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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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9일(일)
만일 모르드캐가 유대인의 씨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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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9일(일)
만일 모르드캐가 유대인의 씨라면,
에6:1-14절 말씀입니다.
0 먼저1-5절을 보겠습니다. [그날 밤에 왕이 잠을 이룰 수 없으므로 역대의 기록을 가져오도록 명한지라. 신하들이 왕 앞에서 읽었는데, 2 모르드캐가 아하수에로 왕을 죽이려 하였던 문지기이자 왕의 내시인 두 사람, 즉 빅다나와 테레스를 고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더라. 3 왕이 말하기를 “이 일로 인하여 모르드캐에게 어떤 영예와 직위를 베풀었느냐?”하니 왕을 섬기는 왕의 신하들이 말하기를“그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하더라. 4왕이 말하기를“누가 뜰에 있느냐?”하니 그때 하만이 왕궁의 바깥뜰에 왔으니 이는 자기가 마련한 교수대에 모르드캐를 매달기를 왕에게 구하려 함이더라. 5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고하기를“보소서, 하만이 뜰에 서 있나이다.”하니 왕이 말하기를“그를 들어오게 하라.”하더라.]고 말씀합니다.
O 여기 1-2절에 보면, [그날 밤에 왕이 잠을 이룰 수 없으므로 역대의 기록을 가져오도록 명한지라. 신하들이 왕 앞에서 읽었는데, 2 모르드캐가 아하수에로 왕을 죽이려 하였던 문지기이자 왕의 내시인 두 사람, 즉 빅다나와 테레스를 고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더라.]고 말씀하십니다.
O 우리가 에4:16절에 보면, 수산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과 그리고 에스더와 그의 여종들이 삼 일 동안, 기도와 금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삼일의 금식 기간 중, 마지막“셋째 날”밤의 상황이 바로 오늘 본문 1-2절의 상황입니다. 3일 동안 금식과 기도를 작정하고 모든 유대인들이 시작한지 마지막 3일째가 되는 그날 밤에 왕은, 평소와는 다르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을 청하기 위해 왕이 생각해 낸 방법은, [역대의 기록을] 가져와 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무언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나 아니면, 가장 지루하게 생각되는 것이라도 읽게 하면 혹 잠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단순히 불면증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두고 “3일 동안”기도와 금식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O 그렇습니다. 주께서는 에스더와 유대인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왕을 그런 상황으로 인도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역대 기록”안에는 왕이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아주 중요한 사건이 하나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6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뿐만 아니라, 에스더서의 전체내용은 하나님의 섬세한 뜻에 따라 주께서 역사하시고 계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O 66권의 성경에는 각권마다“하나님께서”또는“주께서”라는 말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여기 에스더서에는“하나님”이나,“주께서”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에스더서의 전체의 내용을 완전하게 주관하시며 역사하고 계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시고 계시는 책이 또한 에스더서입니다.
O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우리 눈으로 주님을 본적도 없고 또, 우리 귀로 단 한마디의 주님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을지라도, 그러나 주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면서 우리를 구하시고, 건져주시고,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O 지금 유대인들은 포로로 잡혀와 먼 이국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유대인들을 섬세하게 도우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섬세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 따라, 그 “셋째 날 밤”에 역대 기록들을 읽게 했을 때, 왕은 바로 에2:21-23절에 있었던 왕의 암살 기도에 관한 사건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 [모르드캐가 아하수에로 왕을 죽이려 하였던 문지기이자 왕의 내시인 두 사람, 즉 빅다나와 테레스를 고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더라.]고 말씀합니다.
O 지금 밖에는 하만이 왕에게 모르드캐의 목을 매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주께서는 신하를 통해 역대기록의 한 부분으로 인도하시고 지난 날 모르드캐가 왕의 생명을 구했던 일에 대해 기록해 놓은 바로 그 대목을 읽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 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 기가막입니다. 이렇게 정확하고 빈틈이 없이 역사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섬기는 이 주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를 위해 지금 역사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어떤 일로 인해서 결코 초조히 한다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때가 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우리가 바라는 바를 응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O 3절에 [왕이 말하기를“이 일로 인하여 모르드캐에게 어떤 영예와 직위를 베풀었느냐?”하니 왕을 섬기는 왕의 신하들이 말하기를“그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벧전5:6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바로 본문과 같은 상황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께 대해서는 때를 따라 역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에스더 2장으로 돌아가서 2:21-23절을 읽어 봅시다. [그 당시에 모르드캐가 왕의 문에 앉아 있을 때, 왕의 내시들 중 둘, 즉 그 문을 지키는 빅단과 테레스가 격노하여 아하수에로왕을 죽이려 하거늘 22 그 일이 모르드캐에게 알려지자 그가 그 사실을 왕후 에스더에게 고하니 에스더가 모르드캐의 이름으로 그 일을 왕에게 알리니라. 23 그 일을 조사하여 발견되었으므로 그들이 모두 나무에 매달렸고 그 일이 왕 앞에서 역대기에 기록되었더라.]고 말씀하십니다.
O 모르드캐는 왕을 암살하려고 하는 두 내시들 중, 문지기 두 사람을 발견하고 신속히 조치를 취하므로 매우 위급한 상황 속에서 왕의 생명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르드캐는 충분한 보상과, 또 거기에 합당한 좋은 직위를 보상받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도 왕의 생명을 구해 준 모르드캐는 거기에 따른 아무런 보상도, 어떤 직위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만과 같은 악한 자가 왕의 총애를 입게 되었고, 그리고 신하들 중, 가장 높은 자리로 승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O 그래서 에3:1-2절에 [이런 일 후에 아하수에로왕이 아각인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을 승격시켜,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한 모든 고관들 위에 두자, 왕의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하만에게 절하고 경의를 표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에 대하여 그렇게 명하였음이더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상황이 일어날 때, 다시 말하면, 충분히 보상을 받고 승격되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고, 반면에 그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악한 하만은 오히려 크게 들춰내시면서 승격시켜 주시는 일이 일어날 때, 믿음이 연약한 자라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이렇게 하신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르드캐를 높여 주실 때가 아직 되지 아니기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우리가 섬기는 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그 수고와 공적을 결코 잊지 아니하십니다. 주께서는 성도들의 기도와 간구를 단 한마디도 결코 소홀히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그를 높여 주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것은 분명히 주께서는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단 하나도 소홀히 하시지 아니하시고 응답해 주시지만, 그러나 주께서는 아무 때나 보상하시고,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응답하시는 적절할 “때”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O 그리고 우리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비로써 응답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된다면, 우리가 받아야할 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해서 낙심하거나, 또, 악인이 우리 앞에서 보상을 받고, 승승장구한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상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만이 승격 된 것은, 하만이 받을만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더 존귀한 자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의 말고삐를 잡고 성읍의 거리를 돌아다니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자신이 죽이려고 하는 바로 그 모르드캐를 더욱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승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응답이 더딜 지라도, 그러나 주 하나님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서 기다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멀지 않는 시간에 반드시 속히 응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합2:3절에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그 때가 더디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를 것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모르드캐를 아주 높이실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때”라는 것입니다.
O 그때 [역대의 기록을] 읽고, 그리고 문지기이자 왕의 내시인 두 사람이 왕을 죽이려고 했던 사실을 고발했던 모르드캐에게 어떤 “영예와 직위“도 베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즉시 그 마음속에서 모르드캐를 영예롭게 할 만한 ”누군가“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누가 좋을까?”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문 밖에서는 하만이 모르드캐를 교수형에 처하는 것을 왕으로부터 허락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O 그래서 4-5절에 [왕이 말하기를“누가 뜰에 있느냐?”하니 그때 하만이 왕궁의 바깥뜰에 왔으니 이는 자기가 마련한 교수대에 모르드캐를 매달기를 왕에게 구하려 함이더라.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고하기를“보소서, 하만이 뜰에 서 있나이다.”하니 왕이 말하기를“그를 들어오게 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까? O 하나님의 손길은 순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로 운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의 응답이 더딜지라도 한 순간도 기도를 쉴 수가 없는 것입니다.
0 수산에 있는 유대인들은 주의 영광을 위해 주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볼 때는 주께서는 자신들을 위해 아직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왜냐하면, 금식하면서 열심히 부르짖고 있는데도 아직 이러다할 응답이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들을 위해 일하시고 계셨습니다. 에스더가 왕의 부름도 받지 않고 왕 앞으로 나갔을 때, 에스더는 당장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주께서는 왕의 호의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에스더가 왕께 자신의 잔치에 초대에 응해 주시기를 원했을 때, 왕이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의 초청에 왕이 기쁨으로 응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O 또, 금식과 기도의 셋째 날이 되는 그날 밤도 평소처럼 왕이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잘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주께서는 그날 밤 왕에게 불면증을 주시고, 그리고 그 수많은 역대기록들 가운데서 특히 모르드캐가 왕을 구해내는 장면이 기록된 책을 가져오게 하시고 또, 그 중에서도 정확히 모르드캐의 부분을 읽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O 그리고 그 기록을 다 읽었을 때는 그 즉시 모르드캐를 영화롭게 해줄 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셔서 문밖에 대기 시켜 놓으셨던 것입니다. O 하만은, 자기 집에 모르드캐를 죽일 교수대를 높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왕에게 모르드캐를 교수형에 처할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 지금 왕궁 바깥뜰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때 만일 아하수에로가 여느 때처럼 밤잠을 편하게 이룰 수 있어서 역대 기록을 가져와 읽게 하는 일이 없었다면, 그리고 주께서 그 배후에서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모든 상황은 하만의 뜻대로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하만의 뜻대로 되는 것 같이 보였지만,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단 하나도 하만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에스더와 유대인들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0 그럼에도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심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단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14:13절에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0 그래서 모든 역사는 우리들의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께 어떤 것에 대해 기도했을 때, 주께서 우리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게, 우리가 분명하게 주님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게“안 돼”라는 응답을 주시지 않는 한, 우리가 무엇을 기도 하든지, 그 기도하기를 결코 멈추지 말아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우리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적절한 때에,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는 것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O 다시 6-11절에 보면 [그리하여 하만이 들어오니 왕이 그에게 말하기를“왕이 영예 주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겠느냐?”하니 하만이 속으로 생각하기를“왕이 나 말고 누구에게 영예 주기를 기뻐하랴?”하고 7 하만이 왕에게 대답하기를“왕께서 영예 주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이 타시는 말과 왕의 머리에 쓰신 왕관을 가져다가 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지극히 존귀한 고관들 중 한 사람의 손에 넘겨주시어, 그들로 왕께서 영예 주기를 기뻐하시는 그 사람에게 치장하여 말에 태워 성읍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선포하기를 ‘왕께서 영예 주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행할 것이라.’하게 하소서.”하니 10 왕이 하만에게 말하기를“너는 서둘러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네가 말한 대로 왕의 문에 앉아 있는 유대인 모르드캐에게 그렇게 행하되 네가 말한 모든 것에서 전혀 빠짐이 없게 하라.”하더라. 11 그리하여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캐에게 치장하여 말에 태워 성읍의 거리를 다니며 그 앞에서 선포하기를 “왕께서 영예 주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행할 것이라.”하였더라.]고 말합니다.“5 왕이 말하기를“그를 들어오게 하라. ”
O 6절에 [그리하여 하만이 들어오니 왕이 그에게 말하기를“왕이 영예 주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겠느냐?”하니 하만이 속으로 생각하기를“왕이 나 말고 누구에게 영예 주기를 기뻐하랴?”하고]라고 말합니다. 하만은, 지금 자기 자만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만은 지금 왕이 말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에 관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만은 완전하게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하만은 아주 크게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O 그러나 이런 자만심은 비록 하만뿐만 아니라. 사실은 모든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며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것입니다. O 물론,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 자신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만 가지 중에, 한 가지쯤은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보면서 자신과 그분을 비교할 때, 자신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게 되고, 이로 인해 혹, 구원을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자기중심적인 모습은 아주 나뿐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실패를 주고, 낙심과 좌절을 주고, 상처를 준 어떤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낙심과 좌절을 주고, 상처를 준 어떤 일들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아주 큰 유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0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는 것만큼, 내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을 오히려 감사함으로 대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모든 면에서 충분히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 안에, 자신이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둘입니다.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내가 있습니다. 육적인 나와, 영적인 내가 있습니다. 죄악을 쫓아 살려고 하는 육적인 나와, 성령을 따라 선하고 착하게 살려고 하는 영적인 내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나는 육신의 몸이요, 보이지 않는 나는, 그 몸속에 들어 있는 혼입니다. 그래서 내 몸은, 보이지 않는 혼의 나를 가두는 하나의 감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몸과,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와는 갈등과 대립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바울은 롬7:18-24절에서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것을 어떻게 행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노라. 19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도다. 20 이제 만일 내가 원치 않는 것을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2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들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사로잡아오는 것을 보는 도다. 24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낼 것인가?]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 육신 안에서 또 하나의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O 이 답답한 사실을 어느 날 인도의 한 청년이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그 몸이라고 하는“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해탈”이라고 말합니다. 이 들의 생각은, 육체의 고된 수행을 통해서, 그 육체 안에 있는 혼의 사람이 육신의 굴레, 육신의 틀을 벗어나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서는 우리의 혼이, 우리의 몸을 결코 벗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은, 몸을 벗어나는 것, 즉“해탈”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그리스도인의 해결책”은, 그 인도 청년하고는 반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또 다른 “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성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바로 우리를 새롭게 하는 새로운“틀”이신 것입니다.
0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시고, 우리는 그 성령에 의해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하만은, 지금“자신을 최대한 추켜세우고”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왕이 말하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0 그래서 7-9절에서 [하만이 왕에게 대답하기를“왕께서 영예 주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이 타시는 말과 왕의 머리에 쓰신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지극히 존귀한 고관들 중 한 사람의 손에 넘겨주시어, 그들로 왕께서 영예 주기를 기뻐하시는 그 사람에게 치장하여 말에 태워 성읍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선포하기를‘왕께서 영예 주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행할 것이라.’하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왕의 생각은 하만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0 그래서“왕이 영예 주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은, 하만이 자신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죽이려고 하는 바로 그 “모르드캐”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만은, 왕이 말하는 그 사람은 바로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착각하고, 자신을 높일 수 있는 대까지 최대한 높여 마침내 왕의 위치까지“높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것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계획”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리고 일의 “집행”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0 그러나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하만은, 잠시 후에는 자신이 거의 왕처럼 행세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좋아 죽습니다.”그래서 하만은, 왕에게 제안하기를, 그에게 왕관을 씌우고 왕복을 입힌 다음, [왕의 지극히 존귀한 고관들 중한 사람]을 시켜 그를 왕의 말에 태워 여기저기를 행진하게 하면서, [왕께서 영예 주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행할 것이라]고 외치게 하라고 9절에서 말합니다.O 그래서 왕께서 영예 주기를 기뻐하시는 그 사람은“오늘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왕이 듣기에 하만의 제안은 아주 완벽했습니다. 다시 말해서“모르드캐”야말로“왕이 영예 주기를 기뻐하는”바로 그 사람이고,“하만”이야말로 그를, 성읍 여기저기로 인도하기에 제격인 바로 그“존귀한 고관”이라는 것입니다.
O 그래서 10절에서 왕이 하만에게“너는 서둘러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네가 말한 대로 왕의 문에 앉아 있는 유대인 모르드캐에게 그렇게 행하되 네가 말한 모든 것에서 전혀 빠짐이 없게 하라.”고 말합니다. 어디하나 빈틈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해 주의 손길은 완벽하게 운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은, 단번에 하만의 기대와 열망을 완전히 부셔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왕은 지금 모르드캐를 [유대인] 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유대인을 멸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3:8-9절에 보면, 하만은 단지“한 백성이 그들의 율법이 온 백성과 달라서 그들이 왕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하만은 왕에게 멸해야 할 백성들이 어떤 민족인지 보고하지 않습니다. 에스더 자신이 그 칙령을 몰랐다는 사실을 볼 때(에4:4.8). 아하수에로 왕도 자신의 이름으로 내려진 그 칙령을 직접 본 적조차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O 하만은, 자신이 미워하는 한 민족 유대인들을 말살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왕에게 감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하수에 왕이 알기로는, 모르드캐는 하만이 죽이기를 원했던 백성과 어떤 연관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만은 어쩔 수 없이 그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제안했던 방법으로 모르드캐를 영예롭게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만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일은 죽기보다 더 치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증오했던 바로 그 사람, 죽이려고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다 끝낸 바로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에게 왕의 옷을 입혀주어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유대인을 대적하는 하만의 칙령으로 혼란에 빠진 성읍(에3:15)을, 모르드캐가 탄 그 말고삐를 붙잡고 돌아다니며 왕의 전달자로 행세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만에게는 아주 참기 힘든 고통스런 치욕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O 다시 12-14절에 [모르드캐는 다시 왕의 문으로 돌아갔으나 하만은 자기 머리를 싸매고 슬퍼하며 급히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13 그가 당한 모든 일을 자기 아내 세레스와 그의 모든 친구들에게 말하니 그의 현자들과 그의 아내 세레스가 그에게 말하기를“만일 모르드캐가 유대인의 씨라면 당신이 그의 앞에서 패하기 시작하였으니 그에 대하여 이기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반드시 패하리이다.”하더라.14 그들이 아직 하만과 말하고 있는데 왕의 내시들이 와서 서둘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마련한 잔치에 데리고 가니라.]고 말씀합니다.
O 12절에 [모르드캐는 다시 왕의 문으로 돌아갔으나 하만은 자기 머리를 싸매고 슬퍼하며 급히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만의 세상은 이제 막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는 비참하고 낙담한 마음으로 그리고 비탄의 표시로서 자신의 머리를 싸매고 슬퍼하며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에 반해, 모르드캐는 그저 [왕의 성문]에 있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고 모르드캐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그 일에 대해서 자랑하거나, 하만의 굴욕감에 대해서 흡족 해 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왕의 영예가 자신의 머리로 돌아가지 않도록 모든 영예를 왕께 돌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바른 태도인 것입니다.
O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영광으로 가져가는 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그가 누구든 우리들에게는 티끌만큼도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주께로 향하는 영광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나 사람에게서 영예를 얻게 될 때는 우리는 아주“하나님 앞에서 아주 냉철하게 대처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예는 아주 좋은 것입니다.
O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기 자만에 빠지게 된다면, 주께서는 우리들의 자부심을 산산이 꺾어 버리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떤 일을 올바르게 행동할 필요가 생기면, 우리는 모르드캐 처럼 반드시 올바르게 처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설령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세상을 우리를 죽이려고 데 든다 해도 했다고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앞에서 주의 성도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O 누군가가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를 조롱하거나 우리에게 굴욕감을 준다면, 나 같이 천하고 못 났으며, 무지하고 세상의 온갖 죄들과 더불어 지옥의 자식으로 살았던 이 죄인을, 죄와 사망과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그 주 하나님을 위해, 이 작은 고통이라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O 반대로 주께서 어떻게 해서 우리들을 번성케 하시고, 혹 영예롭게 하셨다면, 구원 받은 죄인을 향한 주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인해 조용히 고개 숙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마음을 다해 주를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런 것을 받을 만한 자격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사실을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만과 같은 자만심에 빠져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O 13절에[그가 당한 모든 일을 자기 아내 세레스와 그의 모든 친구들에게 말하니 그의 현자들과 그의 아내 세레스가 그에게 말하기를“만일 모르드캐가 유대인의 씨라면 당신이 그의 앞에서 패하기 시작하였으니 그에 대하여 이기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반드시 패하리이다.”] O 하만은, 자기 아내와 친구들에게로 가서 자신이 겪은 고통들을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하만의 말을 들었던“세레스”와, 그의 친구들은“하만”이, 결코 생각해 내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O 다시 말하면, 그들은 지금 하만에게 닥친 불행은 우연히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잘못되어서 벌어지는 일도 아니라, 바로 이것은 어떤 절대자께서 모르드캐 앞에서 지금 하만을 아주 철저하게 멸망시키고 계시다는 사실을“세레스”와, 그의 친구들은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입니다.
O 유대인들은, 주를 두려워하며 주를 신뢰하고 그분께만 기도 하는 민족입니다. 그러기에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에도 설령 그 일로 인해서 그들이 죽을지라도 경배하거나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면서, 우상에게 경배하고 기도할 때, 그들의 민족은 철저하게 부서지고 깨지며 산산조각이 나서 이방의 포로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O 모르드캐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유대인들이 당하고 있는 이유 또한 그런 연유로 지금껏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모르드캐는 주를 두려워하며 주를 섬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드캐는 비록 죽을지라도 “자신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하만에게 절을 하지도, 아무런 경의도 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O 그래서 에3:2-4절에 [왕의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하만에게 절하고 경의를 표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에 대하여 그렇게 명하였음이더라. 그러나 모르드캐는 그에게 절하지도 아니하고 경의를 표하지도 아니하더라. 그러자 왕의 문에 있던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캐에게 말하기를“어찌하여 네가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하더라. 그들이 날마다 그에게 말하여도 그가 그들에게 경청하지 아니하므로 그들이 하만에게 고하여 모르드캐의 일이 어떻게 되는가 보려 하였으니 이는 모르드캐가 자신이 유대인임을 그들에게 말하였음이더라.]고 말합니다. O 그러기에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위해 지금 역사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며 주를 신뢰하는 사람, 주를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주께서는 빈틈없이 도우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세레스”와, “그의 친구들”은 이것을 눈치를 채고, 하만에게 “만일 모르드캐가 유대인의 씨라면 당신이 그의 앞에서 패하기 시작하였으니 그에 대하여 이기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반드시 패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O 그래서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들 앞에서 악한 자들은 반드시 패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주를 두려워하며 죄를 멀리하고, 주를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주를 신뢰하며 기도하는 자라면, 여러분들의 적이 누구든, 여러분들 앞에 누가 있든, 여러분들의 문제가 무엇이든, 여러분들은 그 모든 것들로부터 여러분들은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며, 번성하고 증대하며 창대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O 왜냐하면, 주께서는 주를 두려워하며, 주를 사랑하고, 주를 신뢰하는 사람을 철저하고도 아주 완벽하게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원수들이 내려치려는 칼날 앞에서도, 구해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하17:39절에 [오직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0 또, 주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승리의 깃발을 주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시60:4절에 [주께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깃발을 주시어 진리로 인하여 그것을 게양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므로“만일 여러분들이 주를 두려워하며 주를 사랑하고 주를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앞에 승리의 깃발을 높이 세우게 될 것입니다.”O 그래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섬기는 주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빚지고는 못 사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주께서는 주실 것은 반드시 주시고, 받을 것은 반드시 받아 내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0 주께서는 계산하시는데 천재이십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복 주시고 은혜주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정확하게 계산하셔서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아내야 할 것은 아주 정확히 받아 내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악한 자들로부터도 받아내야 할 것은 반드시 받아 내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0 그러면, 우리가 하는 일에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결코 손대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특별한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오직 주를 두려워하고, 주를 사랑하고, 주를 신뢰하는 삶을 통해서 이 세상을 이기고, 악인을 이기고, 불가능을 이기고 승리의 깃발을 높이 게양 하는 삶을 사시다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휴거되어 주와 함께 영원히 사시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