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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박종각 2021. 12. 20. 00:00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고후1:4-5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시라.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어떠한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도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 5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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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다시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시라.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어떠한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도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0 다시 말하면, 고난에 처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위로하심은 다른 사람들이 고난에 처할 때, 그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우리들은 환란과 고난에 처한 자들을 위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위로를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0 그래서 4절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와, [어떠한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중에 고난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왜 주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보내시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주께서 주시고 또 주실 그 은혜를 온전하게 하실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후12:7절에 [지극히 위대한 계시들의 풍성함으로 인하여 내가 자고하지 않도록 육체에 한 가시, 즉 사탄의 사자를 내게 주셨으니 그가 나를 쳐서 자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0 둘째는, 본문 4절에 있는 말씀대로, 우리들이 겪은 것과 동일한 고난에 처한 다른 이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고난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난의 힘과 고난으로 얻어진 힘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인생 삶에 고난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력을 부여할 만큼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0 주께서는, 가장 못생긴 석탄 덩어리를 강렬한 열과 압력을 통과하게 하셔서 다이아몬드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석 세공 자가 다가와 그 다이아몬드를 깎아서 완벽한 모양으로 만들고 그 후, 광택이 나도록 문질러져 휘황찬란하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러시기 전에 우리들이 먼저 인생의 불같은 시련과 압박을 견디고 모든 울퉁불퉁한 면이 깎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0 그 후에야, 비로써 주님이 우리들을 광내시고 우리에게서 뭔가 쓸모 있는 것을 만들어내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처럼 위대한 사역자가 되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고난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맞았고, 빈번히 감옥에 갇히고,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당했습니다. 사십에 하나 뺀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세 번 몽둥이로 맞았고, 돌로 맞았고, 배를 타고 가다가 무려 세 번씩이나 배가 파선해서 고통을 당했는데 그 중에서 한번은 하루 밤과 낮을 깊은 바다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0 그뿐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또 다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으로부터의 오는 위험과, 또 이방인들로부터의 위험과, 성읍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또,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무수히 당하였으며, 배고프며,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고, 그뿐만 아니라, 날마다 밀려오는 교회에 관한 문제로 인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받았습니다.(고후11:23-28) 바울이 받은 고난은 적당히 어느 정도 받은 그런 고난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0 그래서 바울과 함께 다닌다는 것은 곧 바울과 같이 고난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바울 곁에서 하루도 견디기 힘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따라다니던 마가라고 하는 요한은, 도중에서 도망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행15:38) 바울은 자신을 위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5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주 받으셨듯이, 바울도 저주받았고,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셨듯이, 바울도 채찍에 맞았으며, 그리스도께서 감옥에 던져지셨듯이, 바울도 감옥에 던져 졌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3:10절에서 [주님의 고난의 교제를 알아 주님의 죽음의 본을 따르려]했다고 말하면서, 갈6:17절에서는 [나는 내 몸에 주 예수의 표들을 지녔느니라]고 말합니다.

 

0 자신의 몸에 십자가를 문신을 하고 다닌다는 말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매 맞은 것으로 인해서 온 몸에 상처들로 생겨난 바로 그“흉터”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몸에는 얼굴에서부터 몸 전체에 매 맞을 때 생겨난 상처들이 많은 흉터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0 그러나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 고난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기 때문이라](5절)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면, 주님께서는 그가 그 고난에서 승리하고 나오는 데 알 맞는 위로와 위안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를 넘치게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위해 넘치게 [고난을 받아야]한다는 데 그 열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고난은 [육신]이나, [세상]을 위해 받는 고난이 아니라,“주님을 위한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넘치는 위로가 있다는 말입니다.(벧전4:14-19).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