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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는 자에게...

박종각 2019. 7. 12. 00:39

                 그분께서는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는 자에게...

 


                                           롬9:14-18절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내가 자비를 베풀 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내가 가엾게  여길  자를 가엾게

여기리라.” 하셨으니 16그러므로 원하는 자에 의해서도 아니요, 달리는 자에  의해서도 아니며 오직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니라. 17 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너

를 세웠으니 이는 내가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이고 또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 함이라.”하

셨으니18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또 원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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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4절에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아우인 야곱을 사랑하시고, 형인 에서를 미워하셨다고 해서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한 가지 분명하게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결

코 불의하지 않으시며, 절대로 불의한 일을 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O 다시 15-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비를 베풀 자에게 자비를 베

풀고 내가 가엾게 여길 자를 가엾게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원하는  자에 의해서도 아니요,

달리는 자에 의해서도 아니며, 오직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니라.] 고 말씀합니다.


O 여기서 바울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이 말씀의 핵심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기 전의, 구약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10-14절이 그렇고, 15-17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누구도 거듭나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살리심을 받은 사람도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사항은, 바로 [원하는 자에게 의해서도 아니요]라는 말씀입니다.





0 이 말씀에서 [원함]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고 구원을 받는 것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상항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비를 나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었던 구약 시대 이야기를 말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서 [원함] 즉, 나의 의지라고 하는 것은, 과연 나는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대상인가, 아닌가,나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가엾게 여김을 받을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여부만을 판단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대에만, 나 자신의 [원함]즉, 나의 [의지]가 사용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다거나,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가엾게 여김을 받기를 원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그래서 구약에서 중요한 것은, 주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실지, 아닐지의 여부였고, 그리고 이것을 내가 아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O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또 원하시는 자를 완악하게]하기도 하시는 분이라고 18절에서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실까, 아니면 완악하게 만드실 것인가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 적 상황인 것입니다.





O 그 반면에, 이 하나님의 자비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신약 적으로 적용하면,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실 때, 아주 분명한  조건 한 가지 갖고 계시는데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그분을 믿으면,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주를 믿지 않으려 할 때는,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악한 상태로 저주 받은 상태로, 멸망의 상태로, 그냥 그대로 놓아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버림을 받도록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O 17절에 [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 이는 내가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이고 또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서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기를 라고 하시는 것은 성경  자체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셨던 이

유는,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려고 세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또,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집트의 바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비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완악함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O 그래서 18절에서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자비를 베푸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또 원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고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집트 왕 바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완악한 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얼마나  완악한 자인지를 이미 아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출3:19절에 보면, [내가 확실히 아노니, 어떤 강력한  손으로도 이집트 왕이 너희를 결코 가게 하지 아니할 것이나]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물론, 바로가 이토록 완악하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손을 쓰신 것도 아닙니다 .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무엇인가 행하기를 시작하시기 이전에 어떤 강력한 손으로도 이스라엘백성들을  나가게  하지 않을 만큼 그의 마음은 이미 완악한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O 그래서 출5:1-2절에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들어가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내 백성을 가게 하여 그들로 광야에서 내게 명절을 지키게 하라. 하시나이다. 하니 파라오가 말하기를, 주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말을 복종하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주를 알지 못하며, 또한 이스라엘로 가게 하지도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O 이처럼 바로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기 스스로 자기 의지를 움직여 자신이 완악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가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도록  예정하셨지만, 그러나 그 완악함 역시, 사실은 그 자신이 먼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나타낸 반응 때문에 그렇게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