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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에녹을 옮겨졌으니...

박종각 2018. 8. 12. 01:22

                                   하나님께서 에녹을 옮겨졌으니...

 

                                             주    일    예    배

                                             히11:1-6절 말씀입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 2원로들이 그것으로써 좋은 평판을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는 것들로 된 것이 아니니라. 4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을 인정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느니라.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옮기셨으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그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이 증거를 지녔느니라.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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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2절에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 원로들이 그것으로써 좋은 평판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9-10장에서 히브리서가 단지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교회시대의 성도들에게도  충분하게 적용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그분의 피로 용서하시고, 마침내 우리를 위해 [새 언약]을 이루어 주신 사실을 보여 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8:7절을 보면,[만일 그 첫 번째 언약이 흠이 없었더라면 두 번째 것이 요구될 여지가 없었으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첫 번째 언약이 폐지되고 다시 새로운 언약이 맺어진 목적은, 첫 언약 때에 범죄 한 것들을 구속하시기 위한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첫 언약 즉, 율법에 속해있던 구약의 사람들은, 동물의 피로 정결케 되어야 했지만, 그러나 동물의 피로는  육신은 깨끗하게 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양심을 결코 깨끗케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매년 반복적으로 이 동물의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써 새 언약을  맺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의 언약을 말씀 하십니다. 첫 번째 언약은, 옛 언약이라고  부르는  율법으로부터 온 언약이 있고, 두 번째 언약은, 즉 새 언약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주께서 피 흘러 죽으심으로  주시는 언약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온 옛 언약에 속한 사람들이 아무리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린다 해도 그러나 그들의 양심을 결코 깨끗케 할 수 없지만 하지만 주님의 피로 이루어진 이 새 언약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떠한 피도 흘릴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O 그래서 율법으로 온 옛 언약을  계약적인 언약(커버넌트) 즉, 구약이라고 말하고, 그리고 주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주신 언약을[유언적인(테스터먼트) 언약], 즉 새 언약 신약이라고 히브리서에서는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로부터 시작해서 마태복음 27장까지에 이르는  모든 구약 희생제물의 죽음은, 집합적으로 [옛 언약]즉, 구약을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새 언약인 신약의 시작은, 주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처형되시고 피 흘러 주신 이후부터 비로써 유언 적 언약인 바로 신약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언제부터 신약이 시작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히브리서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불려 져 왔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본받으라고 주어지는 [믿음의 행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본문은, 여전히 히브리인들에게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히브리서]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을 주시는 그 사이에도, 여전히 모든 것이 왕국을 바라보는 히브리인들에게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라고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든지 반드시 그 실체를 증명하고야 마는 것이 또한 믿음인 것입니다.





O 그래서 믿음이란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만질 수 있을 만큼  아주  확실하게 나타는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그 삶에게서  그 믿음의 증거가 보이지 않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13:5절에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또, 고전4:20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아무리 나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 할지라고,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도  없고  실천적  순종도 없는 삶고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나타나는 결과만 보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서에  보면 이러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격이 [분명히 보여 졌다]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래서  롬1:20절에 [세상의 창조 때부터 그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이 교리를 믿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교리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이 급속도로 배교로 치닫는 가장 큰 이유는 올바른 교리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교리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틀린 것인지를 보여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바로 무엇이 옭고, 무엇이 틀린 것인가를 정확히 보여 주는 교리인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성경대로 믿지 않고, 성경대로 전하지 아니하며,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100%로 배교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절대적인 권위로 옳고 그름을 정해놓으신 그 기준인 성경을 벗어나 자기 생각대로,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성경적 교리를  떠나면,  구원자체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성경은 인간들에게 구원받은 교리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6:17-18절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교리를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죄인인 모든 사람이  처할  운명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소망이 없이 지옥에 가는  인류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교리를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이 교리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사실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믿을 때, 그 사실은 우리에게 그 결과로 확증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고, 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2절은 [원로들이  그것으로서 좋은 평판을 얻었느니라]고 말합니다.





O 그리고 3절부터 제시되는 원로들의 예들은 그들이 이 믿음을  발휘함으로써 얻은 확실한 결과 즉, 믿음의 증거들을 우리에게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평판]이라는  말은,[보고서]를 말하는데, 이것을 좀 쉽게 말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성적표]와 같은 것입니다. 아벨, 에녹, 아브라함, 노아, 삼손, 다윗 등의 많은 우리의 원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들의 믿음을 실행하였고, 그리고 각각 자신들의 믿음에 대한 보고서를 남겼는데, 그 보고서들은  모두 [선한 보고서] 좋은 평판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있어서 좋은 평판을 받았습니다.(4절). 노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에 있어서 좋은  평판을 받았습니다.(7절). 아브라함은 믿음을 실행하고(8-9절),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에 대해서 좋은 평판을 받았습니다. (17절).이처럼 믿음이란 모든 세대에 걸쳐 모든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실제적인 요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에서 제외되는 예외적인 시대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 창1-2장과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이후, 계20-22장에 나오는 천년왕국과 영원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믿음이 필요치 않는 시대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믿음을 행사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O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l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이고, 그래서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달랐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보았고, 그리고 보이는 가운데 아담은 행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주께서 재림하신 후 천년 왕국 때에는 아들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눈에 보이게 이 땅에 계시므로,  사람들은  그분을 보는 가운데 행할 것입니다. 물론 초림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게  계셨으나,  그때 사람들은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O 그것은 예수님께서 무언가를 행할 것인가에 대한 믿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한 바로 그 믿음이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어떤 것들에 대한 믿음이 예수님 초림 때에는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재림 후에는 그분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미 행하신 일에 대해서 보고 행하는 것이며 또 그 때에는 더 이상 예언도 없기 때문에 특별히 믿어야 할 어떤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오직 행위만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구원에도 직접적으로 영항을 끼칩니다.신약시대에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환란시대에는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지만, 천년 왕국시대에는 오직 행위로만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마5-7장)3절에[믿음으로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는 것들로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온 우주를  지으셨습니다.진화론자들이나, 과학자들이 어떤 이론을 내세우며 어떤 거짓말을해도 하나님께서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셨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1:2-3절에서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들을 지으셨다고 했으며, 또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고 계신다고  말씀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과학과는 반대로 어떤 물질에 의해서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O 그래서 3절에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는 것들로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어떤 증명된 사실만을 믿습니다. 과학으로도 잘 증명되지  않을 때  그들은 가설을 만들어 내세우며, 마치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그것을 추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들을 사실과 믿음으로 분명하게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인 것입니다. 과학이나, 철학이 어떤 말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진리]라고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진리]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으니,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을 인정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젠가  TV을 통해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어떤 사람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직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바로 죽은 자의 무덤이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그가 제일 먼저 어딘가를 찾아가야 했었다면, 그곳은 죽은 자의 무덤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살았든, 죽었든 인간들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후4:7절에 [...그 능력의 탁월하심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님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살아계신 주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반대로 죽은  자들의 무덤을 찾아가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에게 돌아올 표를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만들어진 어리석은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왕 그 죽은 자의 무덤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면, 그 죽은 자로부터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단지 사람들의 귀로 들을 수 없을 뿐이지, 죽은 자들은 그들이 처한 곳에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 자가 자신의 피를 통해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창4:9-10절에 [주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모르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부르짖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  계6:9-10절에  [어린양이 다섯째 봉인을 여실 때 내가 보니, 제단 아래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죽임당한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이 큰 음성으로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여,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시어 우리의 피를 갚아 주실 날이 얼마나 남았나이까?]라고 부르짖습니다. 또, 죽은 자가 지옥의 고통 속에서 울부짖기도 합니다. 그래서 눅16:24-29절에 보면,  큰 권세 자였고,  큰 부자였던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불구덩이의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자가 저 멀리 지옥의 건너편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구약의 때에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는 지옥과 낙원이 지하 세계에 같이 있었습니다. 이 부자였던 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으로부터  단호히 거부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가 부르짖기를 [그러면 아버지여, 내가 당신께 간구하오니  당신께서 나사로를 내 아비 집에 보내어 주소서. 나에게 다섯 형제가  있으니 그가 그들에게 증거하여  그들로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을 합니다.





O 또 본문에서처럼 그 믿음으로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자 아벨은  죽었습니다,그런데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아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믿음으로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을 성경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으니]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 때만 더 나은 제사를 주께 드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벨이 드린 더 나은 제사는 바로 피의 제사였습니다. 율법 이전에도, 그리고 율법 하에서도, 또 율법이 끝날 때에도 모든 제사는 [피]로 드려졌습니다.  아벨에게 누가 이것을 말해 주지 않았지만, 그러나 아벨은 믿음으로 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반면에  가인은 농산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카인이 들린 제사는 아벨의 제사를 흉내 내는 제사였습니다.그는 마음으로부터 드려지는 자발적인 제사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카인은  제사를 믿음으로 드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믿음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마음으로부터 드려지는 제사는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고, 그분만을 신뢰하고 진정으로 그분의 자비를  구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드려지지 않은 제사는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의를 내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인의 제사는 자신의 수고와 땀을 내세우는 농산물들이었습니다.


O 자신의 수고를, 자신의 땀과 노력을,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 그런 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열납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서 드리는 것, 우리가 주께 드리는 제사는 우리의 어떤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주께서 베푸신 것에 대한 감사를  마음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벨은 자신이 죄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구속의 피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피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의로운 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었으나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을 인정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O 그렇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리고 그가 죽은 이후에도, 심지어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그는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드린 어린 양의 피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 피의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히l2:24). 하나님께서  아벨에게 [증거를 주셨다]는 분명한 증거는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눈에 보이도록 받으셨다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어 아벨의 제물을 사르신 것입니다. 5절에[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그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이 증거를 지녔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옮겨졌다]라는 말은 장소를 이동했다는 말이기도  하면서, 그 속성이 바뀌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속성이 다른 어떤 것으로 옮기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에녹은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의 몸의 속성이 완전히 변해버렸고, 그리고 변해진 그 몸은 [옮겨져] 이 땅에서 셋째 하늘로 이동한 것입니다. 그래서 셋째 하늘로 옮겨지면서 죽음을 보지 않은 사람은 구약에서 에녹이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도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지만, 그러나 그는 [죽음을 보지 않을 사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환란 죽으러 다시 내려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O 그러나 에녹은 죽지 않고 올라가서, 다시 죽지 않을 유일한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증거]를 가졌습니다. 사실 구약시대에, 거듭나지 않은, 아담의 모양과 형상을 입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은 이것은 보통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롬8:8절에서는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녹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질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 휴거되어 결코 죽지 않는 교회시대의 성도들에 대해 그가 분명하고 유일한 예표가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6절에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어둠 속에 행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사50:10절에[너희 가운데 주를 두려워하는 자가 누구며, 그의 종의 음성에 복종하는 자는 누구며, 또 어두움 가운데 걷고 빛이 없는 자가 누구냐? 그로 주의 이름을 의뢰하고, 자기 하나님을 의지하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미가서7:8절에 [오 내 원수야, 나를 대적하여 기뻐하지 말라. 내가 쓰러진다 해도 일어날 것이요, 내가 어두움 가운데 앉을지라도 주께서는 내게 빛이 되시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O 모든 과학과 철학과 교육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  어떤 학자들의 말보다도 성경을 더 신뢰하는 사람, 어떤 신조나 교단 교리, 어떤 교회보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더 믿고 신뢰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 어떠한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왜냐

하면 요17:17절에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과, 믿음 위에서 행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지속적으로 [믿음으로]사는 삶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가장 먼저 구원받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믿어야]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전혀 없습니다.


부모, 자식, 일가친척 그 누구라도 그들이 구원받지 않았다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지금 보이는 세상이 실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이 실제라는 것과, 그리고 바로 거기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함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골3:l-3). 그런 다음, 영원이 실제라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재물이나 지위나 재산, 정치적  위치나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모두 일시적인 것(고후4:18)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O 다시 6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불신자들이 하나님에 관해 어떠한 해답도 얻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여줘야 믿는다고 하나, 하나님께서는 믿어야 보여 준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대면했을 때, 그는 예수님께로부터 어떤 이적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아무 이적도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눅23:8-9). 왜냐하면, 그가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으나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하여 그것을 행하려는 의도로 물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아무 표적도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표적을 보아도 믿지 않겠다고 작정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존재를 믿지 않는 어떤 죄인에게도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에게 나아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를 막을 만한 것들이  제거되고 하나님과 원활한 영적 교재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교리적으로는  구약성도들에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히브리서11장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구약의 인물들임을  주목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다리는 소망은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39절).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아직 받지 못한 약속의 내용은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이 땅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이처럼  구약 유대인에게 주신 소망을 말하는 가운데도, 구원을 갈망하는 이방인에게도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0장의 코넬료가 바로 그 경우입니다.



코네료는 아직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지 않던 시대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구제하며 항상 기도하는 가운데(행10:2)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그에게 보내시어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베드로도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사는 누구라도 그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복음을 들을 기회를 주시고 그리고 그들에게 영생을 보상하신 다는 사실을 뒤 늦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누구든 간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는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잠8:17절에 [...나를 찾는 자들은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주를 찾은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될 것이고, 주를 찾는 사람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5:6절에 [주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고 말씀 하십니다.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를 찾는 자들은 주를 만나게 될 것이고, 주께서는 그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상해 주실 것이며, 또한 주를 믿고  신뢰하며 응답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역시 주께서 응답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하고 명백하고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주를 복음을 전파해서 그들로  하여금 영생의 보상을 얻게 하고,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기도 하고, 믿음으로 찬송하며, 믿음으로  감사하며 믿음으로 기쁨과 즐거움의 헌신하는 여러분들에게 놀랍고도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삶을 사시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