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주일예배

박종각 2020. 11. 8. 00:00

                                                                   주일예배

                                                              (2020년11월 8일.일)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물고기 그 입을 열면

                                          

                                                                       주일예배

                                                                 (2020년11월 8일.일)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물고기 그 입을 열면

 

                                                             마17:1-27절 말씀입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을 데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시어, 2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의 옷은 빛처럼 희어지더라. 3그런데, 보라,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서 주와 함께 이야기하더라. 4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원하시면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나이다.”라고 하더라. 5그가 아직 말하는 중인데, 보라, 빛나는 구름이 그들 위를 덮더라. 보라, 구름 속에서 음성이 있어 말하기를“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얼굴을 땅에 대고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을 만지시며 말씀하시기를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 말라.”고 하시더라. 8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그후 그들이 산에서 내려갈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당부하여, 말씀하시기를“인자가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그 광경을 말하지 말라.”고 하시니라. 10주의 제자들이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라고 하니 11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12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 마음대로 대하였도다.이와 같이 인자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고 하시더라. 13그때서야 제자들은 주께서 자기들에게 침례인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임을 깨닫더라. 14그들이 무리에게 오자 한 사람이 주께 와서 무릎을 꿇고 말씀드리기를 15“주여, 내 아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 아이가 미쳐서 몹시 고통을 겪고 있나이다.그가 종종 불 속에도 넘어지고 여러 번 물 속에도 빠졌나이다. 16그래서 그를 주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그들이 고치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하니, 17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오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언제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언제까지 내가 너희를 참아야 하겠느냐? 그를 여기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시니라.18예수께서 그 마귀를 꾸짖으시니 마귀가 나가고 그 아이가 그 시각부터 낫게 되니라.19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따로 나아와서 말씀드리기를“어찌하여 우리는 그를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하니 20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여‘여기서 저리로 옮겨져라.’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에게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니라.21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시더라. 22그들이 갈릴리에 머무는 동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니 23그들이 그를 죽일 것이나 그가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지리라.”고 하시니 그들이 매우 슬퍼하더라. 24그들이 카퍼나움에 왔을 때에 세금을 거두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말하기를“너희 선생은 세금을 내지 아니하느냐?”고 하니 25그가 말하기를“내신다.”고 하더라. 그리고 나서 그가 집에 들어오니 예수께서 그보다 앞서 말씀하시기를“시몬아,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의 왕들이 누구에게서 관세와 정세를 걷느냐? 그들의 자손들에게서냐,아니면 타인들에게서냐?”고 하시니,26베드로가 주께 말씀드리기를“타인들에게서니이다.”라고 하니,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그 자손들은 면세니라. 27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실족케 해서는 아니되니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올라오는 첫 번째 물고기를 잡으라. 그 입을 열면 동전 한 개를 찾으리니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그들에게 주라.”고하시더라.]

 

 

                                                                ******* * ******* * *******

 

O 마16장부터는, 주께서 자신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마16:21절에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 하시고, 그리고 24-26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지 않는 동안, 제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리고 27-28절에서는, 자신의 영광스런 재림을 말씀하시는 데, 특별히 28절에서는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들 몇은 인자가 그의 왕국으로 오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16:28절에서 말씀 하신 대로 17장에서 그러한 영광의 재림의 모습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여주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 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이 “변형된 주님의 모습”이, 바로“예수님의 재림의 모습”이라는 것을, 본문 17장를 살펴보게 되면 더욱 분명하게 우리가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O 1절에 [엿새 후에]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엿새 후에]라는 말은,“제 칠일”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벧후3:8절의 체계 즉,“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체계”에 따라서 “재창조의 한 주간”은, 아담부터 7천 년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엿새 후”는, 바로 칠천 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달력의“한주”가,“칠일”로 되어 있는 것은, 성경에서 보여주는 “재창조의 칠일”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리고 이 한 주간의 “칠 일”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영원의 세계가 시작되는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로“칠천 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칠천 년”이라는 이 기간은, 인간들의 지상 생활은 끝나고, 지옥이든, 하늘나라든 이제부터 끝이 없는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재창조 이후, 6천년이 지난 후, 7천 년째에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O 창1장을 보면, 재창조 주간의 제5일째 되는 날에, 지구상에 처음으로 생명체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창1:21.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큰 고래들과 물들에서 풍성하게 나온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다섯째 날이더라. ]고 말씀 하십니다.

 

O “재창조”라는 말은, 이미 창세기 1장의 말씀을 공부할 때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주가 “두 번째 창조”된 것을 말합니다. “최초의 창조”즉, 첫 번째 창조는, 바로 창1:1절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창조인 재창조는 창1:3절 이하부터 나타납니다. 그래서 창1:1절에서 말씀 하시는 “최초의 창조 행위”는, 그 날수를 전혀 헤아릴 수 없는 아주 멀고 먼 과거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O 그런데, 이 “최초의 창조”가 있었던 후, 어떤 이유로 인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두 파괴되어 어두움과 물들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바로 창1:2절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창1:2절은, 최초의 창조되었던 것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땅이 대 변동을 거쳤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O 특히 벧후3:5-6절에 보면, 이 “최초의 세상”은, 노아의 홍수가 발생하기 휠씬 이전에 한 번 파괴됐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이는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 함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것과,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 ]고 말씀 하십니다.

 

O "최초의 창조"시대는 인간의 시대가 아닌, 소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는“신들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우주의 대 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는 영적인 존재들, 즉"사탄의 반역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성경 겔28:12-15절과 사14:8-14절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O 그리고 나서 “두 번째 창조”즉, 재창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1:3절부터입니다. 그래서 창1:3.4.5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있더라.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그 빛을 어두움에서 나누시더라. 5 하나님께서 그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더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그리고 이 제창조의 중심은 바로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창1:26-27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습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그리하여 그들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가축과 모든 땅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을 다스리게 하자.”하시니라. 27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지금 여기서 말씀드리는 “재창조”라는 말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재창조 5일 째는, 바로 구약 4천년을 지난 후, 참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엿새 후에”즉, 제 칠일 째 예수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되셨다는 것은, 바로 아담 이후로 육천 년이 지낸 뒤에, “칠천 년”에,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재림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O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일한 후, 일곱째 날에는 쉬라고 명하셨습니다. 또, 6주가 지난 후, 제 7주도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곱째 달에는 장막절이 있고(레23:24), 그리고 일곱째 해에는 땅의 안식이 주어집니다.(레25:4). 그리고 또 일곱 안식년이 지난 즉 49년이 지난 다음 해에는, 그 땅의 모든 거민들에게 자유가 선포되는“환희의 해”가 주어집니다. (레25:8-55).

 

O 그리고 6천년이 지나면, 마침내 안식의 “일곱 번째 천년”이 오는 것입니다.(계20:1-6). 그래서 창2장에서 보는 재창조의 “일곱 번째 안식의 날”은, 바로 “일곱 번째 안식의 천년”에 대한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엿새 후에”라는 이 말을, 누가는, 눅9:28절에서는 [약 팔일 째 되는 날]이라고 기록합니다. [약 팔일 째 되는 날]이라는 말은,“제 팔일이 될 즈음”이라는 말로, 이것 역시“일곱째 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엿새 후”를, “약 팔일 째”로 기록한 것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O 그것은“제 칠일”은, “제 팔일”과 연속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제 칠 일째”부터는, “제 팔일 째든, 구일 째든”그것은 “제 칠 일째”와 같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제 칠일 째”부터는“영원의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2장을 보면, 재창조 주간에 “일곱째 날”에 대한 묘사에서는“저녁과 아침이 되니”라는 말씀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창2:2-3절에 보면,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드시던 자신의 일을 끝내시고 자신이 만드시던 자신의 모든 일로부터 일곱째 날에 쉬시니라.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지으신 그의 모든 일로부터 쉬셨음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이렇게“일곱째 날”에 대한 묘사에서는“저녁과 아침이 되니”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는 것은, 안식의 일곱 번째 천년인 천년왕국은, 곧 바로“영원의 세계”로 이어지기 때문에“제 칠일”이하에는“날수가 세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칠일이나, 제 8일은, 모두“엿새 후”가 되어“제 칠일 째”가 되는 것입니다.

 

O 성경에 보면, 지상에서 이뤄지는 천국 즉, 천년왕국이 끝나고, 영원세계가 이르기 전에, 한 번의 큰 반란 즉, “곡과 마곡”(계20:8)의 전쟁이 있고, 그리고 지금 있는 이“하늘과 땅이 불로 완전히 소멸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벧후3:12절에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열망하라. 그때는 하늘들이 불에 타서 녹아 버리고 우주의 구성 요소들도 맹렬한 불에 녹아내릴 것이나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도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처음 것들은 완전히 다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다시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21:1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엿새 후에”라는 말이, 주님의“재림의 시점”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뒤에 생기게 되는 사건들은, 모두“모형 적으로 환란 끝”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묘사가 되는 것입니다.

 

O 본문1절에 보면,“주님의 변형의 사건”이 일어난 산을 가리켜 [따로 떨어져 있는 높은 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산이 “다른 산”들하고는 구별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이 산은, 출애굽기 19장에서 말씀 하시는 산으로, 바로 “시내 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산에 지금 주께서 서 계시는 것입니다. 슼14:4절에 보면 주님께서“올리브 산”위에 서실 것을 말씀 하십니다.

 

O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 하시는 대로 주께서“올리브 산”위에서기 앞서 먼저 시내 산으로 오실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의“재림의 행로”는, 이스라엘이“출애굽”한“경로”와 같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시내 산”에서 출발하여“파란 산”과 에돔, 셀라, 시혼을 지나서, 헤스본과 길갈과 여리코를 거쳐 예루살렘 동문으로 입성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리고 2절에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습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사53장에서 나오는 것처럼 주께서 처음 오셨을 때의 모습이 아닌, 이제 더 이상 연약한 모습이 아니시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때인 “일곱째 날”아침, 바로 해가 돋을 때 주님은 재림하실 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말4:2절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묘사 하면서 그분에 대해서 [의의 태양이 그의 날개에 치유를 가지고 솟아오르리니, 그리하면 너희는 나가서 외양간의 송아지들처럼 자라리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3절에 [그런데, 보라,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서 주와 함께 이야기하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의 재림과 관계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모세와 엘리야는 주님의 재림의 앞에 상황인 대 환란 때 계11장에서“두 증인”으로 나타나서 적그리스도 앞에서 주 예수를 증거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계시록11장의“두 증인”에 대해서 이들이“에녹과 엘리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O 그것은 히9:27절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는 죽었으나, 에녹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도 한 번은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두 증인은“에녹과 엘리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번 죽는다]는 히9장의 이 구절은, 죽음에 대한 인간들에게 일반적인 현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사람의 죽음에 예외적인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인간들 중에는 “한번”죽는 것이 아니라, “두 번”죽은 사람도 있고, 또 “그 한 번마저도”죽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이”그랬거니와, 오늘날 교회 시대의 성도들 중에도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서 “휴거”되기 때문에 “한 번도 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히9:27절 말씀의 “예외가 되는 것”입니다.

 

O 또 예수님과 몇몇 선지자들에 의해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은 두 번 죽었습니다. 이들도 예외적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만약“에녹”이 환란기간 중에 다시 내려와 죽어야 한다면, 환란 전에 휴거되는 성도들에 대한 구약성경의 모형은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에녹”은,“환란 전에 휴거되는 성도들의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O 그리고 에녹이 환란 전에 휴거되는 성도의 모형이 되는 것처럼, “모세와 엘리야”는, 모두“환란기간에 있을 유대인 성도들의 모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재림 직전”두 증인으로 이 땅에 내려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O 5절에 보면 [빛나는 구름]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빛나는“구름”과, 그리고 구름 속에서 나는“음성”도 역시 이 상황이“재림의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24:30절에 [그 후에 하늘에 있는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이 구름은, “재림의 큰 구름”인 것입니다. (겔1:4)

 

O 이때 4절에서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원하시면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매우 조심스럽게 말합니다만, 그러나 다른데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불결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실 때, 베드로는“주여 그럴 수 없나 이다”(행10:14)라고 말합니다.

 

 

 

O 또, 마16:22절에서도 보면. 주께서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과,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질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 하실 때도“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때와는 달리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주께서 원하시면”(약4:15) 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베드로의 실수가 또 나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선상에서 취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 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을, 모세와, 엘리야에게서 완전하게 분리해 놓으셨습니다.

 

O 물론, 모세나 엘리야가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님과 유사한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분 안에서 기뻐하시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엘리야”는 인간 아버지가 있었고, 죄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께서 원하시면 여기에 [장막]을 짓겠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만든 성전에는 계시지 않으신 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행7:48절에 [지극히 높으신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거하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거하실 참된 장막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곳이 아니라,“사람의 몸”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고전3:16,행7:요2:21)

 

O 6-7절에 [제자들이 듣고 얼굴을 땅에 대고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을 만지시며 말씀하시기를“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에 나타나는“두려움”은 환란 때의 유대인들의 반응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치 바울이 다마스커스로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므로 회심했던 것처럼, 환란 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회심하게 될 것입니다.

 

 

 

O 다시 9-13절에 보면 [그후 그들이 산에서 내려갈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당부하여, 말씀하시기를“인자가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그 광경을 말하지 말라.”고 하시니라. 주의 제자들이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 마음대로 대하였도다. 이와 같이 인자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고 하시더라. 그때서야 제자들은 주께서 자기들에게 침례인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임을 깨닫더라.] 고 말합니다.

 

O 제자들이 침례인 요한에 대해 묻는 것을 보면, 이 변형 산 사건은,“재림과 연관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기 위해 영광중에 오시는 모습과, 그 영광의 모습에 모세와 엘리야가 있는 것을 보고, 그 광경에 대한 엘리야의 연관성에 관해서 질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O 그리고 또,“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예수님의 재림 앞에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해야 하는 데, 그가 회복해야 할 일은 바로 말4:6절의 예언입니다. 그래서 [그가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자식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로 돌이켜,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눅1:17절에서 바로 침례인 요한에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눅1:17절에 보면, [그는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불순종한 자들을 의인들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백성을 예비시키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침례인 요한은, 바로 엘리야의 완전한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O 그리고 15절에 보면, 한 사람이 주께 와서 무릎을 꿇고 말씀드리기를 [주여, 내 아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 아이가 미쳐서 몹시 고통을 겪고 있나이다. 그가 종종 불 속에도 넘어지고 여러 번 물속에도 빠졌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질병은 단순한 육체적인 질병이 있고, 그리고 전적으로 마귀의 영향으로 생긴 질병으로 구분이 됩니다.(마4:24, 8:16,28, 9:32).

 

O 그런데 이 아이가 겪는 질병은, 단순한 육체적인 질병이 아니라, 전적으로 마귀가 주는 질병이었습니다. 마귀 들린 자의 특징 중에 하나는, 뜨거운 곳과 잦은 곳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그가 종종 불 속에도 넘어지고 여러 번 물속에도 빠졌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O 여기 17절에 보면 주님은 [오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믿음이 부족함을 꾸짖으시는 대상은 주로 제자들이었습니다.(마8:26,14:31).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께서 강력하게 꾸짖고 계시는 것은, 단순히 제자들만이 아니라, 믿지 못했던 군중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마6:30). 그래서 마귀를 쫓지 못한 것이 전적으로“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믿음이 없는“서기관들과”(막9:14)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의 문제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막22:24).

 

 

 

O 주님은 [언제까지 내가 너희를 참아야 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인내”는, 허용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러나 인내는 “허용”그 이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참는 자”즉, "인내 하는 자”에게는, 거기에 대한 적지 않은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믿음이 없는 세대를 참고 견디시면서 그들에게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인내하시면서 그들을 고쳐주시며,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O 우리는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사실도 분명히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담대하게 우리의 믿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담대하게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참아 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는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는 허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믿음이 적은 자들아”(마6:30, 8:26, 14:31,16:8, 막4:40,눅8:25,눅12:28,) 라고 책망하시면서도 그러나 그와 같은 책망 속에서도 계속해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참아주시며 항상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절에서 주님은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주께서는 여기서 “이런 종류는”이라고 말씀 하시면서, 우리의 간구하는 것들 속에는 보통으로 기도해서는 안 되는“어떤 종류의 문제”가 있고, 그리고 그 “어떤 종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기도가 아닌, "특별한 기도가 요구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리고 그 특별한 기도는 바로“금식과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를 고치기 위해 “기도와 금식”이 절대 필수적이라, 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표적은 이스라엘을 위한 왕국 복음의 특징 중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O 우리가 아는 대로 왕국 복음은, 제자들에게 위임된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10:5-7절에 [예수께서 이 열둘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서 전할 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리고 거기에 따라 왕국 복음의 표적인, 병 고침과, 마귀를 쫓는 능력도 제자들에게 모두 위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10:1절에[주께서 자기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허약함을 치유하는 권세를 주시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이어 8절에서도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문둥병자들을 깨끗게 하며, 죽은 자들을 살리고, 마귀들을 내어 쫓으라. 너희가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주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러나 본문16절에 보면, 제자들은 그 능력을 전혀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러나 이 아이가 갖고 있던 질병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기도가 필요한 것이었는데 제자들은 그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O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기도방법은 영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문제들 가운데는 보통의 기도로는 안 되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기도, 특별한 방법인“금식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O 20절에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여‘여기서 저리로 옮겨져라’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에게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을 것 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우리에게“기도와 금식”은 기도의 응답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또“기도와 금식”은, 작은 믿음이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O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에 많은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불가능한 것은 전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창18:14). 그래서 막9:23절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네가 믿을 수만 있다면,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주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여‘여기서 저리로 옮겨져라’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에게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을 것 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산은 지진으로 옮겨질 수도 있고, 공사로 인하여 산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누군가의 기도의 응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O 22-23절에[그들이 갈릴리에 머무는 동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니 그들이 그를 죽일 것이나 그가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지리라.”고 하시니 그들이 매우 슬퍼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16:21절에서 하신 말씀을, 여기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20:12-18절에서 또 다시 반복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O 그리고 24-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의 왕들이 누구에게서 관세와 정세를 걷느냐? 그들의 자손들에게서냐. 아니면 타인들에게서냐?] 이에 베드로는 [타인들에게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26절에서 주님은 [그러면 그 자손들은 면세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 왕국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분의 자손들입니다.(마9:15;18:3.5.6). 그러므로 그들은 “카이사”가 다스리는“왕국에 세금”을 내야 할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내야 한다면 회심하지 않아“왕의 가족”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이 내야 할 것입니다. 이 부분은, 비록“지금은”주님의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지만(요18:36), 주님의 왕국이 될, 이 나라에서는 그 왕국의 자녀들이 갖는“특권”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사람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27절에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실족케 해서는 아니 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올라오는 첫 번째 물고기를 잡으라. 그 입을 열면 동전 한 개를 찾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수천만 만 마리의 물고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누군가가 빠뜨린 동전을 먹인 줄 알고 삼켜 버렸습니다. O 그리고 그 동전을 삼킨 물고기가 베드로가 던진 낚시에 첫 번째로 잡히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적인 불가능한 일이 그분에게는 가능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신 육신으로 나타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O 그런데 그 절대적인 능력의 주께서 우리의 주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능력의 주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의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도 그분의 능력 안에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시다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주와 함께 영원히 사시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