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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정숙한 행실을 봄이라.

박종각 2020. 6. 24. 00:00


                                                                벧전3:1-2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아내들아, 너희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일지라도 아내의 말없는 행실로 인하여 그들을 얻고자 함이니 이는 그들이 두려움 가운데 행하는 너희의 정숙한 행실을 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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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우리는 오늘 본문이 [이와 같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라는 이 말씀은 바로 앞에 벧전 2:23절과 연결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전2:23절을 다시 보면,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셨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아니하셨으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자신을 의탁하셨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와 같이]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주께서 하셨듯이, 아내들도 이와 같이,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인간의 모든 법령에 복종하고, 또, 권세 있는 왕을 존경하고, 그에게 복종하며, 그리고 종들이 모든 두려움으로 주인들에게 복종하는 이유와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O 그리고 특이 이 복종은 벧전 2:23절에서 말씀처럼, 모욕과 고통을 당하셨지만, 그러나 여기에 반발하거나, 받은 모욕을 되갚으려고 하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의탁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와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는 바로 그 복종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셨던 이와 같이, 아내들도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너희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아내 된 여자들에게 베드로는 지금 훈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성경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무슨 말씀인가를 할 때는, 언제나 여자에게 먼저 훈계합니다. 그래서 창3장에서 사탄이 인간에게 최초로 접근해 왔을 때, 여자에게 먼저 다가왔었는데, 하나님께서도 아담과 이브에게 범죄에 대한 결과를 예고하시면서 역시 이브에게 먼저 훈계하셨습니다. 엡5장에서도, 아내들에게 먼저,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훈계하고 나서,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 할 것을 훈계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O 이것은 골로새서 3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골3:18절에[아내들아, 너희는 너희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라. 그것이 주 안에서 합당한 것이라]고 먼저 여자들에게 훈계한 다음, 다시 [남편들아, 너희 아내를 사랑하고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고, 남자들에게 다음 절에서 훈계하는 순서를 밟고 있습니다. O 그리고 여기 베드로전서 3장에서도, 똑같이 여자에게 먼저, 그리고 남자에게 나중에 훈계하는 성경의 순서를 예외 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O 이처럼 성경에서 무엇인가를 훈계할 때는 항상 여자에게 먼저 훈계하고 나서, 남자에게 훈계하는 것은, 부모와 자식들에게 훈계할 때도 자녀들에게 먼저 훈계하고 나서, 그 다음에 아비에게 훈계하는 순서를 밟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골3:20절에 보면, 먼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훈계하고 나서 21절에[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성나게 하지 말라]고 훈계합니다. 엡6:1절에서도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먼저 자녀들에게 가르친 다음4절에서 [너희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훈계의 말머리를 아비들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O 이러한 훈계의 순서는, 종들과 주인들에게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종들을 먼저 훈계하고 나서, 그 다음에 주인들에게 합니다. 이처럼 자녀들에게서 아비들에게로, 그리고 종들에게서 주인들에게로 옮겨가는 순서를 밟고 있는 이 훈계의 성경적 질서에서, 어째서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먼저 훈계하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고전11:3절에서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즉,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 합니다.

 

O 그러므로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과,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훈계 하고 있는 성경 말씀들과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예외 없이 그 이유를, 주님과 그분의 뜻과, 그분의 계명에 관련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본문1절에서만도 그렇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일지라도, 그들을 얻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골3장에서도, 역시 [그것이 주 안에서 합당한 것]이라고 이유를 말씀 하고 있습니다. 또, 에베소서 5장에서도,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라고 설명 하면서,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훈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녀들과 아비들 간의 복종과 교훈에 대해서도 또, 종들과 주인들 간의 복종과 자애로움에 대한 교훈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모든 삶의 도덕적 규범에 있어서도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토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렇다며, 본문1절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요구하는 이 훈계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이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일지라도 아내의 말없는 행실로 인하여 그들을 얻고자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훈계나 명령은 단순히 훈계나 명령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까지 분명하게 밝히시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에서 [행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행실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실제적인 [생활 태도]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실은 그 사람의 실제적인 생활 태도를 통해서 누구라도 볼 수 있게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행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서 [그들이 너희의 정숙한 행실을 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실생활에서 나타나는 그 사람의 행실을 통해서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눈으로 보고 조용히 배우고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O 오늘 본문은 [이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일지라도 아내의 말없는 행실로 인하여 그들을 얻고자 함이니]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이 말씀이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아내에게 주는 말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구원받지 못한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인 아내들에게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남편들 중에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예화를 베드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말씀 하실 때, 이것이 반드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만을 지목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남편이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씀입니다. 단지 지금 남편이 무엇인가 잘못돼 있고, 그리고 아내는 잘못된 남편의 그 일을 잘 알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아내는 남편의 그 일에 대해 확실하게 반대 의사를 갖고 있을 경우에, 아내가 어떻게 하면, 그 잘못된 남편을 바로잡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베드로는 지금 아내들에게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베드로는 5-7절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경우를, 예화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라는 잘못된 아브라함의 그 일을 잘 알고 있었으며, 아브라함의 그 일에 대해 사라는 분명한 반대 의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언제 생긴 일입니까? 그것은 카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그 기근을 피해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내려갔을 때 생겼습니다.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주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온 아브라함은 이 사라의 미모 때문에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악한 이집트인들이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아내를 빼앗아 갈까봐 고민하다가, 사라에게 부탁하기를, 당신은, 내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말해 달라고 요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O 그래서 창12:12-13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고 말하기를, 이 여자가 그의 아내라, 하고 그들이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려둘 것이라. 내가 부탁하노니,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말하라. 그리하면 내가 당신으로 인하여 안전할 것이며, 내 혼이 당신으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합니다.이때 사라는 참으로 어이가 없고, 기가 막긴 일이 아닐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남편으로 믿고 내가 살고 있다니, 라고 한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O 그러나 사라는 아브라함의 의견에 아무 말 없이 남편의 요구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라는 지금 남편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남편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자기가 스스로 나서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라는, 내가 주를 신뢰하고 있는 이상, 분명히 이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O 그리고 사라가 믿고 확신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일에 즉각 개입하시므로 그들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12:17절에[주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로 인하여 파라오와 그의 집에 큰 역병들로 재앙을 내리시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아내를 무사히 되찾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일해 주시고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라가 남편 아브라함에게 순종하는 즉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파라오에게 위협을 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12:18-19절에 보면, 파라오가 아브라함을 불러들여 크게 질책하기를 [네가 내게 행한 이 일이 어찌된 것이냐? 내가 그녀를 내 아내로 삼을 뻔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파라오에게서 심한 질책을 받은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사라 앞에서 참으로 부끄럽게 된 것입니다.

 

O 그래서 창13:4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파라오에게 추방을 당해서 이집트를 떠나 벧엘을 항하여 이동하다가 처음 장막을 쳤던 곳까지 다시 되돌아와서 그곳에서 두 번째 제단을 쌓고, 주를 부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집트에서 추방을 당하고 그리고 처음에 쌓던 그 제단으로 다시 돌아와 주께 제단을 쌓고 주를 불렀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므로 주와 사라에게 부끄럽게 된 것에 대한 회개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O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신뢰하며 말없이 순종하는 사라에게 아브라함을 다시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여기1절에서 [아내의 말없는 행실로 인하여 그들을 얻고자 함이니]라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절대로 아내의 말을 듣지 말아야할 예가 있는데, 그 아내는 바로 이브였습니다. 이브는 금지된 열매를 따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먹게 했습니다.

 

 

 

 

O 그래서 주께서는 창3:17절에서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경청한 까닭에, 내가 네게 명하여 말하기를 너는 그것을 먹지 말라, 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너로 인하여 땅은 저주를 받고 너는 전 생애 동안 고통 중에서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시며 아담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담은 결코 아내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O 반대로, 남편은 반듯이 아내의 말을 들었어야만 했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빌라도였습니다. 그래서 마27:19절에 보면, 재판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심문하고 있던 빌라도에게 아내로부터 [당신과 그 의로운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게 하소서, 내가 오늘 꿈에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것으로 고통을 받았나이다]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께로부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고] 있었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자기 아내로부터 [그 의로운 사람]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전갈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O 그리고 그는 인류 역사상 지상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의로운 사람]을 처형했다는 오명을 대대로 받게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어떤 경우에 아내의 말을 들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 듣지 말아야 할 것 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주 간단합니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 어떤 논쟁이 있을 경우, 아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다면, 이것은 절대로 아내가 옳고, 남편은 틀린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절대로 하나님 편에 선 아내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사라는 하나님께서 자기 일에 개입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어떤 잘못된 일을 행할 때, 여자는 아내로서 이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를 간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성경의 말씀대로 아내로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O 그러나 이 복종은, 남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의탁한 데서 나온 복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의 말씀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남편들일지라도 아내의 말없는 행실로 인하여 결국 남편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께 순종하도록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 [말없는 행실]에서, [말이 없다]는 것은, 입을 굳게 다물고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행동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쓸데없이 하는 말, 괜히 말로써 말만 만들어 내게 해서 결국 싸움이 벌어지게 하는 말, 즉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2절에 [이는 그들이 두려움 가운데 너희의 정숙한 행실을 봄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아내의 정숙한 행실을, 남편이 두려움을 가지고 아내를 본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아내의 정숙한 행실을 남편이 본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남편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지금 자기에게 그렇게 행하고 있다는 것을 본다는 말입니다. 주 예수의 날, 그리스도의 날에 공중으로 들림 받아 주와 영원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끊임없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