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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박종각 2020. 4. 5. 00:00

                                    주   일   예   배
                                  카인아!“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창4:10-25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부르짖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으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으니, 이제 너는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으리라. 12네가 땅을 경작하여도 이제부터는 네게 그 효력을 내지 않을 것이요, 너는 땅에서 도피자와 유랑자가 되리라.” 하시니라. 13카인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내 벌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크니이다. 14보소서, 주께서 오늘 지면으로부터 나를 쫓아내시오니, 내가 주의 낯으로부터 감추어지리이다. 그리하여 내가 땅에서 도피자와 유랑자가 되리니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리이다.”하니, 15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라도 앙갚음을 칠 배나 받으리라.”하시고 주께서 카인에게 표를 하여 그를 만나는 어떤 사람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시니라. 16카인이 주의 면전에서 떠나가서 에덴의 동쪽 놋 땅에 거하였더라. 17 카인이 그의 아내를 알았더니, 그녀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카인이 성읍을 세우고 그 성읍의 이름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이라 하였더라.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두사엘을 낳고, 므두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라멕이 두 아내를 얻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아다요, 한 사람의 이름은 실라더라.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가 장막에 거하는 자들과 가축을 기르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으며,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인데 그는 하프와 오르간을 다루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실라 역시 투발카인을 낳았으니, 그는 놋과 철로 모든 것을 만드는 자들의 선생이라. 투발카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말하기를 “아다와 실라여, 내 음성을 들으라. 너희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에 경청하라. 나의 상처 때문에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 때문에 청년을 죽였도다.24카인이 일곱 배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진실로 라멕은 일흔일곱 배로다.” 하였더라. 25아담이 그의 아내를 다시 알았으며 그녀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그녀가 말하기를“이는 하나님께서 카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하여 내게 또 다른 씨를 정하셨음이라.” 하더라. 26셋도 아들을 낳았으니,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부터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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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카인은 동생 아벨을 때려 죽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았다는 것에 화가 났고, 또 아벨에게는 무서운 시기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을 받으셨다면, 제물에 문제가 있든지(창4:4) 아니면, 제물을 드리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든지(삼상15장)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문제를 찾아 해결하므로 주께서 자신의 제물도 받으실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지만, 그러나 카인은 오히려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하나님께 불만을 품고 짜증을 내며 결국 아우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O 그런데 혹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드려지는 예배나, 자신이 드려지는 그 기도에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혹 내게 무엇이 잘못된 것은 없는가,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불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짜증을 내며 괜히 다른 사람의 신앙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 일은 없는가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살피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O 나의 신앙생활은, 바른 성경에 의한 바른 말씀으로 믿음의 기초를 삼고 그 믿음의 토대위해서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을 통해 성령에 의지해서 행해지는 신앙생활인지, 아니면 그냥 내 나름대로 하는 신앙생활인지, 내가 드리는 예배는, 정말 창조주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나를 죄와 사망에서 지옥에서 구원해 주신 주 하나님께 믿음에 의해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인지, 아니면,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우상숭배자들이 하는 것처럼 맹목적인 열심만 가지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지성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면 복 주신다는 생각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아닌지,





O 내 기도에 응답이 없다면, 내 기도는 주님의 의도, 주님의 뜻에 맞게 드려지는 기도인지, 아니면, O 자백하지 않은 죄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사59:1-2), O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 6:14-15), O 배우자나 혹 다른 사람과 불화에 있는 상태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벧전3:7). O 이기적이거나 잘못된 동기로 구하는 것은 아닌지,(약4:3). O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상태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잠28:9),를 살펴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O 주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하나님! 주께서 아우의 제물은 받으시고 제 제물은 받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그만 화가 나서 아우를 때려 죽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용서를 구했으면 카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사실 카인에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O 왜냐하면, 그는 악한 자에게서 나온 악인이었으므로 그는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거나 회개를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를 하고 자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O 그런데 자신의 아우를 때려 죽어 놓고는 카인은 지금 [나는 모르나이다....]라고 발뺌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10절에서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부르짖느니라.]고 말씀 하시면서, 11절에서 [너는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창3:l7절에서는 “땅만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땅을 경작할 사람도(창4:2)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에 의해서” 땅이 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땅에 의해서” 사람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유 없는] 저주는 결코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26:2절에 [새가 떠돌아다니고 제비가 날아다님같이, 까닭 없는 저주도 임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는 그 어떤 저주도 우리는 전혀 신경 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하나님의 “저주”라는 말이 많이 사용합니다.(민5장신29장.레24장.렘44장,갈3:10,13,신27장.벧후2:14,마25:41).


O 그러나 오늘날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저주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봐야 소용없는 것은 결국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그들을 위해 정해진 곳으로 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마25:41절에서 주님은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들이 저주를 받고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이들은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어(갈3:l3) 우리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고후5:21) 해주신 그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O 그런데 창9:25절에도 “저주를 받은 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카나안” 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카나안은 저주를 받을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저주"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0 그렇습니다. 죄는 카나안이 아니라, 바로 그의 아비 “함”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주는 “함”을 넘어 그의 “자손들”이 받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그가 무슨 죄를 지였을 지라도 그를 “저주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O 그렇습니다. “함”은, 그가 죄를 짓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창9:1절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고 말씀 하십니다. 노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복을 받은 사람을 저주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O 그래서 노아는 “함” 대신에, 그의 자손들에게 저주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9:25절에서 노아는 [“카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니,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지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118:6절에서 [주께서 내 편이 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할 수 있으리요?] 라고 말합니다.


O 하나님은 12절에서 [네가 땅을 경작하여도...그 효력을 내지 않을 것이요,]라고 말씀 하십니다. 카인은 농사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카인은 농사꾼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땅이 카인을 저주합니다. 땅에서 자신이 죽인 아벨의 피가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카인이 어느 장소에서 농사를 짓든 땅은 그를 거부 합니다. 카인이 땅에 무엇을 심 든, 땅은 그것을 모두 썩게 만들고 토해 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카인은 땅을 상대로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O 왜냐하면, 카인은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인은 결국 도피자, 유랑자로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의[도피자와 유랑자]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자 카인은 다시 하나님께 불만을 토해 냅니다.





O 그래서 그는 13절에서 [내 벌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크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카인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징계 받는 사람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에스라9:13절에 보면, 에스라는 자신의 민족이 죄로 인해 징계를 받을 때 [주께서는 우리의 죄악이 받아야 할 것보다 적게 벌주시어 우리에게 이와 같은 구원을 주셨나이다]라고 말하며 참회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O 그러나 카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내 벌이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말합니다.


0 무슨 말인가 하면, “주께서는 지금 내가 받아야 할 벌보다도 더 큰 벌을 내리셨다는 말입니다. 겨우 동생하나 때려죽인 것 가지고 그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이토록 가혹한 벌을 주신다는 말입니까?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닙니까?” 라고 말하면 하나님께 항변하며 대들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러나 눅23:41절에 보면, 비록 하나님도 모르고 거기에 살인죄를 죄를 짓고 사형에 처한 한 강도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내가 행한 일에 대한 보응을 받는 것이 참으로 당연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카인에게서는 결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악한 자로부터 나온 악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O 14절에서 카인은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좀 까다롭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보면, 당시 땅에는 아담과 이브, 그리고 자신과 아벨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벨을 죽인 일로 인해 “카인을 만나면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라는 말인가? 그러나 그들이 누구든 간에 그들은 아벨과 관련이 있는 자들일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O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카인을 죽이려는 자들을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카인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 당시에 [하나님이 아들들]이라고 부르는 자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인간의 모양을 입고 있는 "신들" 일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카인이 만나는 자들은 창3:5절에서 인간의 형상을 입고 이브에게 나타나서 말했던 바로 그 “신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O 그래서 시82:1절에 [하나님께서는 용사들의 회중 가운데 서 계시며 그는 신들 가운데서 판단하시는 도다]라고 말씀 하시면서, 6절에서는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너희 모두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손들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 신들이, 아벨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아벨을 죽인 카인을 죽일 이유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O 두 번째는,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분명히 창세기에 기록되지 않은 “아담의 아들들과 딸들”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 형제인 아벨을 죽인 카인을 죽일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0 그리고 창5:3절에서 이때 아벨이 죽고 나서 다시 셋이 태어날 무렵 아담은 130세였다고 성경은 아담의 나이를 밝혀 줍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과 이브가 130세가 되는 동안, 아담이 낳은 그의 자녀들은 죽은 아벨까지 합쳐 모두 세 명의 자녀만 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구절에서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담은 갓난아이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힘이 왕성한 33세의 청년으로 태어났습니다. 여기에 조금도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O 왜냐하면 아담은 33세의 주 예수 그리스도 모형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5:14절에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 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태어나자 일 년도 안돼서 자기 자녀를 거느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셋이 태어날 아담의 나이 130세가 될 무렵까지 아담은 많은 후손을 거느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서 우리는 창세기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아이들도 많이 태어났을 것이라는 가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아벨의 죽음이, 아담의 나이120-125세 쯤 되었을 때 발생했다면, 아담의 나이 130세 때, 당시에 그 땅에는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충분이 예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O 다시 15절에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라도 앙갚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주께서 카인에게 표를 하여 그를 만나는 어떤 사람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시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서양의 역사는 주로 성경을 믿든 역사냐. 성경을 믿지 않는 역사냐? 로 되어있습니다. O 이와 더불어 성경을 기록한 유대인을 어떻게 다루었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마25장에 보면, 이것은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고통을 주면 [일곱 배로 앙갚음]을 당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O [주께서 카인에게 표를 하여]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들의 죄들로 인해 모두 다 죽여야 되지만, 그러나 그 중에는 꼭 살려 줄 사람이 있기에 주께서는 그들에게 표를 하라는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겔9:3-4절에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모든 가증한 짓들로 인하여 탄식하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주께 등을 돌리고 가증한 짓들을 행하는 자들을 바라보면서 주께 탄식하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해서 죽음이 그들을 건들리지 못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O 그리고 나서는 겔9:6절에 가서는[늙은이나 젊은이나, 처녀나 어린아이나 여자를 전부 죽이되 표가 있는 사람에게는 접근하지 말며 또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이 이마에 표를 받습니다. O 그래서 계7:3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그들의 이마에 인장으로 표시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또는 나무들을 손상시키지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반대로 적그리스도도 자기 사람에게 표를 줍니다. 그래서 계l3:16-17절에, [그가 모든 자, 즉 작은 자나 큰 자, 부자나 가난한 자, 자유자나 종이나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지닌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게 하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이 표를 받은 자들은 모두 지옥의 불 못으로 들어갑니다.





O  그래서 계19:20절에 [그러나 그 짐승이 잡히고, 짐승 앞에서 기적들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그와 함께 잡혔으니 그는 짐승과 더불어 그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들을 속이던 자라. 이 둘이 유황으로 불타오르는 불 못에 산 채로 던져지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다시 l6-18절에 보면 [카인이 주의 면전에서 떠나가서 에덴의 동쪽 놋 땅에 거하였더라. 카인이 그의 아내를 알았더니, 그녀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카인이 도성을 세우고 그 도성의 이름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이라 하였더라.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두사엘을 낳고, 므두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고 말씀합니다.O 여기에 나오는 이름들과, 창세기 5장에 주어진 "셋의 아들들"의 이름을 대조해 보면, 이 당시 카인의 후손들은 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몹시 바빴을 것이고 아주 강인한 사람들이었을 쉽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0 그리고 16절에서 [카인이 주의 면전에서 떠나가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B, C, 3900년경 에덴의 동산 동쪽 문에 위치한 예배 장소, 즉 아벨의 제단이 있던 곳으로부터 카인이 떠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놋 땅에 거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만약 이곳이 에덴으로부터 가까운 곳이라면, 에덴은 현재의 스페인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이나 페르시아, 오늘날의 이란 근처였을 것이고,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인도쯤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O 17절에 [카인이 그의 아내를 알았더니]라고 말씀 합니다. 본문에서는 언제 아내를 얻게 되었는지 그 시점에 대해서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33세의 어른으로 태어난 아담을 통해서 창세기에 기록되지 않는 자식들이 많이 태어나고, 그리고 만약 아담의 나이 110세에 카인이 태어났고, 그리고 카인이 40세가 되었을 때, 아담은 150세가 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때  아담은 적어도 200여 명의 후손들을 거느리고 있었을 것입니다.O 다시 [카인이 도성을 세우고 그 도성의 이름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라고 말합니다. 카인이 도성을 세우는데 100명이나 200명의 사람들을 위해 도시를 세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카인이 떠났을 때, 아담의 모든 자녀들까지 모두 카인을 따라 놋 땅으로 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언제라는 말이 없는 것으로 봐서, 카인이 세운 도성은, 카인이 도성을 세웠을 때는 적어도 그가 놋 땅에서 약 200여 년 이상 산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한다면, 그때 아담은 350세였을 것이며, 당시 대략 인구는 약40, 000명 이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O 다시 l9-22절에 보면 [라멕이 두 아내를 얻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아다요, 한 사람의 이름은 실라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가 장막에 거하는 자들과 가축을 기르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인데 그는 하프와 오르간을 다루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었으며 실라 역시 투발카인을 낳았으니, 그는 놋과 철로 모든 것을 만드는 자들의 선생이라. 투발카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역사상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일부다처주의자는 카인의 현손(4대손)인 라멕이었습니다. O 이러한 잘못된 조상에 뒤이어 나온 사람들은 야발, 유발, 투발카인들입니다. O 라멕이 두 아내 중, 아다는(19절) [야발을 낳았으니...]라고 말씀 합니다.(20절).  그리고 야발은 축산업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야발의 [가축]을 말씀하면서 [양]이나 [목동]이란 말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음으로 미루어 야발은 [목동]이 아닌 카우보이였을 것입니다.


O 21절에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인데...]라고 말합니다. 창제기 4장의 유발은, 이 땅의 모든 음악가들의 조상으로 그 배경은 창조의 새벽에 [노래]했던 [아침의 아들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욥38:7). 당시 갓 창조된 지구는 세마포로 빛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쳤었습니다. O 이 땅의 모든 나쁜 것들은, 모든 좋은 것들이 왜곡된 것입니다. 우리는 최초의 음악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능만을 갖고 있었습니다.(시95:l,사42:l0,렘20:13).


O 그리고 최초의 찬양대 지휘자는 기름 부음 받은 그룹으로 그는 고유의 악기와 모든 음악적 재능을 모두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겔28:13절에 [네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 모든 귀한 돌인 홍보석과 황옥과 금강석과 녹보석과 얼룩마노와 벽옥과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와 홍옥과 금으로 덮여 있었고 네 북들과 관악기들이 만들어짐이 네가 창조되던 날에 네 안에 예비되었도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때 타락하기 전 루시퍼는, 보좌 위를 덮고 있는 그의 위치에서(겔28:l4), 그리고 불의 돌들 위를 걸으면서(사6:3,6,겔28:14)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을 지휘하는 첫 번째 부르심에 순응하였고, 그때 이들 천사들은 목소리를 높여 창조주께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O 그런데 이 땅의 모든 음악가들의 조상이었던 유발은 그의 [아버지]에 보조를 맞추어서 하프를 타고 당시 카인족의 헛되이 들여지는 헛된 예배를 위해 오르간을 연주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당시 젊은 남녀들은 파티를 열고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할 목적으로 주신(욥21:12) 음악에 맞추어 자신들의 육체를 즐겁게 했던 것입니다. O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춤이(시150:4). 인간들을 위한 춤으로 변질되어 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찬양이 인간들을 즐겁게 하는 노래로 변질 된 것입니다.


0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관악기도 현악기도 모두 육체를 즐겁게 하는데 동원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아시대의 홍수 이전 문명은 곧장 지옥으로 달려가는 바로 지옥의 문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우리를 떠나소서. 라고 소리를 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욥21:12-15절에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0 그래서 당시 인간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우리를 떠나가소서. 우리가 주의 길의 지식을 기뻐하지 아니하나이다. 전능하신 분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겨야 하리이까?]라고 외쳐댔던 것입니다. 다시 22절에 [실라 역시 투발카인을 낳았으니...]라고 말합니다.[투발카인]의 의미는 [철기구의 날을 가는 사람] [대장장이]라는 [세속적 대장장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투발카인은, 야발과 유발처럼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보려는 사람입니다. 요즘말로 말하면, 그 사람은 진보적이고 창의적이며 건설적인 사고를 지닌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여기 야발과 유발과 투발가인 이 세 사람은 문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O 여기 23절에 [라멕]이라는 사람은 자기 방어를 위해’ 한 젊은이를 살해 했습니다· 그는 카인은 냉정한 가운데 사악한 생각을 가지고 살인을 저질렀는데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으므로 자기는 카인보다 일곱 배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어디에도 살인자에게 일곱 배의 보호가 주어진다는 암시는 없습니다.  그리고 25절에서 [아담이 그의 아내를 다시 알았으며 그녀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그녀가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께서 카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하여 내게 또 다른 씨를 정하셨음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서 “다시”라는 말과 [아벨을 대신하여]라는 표현을 보면 셋은 아벨이 죽은 직후에 얼마 되지 않아서 태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O 25절에 [그 때부터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을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그때부터 비로써 인간들은 “주께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때부터 [인간은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0 그러나 이것은 모두 엉터리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주] 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그런 “주”가 아니라, 사람들이 우상 신을 부를 때 부르는 “주”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더라]고 하는 이 말은, 인간들은 그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던 것을 그만두고, 하나님의 이름을 그들의 우상에다 사용했으며 그들의 [신들]에다, 하나님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O 유대인 랍비 라쉬는 “그때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신성모독적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 탈굼에서는 “우상들을 주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탈굼=아람어로 된 주석으로서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을 위해 아람어로 번역된 주석.) 유대인들의 해석에는 아주 강력한 근거가 있습니다.





O 우리는 이 사실을 에녹이 주를 버린 배교자들인 불경건한 세대에게 예언을 하고 있었던 사실을 통해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 14-15절에 [아담의 칠대 손 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예언하여 말하기를 “보라, 주께서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시나니 이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그들 가운데 있는 경건치 않은 모든 자가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말한 모든 거친 말에 대하여 정죄하시려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유다서7-13절에서 말하는 유리하는 별들이나, 애찬의 흠, 시들어 열매 없는 나무, 뿌리 뽑힌 나무, 사나운 짐승들, 더러운 꿈을 꾸는 자들이 어디서 나왔느냐? 이들은 바로 에노스 즉, 아담의 제3대로부터 에녹(제7대손) 사이에 나오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주의 이름을 부렸다”는 것은 그동안은 이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다가 에노스 때부터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불렀다는 말이 아니라, 셋의 아들 에노스 때로부터 급격히 하나님을 버리는 배교가 일어나 주 하나님께 기도해 오던 일들을 이제 그만두고 결국 자신들의 신에 주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 주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사용했다는 말인 것입니다.


O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배교하는 일들을 하게 하는 것은, 에덴으로부터 시작이 되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 땅에 천년 왕국이 이뤄지고 의의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통치하시고 공의로 다스리시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분별하지 못하고 우상 신을 하나님이라 부르고 그리고 그 우상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는 자들, 하나님을, 사탄이라고 부르고, 사탄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0 그리고 그렇게 성경을 변개해 놓고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들고서 설교를 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사람들을 속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아니라, 마귀의 책입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보장 다 보는 것입니다. O 물론 개역성경이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귀가 성경에 단 한 곳만 고쳐놔도 그것은 마귀의 책이지, 하나님이 기록한 성경은 아닙니다. 그런데 마귀는 무려 개역성경을 3만 군데를 변개하고, 고치고, 첨가하고,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한 절 자체를 완전히 삭제하고 가로해놓고 없음이라고 싸 놨습니다. 그것이 무려 13절이나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마귀 자신이 들어 곳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집어 놓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갈 속에 자신을 집어넣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14:12절의 말씀입니다.


O 우리가 가지고 있는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사14:12절에는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루시퍼”는 바로 사탄입니다. 하지만, 변개된 개역성경에서는 오히려 “루시퍼” 사탄을, “계명성”으로 고쳐 놨습니다.


O 그래서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라고 변개해 놨습니다. 그러나“개 명성”은, 새벽에 뜨는 금성, 즉 “새벽별”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새벽별”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계22:16절에 “나 예수는...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또 빛나는 새벽별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O 그러나 <개역성경>과 같이 변개된 성경들은 모두, 사14:12절에서 사탄의 정체를 밝히는 그의 이름인“루시퍼”를, 빼버리고 거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꿔 놨습니다. 그렇게 해 놓고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대적하고, 그 대가로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0 이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탄이라고 고쳐놓고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믿는 사람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대적하고 그 대가로 지옥에 떨어진다고 기록해 놓은 그 책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들고 설교를  한다고  떠들어 대는 곳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의 한국 교회들입니다. O 이 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증거 할 수 있으며, 하늘의 비밀을 말하며, 주 오심을 말할 수 있으며, 성도의 휴거를 말할 수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말할 수 있겠으며, 지옥의 경고를 말하고, 천년왕국, 백보좌 심판, 무시무시한 지옥의 경고를 말할 수가 있으며 적그리스도의 사악함과 7년 대환란의 고통을 증거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탄이라고, 기록해 놓고, 사탄을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만들어놓은 그 책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에는 절망 그 자체뿐인 것입니다.


O 그래서 한국 교회에 가장 급한 것은 이들이 바른 성경을 가지도록 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것에서는 결국 더러운 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손에서 더러운 가짜 성서를 버리게 하고 그들의 손에 엉터리 지도가 아니라, 천성을 향해 가는 바른 지도, 바른 성경을 들러주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주 지독한 배교의 시대입니다.

O 그러나 이 지독한 배교의 시대에 살면서도 탁월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오직 주 하나님만을 믿고 그분만을 신뢰하고 그분만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과 늘 함께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에게 기도가 있고 감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O 물론 기도나 감사는 누구나 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기도와 감사는 “꾸준히”라는 말이 앞에 붙어 있습니다. “항상”이라는 말입니다. “거르거나 쉬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말입니다. 그래서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는 기도하며 감사하는 생활은 보통 일반적인 기도와 감사하고는 그 질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기도와 감사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O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에게 없으면 우리의 영적인 힘을 소진되어 버리고 말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기도가 없고 감사가 없으면, 우리의 영적 힘은 사용하지 않아 완전하게 방전되어 버리는 배터리처럼 모양만 있지 전혀 영적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기도가 없고 감사가 없으면, 우리의 영적인 것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모두 방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 눈과, 영적 귀가 어둡게 되어 말씀도 들이지 않고, 하늘의 징조도, 땅의 징조도 깨달을 수 없게 되어 전혀 세상의 사람들과 구별이 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골4:2절에 [꾸준히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기도에 깨어 있으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런 사람만이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아니하고 주 오심을 기다리고 소망하며 주를 바라보게 되며 복음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더욱 기도하며 말씀을 보고, 주 오심을 열망하며 열심을 복음을 전파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공중으로 들림 받아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