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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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2일(일)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내어 놓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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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2일(일)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내어 놓느니라.
요10:1-15절 말씀입니다.
0 먼저 본문1-5절을 보겠습니다. [“진실로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양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라.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그에게 문지기가 문을 열면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러면 그는 자기 자신의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이끌어 내느니라. 4 그가 자기 양들을 이끌어 낸 후 양떼 앞에서 걸어가면 양들이 그를 따라가나니 이는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알기 때문이라. 5 그러나 그들이 낯선 사람은 따라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에게서 달아나나니, 이는 그들이 낯선 사람의 음성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O 1절에 [진실로진실로 내거 너희에게 말하노니, 양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넘어들어 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에서 [양]이나, [양떼]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이방인들을 [양]이나, [양떼] 라고 부른 적이 절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겔34:11-12절에 보면,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회복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 보면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나, 곧 내가 나의 양을 찾을 것이며 또 그 들을 찾아내리라 목자가 흩어져 있는 자기 양들 가운데 있는 날에 누가 자기 양 무리를 찾아냄같이 나도 내 양을 찾아내고 그 양들이 흐리고 어두운 날에 흩어졌던 모든 곳에서 그들을 구해 내리라]고 말씀 합니다.
O 그러나 신약에서, 특히 갈보리 십자가 이후,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부터는 [양]이나, [양무리], 또는[양떼]가 영적으로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양 우리”는, 대략 1.5m의 높이로 된“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울타리”는, 안과, 바깥의 경계를 이루면서 울타리 안쪽은,“양 우리”이고, 울타리 너머 밖에는“세상”입니다. O 그리고 이“양 우리”로 들어가려면, 당연히 [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 다른 길로 넘어서 이“양 우리”로 들어가려고 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들을 [도둑이요, 강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들은 누구인가? 물론, 마귀와 그를 추종하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1절의 말씀이, 9장의 마지막 절과 연결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씀하시는 [도둑이요, 강도들]은, 일차적으로“바리새인들”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O 그러나 2절에서 주님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9절에서는 [나는 그 문이라]고 말씀하시고, 요14:6절에서는, 나는“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양”과 관련하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떼를 돌보시는“양의 목자”이시고 또, “양 우리”로 가는“길”이시며, 그리고 “양 우리”로 들어가는“양의 문”이 되시는 것입니다. 다시 3절에서 주님은 [그에게 문지기가 문을 열면 앙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러면 그는 자기 자신의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이끌어 내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6절에 보면, 이 대목에서 주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양”이나,“양 우리”나,“목자”나, 하는 말씀들이 모두 “비유”라는 것입니다.
O 그래서 1-5절의 말씀을, 먼저“비유”로, 말씀하신 것들을 살펴보면, 1절에 [양 우리]는,“하늘나라”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문], 즉“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도둑이나, 강도 즉,“마귀”와 마귀에게 사로잡힌 구원 받지 못한 죄인들은, 이“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예수”라고 하는“문”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도둑이요, 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문이 아닌, [다른 길로 넘어들어] 가려고 이곳저곳을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O 물론, 다른 길로 넘어들어 간다고 해서“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와서, 그분을 통하여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바로“하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께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쫓겨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O 성경에는 사탄이 쫓겨나는“다섯 번”의 경우를 보여 주십니다. 1) 사탄은, 셋째 하늘에서 쫓겨납니다. 그래서 겔28:16절에 [네 상품이 풍부함으로 그들이 폭력으로 네 가운데를 채워서 네가 죄를 지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리라. 오 덮는 그룹아, 내가 불의 돌들 가운데로부터 너를 멸하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2) 사탄은, 둘째 하늘에서 쫓겨납니다. 그래서 눅10:18절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 합니다. 3) 사탄은, 대환란 때 첫째 하늘에서 쫓겨납니다. 그래서 계12:9절에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O 4) 사탄은, 주께서 재림 때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 쫓겨납니다. 그래서 계20:1-3절에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의 손에는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와 큰 사슬을 가졌더라. 그가 그 용을 잡으니, 곧 마귀요 사탄인 옛 뱀이라. 그를 천 년 동안 묶어 두니 그를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서 가두고 그 위에 봉인하여 천 년이 찰 때까지는 민족들을 다시는 미혹하지 못하게 하더라. 그후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게 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5) 사탄이 마지막으로 쫓겨나는 것은, 영원한 불 못으로 쫓겨 갑니다. 그래서 계20:10절에 [그들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그곳에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영원무궁토록 밤낮 고통을 받으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마귀는, 절대로 양 우리로 들어가기 위해서“문”이 되시는“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O 다시 2절에서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 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양의“목자”가 되시고, 양의“문”이 되시며, 그리고 주께서는 바로 “길”이 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문지기]가, 양 우리의 문을 열면, 양의 목자께서,“양 우리”로 들어가게 되고, [양들]즉, 성도들은,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양의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갖고 계신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깊은 관계를 가지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실 때도, 우리 개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우리에게 교훈을 하실 때도, 우리 개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O 우리가 세상에 빠져 있을 때도,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있을 때도, 주님은 우리 개인의 이름을 부르시며, 세상으로부터, 그 죄로부터 우리를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의 각 개인의 [이름을] 부르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우리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실 때는 더욱 그러하십니다. 그래서 그때 각 개인의 이름을 큰 음성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 주님] 하고 내가 대답하는 그 순간, 눈 깜짝하는 사이(고전15:52), 우리는 공중으로 끌려올라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개인적 관계”로 유지 되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4절에 [자기 양들을 이끌어 낸 후 양몌 앞에서 걸어가면 양들이 그를 따라가나니 이는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주님만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들은 자신들을 이끄시는 목자의 음성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거짓 목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도망을 친다고, 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여기까지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비유들입니다.그렇다면, 이 말씀이 교리적으로, 직접 적으로 적용되는 실제적인 면을 살펴보면, 1절에서 말씀하시는 [양 우리에 문]은,“셋째하늘”로 들어가는 실제적인“문”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 위 어딘가에“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실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4:1절을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쳐다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는데]라고 말씀하십니다.
O 성경은, 분명히 [하늘에 한 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우리의 머리 위로, 이 우주가 끝나는 지점 어딘가에“북쪽”으로 난“문”이 하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북두칠성”은, 바로 그“문”이 있는 방향을, 주께서 계신“셋째 하늘”로 가는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문”이 바로 하나님께서 계신“셋째 하늘”로 들어가는“관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계4:1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이 문에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으로 [이리 올라오라] 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이 우주의 끝, 저 너머에 북쪽으로 나 있는 이“문”을 통하여 셋째 하늘로 들어가서 찬란하게 빛나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던 것입니다.그래서 계4:2-3절에 [또 내가 즉시 영 안에 있게 되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보좌가 놓여 있고 한 분이 그 보좌에 앉으셨는데 앉으신 분의 용모가 벽옥과 홍보석 같으며, 그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에메랄드같이 보이더라]고 말합니다. 순교자 스테판도, 이“열린 문”을 봤습니다. 그래서 행7:56절에 보면,“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말씀합니다.
O 창세기 l장은, 이 거대한 우주가 들어가 있는 [깊음]이라는 거대한 물이 있는데, 이 [물]을 직접 본 사도요한은, 계15:2절에서, 이것을 [유리 바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니, 불로 뒤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그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숫자에 대하여 이긴 자들이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섰더라]고 말씀합니다. 계4:6절에 보면, 이“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그 보좌 가운데와 그 보좌 주위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한 네 짐승이 있더라]고 말씀 합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이 [물]이 단단하게 얼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욥38:30절에서 [물이 돌로 된 것처럼 감추어쳤고 깊음의 표면은 얼어 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주 바깥 저 너머에, 이와 같은 [깊음] 즉,“유리 바다”가 놓이게 된 이‘물’에 대해서, 창1:6-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들 가운데 창공이 있으라. 창공으로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게 하라, 하지니라 하나님께서 창공을 만드시고 창공 위에 있는 물들에서 창공 아래 있는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창공을 만드신 하나님의 일차적인 목적은, 창공으로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결과, 창공을 가운데 두고, 창공위의 물과, 창공 아래의 물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창공위에 물과, 창공 아래에 물이 있고, 그리고 그 물들 가운데“창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48:4절에서도 [너희 하늘들의 하늘들과 하늘들 위에 있는 너희 물들아 그를 찬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창1:2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의 영이 [물들]의 표면에 거니신 그 물들이 바로 이“물들”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깊음”즉,“유리 바다”는,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 사이의“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첫째 하늘을 벗어나, 둘째 하늘을 통과하여 하나님께서 계신“셋째 하늘”까지 가려면, 불가불 우리는 이 거대한“깊음”즉,“유리 바다”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과하는 이“통로”즉, 이“길”이, 바로 여기 요10:1절에서 말씀하는 [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문”즉, 이“길”이 아니고는 절대로 아버지하나님께서 계신“셋째 하늘”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O 그래서“셋째 하늘”의“문”이요,“셋째 하늘”의“길”이 되시는“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절대로 아버지께서 계신 곳“셋째 하늘”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4:6절에서 주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고 하신 이 말씀이 바로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셋째 하늘”에서 쫓겨난 마귀는, 다시 그리로 들어가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여전히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사도 요한은 이 마귀를, 계12:3절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붉은 용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27:1절에서는, 이 용을 [꼬부라진 뱀 리비야단]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이 마귀가 바로 엡2장에서 바울이 말하고 말씀하신 “공중 권세” 잡은 공중의 “통치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2:2절에서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O 그래서 공중 권세의 통치자인 마귀는, 지금 창공 위, 아래에 [물들]에서 활동하고 있으면서 [다른 길로 넘어서 양 우리로 들어]가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다른 길”이란, 주께서 완성해 놓으신 그 길을 제외한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O 2절에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아는 양의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양의 목자이신 주께서는“셋째 하늘”로 들어가실 때, 유리 바다에 북쪽으로 나 있는 [문]을 통하여 들어가시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 할 당시, 홍해 바다가 갈라졌듯이 주께서 성도들을 인도하시고, 그들 앞에서 이“깊음의 물”을 나누실 때(사63:12), 바로 이“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 3절에서 [그에게 문지기가 문을 열면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러면 그는 자기 자신의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이끌어 내느니라]고 말씀 합니다. 이 구절의 말씀은, 절대적으로“휴거”를 말씀하십니다.“성도의 휴거, 그리스도인들의 휴거”는, 대 환란이 일어나고 있는 이 지상으로부터“탈출 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O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대 환란 직전, 주님의 신부되는“그리스도인들”을 신속하게 탈출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성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대 환란”직전에 성도들을 데리러 오실 때, 성도들은 하늘 위에서 주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4-5절에 [그가 자기 양들을 이끌어 낸 후 양떼 앞에서 걸어가면 양들이 그를 따라가나니 이 는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알기 때문이라. 그러나 그들이 낯선 사람은 따라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에게서 달아나나니, 이는 그들이 낯선 사람의 음성을 모르기 때문이라] 고 말씀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이끌고 다시 지상에 재림하시는 장면을 실제적으로 말씀하십니다.
O 그래서 [그가 자기 양들을 이끌어 낸 후]라는 이 말은, 주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을 때, 먼저 성도들을“대 환란”이 있게 될 이, [지구에서 탈출시키신 후]란 뜻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휴거되고 난 뒤에, 지상에서는 “7년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대 환란”이 지속되다가, “7년 동안의 대 환란이 거의 끝날 때쯤”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마무리하시기 위해, 지상에 다시 재림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7년 전에, 휴거되어“셋째 하늘”로 올라갔던 모든 성도들이 주님을 따라 다시 지상에 내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3:13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없도록 너희 마음을 견고케 하시기를 바라노라.]고 말씀하시면서, 유1:14절에 [아담의 칠 대 손 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예언하여 말하기를“보라, 주께서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4절에 [그를 따라 가나니 이는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6-10절에[예수께서 이런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은 주께서 자기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진실로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들의 문이라. 8 내 앞에 온 자는 다 도둑들이요 강도들이라. 양들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나는 그 문이라.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받을 것이며 또 들어가며 나오며 초장을 찾으리라. 10 도둑은 오직 도둑질하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오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6절에 [예수께서 이런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지더라. 그러나 그들은 주께서 자기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주께로부터 이 말씀을 들었던 그들은, 지금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시는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전혀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O 그렇다면, 이 말씀을 오늘날의 교회들은 깨닫고 있는 것인가? 주께서 이 말씀을 하신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성도들은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깨닫고 있는 것인가? 1200만 명의 성도를 자랑하고 있는 한국 교회들은,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깨닫고 있는 것인가? 이 말입니다. 깨닫는 것까지는 그만두고라도, 어느 교회에선가, 어느 목사에서인가, 자신이 신앙생활을 해오는 동안, 실제로 북쪽으로 나 있는 “하늘 문”에 대해서, “깊음”에 대해서, “그 깊음의 물”에 대해서, “얼어있는 유리바다” 에 대해서,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서, 그리고 “휴거된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다시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에 대해서 단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은 있는 것인가? 이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세월동안 한국 교회들은 무엇을 말해 왔으며, 소위 목사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그동안 무엇을 교회들에게 가르쳐 주었는가?입니다.
O 교회 짓는데 바빠서, 다른 교회 성도들 빼앗아 자기 교회로 데려오는데 바빠서, 이 땅에서 복 받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이 세상에서 잘 살게 해주는 비법 같은 것들을 가르쳐 주는데 너무 바빠서 그만 그런 것들을 가르쳐 주지 못했는가? 아니면, 하늘나라, 성도의 휴거, 대 환란, 재림,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도 없기에 가르쳐 주지를 못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삯꾼들이 아닌가? 이 말입니다. 그러나 진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깨달아 알기 때문에, 주께서 호령과 함께 다시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살전4:16-17).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문] 을 통하여 [깊음]의 아래로 내려 오셔서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그 [이름을 불러서]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들을 [이끌어] 내실 것입니다.
O 그리고 주님께서 공중으로 오셔서 우리들의 각 개인의 이름을 부르시면, 그때 고전15:50절에서 말씀하시는 대로“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에”우리의 몸속에 있는 모든 피는, 순간적으로 우리 몸에서 빠져나와 그가 있던 곳에 쏟아놓고, 우리의 몸은 순식간에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되어(빌3:21) 눈 깜박 할 사이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고, 은하계를 거쳐 우주 공간을 눈 깜짝할 사이에 벗어나 거대한 [물들]에 당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주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바다를 향해 명령하셨듯이,“깊음”의 “유리 바다”를 향해 [열리라] 고 명령하시는 그 순간, 그 깊음의 유리바다의“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따라 그 문을 통과해서“셋째 하늘”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서 이끌어]내실 때, 우리들은 그분의 음성을 듣고, 공중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올라가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 [바다]의 [물을 나누시고] 문을 여실 때, 우리들은 마치 [말처럼]달려 [깊음]의 물들을 통하여“셋째 하늘”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말하면, 우리가 휴거 된지 7년 후에, 우리들은 요한계시록 19장에서 [흰 말]을 타신 주님을 따라 다시 이 땅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도 역시 물이 나뉘어져 생긴 문을 통하여 셋째 하늘에서 달려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와 셋째 하늘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유리 바다”는, 성도들이 휴거될 때 한 번 열리고, 그리고 다시 우리가“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에 내려 올 때“또 한 번”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출애급 할 당시 “홍해 바다”를 건넜고, 그 뒤에 또 한 번,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요단강”을 건너 카나안 땅으로 들어갔던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O 그래서 모세의 출애굽은“휴거”를 예표 하는 것이고, 여호수아의“요단 강”건넜던 것은,“그리스도의 재림”의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에서 여호수아를 직접 [예수] 라고 지칭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행7:45절에서 [우리 조상이 또한 그것을 물려받아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의 면전에서 쫓아내신 이방인들의 땅으로 예수와 함께 가지고 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7절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앙들의 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을 교리적으로 적용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빵]이시고(요6:35),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이시며(요4:14).[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요14:6). 그리고 여기 7절에서는 또 [나는 양들의 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8절에 [내 앞에 온 자는 다 도둑들이요 강도들이라 양들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먼저 온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구약의 선지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당시 세상에서 활동했던 헬라의 수많은 철학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직전, 이 지구상에는 철학자들, 소위 소크라테스라든가, 플라톤이라든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유명했던 수많은 철학자들이“그리스”에 출현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마귀를 따르는 도둑들이요, 강도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닌 것으로, 진리로 가장해서 사람들을 현혹했기 때문입니다.
O 9절에 [나는 그 문이라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받을 것이며 또 들어가며 나오며 초장을 찾으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9절에서는 성도들이 구원받은 후, 천년왕국 시대에 지상에 다시 오게 될 전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구원받을 것이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데리러 오실 때, 휴거 되어 셋째 하늘로 [또 들어가며],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지상 재림하실 때, 주님과 함께 또 셋째하늘로부터 [나오며],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이 끝난 뒤, 천년왕국에서 [초장]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받고, 휴거되고, 지상 재림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에서 왕국을 통치하게 되는 전 과정을 이 9절 한 구절이 담고 있는 것입니다.
O 10절에 [도둑은 오직 도둑질하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오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대신 다른 것은 다 빼앗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오히려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O 다시 11-15절에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 양들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려 두고 도망치느니라. 그리하여 이리가 양들을 채가고 흩어지게 하느니라. 13 삯꾼이 도망치는 것은 그가 삯꾼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느니라.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나니,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나도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으니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내어 놓느니라]고 말씀합니다.
O 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라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시는 이 말씀은 [악한 목자]가, 또 있음을 암시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슥11:16-17절에 [보라 이는 내가 그 땅에 한 목자를 일으킬 것임이니, 그가 멸망한 자를 찾아보지 아니하고 어린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치유하지 아니하고, 조용히 서 있는 자를 먹이지 아니할 것이며, 오히려 그는 살진 자의 살을 먹고 그들의 굽을 산산이 찢으리라 양떼를 버려 둔 우상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칼이 그의 팔과 그의 오른 눈에 임하리니, 그의 팔은 바싹 마르고 그의 오른 눈은 완전히 어둡게 되리라]고 말씀 합니다.
O 이“우상 목자”는, 곧“악한 목자”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선한 목자는 앙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인간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문명 세계에 사는 인간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 죽어 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랑과 죽음]을 좋아하게 된 것은, 창세기 3장에 그 기원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는, 한 남자와 자기를 위해 열매를 먹고 죽어 주기를 원하는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0 그래서 남자는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남자는 죽기 위해 그 열매를 받아먹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기본적인 요소는“사랑과 죽음”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O 그러나 12-13절에 보면,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 양들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려두고 도망치느니라. 그리하여 이리가 양들을 채가고 흩어지게 하느니라 삯꾼이 도망치는 것은 그가 삯꾼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느니라]고 말씀 합니다. 0 [삯꾼]은, 그 양들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이 닥치면 도망쳐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거기에 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이 세상에는 진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자기 스스로 [목사]가 된 사람들이 까마귀 떼 같이 수도 없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O 그들은“목사”가 아니라,“기술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데 “기술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서 돈을 긁어내는데 “기술자”들입니다. 이들은 성도들을 멍청하게 만드는데 “기술자”들입니다. 이들은 지역사회에서 유명해지는데 “기술자”들입니다. 또, 이들은 치고 빠지는 기슬, 버티는 기술, 거기에 변장술과 깡패들의 기질까지도 완벽하게 갖춘 아주 솜씨 좋은 “기술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렇게 무서운 것은, 이들은 항상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미혹”하는데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롬16:18절에서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양들은 이런 가짜 목사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O 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나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에서 흔히 사용 되는 [알다]란 말은 [인지] 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사랑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지금 [내가 내 양들을 사랑하고 내 양들도 나를 사랑하나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려면 알되, 영과 혼과 몸 전체로 알아야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15절에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나도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으니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내어 놓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1절에서 하셨던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갈보리 십자가를 예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O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에게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주님의 생명으로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 덤의 삶은, 주님을 위한 삶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죄와 사망과 지옥의 멸망에서 마귀의 형상인 뱀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영원토록 유황불 불구덩이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삶과, 우리의 모든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O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므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되,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주님 한분만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O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주 하나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고, 성실과 진리로 주를 섬기는 삶을 사시다가 그날에, 그 영광의 날에, 주께서 각자의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실 때, 휴거되어 주와 영원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