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
주 일 예 배
롬13:4-14절 말씀입니다.
[그는 너에게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면 두려워하라. 이는 그가 헛되이 칼을 가지고 다니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요,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행하는 보응자니라. 5그러므로 너희가 반드시 복종해야 하나니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 때문이기도 하니라. 6이러한 연유로 너희가 세금도 내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에 전념하게 하려 함이니라. 7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되 국세를 낼 자에게 국세를 내고 관세를 낼 자에게 관세를 내며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8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어떤 빚도 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이룬 것이니라. 9이는 이것, 즉“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 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 너는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너는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이 말씀으로 모두 요약될 수 있음이니, 즉“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 10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때를 아노니 지금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로다. 이는 지금이 우리가 믿었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이라. 12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어두움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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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지난 시간에 바울은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원칙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외적이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예를 든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선행에 대해서까지 위협을 주는 그런 권세라면, 우리는 아무리 위에 있는 권세라 할지라도 그 권세에 맞서 대항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위에 있는 권세 자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권세 자가 어떤 방법으로 권력을 잡았던 상관없이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운데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O 본문 4절에 보면, [그는 너에게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면 두려워하라. 이는 그가 헛되이 칼을 가지고 다니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요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행하는 보응자니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소위 경찰은 [하나님의 일꾼]인 셈입니다. 물론, 경찰 자신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릅니다.
0 그러나 여기 롬13:4절은 분명히 그들은 우리에게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자들은 경찰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이“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참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더러 [하나님의 일꾼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잘못하면, 하나님의 일꾼이 휘두르는 칼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일꾼은 목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손에 칼을 들고 법을 집행하는 그런 사람들을 말합니다.
O 이들이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그리고 이들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들은 지금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들이 악행하면, 우리들의 목을 벨 수 있는 권세를 부여받았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이들이 흉악범들을 집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O 오늘날 사형 제도를 놓고 떠들어 대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말씀하시면, 그리스도인은 이유 불문하고 사형제도에 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O 바울도 행25:11절에서 [만일 내가 무엇을 잘못했거나 죽을 만한 일을 했다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형제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분명한 입장입니다.
O 그러므로 세상에서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는 자들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범죄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든 이 하나님의 일꾼들은 그들을 처리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들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리까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4절에 그들이 겁이나 주려고 [헛되이 칼을 가지고 다니지 아니]한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성경은 살인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말씀 하시는데, 출21:12절에 보면 [사람을 쳐서 죽게 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살해할 의도가 전혀 없는 가운데 살인을 했다면, 민34장, 35장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할 수 없습니다. 만약 군인이 전장에서 적군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면, 그는 그 일로 인해 삼상15장과 16장, 그리고 수1-5장과 신1-6장과 그 밖에도 여러 곳의 성경 말씀들에 따라, 그가 사람을 죽었다고 사형을 당할 염려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O 그러나 이런 상황이 아니라 마음속에 누군가를 살해할 의도를 품고 있다면, 당연히 그는 사형 제도를 두려워해야 하고, 그리고 그 살해 의도에 따라 사람을 죽었다면, 그는 마땅히 사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살인한 자를 사형에 처리하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21:12)
O [그는 너에게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라.] 그렇습니다. 국가 권력 기관은, 악을 행하기 위해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선을 이루기 위한] 일꾼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형 제도를 도입하고 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사전 조치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우리가 옳은 행위를 행하기 위한 가장 좋은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옳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유도하는 동기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 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우리들의 생명을 건져주는 것입니다.
0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우리들의 모든 것들에게 대해서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악을 자행하는 범죄자에게 대한 복수는 하나님의 몫인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의 권세는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법을 집행함으로써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대행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일꾼]들이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명령에 따라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하나님의 명령에 거부하고 자기 멋대로 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울 왕입니다. 삼상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행하도록 그에게 명령하시기를 [이제 너는 가서 아말렉을 치되,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여 그들을 남겨 두지 말지니, 남자와 여자, 아기와 젖먹이, 소와 양, 낙타와 나귀를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O 왜 아말렉을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까? 그 옛날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 그들이 길에서 공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고, 아말렉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를 살려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그에게서 보내서 사울 왕에게 주셨던 모든 것을 회수하십니다. O 그래서 삼상28:16-17절에 보면 [...주께서 네 손에서 왕국을 떼어내시어 그 왕국을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주의 음성에 순종치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집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러한대도 쓸데없이 관용을 베푼답시고 살인자를 사형시키지 않는다면,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O 왕상20:35-37절을 보면 [선지자 한 사람이 주의 말씀으로 그의 이웃에게 말하기를 “너는 나를 치라." 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선지자의 말을 들은 그 사람이 선지자를 치기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선지자가 다시 그 이웃사람에게 말하기를, "네가 주의 음성에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자마자 사자가 너를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지자 말대로 그가 선지자를 떠나자마자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를 때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도 때리지 않고 쓸데없이 관용을 남용하게 되거나, 하나님께서 원치도 않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좋은 일 한답시고 아무에게나 선을 베풀겠다.”고 나서게 되면, 그 일들이 세상에서는 잘했다고 박수를 치고 칭찬을 듣고 환영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징벌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O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 선한 일인가를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선하고 착한 일로 보일지라도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 일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악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O 선지자가 치라면, 그 이유를 묻지 말고,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냥 한방에 때려 눕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선지자가 자신을 때리라고 했다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선지자를 때린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관용을 베풀게 되면, 그는 사자에게 물려 죽는 징벌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O 이 선지자가 또 한 사람을 만나서 너는 “나를 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두 번째 사람은, 아무런 이유도 묻지도 않고 한방에 선지자의 때려 눕혔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바람에 이 사람은 하나님의 징벌을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선지자는 자신의 얼굴에 재를 발라 변장을 한 다음 길에 서서 아합 왕을 기다리고 있다가 아합 왕이 지나가자 왕을 불러 세웠습니다.
O 그리고 왕에게 말하기를 [폐하, 내가 싸움터에 나갔는데 어떤 병사가 적군 포로를 한 사람 잡아와서 그 포로를 내게 맡기면서 하는 말이, 만약 네가 이 포로를 놓치면, 이 포로대신 네 생명을 대신 내 놓던지 아니면, 벌금으로 은 한 달란트를 내야 한다고 말을 했는데, 그런데 내가 이런저런 일로 한눈을 파는 사이, 그 포로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선지자가 묻습니다.
O 그러자 왕이, [그렇다면 그 도망간 포로대신 네 목숨을 내놓던지 아니면 벌금을 내든지 해야 하지 않겠느냐? ...]고 말합니다. 그때 선지자가 변장을 지우고 왕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려내며 왕을 향하여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완전한 멸망으로 정해 놓은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아 주었으니, 네 목숨으로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으로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고 (왕상20:42) 말합니다. O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합은 자신이 살려준 바로 그 시리아의 왕 벤하닷의 군대의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5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반드시 복종해야 하나니,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 때문이기도 하니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행하는 하나님의 일꾼에게 복종하여 범죄를 자제 하게 되는 것은 단지 진노가 두렵기 때문만은 아니라, 우리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O 사람들이 범죄를 자제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법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앞서 우리들의 양심이 먼저 우리를 가로막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범죄를 자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범죄를 행하는 것은, 우리를 가로 막았던 우리의 양심을 이미 저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O 그래서 사람이 양심을 저버리면, 그 사람은 범죄 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양심에 쳐 놓은 범죄 저지선인 양심의 바리게이트를 넘은 것입니다. 물론 그가 범죄의 저기선인 양심의 바리게이트를 넘어 섰다고 해서 곧 바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의 저지선을 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법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그를 다시 가로 막고 있습니다. 이처럼,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해서 이중의 방벽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마저 넘어 서게 되면, 이제부터 범죄를 실행에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렇게 되면, 그를 처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게 되고, 그리고 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의 칼이 우리를 향해 즉각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리석은 하나님의 일꾼이 하나님께서 처벌하라는 자를, 뇌물을 받고 놔주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네 목숨으로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으로 그의 백성을 대신하라]것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이 반대로 그에게 내려지는 것입니다. O 다시 6절에 보면, [이러한 연유로 너희가 세금을 내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에 전념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 합니다.
0 우리가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은 정부 당국자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행하는 보응자의 역할을 잘 수행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세금을 거둬드리는 그 자들이 [하나님의 일꾼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정부 관리들과 권력자들은 자신들은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그들의 직책을 수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직분과 입장을 존중해 주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도 아니고 따라서 [하나님의 일꾼들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는 자들이 아니라면,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야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의 말을 따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O 그래서 7절에 [국세를 낼 자에게] 국세를 내고, [관세를 낼 자에게] 관세를 내며,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국세를 낼 자가 아니라면], 국세를 낼 필요가 없고, [관세를 낼 자]가 아니라면, 관세를 낼 필요가 없으며, [두려워 할 자]도 아닌데, 괜히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존경할 자]도 아닌데, 그를 존경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O 다시 말하면, 어떤 그리스도인이 [로마에 가면 로마인들의 방식대로 하라는] 말을 듣고 로마에 갔는데, 그런데 로마에 가서 보았더니 로마인들이 하는 짓이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멀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 입장에서 일을 합니다. 이 경우, 그들이 하는 방식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반면, 만약 그들이 하는 방식대로 반성경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는 로마 사람들의 관습과 방식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O 그래서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는 말씀은, 존중해 줄 만한 것이면, 존중해 주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반 성경적, 비성경적 관습과 풍습이 아닌 한, 그것이 무엇이든지 존중해 줄줄 아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O 8절에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어떤 빚도 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사랑 하는 사람은 율법을 이룬 것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이 하지 말라는 것 중에서 가장 지켜지지 않고 있는 금기 사항이 바로 [아무에게도 어떤 빚도 지지 말라]는 이 말씀인 것입니다. O 그러나 성경은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어떤 빚도 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쏟아 부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 분수에 넘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O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직접적으로 갚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우리에게 부어 주신 사랑을 자신에게 되갚으라고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일4:7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는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으며 또 하나님을 아느니라.] 고 말씀 하십니다.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이룬 것이니라]고 하신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O 물론, [율법을 이룬 것]이라든지, 또, 9절에서 말씀하는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라든지, 또, 10절에서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는 이 말씀들 자체는, 구약에 적용되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는 그리스도인들끼리의 관계에 대해 적용되는 말씀들인 것입니다.
O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불신자들을 향해,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들을 결코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요3:36절에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에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귀의 자식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O 단지, 그리스도인들은 늘 구원 받지 못한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단 둘 뿐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O 다시 9절에 [이것, 즉 1)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 2) 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 3) 너는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4) 너는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 5)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O 여기 “다른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신약시대에 와서 완전하게 폐기 되었습니다. 이 계명이 폐기되고, 이 다섯 가지 계명 즉 [1) 간음하지 말라. 2) 살인하지 말라. 3) 도둑질하지 말라. 4) 거짓 증거 하지 말라. 5) 탐내지 말라]만,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계명들은, 단 하나의 계명으로 요약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O 그래서 10절에,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이웃을 사랑하면 그들에게 악을 행치 않게 됩니다. 그리고 악을 행치 않는 것은, 바로 율법이 요구하는 요구사항입니다. 그래서 자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따라 자기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주안에서 율법을 완성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물론 율법의 완성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완결된 일입니다. 단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의안에 거함으로써 율법의 완성을, 마치 우리 자신이 이루어놓은 것처럼 해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령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악을 행치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살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O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간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도둑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거짓 증거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들은 사랑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O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첫째 계명을 지킨 것이요, 첫째 계명을 지킨다면, 둘째 계명인,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게 되는 것은 자동적입니다. 우리들이 첫째와 둘째 계명을 지킨다면, 십계명의 나머지 다섯 가지 계명을 지키는 것도 자동적입니다.
O 그래서 막12:30-31절에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기 이웃과도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산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이웃을 사랑한다면, 십계명의 나머지 계명들을 지키는 것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10절에 말씀 하신 것입니다. O 11절에, [...우리가 그때를 아노니, 지금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로다...]고 말씀 하십니다. 바울은 [그때]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라고 선언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수차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잠에서 깨어나라고 촉구를 합니다. 엡5:14절에서,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고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O 그렇습니다. [지금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지금이 어째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입니까? [이는 지금이 우리가 믿었을 때 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이라]고 말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2절에,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어두움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렇습니다.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의 재림을 내다보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O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은, 교회 시대의 종말을 바울이 얼마나 절박하게 마음에 두고 있었는가를 보여 줍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하던 때는 교회 시대가 막 시작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때에 이미 교회시대가 종말을 향하여 치닫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밤은, 네 경점으로 나눠집니다. 그런데 밤이 많이 지났다는 것은, 이제 이 네 경점이 다 지나고, 이제 해 뜰 때가 되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이 이르렀다는 말씀입니다.
O 그러므로 13-14절에, [낮에 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말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엡4:22-24절에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O 그리스도인은 교리적으로 말하면,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또 우리는 그분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옷과 같아서 우리가 구원받은 순간,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 옷은 전신갑옷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으면 우리는 즉시 새 옷인 전신갑옷으로 갈아입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구원받은 순간,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이고, 그리고 우리는 전신갑옷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낮에 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을 위해 계획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0 다시 말하면, 육신이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사전에 계획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전 5:22절에서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의 때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0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죄에 대해서 계획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면서 주의 선한 일 즉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다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