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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의로...

박종각 2019. 5. 28. 00:02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의로...

 


                                               롬4:4-5절 말씀입니다. 


                      [이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 보수가 은혜로 여겨지지 않고 빚으로 여겨지지만,

 5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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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어제 바울은 [아브라함이 육신의 행위로 과연 무엇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면서, 만약 아브라함이 온전하게 자신의 육신의 행위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었다면, 자신에게는 매우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O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이 있고, 또 행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함이 아무리 크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는데 필요한 행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서 의로 여김을 받는데 있어서 바울은 그의 믿음만을  강조합니다.  O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 야고보는 바울과는 다르게 말하는 것을 같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아브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하는 반면, 야고보는 아브람은 행위로써 의롭게 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아브람이 믿음으로 의로 여김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가, 그것은 바로 창15:6절이었습니다. O 그렇다면 야고보는 왜 아브람이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야고보는 지금 창22장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창22장을 연상하면서[아브라함이 행함으로서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비로써 의롭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O 물론, 창22장에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렸다는 것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행함]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아브람이 완전하게 의로워진 것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O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창22장에서의 아브람의 그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O 왜냐하면, 아브람은 창15장에서 그가 하나님을 믿었을 때, 그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의로  여김을 받았고, 그리고 창22장의 아브람의 행위는, 그 일이 있는 후,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 자신의 믿음의 진실함을 행위로 증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로부터 의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믿는 그 믿음을 행위로 증명해 보여야 아브라함처럼 완전하게 의롭게 되는 시대였던 것입니다.


O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이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구약시대처럼, 믿음에 행함이 동반되어야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만을 믿을 때, 그 믿음이 우리의 의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에서[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단순히 의로 여겨지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더 나가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믿는 동시에 우리는 완전하게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롬3:2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고 말씀 하시고, 또, 롬3:28절에서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고 바울은 선언합니다. O 바로 이 점이  우리가, 구약의 아브라함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분명히 창15장에서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러나 그 믿음으로는 그가 완전한 의로움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아직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이였기 때문이요, 그리고 그의 믿음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O 그래서 구약의 믿음은 무엇인가 한 가지가 빠진 것처럼 부족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아브람이  믿음으로 얻은 것은, 단순히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정도였지, 그의 믿음으로 그가 완전하게  의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완전하게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가 믿는 그 믿음에, 다른 한 가지를 추가해야만 완전하게 의로워 질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행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창세기 15장에서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고], 그리고 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창세기 22장에 가서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려지는 그 추가적 행위를 통해서 비로써 아브람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의롭게] 된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 사실만을 생각하면서 약2:21절에[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고 말했던 것입니다. O 바로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다른 점이고, 바로 이점이 우리의 경우와, 아브라함의 경우가 다른 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전혀 행위가 추가되지 않아도, 다시 말하면, 행위를 요구하는 율법을 우리가 행하지 않아도, 오직 믿음 한 가지 만으로, 구약에서 요구했던 믿음과 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져서 우리들은, 완전한 의로움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우리들의 구원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0그래서 우리들이 한번 구원 받으면, 그 구원은 주 앞에서 영원히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는 이 구원은 취소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만약 구원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세상과 더불어 살고,  죄와  더불어 삶을 때 비록 그 혼이 지옥은 가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에게는 이 세 상에서의 어떠한 복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잘 안 갈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오는 병도 있고, 또는 실패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O 왜냐하면,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를 더욱 견고히 세워 주시고 주님의 은혜 안에 붙잡아 주시려는 주님의 뜻과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세 번씩이나 주께 기도 했을 때, 고후12:9절에서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그런데 만약 구원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세상과 더불어 살고, 죄와 더불어 살고 신실하지 못한 삶을 때, 비록 그 혼은,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러나 은총 속에서  오는  것들이 아닌, 주님의 징계에 의해서 병들고, 실패하고 그리고 처절한 고통을 당하다가 때로는 불행하게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분명히 행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행위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받은 구원을 유지하기해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행위의 열매는,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때문에, 우리가  어두움에서 살지 아니하고 빛의 자녀로 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맺어지는 빛의 열매인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빛 되게 살기 위해서, 행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에서 바울은,[이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 보수가 은혜로 여겨지지 않고 빚으로 여겨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에게는]이라고 하는 말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하는 율법의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구약의 시대처럼, 율법의 행위로써  의롭게  된다면,  우리는 율법과 계명에 순종하고, 아브람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지라도, 그 믿음이 진실 된 것이라는 사실을, 행위로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약, 행위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해 보이려면,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열심히 율법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구약의 방법대로 한다면, 우리

가 믿기만 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 가는, 우리는 절대로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롭게 되기 위해서 열심히 부지런히 온 힘을 다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O 그렇게 해서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믿고,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행위를 통해서, 아브라함처럼 그 대가를(즉, 의롭게 되는 것을) 보수로 받았다면, 이때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 보수는 하나님의 [은혜]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정당하게 일하고,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정당하게 받은 보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위해 우리가 열심히 일을 했으면, 이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거저 주는 은혜가 아니라, 상대방이 나에게 정당하게 줘야할 [빚] 이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열심히 지키며, 그 말씀에 철저히 순종을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연이 그 사람을 의롭게 해줄 의무가 있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빚을 지신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행위의 대가로 그를 의롭게 해주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은혜로 간주될 수가 없고, 당연히 받아내야 할 빚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바울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러면서 바울은 5절에서 그러나 아무런 [행함이 없어도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행하지도 아니했을 뿐더러 행할 수도 없는 죄와  허물로 물들어

있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불의하고 추악한 죄인이었는데, 그런데, 주님을 믿기만 하면, 나를 의롭게 해주

고 구원해 주신 다는 복음을 듣고, 나는 그분을 믿고 그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는데, 그런데 내가 믿었다는 단지, 그 한 가지 조건 만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의롭게 여겨주셨고, 나를 의롭게 해주셨으며, 나를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주셨고 영생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O 그런데 이렇게 내가 받은 이 구원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받은 정당한 대가 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천번 만번을 생각해도 이것은 내게 과분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빚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의 빚을 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아무것도 행한 것도 없는데, 단지 믿었다는 그 한 가지 것,  때문에  우리를 의로 여겨 주셨기 때문

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