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일 예 배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주일예배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벧후3:1-4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내가 이 두 번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는 것은 이 편지들로 말미암아 너희로 기억나게 하여 너희의 순수한 생각을 일깨워 주려 함이니 그리하여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전한 말씀들과 주 곧 구주의 사도들인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라.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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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본문 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내가 이 두 번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는 것은 이 편지들로 말미암아 너희로 기억나게 하여 너희의 순수한 생각을 일깨워 주려 함이니] 라고 말씀 합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 이어 여러 해 뒤에, 베드로후서를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 후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는 우리의 [순수한 생각]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라고 말씀합니다. [순수한 생각]은, 사람의 말이나 사람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나, 사람의 가르침이나, 사람의 행동으로 조금도 오염되지 않은 것을 [순수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일 때, 다시 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말씀들이 사실 그대로, 기록된 그대로, 전달되고 가르쳐질 때만이 비로써“순수함”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위대한 사람의 위대한 말이나, 위대한 가르침이나 위대한 행동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그 말이나 가르침이나 행동이 우리에게 [순수한 생각]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O 베드로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성경 말씀들”과,“주님의 계명들”을,“사실 그대로”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주려고, 다시 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사실들이, 사실 그대로 우리에게 다시 생각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 두 번째 편지를 쓴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점을 편지 서두에서 분명하게 밝혔고,(벧후1:12-16) 오늘 본문 2절에서도 다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2절에 [그리하여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전한 말씀과 주 곧 구주의 사도들인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전한 말씀]이란, [선지자들이 전한 자신들의 말]이 아니라, 선지자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들]즉,“성경”을 말합니다. O 성경은, 사람의 생각이나, 사람의 의견이나, 사람의 뜻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거룩한 선지자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하나님의 말씀들”이 바로“성경”입니다.
O 우리는 이것을 벧후1:21절에서 이미 봤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또, 딤후3:16절에서 바울도 말하기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고 말씀합니다.
O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모든 성경(딤후3:16)이, 바로 이 [말씀]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들은 단순히 성경에만 기록해 두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 적용하고 실행하라고 말씀들을 하셨고, 기록하게 하셨으며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이 서신 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기록해 놓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우리에게 환기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순수한 생각]이 일깨워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베드로는 [그리하여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전한 말씀과 주 곧 구주의 사도들인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위대한 사도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란, 지금 이 시대의 [목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O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분명한 조건을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어야 하고, 두 번째는. 그분에게서 직접 가르침과 명령들과 계명들을 받았어야 하며, 세 번째는, 그분으로부터 직접 신임장을 받았어야 하고, 네 번째는, 사도들의 표적들(고후12:12) 과 이적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O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그분과 함께 살았던 제자들뿐만 아니라,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주님을 만났던 바울(행9:15,갈2:7-8.딤전2;7) 역시 분명히 [사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1:1절에서 [사람들로부터도 아니요, 사람에 의해서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들로부터 그분을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에 의하여 사도 된 바울과] 라고 말씀합니다.
O 3절에서 배드로는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라고 말씀 합니다. 벧전1:20절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마지막 날들]이란 기본적으로는 대 환란 때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하면, 교회 시대가 마감되어 가고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해진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때를,“마지막 날들”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이 시대는, 베드로의 경고대로 [조롱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나 자신들의 정욕대로 활동하고 있는 때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성경을 조롱하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들을 조롱하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조롱하는 자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 있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O 지금 이 때,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들, 수많은 목사들, 성경을 자기들 멋대로 왜곡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성령의 능력]을 제멋대로 사칭하면서 성령을 농락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 득실거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현상은 1, 900여 년 전에 이미 베드로가 경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조롱하는 자들]을, 베드로는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O [정욕]이란, 쉽게 말해서“세속적인 탐욕”을 말합니다. 성경을 조롱하여 가짜 [현 대판]역본들(번역본)을 찍어내는 자들, 그리고 이들을 옹호하는 자들, 거기에 성령을 농락 하는 자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세속적인 더러운 이득, 즉 [돈]인 것입니다. 이들은 돈이 안 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O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들,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혼에 대한 것, 지옥, 성도들의 휴거,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하나님의 심판 같은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큰 교회건물과, 교회에 몰려드는 출석 교인들의 숫자와,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관심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딤후3:5절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말씀하십니다.
O 다시 4절에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니]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 목사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듣기 싫어하는 것이 바로“성도의 휴거”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한사코“성도들의 휴거”나,“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O 그들은 절대로 지옥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잉태케 하심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오직 믿음으로써만 이루어지는 인류의 구원에 대해서, 성도들의 휴거, 그리스도의 심판석, 대 환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심판,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즉 성경에서 말하는“믿음의 근본사항”에 대해서 말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O 왜냐하면,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돈을 모으고, 큰 교회를 짓고 성공한 목사가 되고, 사회로부터 존경받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O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창1:1절의 하늘과 땅은 그대로 변함없이 지속돼 왔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야만 거기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이 점진적으로 진화해 왔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1:1절의 하늘과 땅은, 그대로 있으면서 지구 환경만을 그때그때 조금씩 바꾸어 준 것이어야만 진화론에 대해서 설명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든 생물들을 몰살해 버릴 만한 대격변이 지구에 일어났다고 말하면, [진화]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O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물은 결코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지 않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창조의 시작]은, 바로 창1:1절을 말합니다.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세상은, 몇 번의 큰 재앙으로 크게 변했습니다. O 성경이 암시하고 있는 첫 번째 재앙으로는 창1:2절에 나옵니다. 그래서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있게 되었습니다.
0 그래서 창1:2절은, 바로 창1:1절의 창조 이후, 큰 재앙이 있은 다음의 상태를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앙 역시“큰 물의 재앙”이었음을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O 그리고 난 다음, 창1:13절은, 하나님의 재창조에 의한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을 지닌 인간도 창1:27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지금 베드로가 말하는 대로 [순수한 생각]으로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할 경우에만 비로써 발견되는 진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진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나, 엉터리 목사, 엉터리 신학교, 엉터리 성경학자들에게는 백만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그들은 전혀 알 수 없도록 숨겨져 있고, 완전하게 감추어져 있는 진리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고전1:20절에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학자가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신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시면서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오늘의 사람들을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고전2:9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였고 귀로 듣지도 못하였으며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온 적도 없었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O 다시 말하면, 성경에 나타난 진리들은 구원받고 [순수한 그리스도의 생각]을 갖게 된(고전2:16), 그리스도인들만이 발견하고 분별할 수 있는 진리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은, 아담과 이브 위로, 인간이 10대가 더 있었다고 말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 말은 전혀 “순수하지 못한 생각”에서 나온 거짓말로서, 그냥 혀 바닥 돌아가는 대로 한전 짓거려 보는 말입니다. 그러나 결코 아담과 이브 이전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O 그래서 아담과 이브 이전의 세상은, 인간들의 세상이 아니라,“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존재하는 세상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에는 창세기 6장이나, 욥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컫는“존재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O 그래서 욥38:4-7절에 [내가 이 세상의 기초들을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다면 분명히 밝히라...언제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했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두 기뻐서 소리 쳤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창1:1절은, 아득히 먼 과거에 있었던“하나님의 창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창조 이전에 존재했던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일컫는 자들은, 성경에서 [신들]로 말씀합니다.
O 그래서 요10:34절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너희의 율법에‘너희는 신들이라고 내가 말했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 하십니다. 행14:11절에 [그때 무리가 바울이 행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음성을 높여 루카오니아 말로 말하기를“신들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우리에게로 내려오셨다.”라고 하더라.]고 말합니다.
O 그리고 이 [신들]중, 일부가 재창조 이후, 인간들이 사는 땅으로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의 딸들과 관계하여 [거인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눅17:27절에서 말한 바로 그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으나, 홍수가 나서] 모두 진멸되고 말았습니다.
O 그렇습니다. 이들은 노아의 시대에, 즉, 인간들의 세상에 존재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자기들의 처음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난 자들"이었습니다.(유1:6) 이들은 극도로 타락한 자들이었으며, 그리고 이들로 인해 정상적인 인간들까지 모두 타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O 그래서 창6:4절에서 [그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후에도 있었으니,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에게 들어와서 그녀들이 그들에게 자식들을 낳았을 때며, 그들은 옛날의 용사들로 유명한 사람들이 되었더라 ]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O 이러한 사실들은 오늘날 현대 과학자들은 절대로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식적이고도 자연 현상적이며, 당연한 일밖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하든지, 이해하지 못하든지, 믿든지, 믿지 않든지, 상관없이 소위“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자들과, 인간들로 인해서 태어난 [거인들]은, 지구 역사상 사실적으로 존재했고, 이들 중 몇몇은 그 이름까지 성경에 분명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O 예를 들면,[바산 왕 옥](신3:11)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의 침대는 철 침대였으며, 길이가 4m이고 폭이 2m였습니다. 또, 대상 20:4절에 나오는 거인의 자손 [십패]라 하는 자가 바로 그들입니다.
O 또 삼하21:16절에 나오는 거인의 아들들 중에 무게가 놋 삼백 세켈이나 되는 창을 가지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이스비브놉]과 같은 자입니다. 그리고“골리앗”역시 거인이었던 것은 성경에서도 유명합니다.“골리앗”은, 갑옷의 무게만도 [놋 오천세켈](57kg)(삼상17:5)이었고, 그의 창날만도 [철 육백 세켈의 무게](7kg)(삼상l7:7)였다고 말합니다.
O 수17:15절에 보면, 여호수아시대에는 이“거인들”만이 사는 [거인들의 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창1:2절 이전 어느 시점에, 한 차례 지상에서 멸망했고, 그리고 또, 노아의 때에 홍수로 또 한 차례 진멸되었으며, 또다시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 모두를 진멸시켰느니라](눅17:29)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O 그런데 이 땅에 내려졌던 이런 재앙들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눅17:26-30절에서 주님께서는 [노아의 날들에 일어났던 것같이 인자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이와 같이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하리라]고 예고하셨습니다.
O 이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에 일어났던 재앙들로 인해 창1:1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세상 만물들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세 쌍의 [하늘과 땅]을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창1:1절에서의 [하늘과 땅]이고, 두 번째는, 창1:4-20절에서 말하는 지금 현재의 [하늘들과 땅]이며, 그리고 세 번째는, 벧후3:13절과 계21,22장에서 말하는 새로운 [하늘들과 땅]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런데 창1:1절에서 말하고 있는 처음 하늘과 땅은, 현대의 과학자들이나 천체 물리학 자들이나, 진화론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그 개념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창1:1절은, 원래의 하늘을 묘사하고 있고, 그리고“현재의 지구”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던“원래의 땅”을 묘사 하고 있는 것입니다.
O 무슨 말인가 하면,“원래의 지구”는, 별자리로 볼 때 지금과는 그 위치가 달랐다는 말입니다. 이“원래의 지구”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깊음]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깊음의 표면]을, 어두움으로 덮어있었던 것입니다.
O 그래서 창1:2절에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현재의 지구”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들에 계신 위엄 있는 분](히8:1)으로부터 충분히 먼 거리를 유지할 만큼은, 지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우주에는 어떤 위력적인 대폭발이 있었던 많 큼은 분명한 것입니다.
O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결코 받아들이지](고전2:14) 않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일들을 영적으로 비교하여](고전2:13) 판단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진리를 밝히고 있는 성경을 조롱하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창1:1절과, 창1:2절 사이에 있었던“우주적 대재앙”을 결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O 또, 창세기6장에 있었던 전“지구적 대재앙”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 계시록 20장에서 장차 백보 좌 심판 때에 있게 될,“대 재앙”역시 그들은 절대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계20:11절에 [또 내가 큰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고 말합니다.
O 이 엄청난“대 격변”이 있고난 다음 계2l:1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생기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아니]하게 될 것을 성경은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갖가지 실험을 통하여 얻어낸 결과는 창세기 시대의 지구 대기나, 현재의 대기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지만, 그러나 이 역시 성경 말씀들과는 아무·관련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결론은 [순수한 생각]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의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거짓말린 것입니다.
O 앞에서도 말했지만, 창1:1절에서 창조되었던“원래의 하늘”은 [깊음] 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이 [깊음]은,“태양계 전체”보다도 훨씬 더 큰 물 덩이를 내포하고 있는 광활한 지역으로 그 표면은 절대 온도(-272.15)로 얼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4:6절에서는 [유리 바다]로 말씀하시고, 또, 계15:2절에서는 이것을 [불로 뒤섞인 유리 바다]라고도 말씀합니다.
O 창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공을 만들고 창공 위에 있는 물들에서 창공 아래 있는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주 공간 끝 어딘가에 거대한 [물들]이 존재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 말씀들이 창세기1장 첫 부분부터 오늘날 과학자들에 의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기록들 때문입니다.
O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늘들 위에 있는 물들]은,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허공에 떠다니는 그런 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물은, 단순히 [하늘]이 아니라, [하늘 들](창1:2,시148:4) 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물들로 나누어진 [창공]은,“해와 달”은, 말할 것도 없고, 우주의 모든 별들까지 내포하고 있는 그런 하늘들을 말합니다.
O 그런데 하늘들 위에 존재하는 돌처럼 얼어 있는 이 [깊음]의 표면 위에“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욥은, 이 깊음의 표면이“북쪽”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욥37:22절에 [아름다운 날씨가 북쪽에서 오나니 두려우신 위엄이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말합니다.“하나님의 보좌”는, 이 우주 너머 [북쪽], 아주 먼 우주의 경계 끝“유리 바다의 표면”위에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계4:6절에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그 보좌 가운데와 그 보좌 주위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한 네 짐승이 있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욥기 4l장을 보면, [리비야단]이라 불리는“사탄”은, 지금 이 물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실 때 이 바다를 통[과하여 지상에까지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합3:10절에 [산들이 주를 보고 떨었으며 물의 넘침이 지나갔으니 깊음이 그의 음성을 내며 그의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삼하22:8-17).
O 그리고 성도들이 죽었을 때, 이 바다를 통과하여“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는 이 깊음의 강을“요단강”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잘못된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바다는, 하늘과 땅이 폭발한 뒤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래서 계21:1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O 지금 우리가 사는 이때를“마지막 날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고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온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오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계3:11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들어서 아무도 너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성경을 조롱하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들을 조롱하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자들은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말합니다. 그러나 계22:12절에 있습니다. 그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고 하십니다.
O 성경을 조롱하는 자들은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말합니다. 그러나 요14:1-3절에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마10:23절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성읍에서 너희를 박해하면 다른 성읍으로 피하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인자가 올 때까지 너희가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다 다녀 보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O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자들은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말합니다. 그러나 마16:27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으로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그가 각자에게 그들의 행한 대로 상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O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막13:26절에 있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세와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십니다.
O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들을 조롱하는 자들은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말합니다. 그러나 막4:62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그렇다. 너희는 인자가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시니라.] 고 하십니다. O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눅12:40절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지 않은 시간에 인자가 오리라.] 고 하십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그들이“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그들 자신들도 그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고 하는 수작이라"고 5절에 말씀 하십니다.
O 지금 우리들은, 베드로의 경고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성경을 조롱하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들을 조롱하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고“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하고 조롱하는 자들과 함께 이 마지막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O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하며 어떻게 조롱하든 우리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오직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전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오심을 대망하고 열망하면서 그 주님을 맞이할 만만의 준비를 하는 자들이 되었다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휴거되어 주와 함께 영원히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