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영접함으로...
주 일 예 배
히11:23-40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태어났을 때에 출중한 아이로 보였기에, 그의 부모가 삼 개월 동안 숨겼으니, 이는 그들이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잠시 동안 죄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택하였고 26그리스도의 능욕을 이집트의 보화들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음이라. 27믿음으로 그는 왕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으니 이는 그가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처럼 견디었기 때문이라. 28 믿음으로 그가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지켰으니, 이는 첫태생을 멸하는 이가 그들을 손대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라. 29믿음으로 그들은 마른 땅을 가듯이 홍해를 통과하였으나 이집트인들은 그렇게 해 보려고 시도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느니라. 30믿음으로 그들이 칠 일 동안을 돌았더니 여리코의 성벽이 무너졌느니라. 31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안히 영접함으로 믿지 아니한 자들과 더불어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또한 사무엘과 선지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라. 33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왕국들을 정복하기도 하고 의를 이루기도 하며, 약속들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소멸시키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함 중에 강하게 되기도 하고 전쟁에서 용맹스럽게 되기도 하며, 외적들을 패주시키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그들의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함이라. 36또 어떤 사람들은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의 시련도 받았고, 더욱이 결박당하고 감옥에도 갇혔으며 37돌로 맞고, 톱으로 켜지고, 시험을 당하고, 칼로 살해되었으며, 양의 가죽과 염소의 가죽을 쓴 채 유리하며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당했느니라. 38(세상은 그들이 살 만한 데가 못 되었으므로) 그들은 광야와 산속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하였느니라. 39이 사람들이 모두 믿음을 통하여 좋은 평판을 얻었으나 그 약속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4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어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사 우리가 아니고서는 그들이 온전케 되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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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우리는 22절에서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이 떠날 것에 관하여 말하였고, 또 자기 유골에 관하여 명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세상의 유형이요, 죄의 유형입니다. 그래서 이집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야 할 곳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죄의 유형인 세상과 일치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12:2절에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
인지 입증하도록 하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O 요셉은 17-18세 때, 자기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이렇게 종으로 팔려온 요셉은 마침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거기서 3
대까지 보며 살다가 110세에 애굽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90년 이상을 애굽에서 산 것입
니다. 그러나 요셉은 땅에 매장되지 아니하고 입관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가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 함께 애굽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죽은 자를 앞세우고,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 홍해바다를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O이것이 바로 신약성도들의 성도들의 휴거의 모형인 것입니다.
O 그래서 살전4: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24-25절에서는 모세의 믿음에 대해서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고]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정성한 뒤에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 되는 것을 거절한 것을, 여기서 [모세의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파라오가 악한 사람이라는 것
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천만금을 준다 해도 악인의 장막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84:10절에 [이는 주의 뜰에서의 하루가 천 날보다 더 나으며, 악의 장막들에 거하는 것보다 내 하나님 집에서 문지기가 되는 편이 더 나음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O 믿음의 사람은, 악인의 간계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어떤 일을 도모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은, 잠3:33절의 말씀과 같이, 악인의 집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씀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은, 잠24:16절의 말씀과 같이, 악인은 재앙으로 넘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은, 전8:13절의 말씀과 같이, 악인은 무엇을 하든지 결국은 잘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O 모세는 파라오의 딸에게 입양되어 장성할 때까지는 파라오의 집에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이집트인들의 모든 지혜를 배우는 데에 있어서는 그랬습니다.(행7:22). 그러나 장성한 후, 그는 그
집에 속하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종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했던 것
입니다. 이것을 2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능욕]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O 모세가 [그리스도의
능욕]을 받았다는 것은, 모세가 받은 능욕은, 주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종류의 능욕이라는 것입니
다. 왜냐하면, 모세는 의롭게 행하다가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받은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모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음이라]는 것은, 모
세가 [잠시 동안 죄의 낙을 누리지]않고 의롭게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바라보았다는 말입니다.
신약의 사도들도 역시 그리스도를 위해 모욕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행5:41절에 [사도들
은 그분의 이름을 위해 모욕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짐을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말
씀 합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위해 모욕 받을만한 자로 여겨진 다면, 이것보다 더 영광스
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O 그러나 죄의 낙을 누리는 것은 [뱀처럼 물며, 살모사처럼 쏘게] 되는 일이라고 잠23:32절에서 말
합니다. 또 그런 일들의 끝은 항상 죽음이며 지옥이라고 잠14:12절과 7:27절에서 말씀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악을 즐겨 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악한 일에 대한 징벌
이 속히 집행되지 않기 때문에 악한 일에 대한 징벌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8:11절에 [악한 일에 대한 징벌이 속히 집행되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그들 안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정해졌도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사실, 모세는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 쾌락을 즐길 수도 있고, 반대로 백성을 위해서 고난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고난을 선택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택 앞에서 살아갑
니다. 매일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그 선택에 의해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O 그런데 우리의 선택이, 항상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혹은 선이냐? 악이냐? 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이냐? 아니냐?]를 놓고 선택하게 될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 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이 아니라 다른 것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오
히려 고난을 택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 적으로, 육신적으로는 결코 이치에 맞지 않는 선택입니다. 이것이 바로 A. D.400년부터 1900년까지 로마 카톨릭 제도 안에서 죽은 순교자들이 선택했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O 그들은 당시 옳은 것을 행하다가,주를 위해 선택하다가 화형당할 수도 있었고, 또 그들의 선택에 따라 비록 한 때이기는 하지만,죄의 낙을 누리며 세상의 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을 당하고 화형당하는 길일지라도 영원한 생명의 길을 택했습니다. 모세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죄를 통해 오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고, 반대로 자신의 선택에 따라 고난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모세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고]라고 말합니다.(25절)
O 그리고 27절에 [믿음으로 그는 왕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으니, 이는 그가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처럼 견디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
한 것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파라오를 두 번 떠났습니다. 한번은, 그가 아직 왕궁에 있으면서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고 불림받기를 거절 했을 때입니다. 이것은 아직 몸은 떠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후에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치는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떠남은, 출애굽입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온 백성을 이끌고 떠났습니다. O 첫 번째 떠남에서 모세는, 왕을 떠나, 노예 된 그의 백성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떠남에서 모세는, 온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로 떠났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모세가 [믿음으로] 이집트를 떠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O 29절에 [믿음으로 그들은 마른 땅을 가듯이 홍해를 통과하였으나, 이집트인들은 그렇게 해 보려고 시도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출애굽기 14장의 일을 말씀 합니다. O 오늘날 틈만 있으면 성경에 대해서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적으로 바다를 통과한 것이 아니라 갈대가 무성한 늪지대를 통과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기적도 아니고 별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O 그런데 만약, 이들의 말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갈대밭을 통과했다면, 이것은 홍해를 통과 한 것보
다도 더 큰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공격하는 자들이 말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대밭을 건너갔는데도 이스라엘백성들은 양 새끼 한마라도 빠져 죽지 않고 모두 다 통과 했는데, 파라오의
군대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다 자신들이 말하는 그 갈대밭에 빠져 죽었기 때문입
니다.(출14:28) O 다시 31절에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안히 영접함으로 믿지 아니한 자들과 더불어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 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6장의 사건입니다. 여기서 영적인 부분만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군대가 여리고 성을 돌 때,라합은 창문에 주홍 실 줄을 매달았습니다.(수2:18).그리고 그것이 생명을 얻는 표가 되어 그녀와 그 가족은 성이 무너질 때 멸망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O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유월절 밤에 피를 문설주에다 바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문설주에 붉은 피가 묻어 있는 집은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이 지나가게 된 것입니다.그 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 합니다. 라합의 줄도 붉은(주홍색)줄이었습니다. 붉은 것은 피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라합이 붉은 것을 창에 맨 것은 유월절 피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연관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붉은 색은 악한 자와 창녀의 색이기도 합니다. O 그래서 계1717:3-4절에 [그가 나를 영 안에서 광야로 이끌어 가니라. 또 내가 보니,한 여자가 주홍빛 짐승 위에 앉아 있는데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더라. 또 그 여자는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장식하고 손에는 금잔을 가졌는데 그 잔은 가증스런 것
들과 그녀가 행한 음행의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찼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라합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마21:31). 그리고 32절에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또한 사무엘과 선지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라]고 말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의 죄들을 덮어버리고 넘어가는 모습을 계속 보게 됩니다. 사실 본문에서 나열
한 사람들은 모두 죄들로 실패한 사람들이지만,그러나 성경은 이들을 믿음 있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기 이전에 세 번씩이나 의심한 사람이었습니다.(판6:17,37,39). O 바락도, 겁을 먹고 드보라가 자기와 함께 가기를 요구했습니다.(판4:8). O 삼손은, 여자 때문에 실패한 자였습니다. O 입다는, 창녀의 아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서원으로 죽이지 않아도 되는 딸을 죽인 자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입다가 자신의 서원을 지킨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믿음의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믿음에 의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를 제물로 드렸고, 그것은 믿음의 행위라고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입다의 행위는 아브라함과 같은 그런 행위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입다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명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넘겨주시면 승리하고 돌아올 때 가장 먼저 자신을 맞이하는 자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스스로 맹세한 것입니다.
O 그리고 그것이 어떤 서원이든 간에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입다의 생각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서원, 다시 말하면 그것이 [반 성경적 서원] 이었다면, 그것이 잘못된 서원이었다는 것을 주께 고백하고 거기에 따른 속죄의 제물을 드리므로 잘못된 서원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다가 알고 있었던 것은 전5:4-6절뿐이었습니다.
O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면 갚는 것을 미루지 말라. 그는 어리석은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시나니 네가 서원한 것을 갚으라. 네가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으니라. 네 입으로 네 육체를 죄짓게 하지 말며, 너는 그 천사 앞에서 그것은 실수였다고 말하지 말라.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네 음성에 화내셔야 하며 네 손으로 한 일을 멸하셔야 하겠느냐?]라는 말씀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다는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의 서원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O 그래서 입다는 전5:2-6절의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레5-7장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레위기에는 여러 제사의 규례들이 자세히 나옵니다만, 그러나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는 규례는 어디에서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는 모두 쫓아내라고 하신 것이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신18:10-11절에 [자기 아들이나 자기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나 점치는 자나 때를 살피는 자나 마법사나 무당이나 마술사나 부리는 영들에게 묻는 자나 마법사나 강신술사를 너희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할지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서원을 하라고 입다 에게 말씀하신 적도 없으시고, 그리고 입다가 그 서원을 갚았다고 해서 그 서원을 받으시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갚을 필요가 없는 서원을 갚았던 입다 의 행위는 분명히 그의 죄였습니다. 그러므로 입다 는 자신의 서원이 잘못된 것임을 주께 고백하고 거기에 따른 속죄의 제물을 드리므로 잘못된 서원을 돌이킬 방법으로 레5:4-10절에서 말씀처럼 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레5:4-10절에서 하시는 말씀은, [반 성경적]인 어떤 것을 행하기로 하나님께 맹세하는 잘못을 범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O 그래서 하나님께 잘못된 서원을 하여 죄가 되었을 때, 그 죄를 자백하고 그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속죄 제물을 드리고 번제물을 드리면 그는 용서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 는 성경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그 성경을 읽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생사람을 잡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것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딸들이 일 년에 나흘씩 입다 의 딸을 위해 애도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잘못된 전통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입다 의 서원은 잘못된 것이었고. 그가 행한 것은 분명히 죄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O 그렇다면, 입다의 어떤 행위들이 그의 믿음을 나타내는 행위들이었습니까? 그것은 재판관기11장에서 암몬 자손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들과 싸운 바로 그것입니다. 암몬 자손들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을 뺏으려고 할 때 입다 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유업으로 주셨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판11:15-27). 그는 또한 에프라임의 도움 없이도 암몬 사람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판l2:l-3). 이것이 바로 그의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O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땅]에 대한 언약을 분명히 믿었던 것입니다.(8-9절). 이처럼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등은 모두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기 전에 그들을 다스렸던 재판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외세에 맞서 싸우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그 [땅]을 지켰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고 들어온 땅, 이삭과 야곱이 약속으로 상속받은 땅, 그리고 앞으로 그 약속이 성취되어 완전한 도성이 세워질 바로 그 땅을 재판관들은 모두 그 땅에 대한 약속을 신실하
게 받고 그 땅과 그 백성을 지킨 것입니다. 입다는 암몬 자손들이 [땅]을 요구했을 때 거절하고 그
땅을 지켰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마지막 재판관이었습니다.O 다윗은 영원한 왕국과 영원한 보좌에 대한 약속을 구체적으로 받았습니다.(삼하7:12-16). 선지자들은 범죄한 이스라엘의 멸망과 메시야로 인한 회복을 설교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이 일들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33절에서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라고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모든 시대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 율법 이전에도 믿음이 필요했고, 율법 아래서도 믿음이 필요했고, 모든 구약시대와 신구약 중 간사 시대,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와 사도행전 시대, 모든 교회시대를 거쳐 다니엘의 칠십 째 주가 끝날 때까지, 이 믿음이라는 요소는 실제적으로 성도들을 이끌렸습니다.
O 또, 33절에서 [왕국들을 정복하기도 하고]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와 개판관기와 사무엘상하,열왕기상하에서 볼 수 있는 왕국의 정복자들, 그들의 이름은 여호수아, 바락, 기드온, 다윗, 요압,입다, 갈렙, 웃시야, 요아스, 여호사밧, 르호보암 등입니다. 또, [의를 이루기도 하며](33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습니다. 모든 선지 서들의 기록들과 미가야(왕상22장). 엘리야, 여호야다(왕하11-12장), 솔로몬(왕상l- 3장), 아비가일(삼상25장) 등등...입니다. 또, [약속들을 받기도 하고](33절)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뿐만 아니라, 역대기상 4장에서 야베스(대상4:10). 산하나 전체를 받은 갈렙(수l4장)등 [약속을 받은 자]들은 성경에서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O 아비가일은 많은 생명을 구했고,여호수아는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에 대한 그 약속의 성취를 다시 약속받았으며, 다윗은 삼하7:12절의 약속의 성취(영원한 왕국)를 바라보며 살았고, 광야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는 소망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받아 그 약속이 성취되기를 믿음으로 기다리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또,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33절)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갇혔지만 사자들은 그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단5장). 바울도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딤후4:17).
O 34절에서 [불의 세력을 소멸시키기도 하고] 라고 말씀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드락과 메
삭과 아벳느고가 그랬습니다. 또, [칼날을 피하기도]한 것은 사무엘상에서 여러 번 겪게 되는 다윗
의 경우입니다.(삼상 22-26장). 여리코를 정탐하러 간 두 명의 정탐꾼들도 마찬가지입니다.(수2장). 그리고 아비 아달이나(왕상 2: 26), 베드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행l2:l,20).
O 또, [연약함 중에 강하게]된 것은, 삼손과 여호수아와 다윗의 용사들과, 히스키야 등입니다. [전
쟁에서 용맹스럽게 되기도 하며, 외적들을 패주시키기도] 한 것은 역대상이나 사무엘하에서 아주
자세하게 말씀 하십니다. O 다시 35절에서 [여자들은 그들의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 받기도 하고]
라고 말씀 합니다. 엘리야 때의 사르밧과부(왕상l7:2l)와 엘리사 때, 수넴 여인(왕하4:35)의 두 경우
입니다. 신약에서는 나인성 과부도 아들을 돌려받았고, 마리아와 마르다도 그들의 형제 나사로를 죽음에서 돌려받았습니다. 또,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으니]라고 말씀 하십니다.이것은 마카비 시대의 박해받던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안티오커스4세 때,유대인마카비에 의해 저항운동을 이르킨자)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은, 자기의 태도를 바꾸면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바울도 아그립파 앞에서 자기의 주장을 철회함으로써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O 2000년 교회사 동안에도 왕들과 교황들 앞에서 신앙을 철회하지 않음으로써 고문을 면하지 않았던 믿음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잘못된 길을 택했다면 면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들은[더 좋은 부활]을 바라보며 그 일들을 믿음으로 견딘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을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O 36절에서 [어떤 사람들은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의 시련도 받았고]라는 말씀은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으며(행5:40;7:59;13:45;20:23), [결박당하고 감옥에도 갇혔으며]도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습
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조롱과 채찍질과 결박을 당하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예들은 구악에서도
발견됩니다.(왕상 22장, 렘 38장). 37절에 [돌로 맞고]라고 말씀 하시는데, 스테판에게 정확히 적용됩니다.(행7장). O 다윗도 돌로 맞을 번 하였고(삼상30:6).모세도 돌로 맞을 뻔 했으며(출l7:4).주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요8:59). O 또, 37절에 [톱으로 켜지고 시험을 당하고 칼로 살해되었으며, 양의 가죽과 염소의 가죽을 쓴 채 유리하며,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당했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그렇습니다. 여기에서 말씀 하시는 것들은 성경에서 기록된 예로써는 찾아본 수 없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교회시대에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암흑시대에 박해를 받던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O 그들은 단지 양과 염소의 가죽을 쓰고 유리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때로 그들은 양과 염소의 가
죽으로 꿰 메져서 독사들이 가득 찬 곳이나 강물에 버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고문을 당하면서도
왜 그들은 굳이 면하려 하지 안했을까? 그것은 [그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함이라.]고 말씀 하
십니다. 그런데 그 더 좋은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땅의 유업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은 아직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O 그래서 39절에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통하여 좋은 평판을 얻었으나 그 약속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라고 말합니다. 히6:15절이나, 히7:6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다고 하고, 히11:9절에서도 그는 약속의 땅에 거했다고 했으나, l3절에서는 약속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또 l7절에서는 그가 약속을 받았다고 했으나, 39절에서는 약속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약속받은 그 내용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어떤 부분은 약속한 것을 받았으나 어떤 부분은 아직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의 여러 곳에서 약속을 받았다는 것은 어떤 행위를 한 후에 받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6:12,15;10:36).히6:l5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끈기 있게 견딘 후에]약속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약속을 받는 것이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시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의 내용이 성취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O 아브라함의 경우에서 그가 악속을 받았다는 것은, 창세기 12장에서 말한 것처럼 그가 복을 받는다는 것이 그의 생애 동안 성취되었고, 그의 씨가 복을 받는다는 것이, 그의 죽음 이후에 성취되었으나, 그가 아직 약속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땅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지 못한 채로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그 약속이 이뤄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장차 임할 세상에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차 임할 세상]은 바로 천년왕국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마l2:32절에 [또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누구든지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없느니라. 이는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막10:30,눅l8:30,히2:5; 6:5). 그리고 여기 [더 좋은 부활]은, 바로 영적인 면에서도 분명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이 바로 고전15장의 부활인 것입니다. O 그래서 15:51-54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 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에 눈 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 을 입으리라.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그때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바 되었느니라] 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라라]고 말씀합니다.
O 이 시대의 모든 성도들 역시 이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 때에 입게 될 영광스러운 몸을 기대하며 삽니다. 왜냐하면, 그때 사망을 이기신 분의 능력이 우리에게 입혀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활을 복음의 한 요소로 전파하는 것입니다.
0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로 인해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로 인해 우리도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로 인해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입게 될 것이고,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어린 양의 혼인식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고, 천년왕국뿐만 아니라 영원세계에 이르기까지 그분과 함께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들 앞에는 더 좋은 부활, 영광스런 부활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믿음의 선배들은 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해서] 극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그것을 굳이 피하려 하지 않으려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우리를 영접해 주시기 위해 우리를 기다시는 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믿음으로 삶을 살다가 주께서 공중으로 내려오실 때 더 좋은 부활로 들림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