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박종각 2021. 12. 4. 00:00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12월4.토)

                                             겔47:6-10절 말씀입니다.

 

[그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더니 나를 데리고 나를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더라. 7이제 내가 돌아왔더니, 보라, 둑 이편과 저편에 심히 많은 나무가 있더라.8 그때 그가 내게 말씀하시더라.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사막으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가나니 바다로 들어갈 때 그 물들이 치유를 받으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살아 있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살 것이라. 또 이 물이 거기로 들어가므로 거기에는 매우 큰 고기떼가 있으리니 이는 그 물들이 치유될 것임이요, 강이 흐르는 곳에는 모든 것이 살 것이라. 10어부들이 그 위에 서리니 엔게디에서부터 엔에글라임까지라. 이곳들은 그물을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들의 고기들은 그들의 종류대로 있을 것이며 큰 바다의 고기처럼 심히 많으리라.]

 

                                                                   ******* ******** * *******

 

6-7절에 [그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더니 나를 데리 고 나를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더라. 이제 내가 돌아왔더니 보라. 둑 이편과 저편에 심히 많은 나무가 있더라]고 말씀합니다. 강 양변 둑에 많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줄지어 서 있습니다. 성경에서 [강가에 심겨진 나무]는 복 잇는 그리스도인의 비유가 됩니다.그래서 시1:1-3절에 [복 있는 사람은...강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아서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의 잎사귀도 마르지 아니하리니, 그가 무엇을 하든지 번성하리로다]고 말씀 합니다.

 

예레미야 17:7-8절에도 [주를 신뢰하고 그의 소망을 주께 두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그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가 강가에 그 뿌리를 뻗침과 같아서 더위가 와도 걱정하지 않고 그 잎이 푸르러 가뭄의 해에도 염려하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도 그치지 아니할 것임이라]고 말씀 합니다. 이에 반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인간을 신뢰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성경은 렘17:5-6절에서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과 육신을 그의 무기로 삼는 사람과 그의 마음이 주로부터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 그는 사막에 히스 나무같이 되어 좋은 일이 오는 때를 보지 못하고 광야와 소금 땅과 사람이 살지 않는 바싹 마른 곳들에 거하리라]고 말씀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강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걱정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살게 되고 [열매를 맺는 것도 그치지 아니할 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자신에게 돌아온 복을 놓치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수히 많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걱정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도 그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보다도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훨씬 더 많은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왕 구원받고 거듭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강가에 심겨진 나무]같이 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8절에 [그때 그가 내게 말씀하시더라.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사막으로 내려가서 바 다로 들어가나니 바다로 들어갈 때 그 물들이 치유를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성소에서 나온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갈 때 그 바다가 [치유]되어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것은 천년 왕국 시대에 실제적으로 일어나게 될 미래의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말씀은 또 죽었던 영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한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 안으로 들어오신 성령께서 계속 역사하실 때 그는 지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9절에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살아 있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살 것이라 또 이 물이 거기로 들어가므로 거기에는 매우 큰 고기떼가 있으리니 이는 그 물들이 치유될 것이요, 강이 흐르는 곳에는 모든 것이 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천년왕국 시대 팔레스타인 땅의 새로운 모습들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천년왕국 시대의 이러한 모습들은 여러 가지 점에서 영원 시대의 모습들과 흡사하기 때문에 많은 성경학자들이 요한계시록 21장을 천년왕국 시대로 끌어내려 설명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시대 사이에는 분명 한 차이점들이 있대 가령, 그 한 예로 우리가 지금 에스겔 47장에서 읽고 있는 강을 보면, 이 강은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와 [동쪽 지역으로 흘러 사막으로 내려가서](8절).즉 요단강을 건너 사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리고 또 한 줄기는 지중해로 흘러 들어갑니다.그리고 [바다로 들어갈 때 그 물들이 치유를] 받습니다.(8절) 그러나 새 예루살렘의 강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계22:1절에 [또 그가 나에게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수정처럼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보여 주더라]고 말씀 합니다. 영원 시대의 새 에루살렘의 강은 사해를 치유하지 않습니다. 이 강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사막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곧바로 거룩한 도성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따라서 이 두 강은 서로 다른 강인 것입니다. 에스겔에서 언급하는 천년왕국 시대의 모습과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말하는 영원 시대의 모습이 차이가 있는 또 다른 예로 강둑 양편에 있는 나무가 또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에스겔 47:12절에서 [둑 위에 강가로 이편과 저편에는 양식이 될 모든 나무가 자라고 그 잎사귀들은 시들지 아니하며, 그 과실도 다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로운 과질을 내리니 이는 그 물이 성소에서 나옴이라 또 괴질은 양식이 되 고 그 잎사귀는 약이 될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이 나무들은 그 열매가 [양식]이 되고 그 잎은 [약]이 됩니다.이번에는 계22:2절을 보면 [그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와 그 강의 양편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과실을 맺으며 달마다 과질을 내더라. 그리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더라]고 말씀합니다. 이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단순한 [약]이 아니라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무들은 도성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에스겔에서처럼 도성 밖 요단 강 건너 사막으로 내려가 사해와 지중해로까지 흘러 들어가는 강을 따라 그 양편에 늘어서 있는 게 아닙니다. 에스겔에서 묘사되고 있는 천년왕국 시대의 예루살렘은 지상에 있는 도성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l장에서 언급하는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큰 도성 거룩한 예루살렘](계21:10절)입니다. 그런데도 이 두 가지 다른 상황들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가령 요한계22:2절을 끌어다 붙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착오는 에스겔의 천년왕국 시대와 요한계시록의 영원 시대를 혼동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그 혼동이 성경 구절들을 면밀하게 읽지 않는 데서 나왔으며 성경 구절들을 성경 구절들에 비교하여 해석하는 기본적인 원칙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인 것입니다.

 

에스겔에서 설명하고 있는 도성의 규모에 대해 48:35절은 [그 사면에 일만 팔천이며 그날로부터 그 성읍의 이름이 [주께서 거기 계시다]가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세 예루살렘의 규모는 어떠합니까? 계21:16절에 [그 도성은 네모가 반듯하며 길이와 너비가 같더라, 그러므로 그가 갈대로 그 도성을 측량하니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고 말씀 합니다. 에스겔에서 말하는 천년왕국 시대의 성읍은 그 규모가 요새로 치면 9평방 마일에 불과한데,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은 무려 l,200,-1500평방 마일이나 되는 것입니다.

 

이 두 도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이렇게 규모만으로도 큰 차이가 납니다. 그런가 하면 또, 새 예루살렘은 높이를 가진 “입방체”라는 점에서 여느 도성들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도성입니다.이 두 도성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앞서 에스겔 45,46장의 말씀을 들으면서 성전 제사가 다시 드려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44장에서는 성전 재사의 일을 맡는 제사장에 관한 규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언급하는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도 없고 성전 제사도 없습니다.그래서 계21:22절에[내가 보니, 성 안에는 성전 이 없더라. 이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이 그곳의 성전임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처럼 천년왕국 시대에 건설될 새 성읍과 영원 시대에 하늘에서 내려오게 된 세 예루살렘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 그것은 주님께서 서로 다른, 두 민족을 위해 마련해 놓으신 유업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실제적이고도 가시적인 성읍을 이 지상에 마련하실 텐데, 그것은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이 땅 위의 예루살렘이고, 유대인들이 그 안 에 살게 될 곳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마련해 두신 유업입니다. 이에 반하여, 그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유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적인 유업으로서,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는 영적인 도성이며, 장차 하늘에서 내려오되, 지상에 착륙하지는 않는 도성입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 아니라 교회(그리스도인들)가 들어가 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마련하시는 두 도성 가운데 하나는 유대인을 위한 유업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유업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과 저것이 동일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천년왕국 시대의 예루살렘은 영원 시대에 하늘에서 내려오게 될 새 예루살렘의 예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가 새 예루살렘은 아닌 것입니다.

 

10절에 [어부들이 그 위에 서리니 엔게디에서부터 엔에글라임까지라. 이곳들은 그물을 치 는 곳이 될 것이라. 그들의 고기들은 그들의 종류대로 있을 것이며 큰 바다의 고기처럼 심히 많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엔게디]는 사해 서쪽 해안 중간 지점에 있고 [엔에글라임]은 그 건너편 동쪽에 있습니다. 사해 바다는 치유되어 생명력을 갖게 되기 때문에 거기에는 물고기가 살게 되는데, 그 종류도 다양하여 물고기란 물고기는 다 그곳에 있고, 그것도 [심히 많으리라]고 말씀합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