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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일 예 배

박종각 2021. 3. 28. 00:00

                                                                            주일예배

                                                                             3월28일

 

                                                               무지하다면 무지하게 내버려 두라.

                                                                            주일예배

                                                                             3월28일

 

                                                               무지하다면 무지하게 내버려 두라.

 

                                                                   본문고전14:1-16절 말입니다.

 

O 본문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랑을 추구하라. 영적인 은사들을 열망하되 특별히 예언을 할 수 있도록 하라. 2 이는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요, 또 어떤 사람도 알아듣지 못하나 그가 영으로 신비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3 그러나 예언을 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말하며 세워 주고 권면하고 위로하느니라. 4 알지 못하는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세우나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를 세우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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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2장에서는,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최상의 은사를 열망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고전12:31절에 [오히려 너희는 최상의 은사들을 열망하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더 좋은 길을 보여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 13장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 주고자 하는 자비로운 사랑(charity) 을 최우선적인 것으로 강조해서 명령합니다.

 

O 그리고 오늘 본문14:1절에 와서는, [사랑을 추구하라. 영적인 은사들을 열망 하되, 특별히 예언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12.13,14장까지, 이 세 장을 서로 연관 지어서 생각해 보면, 제일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은사랑입니다. 그런 다음에 영적인 은사들을 열망하되, 이 은사들 중에서도 최상의 것을 열망하면서 그것을 추구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은사는 곧예언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씀합니다.

 

O 그래서 우리가 남에게 주고자 하는 자비로운 사랑을 베풀고 난후, 성령의 은사 중 최상의 것을 열망한다면, 우리들이 열망하는 그 영적인 은사들이 자연적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 중 최상의 것은 바로 선지자처럼“예언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고전12:28-31절까지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읽어봅시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기적들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들이며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여러 가지 방언들이라. 다 사도들이겠느냐? 다 선지자들이겠느냐? 다 교사들이겠느냐? 다 기적들을 행하는 자들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들을 가졌겠느냐? 다 방언들을 말하겠느냐? 다 통역하겠느냐? 31 오히려 너희는 최상의 은사들을 열망하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더 좋은 길을 보여 주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O 여기서 [교회] 라고 하는 것은, 이미 여러분들이 아시겠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성도들이 모여 주께 예배를 드리는 지역교회 즉, 예배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12장에서 말씀하시는 바로 그 교회,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이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을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개별적으로는그리스도의 몸안에서 우리들은 하나의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는 그 지체들이라.]고전12:2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O 그렇습니다. 우리 몸에는 눈, 코, 입 귀, 팔, 다리 등등의 여러 몸의 지체들이 있듯이, 주의 몸을 이루고 있는 우리들은 주님의 몸의 하나의 지체로서의 각기 다른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한 몸”즉, 교회 안에 각 지체들로 성직자들과 사역자들을 세우시는 것입니다.O 그래서 고전12:28-31절에 나오는 이 성직들은, 그 성직의 중요성에 따라 그 순서대로 나열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한 몸”안에 즉,“하나님의 교회”안에서 그 중요성에 따라 주어지는 첫 번째로 성직은 바로 “사도”입니다. 그 다음 둘째가 선지자입니다. 셋째가 교사입니다. 그리고 나서 기적들, 병 고치는 은사들,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그리고 맨 나중에 “방언”이 나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 가운데 최상의 것은“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사도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는 사도가 더 이상 나올 수는 없습니다.

 

 

 

 

O 그러므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최상의 영적 은사는“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예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기 1절에서 [특별히]라고 말하며 강조 하는 것은 [예언할 수 있도록] 열망하라고 바울은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되어 예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기록된 성경 말씀에 의하여 장차있게 될 일들을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설교는, 다가올 미래의 일에 관해서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래에 관해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19:10절에서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오직 주 예수를 말하는 사람, 주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 다시 말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전파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O 에녹의 설교가 바로 그것이었고(유14절), 노아의 설교가 바로 그것이었으며(벧후2:5), 구약의 선지자들의 설교가 그러했고, 또한 성경이 완성된 후, 사도들의 설교가 그러했으며, 그리고 오늘날 이 시대의 설교가 바로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예언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면, 당신이 예수를 끝까지 거부한다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아주 훌륭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은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자체가 예언이고, 성경 그 자체가 예언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성경적 예언이란 점쟁이가 점치듯 장래 일을 말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의 장래 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것들, 즉 장차 있게 될 여러 가지 사실들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것을 바로 성경적 예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O 2절에 [이는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요, 또 어떤 사람도 알아듣지 못하나 그가 영으로 신비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에 대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방언은 사람의“언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행2장에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O 그리고 바울은 고전13:1절에서 [내가 사람들과 천사들의 방언들로 말한다 해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방언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하는데 첫째는, 막16:17절에서 [새 방언들]이라고 말합니다. 이“새 방언들”는, 그 사람이 전에 배워 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언어를 말합니다.

 

O 그리고 두 번째는, 2:4이나, 고전14:21절에서 [다른 방언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다른 방언들은, 지금 방언을 말하고 있는 그 사람의 모국어가 아닌, 그러나 듣는 다른 사람들은 그것들을 알아듣는 것을 말합니다.(2:8). O 그리고 세 번째는, 여기 본문 2절에서 지금 바울이 말하는 [알지 못하는 방언]이라고 말합니다.

 

O 알지 못하는 이 방언들은 모인 회중 어느 누구도 전혀 들어 본적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런 언어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방언을 하는 그 사람이든지(13절),아니면‘다른 어떤 사람’(27절)이 반드시 통역 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O 당시 고린도 인들은 회중 가운데 아무도 모르는 언어들로 방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가 아무도 모르는 언어들로 방언을 하고 있다면, 그는“사람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말하는 것으로 그가 영으로 신비들”을 말하는 것이라는 말합니다. 그러나 이 신비들은, 고전 4장에서 말하는 그런“신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O 고전4:1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기게 하라.] 여기서 말하시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맡은하나님의 신비들은 신약에서 일곱까지로 나타나는데, 1)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신비(딤전3:16). 2) 우리 안에 내주 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1:27). 3)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신비(3:32,3:1-5). 4) 이스라엘이 눈이 멀게 된 신비(11:25). 5) 사탄의 육화에 대한 신비(살후2:7). 6) 휴거에 대한 신비(고전15:51). 7) 큰 바빌론에 대한 신비(17:5)를 말씀 하십니다.

 

O 그러나 본문 2절에 말하는 이“신비들”은, 이런 이 신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아주 희한한 신비들 즉,“미스테리”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16절을 보면 [그렇지 않고 만일 네가 영으로 축복하면 네가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너의 감사에 아멘 할 수 있으리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O 이에 관해 2절을 주목해 보면 [또 어떤 사람도 알아듣지 못하나 그가 영으로 신비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영으로”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바로“영으로”라는 말은,“성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영”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방언은“성령”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고전2:11로 되돌아가 보면 [사람의 일을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의 일이라 하더라도, 그러나 그 사람 안에 있는 자신의 영은 알고 있다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느니라]고 하십니다. , 성령이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씀합니다.

 

O 이렇게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대도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말하면서 이것을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의 영조차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만은 그 소리를 알아듣는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O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분명히 [사람의 일을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알리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의 영도 그 사람의 일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을 사람의 영이 알듯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자기 자신의 영도 알지 못하는 방언을 말한다면, 그는 지금 엉터리 방언, 아무 뜻도 없는 소리를 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O 다시 14절로 가보면, 바울은 [만일 내가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하는 것이지만 나의 지각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내가 만일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한다 하더라도 그러나 [내 영은] 그 기도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내 영이 안다고 해도 그러나 그 결실로 내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7절서 바울은 ['너는 감사를 잘했으나 다른 사람은 세움을 입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때로 우리들은 나 자신만이 알고, 그리고 나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령 다른 사람이 우리의 기도를 듣는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그것을 알아듣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당사자 외에는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나 자신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언어로 기도한다고 할 때, 그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은 물론 나 자신에게 유익이 되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O 그래서 4절에서 [알지 못하는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세우나,]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를 세우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피리나 하프같이 생명이 없는 것들일지라도 소리를 낼 때에 그 소리를 구별하지 아니하면 피리를 부는 것인지 하프를 타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으리요?]라고 말하면서, 다시 9절에서 바울은 [너희도 마찬가지라. 만일 너희가 방언으로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이는 너희가 허공에다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만약 어떤 사람이 열 손가락으로 아무렇게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면, 그게 무슨 음악인지, 무슨 곡인지 전혀구별하지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소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도 그 사람 자신은 기분이 좋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곁에 있는 사람은 짜증을 내며 나가버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방언으로 이야기할 때 만일 그가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O 다시 5-12절을 보겠습니다.[나는 너희 모두가 방언들로 말하기를 바라지만 차라리 예언하기를 바라노라. 이는 방언들로 말하는 자가 통역을 하여 교회가 세움을 입지 못한다면 예언하는 자가 더 낫기 때문이니라. 6 그러므로 형제들아 만일 내가 너희에게 가서 방언들로만 말하고 계시로나 지식으로나 예언으로나 교리로 말하지 아니한다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7 피리나 하프같이 생명이 없는 것들일지라도 소리를 낼 때에 그 소리를 구별하지 아니하면 피리를 부는 것인지 하프를 타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으리요? 8 뿐만 아니라 만일 나팔이 불확실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 준비를 하겠느냐? 9 너희도 마찬가지라. 만일 너희가 방언으로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이는 너희가 허공에다 말하고 있는 것이라. 10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말이 있을지라도 뜻 없는 말은 하나도 없으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면 말하는 그 사람에게 나는 야만인이 되고 말하는 그 사람도 나에게 야만인이 되리라. 12 너희도 마찬가지라. 너희가 영적인 은사들을 열망한 이상 교회를 세우는 데 풍성하기를 구하라. ]고 말씀합니다.

 

 

 

 

O 5절에 [나는 너희 모두가 방언들로 말하기를 바라지만 차라리 예언하기를 바라노라. 이는 방언들로 말하는 자가 통역을 하여 교회가 세움을 입지 못한다면 예언하는 자가 더 낫기 때문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입니다. 그래서 고전14:22절에 [그러므로 방언들은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지만 예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구절은 [율법]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란 바로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사람들] 곧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 곧 믿지 않는 유대 인들을 위한 [표적]일 뿐인 것입니다.

 

O 그런데 5절에서 바울이 하는 말은, 이처럼 방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이지만, 그러나 만약 그 은사가 너희에게 가능하다면 방언을 한다고 해도 구지 나 뿔 것은 없겠지만, 그러나 불필요한 것을 바라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은 표적이 아니라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은사이고, , 믿는 사람들을 위한 은사이므로 예언의 은사를 받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O 그리고 이어 [이는 방언들로 말하는 자가 통역을 하여 교회가 세움을 입지 못한다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회중 가운데서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통역을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고전14:27절에 [누가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려면 두 사람이나 많아도 세 사람이 차례로 하고 한 사람은 통역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O 6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만일 내가 너희에게 가서 방언들로만 말하고 계시로나 지식으로나 예언으로나 교리로 말하지 아니한다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방언을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히브리어뿐만 아니라 라틴어, 헬라어뿐만 아니라, 그는 5-6개국의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O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외국어 실력을 결코 자랑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오직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에 대한 지식과 장래에 있을 일들과 진리를 전해 주는 데에만 전념했던 것입니다.

 

O 7절에 [피리나 하프같이 생명이 없는 것들일지라도 소리를 낼 때에 그 소리를 구별하지 아니하면 피리를 부는 것인지 하프를 타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으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하고 무슨 뜻인지 구별도 못할 말을 아무리 떠들어 본들 그것은 아무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O 8절에 [뿐만 아니라 만일 나팔이 불확실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 준비를 하겠느냐?]고 말씀 하십니다. 적의 공격을 알리는 나팔소리나 진군나팔 소리가 불분명하게 들려온다면, 그 전쟁은 보나마나 결과가 뻔한 것입니다. 군대는 모든 것을 알리는 신호로 정해진 나팔 소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저녁에 취침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다르고, 아침에 기상을 알리는 소리 가 다르며, 또한 비상 나팔 소리가 다른 법입니다.

 

O 그리고 정해진 곡조들이 분명하게 울려야만 그것이 무슨 신호인지를 병사들이 알고 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됩니다. 단지 나팔 소리만이 아닙니다. 군대는 모든 지시사항들이 구령으로 이루어집니다. 구령 소리가 분명치 않으면 그 군대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구령을 외치는 자가 그 구령이 분명하지 못해서 어떤 병사들은 그대로 서 있고, 어떤 병사들은 뒤로 돌아간다면, 그 군대는 군대도 아닙니다.

 

O 그래서 9절에 [너희도 마찬가지라. 만일 너희가 방언으로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이는 너희가 허공에다 말하고 있는 것이라.] 고 말씀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혀 꼬부라지는 소리를 내지 말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소리를 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말이 있을지라도 뜻 없는 말은 하나도 없으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11-12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면 말하는 그 사람에게 나는 야만인이 되고 말하는 그 사람도 나에게 야만인이 되리라. 12 너희도 마찬가지라. 너희가 영적인 은사들을 열망한 이상 교회를 세우는 데 풍성하기를 구하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렇습니다. 서로 알아듣지 못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가 무지하기 짝 없는 야만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서 [너희가 영적인 은사들을 열망한 이상 교회를 세우는 데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방언보다는 교회를 세워주는 예언의 은사를 열망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결코 교회를 세워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O 다시13-16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통역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리라. 14 만일 내가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하는 것이지만 나의 지각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찌하리요? 내가 영으로 기도하겠고 지각으로도 기도하겠으며 내가 영으로 찬양하겠고 지각으로도 찬양하리라. 16 그렇지 않고 만일 네가 영으로 축복하면 네가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너의 감사에 아멘 할 수 있으리요?]

 

 

 

 

O 13-14절에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통역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리라. 14 만일 내가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하는 것이지만 나의 지각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내 영]이지, 성령이 아닙니다.

 

O 어째서 [나의 지각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를 16절에서 [그렇지 않고 만일 네가 영으로 축복하면 네가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너의 감사에 아멘 할 수 있으리요?]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17절에서도 [너는 감사를 진실로 잘했으나 다른 사람은 세움을 입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O 16절에서 다시 [만일 네가 영으로 축복하면] 여기서도 [영]은, 성령이 아니라 사람의 영을 말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말을 입 밖에 낼 때, 나는 사람이니까 내 입도 사람의 입일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말도 사람의 말일 것입니다. O 그러나 그 사람 안에“성령”이 거하시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람의 말 가운데는 자동적으로“성령님”의 의도하심이 함께 담겨 나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람의 영으로 축복 기도를 한다 해도“하나님의 영”즉 성령이 그 축복 기도 가운데 함께 담겨있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러나 내가“하나님의 영”이 아니라,“마귀의 영"에게 인도되고 있다면, 내 입에서 나오는 기도도 당연히 마귀의 의도가 함께 나오기 때문에 내 입에서는 진리를 왜곡하는 말과, 육신의 말과 그리고 마귀의 예언들이 튀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이나, 마귀의 영에 인도되지 않고, 순전히 자기의 의견과 자각에 따라 어떤 말을 입 밖에 낸다면, 그 말 가운데는사람의 영이 함께 묻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사람이 무슨 말을 할 때에는, 그 말 속에는 반드시“세 영”가운데 한 영이 함께 묻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한 영”은, 하나님의 영이시니 성령이요, 또“하나의 영”은, 마귀의 영이니 더러운 영이고,“다른 하나의 영”은, 사람의 영인 것입니다. 사람의 언어는 이와 같이 세 가지 영들 가운데 어떤 하나가 반드시 함께 역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O 15절에서 바울은 [영으로 기도하겠고]라고 말하면서 곧바로, 다른 사람들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지각으로도 기도하겠으며]라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찬양도“영으로”하고, 또“지각으로도”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영으로”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 하더라도, 그러나 곧 바로 “지각으로도”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O 그러나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감정에 호소하고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물론 인간에게 감정을 넣어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며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넘치는 감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이 무시되고 자신의 감정에 들뜨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에 의해서 인간의 지성이 완전히 압도되어 버리게 됩니다.

 

O 그렇게 되면, 인간의 지각은 완전히 마비되어 성경이고, 진리의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이고, 다 팽개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성령의 역사인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라, 가짜“성령놀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바울은 [그렇지 않고 만일 네가 영으로 축복하면 네가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너의 감사에 아멘 할 수 있으리요?](16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그들의 감사에 아멘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성령체험은 가짜 성령놀이요, 그들의 감사는 엉터리요, 그들의 행위는 마귀 적이요,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O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이런 가짜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혼란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가장한 가짜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한 가짜들, 목사를 가장한 가짜들, 성도를 가장한 가짜들, 교회를 가장한 가짜들, 성령을 가장한 가짜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O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런 가짜들에게 미혹당하지 않기 위해서 구원하시는 주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굳게 잡고 진리의 지식으로,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영적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다가 주님께서 공중으로 내려오실 때 그것으로 들림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