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주 일 예 배
고전10:14-3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를 피하라. 15 내가 지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
듯 하노니 내가 말하는 것을 너희는 판단하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이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
의 교제가 아니며 우리가 떼는 이 빵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가 아니냐? 17이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빵이요, 한 몸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모두 그 한 빵에 참여하기 때문이라. 18육신을 따르는 이스
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사람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은 무엇이며 또 우상들에게 바친 제물은 무엇이냐? 20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
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노라.21 너희는 주의 잔과 마귀들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없으며 너희는 주의 식탁과 마귀들의 식탁에 함께 참여할 수 없느니라. 22우리가 주를 질투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하냐? 23모든 것이 내게 합법적이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합법적이나 다 세워 주는 것이 아니니라. 24누구나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각자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25고기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나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이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이라. 27만일 믿지 않는 사람 중에 누가 너희를 잔치에 청해서 너희가 가고 싶거든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먹으라.
28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우상들에게 바친 제물이다.”라고 하거든 알
려 준 그 사람과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이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임이니라. 29내가 말한 양심은 네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겠느냐? 30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왜 비난을 받겠느냐?
31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게나 아무도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33나도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한 것같이 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노니 이는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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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본문 16절에 보면, [우리가 축복하는 이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제가 아니며 우리가 떼는 이 빵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가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다른 두 구절을 봐야 하는데 하나는, 고전11:27절의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치 않게 이 빵을 먹고 주의 이 잔을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는 말씀이고, 다른 구절은, 29절로[이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의 저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0 이 두 구절들의 말씀과 연계해서 오늘 본문16절을 보면,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와 몸의 교제], 즉 [주의 만찬]을 나눌 때,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서 분별하지 못하고,[주의 만찬]을 먹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저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그래서 오늘 본문 16절의 말씀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주의 만찬]을 대하게 된다면, [자신의 저주를 먹고 마시는 자리] 가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O 그래서 본문에서 말씀 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문16절의 [그리스도의 몸]을, 갈보리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이 [그리스도의 몸]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O 그래서 바울은 [이 축복의 잔과 우리가 떼는 이 빵]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피] 나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하지 않고, [이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빵이요, 한 몸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모두 그 한 빵에 참여하기 때문이라] 고 17절에서 말합니다.
0 다시 말하면, [한 빵이요, 한 몸]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 이 [그리스도의 몸]은, 누구의 [몸]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분 안에] 들어와 있는 바로 [그리스도인] 을, 가리키는 말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으로 거듭나서[그리스도 몸] 안으로 들어온[그리스도인들]을 몇 가지로 말씀 하
시는데, O 하나님의 성전(고전3:16), O 하나님의 교회(고전1:2.10:32). 그리스도의 교회(롬16:16).
O 그리스도의 지체(고전12:27). O 그리스도의 대사(고후5:20), O 그리스도의 소유(엡1:14) O 심부
름하는 종(요2:7-9). O 그리스도의 종(엡6:6), O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고전12:27) 으로 말합니다.
O 그래서 고전12:27절에 보면,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는 [그 지체들]이라.]고 말씀 합니다. 그러므로 17절에 [이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빵이요, 한 몸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모두 그 한 빵에 참여하기 때문이라.]는 이 말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된 새롭게 태어난 몸, 바로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우리가 모여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로,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주의 만찬]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그분을 기억하고 주께서 베풀어 주신 그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함께 나누는 [그리스도인의 교제]로서, 이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통해서 [주의 죽으심을 그분이 오실 때까지 전파]하는 새 힘을 얻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서 말씀 하시는 이 [한 빵]을,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실제적인[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착각하며
[주의 만찬]을 대한다면, 그는 [주의 만찬]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며, 주의 몸과 피에 죄를 짓는 행위가 되는 것이므로] 그는 [자신의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0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데, 자신이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는 가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양심에 문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이와 같은 [주의 만찬]에 대한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의 피와 몸의 교제]에 참예하는 데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만찬이 예고되었다면,우리는 거기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토요일 저녁에는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자백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우리는 주의 만찬에서 성도들과 함께 교제의 빵을 떼고 잔을 마시면서 우리의 위해 영원
한 생명의 빵을 주시고 주님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를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게 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억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O 18절에서 [육신을 따르는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사람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고 말씀 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말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을 말합니
다. 그들은 제단에 참여하고 제사를 지낸 후 제물로 드렸던 염소나 소 같은 것들을 먹었습니다.
O 다시 19절에서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은 무엇이며]라고 말씀 합니다. 우리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미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이란, 사람 손으로 만들어 놓은 그저 하나의 형상일 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무것도 아닌[우상들에게 바친 제물은 무엇이냐?] 이 말입니다.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그 우상에 바친 제물은 더더욱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이라고 일부러 안 먹는다면,오히려 그 우상이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이방인들의 제사에 참 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21절에 [너희는 주의 잔과 마귀들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없으며 너희는 주의 식탁과 마귀들의 식탁에 함께 참여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 합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의 제사는, 마귀들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피의 교제]와, 그리스도의[몸의 교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O 22절에, 그렇다면 [우리가 주를 질투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하냐?]라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가 주보다 강하냐?].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마귀들과 교제하는 이방인들의 제사에 참여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O 23절에 [모든 것이 내게 합법적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 합니다. 20-21절에서처럼, 이방인들이 마귀들에게 제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제사에 참여하는 모든 것이 설령, 세속적으로는 내게 합법적이어서 세속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라도,그러나 영적으로는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게는 해로울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귀들과 교제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이미 구별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줄 필요가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O 24절에 [누구나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각자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말씀 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유익]만 생각하는 그런 이기주의자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고 있는 [유익]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 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유익을 의미합니다.
O 다시 말하면, 일상생활에서 자기 혼자만 영적으로 부유해지기 위해서 힘쓰지 말고, 다른 사람도 함께 영적으로, 부유를 누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 돕고 격려하고 그런 방향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O 25절에 [고기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나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말씀 합니다. [고기시장]이란, 이교도들의 고기시장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는 노상에서 파는 싸구려 고기시장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런 것도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내 양심]이 아니라,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의 양심]을 말합니다.
O 음식을 대접하는 그 사람의 양심으로는 그 음식이 [귀한 음식]이어서 [나에게 대접하는 것] 이기 때문에 그러한 [그의 양심]을 존중하여,아무것도 묻지 말고 무엇을 내어 놓았든지 기쁘게[받아먹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먹은 음식인데, 아무것도 묻지 말고 왜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해서 먹어야 하
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31-33절까지에 나옵니다. O 26절에서 바울은[이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다른 사람의 양심도, 즉[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27절에 [만일 믿지 않는 사람 중에 누가 너희를 잔치에 청해서 너희가 가고 싶거든]서슴지 말고 가라고 말합니다.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잔치에 가서 차려 놓은 음식에 대해서는 주인에게 이게 무슨 음식이냐
고 꼬치꼬치 따져 물을 필요도 없이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맛있게 먹으라고 말합니다.
O 28절에 보면,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우상들에게 바친 제물이다, 라고 하거든 일러 준 그 사람과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이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임이니라]고 말씀 합니다. 잔치에 초대되어 잔칫상에 앉아 그것을 먹으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그 음식은 오늘 아침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이다]라고 말 한다면, 그때는 먹고 싶어도 [고맙지만 나는 이 음식을 사양 하겠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0 그런데 옆에 사람이 분명히 나에게 말해 줬는데도, 나는 [상관없다.] 라고 말하며 그냥 받아먹을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O 물론, 자신은 우상도, 우상에게 들린 제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말해 준 사람에게는 상관이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이라고 일러 준 사람은, 내가 그리스도인인 줄 알고, 그 사람의 양심으로는 내가 안 먹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하고 일부러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해서라도 그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접해 주는 사람의 양심보다는, 그것이 우상의 제물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의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O 28절에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 이기에 나에게 귀띔을 해 준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양심도 우리는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여기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
고 있는 교훈인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술좌석에 끼 이게 되었고,그리고 나에게 술잔
이 건네진다면, 주는 대로 홀짝 홀짝 받아먹을 것이 아니라,나는 당연히[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
실을 밝히고 사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O 더구나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이렇게 해야만 그 사람을 위하고,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서도 옳은 일일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밝히는 것도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의 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을 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면 이것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께 해악을 끼치는 일, 즉 우리가 주를 질투하시게 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 [그렇다면 우리가 주를 질투하시게 하겠느냐?]고 말씀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O 29절에 [내가 말한 양심은 네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양심을 내가 아랑곳하지 않고 내 멋대로 행동한다면 [이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임이니라](28절)는 말씀까지 무시하는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답게 행동 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찌하여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O 3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엉뚱한 것들에 확대 적용하여 써먹습니다.
O 영적인 거룩한 찬송가는 덮어놓고, 사람들의 혼을 자극하는 육적인 음악으로 [찬양과 경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그래서 오늘날의[찬양]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 말이 [찬양]이지, 거의 [세상의 유행가]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멜로디에 가사만 그럴듯하게 부친 다고해서 그것이[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육신적인 사람이 육신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찬송]은, 거듭난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이 전적으로 성경적인 가사에,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곡을 붙여 부르는 것이 바로 [찬송]인 것입니다.
O 그래서 엡5:18-20절에서[오직 성령으로 충만 하라.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들을 지어 말하고,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아름다운 곡조를 만들고, 항상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만드는 찬송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도 못한 육신적인 사람이 세속의 리듬으로는 결코 영적인 찬양을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O [찬양]은, 세상에 과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찬양은, 사람들이 들으라고 불러지는 것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사람들의 마음에 평강을 얻기 위한, 다시 말하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주께로부터 놀라운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제물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모두 거룩한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오직 [하나님의 것] 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조성하였나니 그들이 나의 찬양을 나타내 보이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0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그 [찬양의 제물]은, 사람이 받거나, 사람이 손을 댈 수 없는 것입니다. 찬양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13:15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찬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드리자. 이것이 그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고 말씀 하십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찬양]을 가지고 세상의 죄인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편지를 잘못 찾아가서 우편물을 잘못 배달해준 어리석은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을 찾아 갈 때는 [찬양]으로 가지고 [찾아 가는]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찾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찬양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O 그렇다면, 하나님의 무엇을 [찬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위대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자랑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그 위대하신 일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주께서는 우리를 위해 너무나 크고 위대한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말]로 [노래]로, [시]로 찬양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출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추격해 오는 이집트 군대를 홍해에 쓸어버리실 때,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의 구원하심을 노래하며 찬양했습니다. O 미리암과 이스라엘 모든 여인들도 일어나서 [...주께 노래하라. 이는 주께서 영광스럽게 승리하셨으며 말과 그 탄자를 바다 속에다 던지셨음이라.]라고 주를 찬송합니다. 이렇게 성경에 보면, 그 옛날 출애굽 과정을 통해서 찬양했던 그 찬양을 위시해서 시편 기자들의 찬양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곡조와 가사로 만든 예배찬송가들이 있는 것입니다. O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런 찬송가에서 조금씩 틈이 생기고, 변질된 것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O 그러더니 언제가 부터 복음성가라는 것이 등장하게 되고, 그것이 시들어 가더니, 이번에는 [현대 기독교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등장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며, 드럼과 전자 악기들로 사람들의 혼을 자극시키면서 그것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이것은 세상적인 음악이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는 아닙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CCM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O 다시 본문 32절에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게나 아무도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 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유대인] [이방인]그리고[하나님의 교회, 즉 그리스도인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어 놓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경 말씀들이 주로 유대인을 위해서거나, 이방인을 위해서, 아니면, 교회를 위해서 구별되어 있습니다.
O 세계 인류는, 이 세 부류 가운데 하나에 속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그리스도인, 즉 [하나님의 교회]가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는 유대 인이거나 아니면, 이방인, 둘 중 하나에 속합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 자와, 구원받은 자, 이렇게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O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와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구절들이 진리의 말씀이기는 하지만, 어떤 구절이 그리스도인들을 항한 것이라면,그것을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 결코 적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각 구절들 이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 중 누구를 위한 말씀인가를 분별하지 않으면 진리를 올바로 나누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딤후2:15절에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하라]는 명령은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O 33절에 [나도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한 것같이 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노니 이는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사실 모든 일에서 모든 사람을 100퍼센트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기서 권면하고 있는 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적인 문제]에서 말합니다.
O 바울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만은 조금도 적대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적대감을 갖는다면, 그 혼을 구원받게 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바울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고 그들의 유익
을 구하였던 것은, 오직 한 가지 목적에서였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누구와도 절대로 적대감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27-31절에 이르기까지의 행동을 하는 까닭은, 오직 한 가지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곧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권면이 담고 있는 참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이 말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은, 바로 [그들로 구원받게 하는 일]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날 교회들은 오히려 [이 한 가지 일] 만 빼고는 다 열심히 합니다. O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소리칩니다.
O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가서 교회를 보내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노숙자 밥 퍼주라고 보낸 것입니까?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세상에 보내신 것이 나랏일에 간섭하라고 보낸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하나님의 대적 자, 하나님의 원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북한을 지원하라고 보내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라고 보낸 것입니까?
0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사탄의 앞잡이, 거짓의 집단, 우상숭배자, WCC을 협력하고, 그 사탄의 집회가 성공하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보낸 것입니까? .주께서 이 땅위에 오신 것이 그런 것들을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 하시지 않으십니다.
0 그래서 요10: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사도 바울 역시 고전1:17-18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내셨노라.]고 말합니다.그렇습니다.그리스도인은 이 일에만 관계가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신 것은 오직 한 가지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이 일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이 일을 위해서 죽으셨으며, 이 일을 위해서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0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입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벌써 복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O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맞추고 있어
야 하는 초점은 단하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데,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은 바로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무엇을 먹고 마시든 간에, 그 모든 것들의 초점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다가 주님께서 공중으로 내려오실 때 그것으로 들림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