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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일 예 배

박종각 2020. 7. 12. 00:00

                                      주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창5:1-32절 말씀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세대들에 관한 책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의 모습대로 그를 지으셨으니, 2 주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으며,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의 이름을 아담이라 부르셨느니라. 3아담이 일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더라. 4셋을 낳은 후 아담의 날들이 팔백 년이었고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5아담이 살았던 모든 날들이 구백삼십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6셋은 일백오 년을 살고 에노스를 낳았으며 7셋이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살며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8셋의 모든 날들이 구백십이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9 에노스는 구십 년을 살고 카이난을 낳았으며, 10에노스는 카이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11에노스의 모든 날들이 구백오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12카이난은 칠십 년을 살고 마할랄렐을 낳았고 13카이난은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14카이난의 모든 날들이 구백십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15마할랄렐은 육십오 년을 살고 야렛을 낳았고 16마할랄렐은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17마할랄렐의 모든 날들이 팔백구십오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18야렛은 일백육십이 년을 살고 에녹을 낳았고 19야렛은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20야렛의 모든 날들이 구백육십이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21에녹은 육십오 년을 살고 므두셀라를 낳았고 22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23에녹의 모든 날들이 삼백육십오 년이었으며, 24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없어졌더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음이라.25므두셀라는일백팔십칠 년을 살고 라멕을 낳았고 26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은 후에 칠백팔십이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27므두셀라의 모든 날들이 구백육십구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28라멕은 일백팔십이 년을 살고 한 아들을 낳았으니, 29그의 이름을 노아라 부르고 말하기를“이 아이는 주께서 저주하셨던 땅으로 인한 우리의 일과 우리의 손의 노고에 관하여 우리를 위로할 것이라.” 하더라. 30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31라멕의 모든 날들이 칠백칠십칠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32노아는 오백 세가 되어서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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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절에 [이것이 아담의 세대들에 관한 책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표현은 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세대”라는 말을 다룰 때 “책”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경우는 구약의 “아담의 계보”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뿐입니다.“세대들에 관한 책”이란 표현은, 인류는, 두 가지 기원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아담”과,“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있는 대로 아담은 하나님의“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고(창1:27),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형상”이라는 것입니다.(고후4:3,4,히1:2,3).

 

O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패배했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마26:41-46) 사탄의 의해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지 못했으므로 유혹자에게 넘어갔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에 충실하시므로 유혹자를 이기셨습니다.(눅4장). 한 사람은, 땅에 속했고, 또 한 분은 “하늘에 속한 분”이십니다. (고전l5장).

 

O 타락한 아담은,“모두가 형제들”인 인류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벧전1:3)에 의해 이 땅의 모든 거듭난 죄인들의 “맏형”인,“첫 태생”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롬8:29절에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 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O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아담 안에서” “종교인”이 되든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인이 되든지” 이 둘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고안해 내고, 인간이 만든 종교를 통해서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종교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고안해 내고 만들어낸 것을 종교라고 말합니다. 즉, 인간들이 자신들이 섬길 신을 만들어서 섬기는 것을 종교라고 말합니다. O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을 계시하시므로 사람들이 섬기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은, 하늘의 계시고 하나님이시지만, 종교의 핵심은 노력이고, 수고며, 땀이고, 인간 그 자체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산 것이고, 종교는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종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종교인들은 모두 우상숭배자들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종교의 힘으로는 인간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이 땅에 모든 “종교들”은, 카인처럼 부지런히“상을 차리는 것”이고, 그리고 종교인들이 행하는 것은 차려놓은 상에다 부지런히 자신들의 “의”라고 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과일을 쌓아 올려놓고 카인의 제사를“흉내 내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창4:2-5). 그러나 종교의 불행은 “응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일생동안 헛된 짓만 하다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O 본문1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의 모습대로 그를 지으셨으니]라고 말씀 합니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그를 지으셨으니] 이 시제가 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미 지어졌던 어떤 사람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던 날에”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아담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을 두고” 하는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O 세상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음 받았던 자 즉“아담과 이브” 만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하나님의 모습대로 그를 지으셨으니”라는 이 말씀은 아담“이후”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지구상에서 단 "둘", 즉 아담과 이브뿐이고,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아담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O 2절에 [그들의 이름을 아담이라 부르셨느니라]고 말씀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지어준 이름은 남자나 여자나 상관없이“아담”이라는 하나의 이름뿐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역시 하나였습니다. 그래서“이브"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아니라, 아담이 지어 준 이름입니다. 아담은, 이름 짓는 최초의 작명가였습니다.O 그래서 창2:19절에 보면, [주 하나님께서 땅으로부터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그들을 부르는가 보시려고 그들을 아담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모든 생물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그것이 그 이름이 되더라.]고 말씀 하십니다.O 모든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 준 아담은, 이제 자신을 돕는 “그녀의 이름”을 지어줄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그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뜻을 담아 그녀의 이름을“이브”라고 지었습니다. [이브]는 히브리어로 "하바" 즉 [생명을 주는 자]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창3:20절에 [아담이 자기 아내의 이름을 이브라 부르니, 이는 그녀가 모든 산 자의 어미였음이라.]고 말합니다. 

 

O 그러나 사람이 꼭 그 이름의 뜻대로 사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뜻이 담긴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분”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그분”의 법을 어기고, “그분”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면, 즉 하나님을 거부하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름이 그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내 이름이 어떠하냐? 내 이름에 담긴 그 뜻이 어떠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향하는 “내 마음이 어떠하냐?” 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믿는 사람은 쓸데없이 팔자탄식이나 하고, 내 운명이 어떻고, 내 관상이 어떻고, 내 손금이 어떻고 하는 그런 지저분한 소리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이끄시고, 내 인생을 이끌어주시고 나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나의 주인이 되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O“라합”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창녀”라는 가장 더럽고,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치욕적인 이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들을 듣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의 마음은 결국 자신을 죄로부터 떠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물론, 온 가족과 친족들까지 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O 그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마1:5).“이브”는, “창녀 라합”보다 뛰어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생명을 주는 자”라는 이름은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O 이름대로라면 이브는 분명히“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이브는 그 반대로“모든 죽은 자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의 방향이 잘못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네 마음을 지켜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는 삶의 문제들이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잠4:23). 이브의 마음은 불순했습니다.O 왜냐하면, 이브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자신의 마음을 헛된 곳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주는 그녀가 되어야 하지만, 오히려 그녀를 통해 세상에 죽음이 온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자들은 [죄와 허물로 죽은 채로] 태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O 그래서 그녀로부터 이 세상에 죄가 시작 되었고, 그녀로부터 잘못된 출생이 시작되었고, 그녀로부터 이 세상에 죽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51:5절에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조성되었고 죄 중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배었나이다.]라고 말씀 하시면서 욥25:4절에 [...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가 어찌 깨끗해질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 하십니다. 개똥이라는 이름이 웃기는 이름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가 그 이름대로 개똥같이 살지 아니하고, 언제나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고 신뢰한다면” “창녀 라합” 같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O 3-11절에 보면 [3 아담이 일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더라. 4 셋을 낳은 후 아담의 날들이 팔백 년이었고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5 아담이 살았던 모든 날들이 구백삼십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6 셋은 일백오 년을 살고 에노스를 낳았으며 7 셋이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살며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8 셋의 모든 날들이 구백십이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9 에노스는 구십 년을 살고 카이난을 낳았으며, 10 에노스는 카이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11 에노스의 모든 날들이 구백오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고 말씀합니다. O 요3:3-6절에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라고 말씀 하십니다. 육에서는 육 밖 나올 것이 없습니다. 더러운 것에서는 더러운 것 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욥14:4). 죄인 아담, 죽은 아담의 형상대로 태어난 자들은 모두 죄인만, 죽은 자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려면 반드시 새롭게 영적으로 출생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O 성경에 보면, 셋은 아담이 130세 때에 태어났으며, 에노스는 셋이 105세 때 태어났습니다. 이에 보면 아담은, 셋, 에노스, 카이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및 므두셀라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라멕과도 약 55년을 함께 살았습니다.(창5:28).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하면, 노아와 아담은 겨우 28년 차이로 만나지 못했을 뿐이요, 노아는 아브라함의 아버지와 동시대 사람이었다는 의미입니다.

 

O 5절에 [그가 죽으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최초의 자연적인 죽음은 창5:5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때부터 “다섯이란 숫자”는 90% 이상이 “죽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섯 글자로 된 마귀(Devil데블)는 다섯 글자로 된 죽음(Death데스)의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베냐민은 자기 형제들보다 다섯 배의 음식과 옷을 요셉으로부터 받았는데 이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창43:34,45: 22,35:18,19). O 주께서 죽으실 때 몸에 상처는 양손, 양발, 그리고 옆구리 이렇게 다섯 군데 입으셨습니다. 

 

O 주께서 입으셨던 옷 역시, 겉옷은 네 조각으로 나누고, 속옷은 제비뽑아 한 사람이 가져가므로 다섯 조각으로 분배되었습니다. 다윗의 다섯 장수들이 선택된 것은 네 명의 함 족을 죽이려고 선택된 것입니다.(삼하2l:22). O 행5:5절에서는 두 명의 거짓말쟁이가 베드로 앞에서 급사했습니다. 로마서 5장에서 아담과 그리스도의 죽음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O 계시록 5장에서 어린 양이 “도살당하였던 것처럼” 등장합니다. O 금 종기 다섯과, 금 쥐 다섯으로 수천 명을 죽였던 재앙의 댓가를 치렀습니다.(삼상6:4). O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뜻은, 창(spear스피어) 혹은 대장 쟁입니다. 그리고 그 글자는(Smith스미스)로 다섯 글자입니다.

 

 

 

 

O 정말 놀라운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놋 제단”입니다. 500년 이상 매년마다 수천마리가 넘는 제물을 죽여 태워졌던 이“놋 제단”은, 그 길이가 오 큐빗, 너비가 오 큐빗입니다.(출27:l). 그러나 이 성경적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학자, 교수, 목사들은 계속 헛소리만 주장하고 있습니다.O 20세기에 살고 있는 비행사들은 문제가 생기면 “May day"를 연발합니다. 그들은 May가 오월, 즉 다섯 번째 달이라는 성경적 사실을 전혀 모르는 채 외쳐 대는 것입니다. SOS 채널로 500 사이클을 사용하는 국제구조본부 역시 5와 죽음과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이 정도면 현대 과학이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의 과학 수준을 따라 잡으려면 아직도 까마득하게 멀기만 한 것입니다.

 

O [그가 죽으니라](5절)이 표현은 마태복음 1장과 비교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만큼 놀랍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창5:1절과, 마1:1절은, 모두 [세대에 관한 책] 이란 말로 시작되는데,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태복음에서는“죽으니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O 물론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고린 도전서 l5장에서 그리스도가 마지막 아담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이 고전 15장에서 창세기 5장, 마태복음1장을 연결시키고서 성령께서는 마태에게 영감을 주어 “그가 죽으니라”는 말은 빼도록 하십니다. 

 

O 그 이유를 요11:26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것은“아담 안에서는 죽음이 있을 뿐이요,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을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1:25-26절에서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말씀 하십니다. O 아일랜드 태생이며 영국국교회 대주교인“제임스 어셔”는 “본문5-11절의 구절들”을 갖고 그의 연대기를 확립했습니다. 물론 이 연대표는 후일 많은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었던 그는 <킹제임스성경. 1611〉의 본문을 그대로 믿었고 솔로몬 B.C. 1000으로부터 거슬러 계산해서 사무엘상하, 재판관기의 연대를 더했습니다.

 

 

 

 

O 그리고 나서 광야에서 방황 40년, 광야에 오기 전 40년, 모세가 이집트에 있던 40년을 더해 요셉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여기서부터 다시 거슬러 올라가 창세기 5장까지 왔고 이 기록들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어셔의 연대표”가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O 11절에서 [에노스가 살았던 모든 날들이 구백오 년이었고]라고 말씀합니다. 족장들의 수명이 이처럼 길었던 것은 세 가지 이유에 있습니다. 1)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기상 조건과 다른 기상 조건(창2:1,5,6.). 2) 당시에는 질병이 많지 않았다는 것, 3) 전 세계가 “하나님의 아들들”아래 뭉쳐 하나의 세계 정부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전쟁이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l2장 이후까지는 무기를 든 무장군대들의 충돌이라는 의미에서의 “전쟁”은 없었습니다.

 

O 12-20절에[카이난은 칠십 년을 살고 마할랄렐을 낳았고 13 카이난은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14 카이난의 모든 날들이 구백십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년을 살고 야렛을 낳았고 16 마할랄렐은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17 마할랄렐의 모든 날들이 팔백구십오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야렛은 일백육십이 년을 살고 에녹을 낳았고 19 야렛은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20 야렛의 모든 날들이 구백육십이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고 말씀합니다.

 

O 계속해서 우리가 듣는 것은 [그가 죽으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대할 때마다 아담은 타락했다는 사실을 더욱더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죽으니라](5, 8, 11, l4, 17, 20절).따라서 모든 인간은“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당시 사람들이 800-900살을 살았으며 이러한 장수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를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하나님의 아들들”이 외계에서부터 나타날 당시(창6:1-6), B.C. 3500년경의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오늘날 사람들은 결코 상상 조차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O 하지만, 오늘날 인간들은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오늘날 보다 상상 초월하는 문명이 지구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0 사람들은 지상의 낙원으로 알려졌던 “샹그릴라”나, “아틀란티스” 혹은 북극 밑에 있었다는 “지하문명세계”에 관한 신화들은 헛된 근거에 의해 쓰여진 단지“신화”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신화들은 분명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창6:1-6절”에 근거합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 고대 문명의 신비들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l-24절에 [에녹은 육십오 년을 살고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23 에녹의 모든 날들이 삼백육십오 년이었으며, 24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없어졌더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음이라.] 고 말씀합니다.

 

O [에녹]은, 성경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들 중 하나입니다. 그는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에 살았던 인간 중, 가장 놀라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류 역사에 6000년에 걸쳐 죽음을 보지 않았으며 결코 죽지 않을 유일한 인간이라는 독특한 면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이 이 세상에 오신 유일하신 분으로 비록 죄가 없으셨지만, 그러나 그는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에 익숙한 사람]이셨습니다.(사53장).

 

O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셨습니다.”(히2:9).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는 다시 죽기 위해 이 땅에 돌아오지만, (계11:4-10)그러나“에녹”은 다시 죽기 위해 이 땅에 돌아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은, 히9: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라는 이 말씀에 유일하게 예외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에녹은 이 하나님의 결정 사항을 뒤로하고 죽음을 보지 않기 위해(히11:5) 들림 받아 가 버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먹고, 자신들을 위해 사는 동안, 에녹은 어떻게“하나님을 기쁘시게"(히11:5) 하는 데만 온 힘을 다 썼고,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과 함께 하는 오직 믿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히11:5).

 

 

 

 

O 성경에 에녹의“휴거”에 대해서 창5:24절에서는 단지 [....없어졌더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음이라] 고 말합니다. 에녹의 짧고 행복한 365년간의 생애에 대한 유일한 다른 기록은 그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에녹의 가족, 친구, 친척들이 그를 찾았지만, 마치 선지자 학교의 학생들이 엘리야를 찾지 못한 것처럼(히11:5,왕하2:16-18) 에녹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히11:5절에서의 결론은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인간 문제의 최종 해결책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문제에 개입하실 때만이 주어진다”것입니다.

 

O 에녹은 위로 들림 받았습니다. 사실 에녹은 므두셀라가 태어나기 전에는 별 볼 일 없는 자였습니다. 그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는“하나님과 동행하지”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녹의 첫째 아들의 이름인“므두셀라”를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도록 산 사람입니다. (27절969살). [므두셀라]는, 히브리어로 굉장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름인데 그것은 “그가 죽으면 그것이 보내질 것이다”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O 그것은 바로 하늘의 창문들이 열리고 “폭포수” 같은 “장대비” 가 쏟아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녹이 므두셀라가 태어난 후“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에녹에게 그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O 에녹은 그의 맏아들의 이름을 지은 후 하나님께 그 이름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고 주님께서는 4000년을 앞질러 주께서 재림에 관한 계시를 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14절에 [아담의 칠 대 손 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예언하여 말하기를“보라, 주께서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이 계시는 오는 세대에게“노아의 날들”은, AD. 1900-2000년의 모습일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O 다시 25-29절에 [므두셀라는 일백팔십칠 년을 살고 라멕을 낳았고 26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은 후에 칠백팔십이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27 므두셀라의 모든 날들이 구백육십구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28 라멕은 일백팔십이 년을 살고 한 아들을 낳았으니, 29 그의 이름을 노아라 부르고 말하기를 “이 아이는 주께서 저주하셨던 땅으로 인한 우리의 일과 우리의 손의 노고에 관하여 우리를 위로할 것이라.” 하더라.] 고 말씀합니다.

 

O [므두셀라]는, B.C. 3317년경 태어나 B. C. 2374년경 죽었습니다. [라멕] (강력한)은, B.C. 3130년경에 태어나 B,C 2353년경에 죽었습니다. 라멕의 아들 [노아]는 아무런 소개도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휴식”(안식)혹은 “위안”(위로)란 뜻이며, 그는 B. C. 2948년경에 태어났습니다. O 다윈의 추정대로 B.C.1000-2000년 사이에 가족 평균 네 명의 자녀를 두고 두 명이 죽어 두 명만 성장했다고 계산하더라도 노아의 홍수가 없었더라면, 적게 잡아도 인구는 8000억 명, 즉 현재의 250배가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부모가 자신의 아들을 안식과 위로라는 뜻을 가진“노아”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을 보면, 노아의 부모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하고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O 그래서 29절에 [주께서 저주하셨던 땅....우리의 일과 우리의 손의 노고.....]라고 말씀합니다. 노아의 부모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돈과 교육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모든 해결책은“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반대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노아의 부모들은“저주”의 영향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노아의 부모 라멕은 냉정하고, 정직한 눈으로 사태를 직시하였던 것입니다.O 만약, 창5:5-6절의 상황이, 홍수 없이 그대로 계속되었더라면, 대략“1조억”명의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거부한 타락한 인간들이 타락한 천사들과 동거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홍수는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축복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O 30-32절에 보면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31 라멕의 모든 날들이 칠백칠십칠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32 노아는 오백 세가 되어서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칠백칠십칠](777.3l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심에 있어 마지막을 보여줍니다. O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일곱으로 다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레23,25장. 계1,22장, 행7장, 롬7장, 계 7장, 마7장). 1) 팔레스타인을 일컫는 일곱 개의 명칭이 있습니다. 2) 킹제임스성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일곱 번 나옵니다. 3)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14명이 나옵니다.(7x2). 4) 성경 히브리에서의 예수님의 명칭이 일곱 번 나옵니다. 5) 성경에는 모세의 오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어진 명칭이 일곱입니다. 

 

6) 성경에는 일곱 침례가 있습니다. 7) 성경에는 일곱 신비가 있습니다. 8) 성경 계시록에는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9) 성경에는 일곱 심판이 나옵니다. 10) 성경에는 사탄의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11) 성경에는 타락 후 일곱 위기가 나옵니다. 12) 성경에는 성경말씀을 가리키는 일곱 명칭이 있습니다. 13) 성경에는 일곱 불 침례가 있습니다. 14) 성경에는 일곱 어두움이 있습니다. 15) 성경에는 다윗의 시편이 신약에서 인용된 일곱 가지예가 있습니다. 16) 성경구약에서 특별한 일곱 상수리나무가 있습니다. 17)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천사들이 일곱 번 나타납니다. 18) 히브리에서 일곱 가지 “더 좋은 것들”이 나옵니다. 19) 일곱 부활이 나옵니다. 20) 성경에는 일곱 체계가 있습니다.

 

O 본문“7”이 세 번 반복되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로써 아담의 계보는 완성됩니다. 그래서 777“일곱”이라는 것은 항상 어떤 기간과 관련된 특별한 것이 완성된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레위기 23.25장을 주목해야 합니다. 거기에 보면, 칠 일. 칠 년. 칠일(일주일)이“일 곱번”반복된 “주, 일곱 달, 칠 년”이 “일곱 번” 반복된 해 등이 등장합니다.O 그리고 이제 본문 제5장에 기록된 마지막 이름은“야펫”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히브리어로 “그로 퍼져 나가게 하라”혹은“열리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코카사스 인종(유럽)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다른 아들들은 “함과 셈”입니다. 그런데 창10:21절에 보면 [셈은 모든 에벨 자손의 조상이요, 형 야펫의 동생이라...]고 말씀 합니다. 또 창9:24절에 보면, [노아가 포도주에서 깨어나서,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서,]라고 말씀 합니다.

 

 

 

 

O 그래서 야펫은 창10:21절에서“형”으로 나와 있고,“함”은, 창9:24절에서“작은 아들”로 나와 있습니다. 물론 막내 동생이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형과 동생과 작은 아들”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노아의 세 아들의 순서를 보면, 노아의 첫째 아들, 야펫, [유럽계], 둘째 아들, 셈입니다.(창10:21) [아시아계] O 셋째 아들, 함.(창9:24) [아프리카계]로 볼 수 있습니다. O 오늘 우리는 본 대로 아담의 세대들에서는 계속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그 죽음이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세대들은 계속 죽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죽음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역사는 죽음과 멸망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는 이렇게 계속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담의 사전에는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O 그러나“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서는 죽음이 없습니다. 죽음을 빼버립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어도 사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죽음 자체가 무의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오직 생명뿐이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요11:25-26절에서 예수께서는“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주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것은 바로 “네가 이것을 믿느냐?” 왜냐하면,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영원히 살 것이고,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O 그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요11:40)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로 저 천성을 바라보며 주를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다가 그날 주께서 공중으로 내려 오신은 바로 그날 공중으로 들림 받아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