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일 예 배
선한 싸움을 싸우라.
딤전1:5-20절 말씀입니다.
[ 이제, 계명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가식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6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서 헛된 언쟁에 빠져 7율법 선생이 되고자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8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합법적으로만 사용하면 율법이 선한 것인 줄 아노라. 9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라, 불법자들과,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 경건치 않은 자들과, 죄인들과, 거룩하지 않은 자들과, 속된 자들과, 아비를 죽이는 자들과, 어미를 죽이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10음행하는 자들과, 남자로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과, 유괴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과, 거짓되이 맹세하는 자들과 그 밖에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을 위함이니 11이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것이며, 이 복음은 내게 맡겨진 것이라. 12 나는 내게 능력 주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하노니, 이는 그분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라. 13 전에는 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요, 박해하는 자요, 중상하는 자였으나 오히려 자비를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하였을 때 모르고 행하였음이라. 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더불어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15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16그러나 내가 자비를 입은 것은 이 때문이니, 곧 먼저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셔서 후에 그를 믿고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17이제 영원하신 왕,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을지어다.아멘.18아들 디모데야,내가 너에게 부탁하노니, 전에 너에게 주어진 예언들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선한 양심을 내던지므로 파선하였느니라.20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배우게 하려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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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계1:11절에 보면, 주께서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그러므로 네가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곧 1)에베소와 2)스머나와 3)퍼가모와 4)두아티라와 5)사데와 6)필라델피아와 7)라오디케아에 보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일곱 교회에 전하는 이 말씀들은, 네 가지 면에서 즉, 1) 지역적으로, 2) 훈계적으로, 3) 개인적으로, 4) 영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O 그래서 이 편지들은 실제로 그 지역에 있는 교회들 앞으로 보내진 것이고, 그리고 이 편지들에 있는 그 훈계들을 통해서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그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가를 분별할 수 있게 해주며, 또, 이 편지는 [귀 있는 자] 즉, 각 개인들에게 주시는 권고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가를 보며주고, 그리고 이 편지들은 영적으로는, A.D. 96년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때까지, 교회들의 영적인 역사를 일곱 단계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리고 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진 편지들 중에,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적용되는 교회는 마지막 때에 적용되는 바로 “라오디케아교회”시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라오디케아교회”시대의 특징은 바로 “배교”입니다. “배교”라고 말은, 한마디로 “믿음”을 버린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라오디케아시대”는 믿음을 배반한 시대, 주님을 배반한 시대, 말씀을, 즉 성경을 믿지 않는 시대입니다.
O 이것을 알아듣기 쉽게 요약하면 이 시대는 각자 자기 나름대로 혓바닥 돌아가는 대로 짓거리는 시대 그래도 밥벌이가 잘되는 시대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눅18:8절에서 [그러나 인자가 올 때 그가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은 바로 주께서 말씀하신 그 믿음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O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라면, 구지 믿음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머리로 이해가 되면 믿을 수 있고, 공식에 맞으면 믿을 수 있고, 보이면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은 믿음이 아니라 “아는 것”즉 지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학문이나 배움을 통해서 머리로 지식으로 믿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은 구원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O 그런데 오늘날 이런 가짜 믿음을 가지고 믿으면서도 이것이 진짜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으로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믿음으로 믿고 있으면서도 열심히 특심해서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철저하게 십일조를 내며, 다른 사람의 것을 착취하거나 불의하며 간음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 죄인들과도 구별되어 살면서 (눅18:11-12). 평생 동안 새벽예배에 참석하며, 손발이 다 닳고 터지도록 봉사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믿음에 의해서 하는 줄로 착각 할 수가 있습니다.
O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할지라도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은 지옥에 가는 것에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런 믿음은 더러운 마귀들도 가지고 떠들어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2:19절에 [네가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니 잘하는 것이라.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믿음을 고전15장에서 한마디로 헛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O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마음부터 믿는 믿음입니다. 마음으로부터 믿는 믿음의 특징은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이 곧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상3:21절에 [주께서 실로에 다시 나타나셨으니, 이는 주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주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음이더라]고 하신 것입니다.
O 성경은 단순히 문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과 동일”시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신 그분께서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1: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기록된 말씀인 바로 “성경”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이 믿음이 바로 “온전한 믿음”인 것입니다.
O 진실이 이러한데, 만약 어떤 사람이 변개된 성경, 변개되었다는 말은 성령께서 기록하신 본래의 성경을, 번역 과정에서 혹은 필사하면서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자기들 생각으로 뜯어고치고 빼버리고, 더 추가해서 원본 성경을 완전히 훼손시킨 성경, 한마디로 자신들의 입맛대로 다시 성경을 만들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성경이 변개된 것은 최초 에던 동산에서 이뤄졌는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식대로 약간 변개해서 이브에게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개된 성경을 믿었던 아담과 이브는 여지없이 죽음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O 그래서 성경을 변개하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사람은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개된 성경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다면, 그는 진짜 주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예수 즉, 가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진실이 이러한데도 만약, 어떤 사람이 변개된 성경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다른 예수, 가짜예수를 전파하는 사람이고, 진실이 이러한데도 만약, 어떤 목사가 변개된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한다면, 그는 사탄에 에덴에서 이브에게 했던 거짓 설교만을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O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많고, 목사들도 많고, 교회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종종 자신도 예수 믿는다는 사람을 만나면 참 반갑고 기쁘고 좋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이 사람이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인지, 저 목사가 정말 구원받은 받은 사람인지, 성경대로 제대로 말씀을 전하는 목사인지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한마디 더 물어보면 그때는 싸우자고 대들기 때문에 아예 말을 하지 않지만, 저 사람이 차라리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르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상가에 어떤 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아니 4층에 교회가 또 들어왔던데요, 어찌 한 상가에 두 개의 교회가 있을 수 있습니까? 이런 것은 관리소장이 막아 주셔야하는 것 아니 예요?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께서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한 상가에 교회가 백 개가 있으면 어때서요? 예수를 전하는 것이라면 백번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진정한 복음, 바른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O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변개된 성경으로 가짜 복음을 전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아주 잘 받아드리고 잘 용납하기 때문에 가짜 예수를 전파하는 교회가 더 융성하고 더 번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11:4절에서 [만일 누가 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또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너희가 받아들이지 않은 또 다른 영을 받거나 너희가 영접하지 않은 또 다른 복음을 전파하면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 도다.]라고 바울은 말씀 합니다. 그러나 틀린 지도로는 틀린 목적지로 밖에 갈수 없습니다.
O 그래서 믿되, 변개된 성서가 아니라, 사도시대 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 속에 보존되어 온 전통원문인 킹제임스성경을 가지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사람들은 성경을 성경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롬16:18절에서는 [그러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것이니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을 성경대로 믿지 않고 전하지 않으니까 자연히 진리를 거짓으로 말하고, 진리를 거꾸로 말하고, 진리를 삐틀어지게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이전에 가졌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말씀대로 사는 것, 성경대로 믿는 것, 성경대로 전하는 것을 그만두고 진리의 지식에서 벗어나 혀 바닥 돌아가는 대로 짓거리는 것을 바로 “배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지금 우리가 사는 바로 라오디케아 시대, 즉 배교의 시대에 그대로 적용되는 내용인 것입니다.
O 5절에 [이제, 계명의 목적은...]이라고 말합니다. 이 계명에 대해서 요일3:23절에 보면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두 경우 즉, 본문 5절과, 요일3:23절에 있어서 그 계명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계명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결하게 된 사랑”을 말합니다.(행15:9).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4절에서 [꾸며 낸 이야기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경건한 세움보다는 오히려 의문을 일으킴이라.]고 설명 하십니다.
O 또, 계명의 목적은 “선한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선한 양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니까, 벧전3:21절에서 “물 침례에 순종 할 때, 그분의 아들을 따르겠다고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그래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예전에 우리에게서 이 양심은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딛1:15절에 [정결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정결하나 더럽혀진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정결한 것이 없고, 도리어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다 더럽혀져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O 또 이 양심은, 화인 맞은 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딤전4:1-2절에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나니,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고 말씀합니다.
O 그러나 이제는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더럽혀진 양심, 화인 맞은 그 양심이 성령 안에서 완전하게 회복되어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롬9:1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니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나에게 증거 하는 것은]이라고 말씀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어떤 사람은 마음과, 양심과, 믿음이 여전히 회복 불능상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서]라고 말씀 합니다.
O 그래서 이들의 마음은 오염되었고, (마l2:35). 이들의 양심은 화인 맞은 것입니다.(딤전4:1-2). 그래서 이들의 “믿음”은 팽개쳐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가식적이고 외식하는 자들이며,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며 떠들어 데는 위선자로서 선생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O 그래서 7절에 [율법 선생이 되고자 하나]라고 말씀 합니다. 율법 선생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정하신 선생들로서 이들은 바로 “레위인” 들이었습니다. (스7:1-6). 이들이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말2:5-8,대하51;4,스7:6-10).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믿는 자들이 의롭게 되는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으로는 우리를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O 그래서 행13:39절에 [너희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 하였던 그 모든 일에 있어서도 믿는 자는 모두 그분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는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율법을 가르치는 것은 거짓 선생이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위선자들인 것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롬6-7장). O 그래서 율법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페기된 것입니다. 그래서 엡2:15-16절에 [원수 된 것, 곧 법령 안에 속한 계명들의 율법까지도 그의 육신 안에서 폐기하셨으니 이는 그 둘을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창조하사 화평케 하시고 그가 십자가를 통하여 둘을 한 몸으로 만들어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 함이니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율법을 가르치고 있는 제 칠일 재림교도들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거짓을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인 것입니다.(그러나 이들만이 거짓선생이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목사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7절의 말하는 데로 자신들이 지금 말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들조차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O 율법이 의도하는 것은 “불경건한 사람들 가운데서 죄”를 밝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롬7:7-9절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정욕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계명을 통하여 기회를 잡아 내 안에서 온갖 색욕을 일으켰느니라.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임이라. 내가 전에는 율법 없이 살았으나 계명이 오자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느니라.]고 말합니다.
O 그래서 그 죄를 깨달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갈3:24절에 [그리하여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우리의 지도교사가 되었으니 이는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율법은“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것입니다. 그래서 롬7:12절에 [그러므로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구원을 받는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갈2:16절에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고 말합니다. O 그렇습니다. 율법의 의는 그리스도인“안 에서”성취되는 것이지, 그리스도인에“의해서”완성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롬8:1-4). 물론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합법적으로만 사용한다면 선한 것입니다.
O 그래서 8절에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합법적으로만 사용하면 율법이 선한 것인 줄 아노라.]라고 말씀 합니다. “율법을 합법적으로만 사용하면”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죄인에게 구원받아야 할 필요를 보여주기 위해 이 율법을 사용한다든지, 경건하지 못한 사람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 기준으로서 그에게 율법을 사용한다든지,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해 사용한다든지,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라도 나쁜 짓을 행했다면, 그에 대한 열매를 거둘 것이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 사용한다든지 하면 율법은 분명히 선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O 9절에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라, 불법자들과,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 경건치 않은 자들과, 죄인들과, 거룩하지 않은 자들과, 속된 자들과, 아비를 죽이는 자들과, 어미를 죽이는 자들과, 살인자들과]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불법 자들과]라고 말씀 합니다. 이 불법 자들은 법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설령 법이 있어도 법이 존재 하지도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O 또,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의 출석은 하고, 또 성경을 읽기는 읽지만, 그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고, 성경을 말하고 성경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실제는 성경대로 믿지는 않는 사람, 그래서 자신들이 읽고 있는 그 성경에 위반하는 사람들입니다.
O 다시 [경건치 않은 자들과]라고 말합니다.“경건”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주 예수 그리스도(성품과 모습)를 닮는 것을 말하지만, 그러나 이들은 그 어디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않았습니다. 또 [죄인들과]라고 말씀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은 전혀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이지 않은 자들입니다. O 다시 [거룩하지 않은 자들과, 속된 자들과]라고 말씀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교회에 대해서도, 영적인 것이라면 어떤 것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살인자들과]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서 세 종류의 살인자들이 열거됩니다. 아버지를 죽이는 자들과, 어머니를 죽이는 자들과,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죽이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이런 자들로 만연해 있습니다.
O 다시 10절에서 [음행하는 자들과]라고 말씀 하십니다. 주로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와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남자로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과]라고 말합니다. 남자 동성연애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들까지 이 추악한 행위를 용납하고 있습니다. O 또 [유괴하는 자들과]라고 말씀 합니다. 출21:16절을 보면 [사람을 훔쳐서 팔거나 자기 수하에 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 합니다. 다시 [거짓말하는 자들과]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성경 개정 자들, 신문 언론인들, 방송. 여호와의 증인들, 공산주의자들, 로마 카톨릭 교황, 추기경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다시 [거짓되이 맹세하는 자들과]라고 말씀 합니다. 맹세를 하고도 거짓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밖에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건전한 교리”는 믿음들이나 신념들, 관련된 교리상의 옳고 그름뿐만이 아니라 행위와도 관련되어 말하는 것입니다.
O 다시 11절에서 [이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것이며, 이 복음은 내게 맡겨진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10절에서 말한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에 반하여 무엇인가를 제시하고자 하는 데, 그것이 바로“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것”입니다. 영광스런 복음에 따른 “건전한 교리”가 무엇인가를 디도서2장에 보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O 이 시간은 시간이 부족해서 설명을 하지 못하지만, 여러분들은 집에 가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광스런 복음에 따른 “건전한 교리”는,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르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동성연애자, 살인자, 거짓 맹세하는 자, 속된 자, 불경건한 자, 거룩하지 않은 자, 불법 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런 죄들이 발견된다면, 즉시 자백하고 그 죄들로부터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O 12-17절에 보면 [나는 내게 능력 주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하노니, 이는 그분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라. 13 전에는 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요, 박해하는 자요, 중상하는 자였으나 오히려 자비를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하였을 때 모르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더불어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 16 그러나 내가 자비를 입은 것은 이 때문이니, 곧 먼저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셔서 후에 그를 믿고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이제 영원하신 왕,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라고 말씀합니다.
O 바로 이 부분이 11절에서 말하는 “영광스러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바로 바울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신실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복음을 신실한(믿음직하고 착실하며 진실한 사람) 사람들에게 맡길 것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딤후2:2절에 [.그리고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들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맡은 청지기들입니다.(행20:20)O 12절에 [나는 내게 능력 주신 그리스도....그분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라]고 말씀 합니다. “능력을 주시는 것”은 일반적으로 부르시는 것과는 다릅니다. 바울이 사역에 임한 것은 바울이 어느 누구를 만나기 전에 먼저 시내 산으로 가서 3년 동안 있은 후였습니다.
O 그래서 갈1:17-18절에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그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아니하고 다만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갔노라. 그리고 나서 삼 년 후에 내가 베드로를 보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간을 지냈으며]라고 말합니다. O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역자로 삼으시기 위해 “능력”을 주시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의 경우는 거의 십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부르신 후, 적어도 수십 년이 넘은 후에 비로써 사역자로서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O 누군가 에게 어떤 “직분을 맡기시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증거 하도록 부르신 다거나, 성경을 가르치도록 부르신 다거나, 아니면 설교하도록 부르시는 것보다 그 이상인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증거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행1:8). 모든 그리스도인은 설교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O 그래서 행8:1,4절에 [사울은 그를 죽이는 것에 찬동하더라. 그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가해졌으니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유대와 사마리아 전 지역으로 흩어지더라. 그러므로 널리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하더라.]고 말합니다.
O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직분을 맡기신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증인으로서 구령자로서 임명받았을 뿐만 아니라,“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딤후1:11절에 [이를 위하여 내가 이방인들의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느니라.]고 말합니다.O 바울은 13절에서 [전에는 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요, 박해하는 자요, 중상하는 자였으나 오히려 자비를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하였을 때 모르고 행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전에는], 바울이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행25:11), 박해했으며(행25:11), 사람을 해치기도 했습니다.(행26:10). [전에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죽였던 사람들처럼 무지했습니다.O 그러나 그리스도를 죽인 그 사람들이 자비를 받은 것처럼 바울도 자비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더불어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본문 자체에서 증거 하는 사실입니다.
O 다시 15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신실하며]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이 주의 말씀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고 누구나가 안전하게 믿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5절). 이것이 주께서 이 땅위에 오신 첫 번째 목적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O 그래서 교회를 세우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을 보여 주는 것, 우리에게 어떤 모범을 주는 것, 성직 제도를 세우는 것, 하나님의 본성을 계시하는 것 등등의 모든 것들은 모두 그 이후의 문제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부르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주께서 오신 첫째 목적입니다.
O 그래서 마9:13절에 [너희는 가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의 의미를 배우라.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고 하시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눅19: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고 또 구원하려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위임사항입니다. 그래서 요20:21절에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 하시면서, 행1:8-9절에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고 하시니라. 주께서 이런 일들을 말씀하신 후에 그들이 보는 데서 위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들의 시야에서 주를 가리더라]고 말씀 하십니다.O 15절에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자신을 보아도 분명 그러했습니다. 진심으로 회심한 모든 사람들이 성경의 조명을 통하여 자신을 비추어볼 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0 그러나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조명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진짜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모습을 봤습니다. 봤더니 자신은 죄인들 중에서 자신이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O 16절에 [그러나 내가 자비를 입은 것은 이 때문이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자비를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고난을 견뎌야 하는지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곧 먼저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셔서 후에 그를 믿고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리고 18-20절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너에게 부탁하노니, 전에 너에게 주어진 예언들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선한 양심을 내던지므로 파선하였느니라. 20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배우게 하려는 것이라] 고 말씀합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너에게 부탁하노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은 회심자들에게 고난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는 바로“오래 참음”이기 때문입니다. (갈5:22). 그래서 바울은 본문 1장 전체에서 디모데에게 여섯 가지를 부탁합니다. 1) 올바른 교리를 가르쳐라,(3-4). 2) 회심자들에게 은혜로 구원받은 목적을 일깨워줘라(5-6). 3) 회심자들에게 거짓 교사들이 율법을 왜곡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하라. 4) 회심자들에게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로 받는 것이지 값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고 일깨워 줘라(12-15절). 5) 바울을 고난 받도록, 인내하도록 부르신 것은 회심자들에게 본으로 보여 주고자 하신 목적이라는 것을 가르치라(16절). 6.이에 따른 영광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속한다는 것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O 18절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너에게 부탁하노니, 전에 너에게 주어진 예언들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말합니다. [전에 너에게 주어진 예언들을 따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그의(딤후1:5) 목사 안수 식을 말합니다. 그때에는 예언의 은사를 가진 어떤 설교자가, 디모데가 장차 어떤 사역을 할 것인지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O 그런데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에베소서에서 살펴보았던 군대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전쟁은 영적인 전쟁이고, 그 전쟁의 무기도 영적인 것으로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고후10:4-5절에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통하여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는 능력이라. 여러 가지 구상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여 스스로 추켜세운 모든 높은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라고 말씀 합니다. 다시19절에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고 말합니다.
O 바울은 4절과 5절처럼 다시 믿음과 양심을 붙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어떤 사람들처럼 [믿음에 대한 선한 양심을 내던지므로 파선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에 대한 선한 양심이 파선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입니다. 이들은 엉터리 선생이고, 엉터리 목사이며, 엉터리 선교사 들입니다. 이들의 믿음이 파선된 이유는 첫 번째 부활이 영적인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딤후2:17-18)
O 그래서 20절에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 준 것은]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쫓아내는 것이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탄에게 내어 주는 것은 그를 교회에서 추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기도를 통해서 사탄에게 내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사탄에게 내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0 바울은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그리고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교리와 꾸며 낸 이야기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는 일에 결코 시간낭비하지 말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O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선한 싸움을 싸우는 여러분들은 결코 믿음이 파선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을 하고 그리고 잘못된 교리나 쓸데없이 꾸며낸 이야기들을 짓거리는 데서 돌아서서 오직 믿음과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다가 주께서 공중으로 내려오실 때 그곳을 들림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