”들인 것입니다. 압살롬은 평화를 가장하고 다윗에게 오는 사람들을 중간에서 가로채고 자신을 위해서 그들에게 거짓“평화의 입”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삼하15:5-6절에 보면 [그리하여 누가 그에게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그가 손을 내밀어 그를 잡고 입 맞추더라. 6 왕에게 재판을 청하려고 오는 온 이스라엘에게 압살롬이 이같이 행하여,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 질 하니라.]라고 말합니다. 다시 21-24절에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라. 22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는 우리 주께서 오실 때 저주를 받을지어다. 2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고 말씀합니다.

 

 

 

O 22절에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라.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씀 합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 저주는 분명하게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그리고 23-2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말씀합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 지어다]라는 이 축복의 인사말은 고린도 전 후서뿐만 아니라, 바울의 여러 편지의 말미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사말입니다.(에베소서나 빌립보서, 디모데전후서 등),“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저들에게 주옵소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저들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가 아닙니다.

 

0“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 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바울은 주께로부터 받은“영적인 권위”를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각 교회들에 편지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기록하는 모든 글 가운데에 영적인 권위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있기를 기원하는 절대적인 영적 권위가 바울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권위에 의해서 지금“축복의 인사”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우리에게 축복의 인사말을 하면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모두 마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하나님의 영적 권위를 가지고 우리에게 축복한 대로,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그 휴거의 순간에 이르기까지,“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성도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과 함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