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
존귀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
주 일 예 배
잠언15:18-33절 말씀입니다.
[분을 잘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나,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다툼을 그치게 하느니라.19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의로운 사람의 길은 평탄하니라. 20현명한 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나, 어리석은 자는 자기 어머니를 멸시하느니라. 21지혜를 멸시하는 자는 미련함을 기뻐하나, 명철한 사람은 정직하게 행하느니라. 22의논이 없는 계획은 실망을 가져오나, 의논자가 많으면 계획이 이루어지느니라. 23 사람은 자기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누리나니 때에 맞는 말은 얼마나 유익한가! 24생명의 길은 현명한 자 위에 있으니, 그는 아래 있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리라. 25주께서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헐어 버리실 것이나, 과부의 경계는 세우시리라. 26악인의 생각들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순수한 자들의 말은 기쁨의 말이니라. 27이익에 욕심을 부리는 자는 자기 집을 해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리라. 28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지만, 악인의 입은 나쁜 것을 쏟아 내느니라. 29 주께서 악인들로부터는 멀리 계시나, 의인의 기도는 들으시느니라. 30눈의 빛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좋은 소식은 뼈를 살찌게 하느니라. 31생명의 책망을 듣는 귀는 현명한 자들 가운데 거하느니라. 32훈계를 거부하는 자는 자신의 혼을 멸시하는 것이나, 책망을 듣는 자는 명철을 얻느니라. 33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존귀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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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지난 시간에 솔로몬은 16-17절에서 [소유가 적어도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큰 재물로 인하여 고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나물로 마련한 저녁에 사랑이 있는 것이 살진 수소가 있으나...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사랑”과“주를 두려워하는 것”(잠1:7. 8:13.9:10), 이 두 가지는, 주께로부터 필요함을 공급받기를 원하는 집에는 반듯이 있어야할 중요한 것들인 것입니다. O 이 세상에는 수많은 집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모두“가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남녀가 결혼을 해서 한 집에서 산다고 해서 그것이 가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을 만드는 데에는 자신들의 인생을 상당히 투자를 해야만 행복하고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O 살진 소들이 외양간에 있고, 은행 통장에는 충분한 돈이 있을지라도, 그러나 증오와 다툼과 미움과 함께 살고 있다면(16,l7절).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돈이 없어도 (l6절). 식탁에는 김치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어도 그곳에 이해가 있고, 사랑이 있고, 편안함이 있다면, 그것이 훨씬 낫다는 말입니다. O 바울은 감옥에서“천상”(엡2:1-7)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궁전에서 수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 아합 왕은, 자기 궁전에 옆에 있는 땅 한 조각을 빼앗지 못해서 안달하다가 식사까지 전패하고 자기 침실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근심으로 나날을 보냈습니다.(왕상 2l장).
O 그래서 [소유가 적어도...큰 재물...보다 나으니라. 나물로 마련한 저녁...이, 살진 수소...보다 나으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하늘 니라를 소유한 사람이고, 하늘나라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가장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본문 18절에, [분을 잘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나,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이라고 말씀 합니다. 또, l절에 보면 [유순한 대답은 진노를 삭이나, 과격한 말은 화를 일으키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딛1:7절에 보면,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자기 고집대로 아니 하며, 쉬 화내지 아니하고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라고 말씀 하십니다.
O 하지만 오늘날 이 땅에는“분으로 가득 차고, 쉽게 화를 내고, 다툼을 일으키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는 사람이, 마치“온유함”로 가득 찬, 양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7:15절에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19절에,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의로운 사람의 길은 평탄하니라]고 말합니다.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라고 말합니다.
O 그 이유는, 게을러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24:30-31절에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각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갔더니, 보라, 농작물이 온통 가시나무와 더불어 자랐으며, 엉겅퀴가 그 지면을 덮었고, 돌담이 무너졌느니라.]고 말합니다. O 게으른 사람은 항상 핑계거리만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22:l3절에 [게으른 사람은 말하기를“사자가 밖에 있으니, 내가 길거리에 나가면 죽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O 다시 20절에, [현명한 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나...]고 말합니다. 잠언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잠11:30절에 보면,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니, 혼들을 이겨오는 자는 현명하니라.]고 말씀하고 또, 23:16.24절에 보면, [정녕, 네 입술이 바른 것들을 말하면 내 속마음이 즐거우리라. 의로운 자의 아버지는 크게 즐거워할 것이요, 현명한 아이를 낳는 자도 그로 인하여 기뻐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무슨 말인가 하면, 말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말이 아니라, 의로운 자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말이 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에서는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나를 즐겁게 하고, 하나님께서 크게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O 21절에, [지혜를 멸시하는 자는 미련함을 기뻐하나...]라고 말합니다. 1. 어리석은 자는, 도박에서 이길 때 기뻐합니다. 2. 어리석은 자는, 간음과 음행을 저지를 기회가 부여되는 것에 기뻐합니다. 3. 어리석은 자는, 죄의 즐거움을 기뻐합니다. 그래서 [지혜를 멸시하는 자는 미련함을 기뻐하지만 그러나 명철한 사람은 어리석은 일에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명철이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 어리석은 말, 어리석은 길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옳은 것을 기뻐하며, 진리 안에서 기뻐하며(고전13:6), 주께 기도하기를 기뻐하며,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합니다.(고전12:13). 그리고 그 사람이 얻는 결과는 매우 좋습니다.
O 그래서 엡1:16-l9절에 보면, [너희로 인하여 감사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나의 기도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자기를 아는 지식 안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시어 너희의 지성의 눈을 밝히셔서 너희로 하여금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또 그의 강력한 능력의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향하신 그의 능력의 지극히 위대하심이 어떤 것인가를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O 22절에, [의논이 없는 계획은 실망을 가져오나, 의논 자가 많으면 계획이 이루어지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잠11:I4). 사람이 계획하고 성취코자 의도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일들은 미리 조심스럽게 계획되어야만 최상으로 성취될 수 있습니다. O 그리고 그 계획에 대해 지식을 갖추고 앞서 경험한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O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생각이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16:3절에 [너의 일들을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생각들이 바로 서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O 23절에, [사람은 자기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누리나, 때에 맞는 말은 얼마나 유익한 가!]라고 말합니다. 잠l5:7절에, [...조언에 경청하는 자는 현명하다.]고 말하며, 잠12:25절에, [....선한 말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것은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때에 맞는 말은 유익하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때에 맞는 말은, 쓸데없는 말을 멈추게 하고, 다른 방향으로 대화를 전환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또, 때에 맞는 말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들을 깊이 생각해 보게 하고, 육신의 말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에 마음을 두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에 맞는 말은,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때에 맞는 말]은, 때로 적절한 때에 주님에 의해 그의 입에 채워지는 놀라운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0:19-20절에, [그러나 그들이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시각에 너희에게 말할 바를 주시리라. 말을 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니라.] 고 말씀 하십니다.
O 24절에, [생명의 길은 현명한 자 위에 있으니, 그는...지옥으로부터 벗어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은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고 (잠14:12). 그 길이 넓고 편하게 보이는 길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그 길은 비뚤어진 길로서(잠14:12) 이 길로 걷는 사람은, 결국은 멸망하고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러나 [생명의 길]은, [위]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위에 있는 생명의 길을 걷기 위해서 인간 스스로“위를 향해”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려고 악을 씁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생명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의 의를 내 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O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 스스로 노력해서 위에 있는 생명을 얻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위에 있는 생명의 길이 아래로 내려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길이신 주님께서 아래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도는, 위에서 내려온 돌 판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O 24절에, [...그는 아래 있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옥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지옥이라는 말을 빼버리고“스올”이라는 말로 대체 시켜 거짓을 말합니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위로부터 내려온 길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위로부터 내려온 그 구원의 손에 의해 구해 냄을 받은 것입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앞서 수많은 사람들이 갔다고 해서 지금 자신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최우선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지옥에서 벗어나는 데에 시간을 쓰는 사람인 것입니다.
O 주께서 길이 하는 사람이 되라면, 쓸데없이 헛된 길에서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의 행위로 하늘나라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은 오직 지옥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결코 하늘나라를 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수고의 댓가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지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것들로부터 구원하는 것입니다.
O 25절에, [주께서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헐어 버리질 것이나, 과부의 경계는 세우시리라]고 하십니다. 잠l4:19,32절에 [악한 자는 선한 자 앞에 엎드리고, 악인은 의인의 대문에 엎드리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함 가운데 사라지나, 의인은 죽음에 있어서도 소망을 갖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왕상17:9절에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거하라. 보라, 내가 그곳에 있는 한 과부 여인에게 명하여 너를 부양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 역시 엘리야에게 보내진 것입니다. 이유는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면전에서 과부에게 놀라운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0 그래서 왕상17:16절에 보면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주의 말씀대로 가루통도 고갈되지 아니하고 기름병도 비지 아니하였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과부의 경계를 세우시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다시 성경은 [주께서는...과부의 경계는 세우시리라]고 말씀 하십니다.“경계”는, 소유권을 표시하는 선으로 땅의 구획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힘없는 과부의 경계를 세워 놓으시면, 어느 누구도 과부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만약에 과부의 경계를 무시하고, 과부의 소유권에 손을 대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는 것입니다.
O 그런데 아합 왕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은 자기 궁전 옆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뺏으려고 나봇을 때려죽이고, 나봇의 아내를 과부로 만들었습니다.(왕상2l장). 그리고 손쉽게 나봇의 아내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그 포도원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그 댓 가로 아합은 자신과 자신의 부인이 죽임을 당했으며, 그리고 자신의 온 집안이 완전하게 멸망당했던 것입니다.
O 26절에, [악인의 생각들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순수한 자들의 말은 기쁨의 말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잠15:8,11절에 [악인의 희생제는 주께 가증한 것이나,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의 기쁨이니라. 지옥과 멸망이 주 앞에 있거늘, 하물며 사람의 자손들의 마음들이야 더욱 그렇지 않겠느냐?]고 말씀 하시면서, 21:2절에 [사람의 모든 행위가 자신의 눈에는 옳으나, 주께서는 마음들을 감찰하시느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26절에 [악인의 생각들은...]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는 악인의 생각을 나열해 놓았습니다. 악인의 생각이 무엇인가? 슥7:10절에 보면, 형제들을 거슬러 악한 상상들을 하는 것입니다
O 전10:8,9절에 보면, 누군가에게서 어떤 것을 훔치거나 속이려는 계획하는 것입니다.O 출20장을 보면, 이웃의 아내를 탐하는 것입니다. O 렘15:18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분의 신실함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O 잠l7:24절에 보면, 쓸데없는 공상하는 것입니다. O 요일3:15절에 보면, 사람들을 죽이려는 계획입니다. 잠12:1.15:10절에 보면, 책망을 거역하는 것입니다.O 에6:6절에 보면, 자신이 모든 것들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O 욥18,20장에 보면, 다른 사람들의 죄를 고소하는 것입니다. O 잠l8:9절에 보면, 일하지 않을 구실을 만드는 것입니다. 잠16:27,30절에 보면 “현 명한”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계획하는 것 등입니다. 이 악인의 생각은 모두 가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순수한 자들의 말은 기쁨의 말이니라]고 말합니다.
0 하나님께서는 기쁨의 말들을 받아들이십니다. 왜냐하면, 이 말들은 생각이 가증하지 않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잠언의 요지이며 의미입니다. 27절에, [이익에 욕심을 부리는 자는 자기 집을 해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미가서 3:11절에 [그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바라고 재판하며 그 제사장들은 삯을 바라고 가르치고 그 선지자들은 돈을 바라고 점을 치는 도다. 그러면서 그들은 주께 의지하며 말하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 미가서7:3절에, [그들은 양손으로 열심히 악을 행하나니 고관도 대가를 요구하고 재판관도 대가를 요구하며 큰 자도 자기의 엉뚱한 욕심을 털어놓으니 그들이 그처럼 서로 걸 맞는 도다.]라고 말씀 합니다. 다시 [이익에 욕심을 부리는 자는 자기 집을 해치나]라고 말씀 합니다. 구약에서 여호수아 시대에 아칸(수6.7장)이 그랬고, 엘리사 시대에 게하시(왕하5:27)가 그랬고, 또 아합이 그랬습니다. 신약에서는, 유다가 있고, 아나니아와 삽피라가 그랬습니다.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리라]고 말씀 합니다. O“뇌물”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일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하기 위해서 주는 선물을 말하는데, 그래서 그것을 받는 사람은 결국 문제에 걸려들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리라]고 말씀 하십니다.(27절).
O 28절에,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지만, 악인의 입은 나쁜 것을 쏟아 내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딤후2:15절에[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의인의 마음은...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입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입은 쓸모없는 말을 많이 쏟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말이 많은 곳”에는 항상 죄가 헤엄을 치고 다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잠10:19절에 [말이 많으면 죄가 그치지 아니하나, 자기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현명하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어리석음”으로 시작되는 것은 곧바로“악”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잠24:9절에 [어리석은 생각은 죄요, 조롱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가증하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잠14:24절에 [재물은 현명한 자들의 면류관이나, 어리석은 자들의 어리석음은 미련함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무지한 농담이나 재담이 신성모독이나 권위를 저주하는 것으로 그 절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O 29절에, [주께서 악인들로부터는 멀리 계시나, 의인의 기도는 들으시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요9:31절에 보면, 주께로부터 치유 받은 소경은, 유대인들에게 [이제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듣지 않으시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들으신다는 것이라.] 고 말합니다. 구약에서“죄인”즉,“악인“은 막달라 마리아, 세리 마태 같은 사람들을 칭하는 말입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욥은 죄인은 아니었습니다.
O 그러나 욥이 생각할 때 주께서는“자신에게서 멀리”계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는 욥이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계속 욥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30절에, [눈의 빛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좋은 소식은 뼈를 살찌게 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모든 심신은 서로 관련되어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잠17:22절에 [즐거운 마음은 약과 같이 좋으나, 상한 영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잠3:8절에서는 [그것이 네 몸에 건강이 되며 네 뼈에 골수가 되리라.]고 말씀 하시면서 12:4절에서는 [현숙한 여인은 남편에게 면류관이나, 수치를 끼치는 여인은 그의 뼈를 썩게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31절에, [생명의 책망을 듣는 귀는 현명한 자들 가운데 거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현명한 사람은 이 책망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책망이“생명”에 속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생명”은 바로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신30:19-20절에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서 너희에 대하여 증거를 삼아 네 앞에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두었은즉, 그러므로 너와 네 자손이 살려면 생명을 택할지니라. 이는 너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너로 그분의 음성에 복종하게 하며 또 그분께 밀착하게 하려 함이니, 그분은 너의 생명이시요 네 날들의 기한이시라. 이는 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기로 맹세하신 그 땅에서 너로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책망이 훈계와 연계되어 있다면], 책망은, 생명을 가르치는 교훈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2절에, [훈계를 거부하는 자는 자신의 혼을 멸시하는 것이나, 책망을 듣는 자는 명철을 얻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훈계 없이는, 아무도 읽고 쓰는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훈계가 없으면, 살거나 죽을 준비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O 그래서 [훈계]의 원천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잠5:23.6:23.8:10.8:33) 그리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값없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훈계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훈계를 원치 않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래서 잠11:27절에 [열심히 선을 찾는 자는 은총을 받으나, 악을 찾는 자는 악이 그에게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잠10:17절에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의 길에 있으나, 책망을 거절하는 자는 빗나가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듣는]이라는 말은 단순히“듣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받아 들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O 33절에,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존귀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고 말씀 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존귀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 그래서 하늘의 영광과 존귀를 맛보 기 앞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영 가운데 겸손 하는 것이 먼저고, 잿더미에 앉아 울부짖는 것이 먼저고, 영광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흙먼지 가운데 엎드리는 것(행9장).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두려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진흙 속에서 뒹굴고, 눈물의 홍수를 이루며 온 밤을 지새우고, 받은 상처로 인해서 심한 고통을 겪고,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도 죽음과 멸망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험 없는 사람이 하늘의 상급을 받는 일은 드문 것입니다. 대통령직에 오른 정치인들조차도 거기까지 도착할 쯤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처투성이고, 또 진흙으로 뒤덮이지 않고는 그런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귀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먼저라는 말입니다. 고난과 고통의 맛이 무엇인가를 먼저 맛을 보라는 것입니다.
O 그 후에 면류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흙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기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높이 오를 수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영광스럽고 존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우리를 쓰시기 전에 먼저 겸손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너무 어리석기 때문에 겸손을 배우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끝내 겸손을 배우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겸손을 배우는데 있어서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O 왜냐하면, 쓸모없는 오만과 교만이라고 하는 뻣뻣한 뼈들을 부드럽게 만드는 데는 고난과 고통의 가마솥에 넣고 끌려내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교만해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버림받는 사람이 되고, 멸망하게 되고, 일찍 죽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겸손한 자가 되는 것이 훨씬 좋은 것입니다.
O 그래서 우리는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사람만이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겸손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나가는 자들은 반듯이 겸손함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자들은 반듯이 겸손이 그의 앞에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의 면류관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 앞에서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주를 섬기는 삶을 통해 그 나라에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