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이 온 땅을 덮었더니...
마 27:45-50절 말씀입니다.
[제육시에서 제구시까지 어두움이 온 땅을 덮었더니 46 제구시경에 예수께서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이라.47 거기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말하기를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하더라.48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즉시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식초에 적셔 갈대에 꿰어 주께 마시라고 주더라.49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이 말하기를 “가만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고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큰 음성으로 소리지르신 후, 숨을 거두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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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절에 [제 육시에서 제 구시까지 어두움이 온 땅을 덮었더니]라고 말합니다. 제 6시는 정오입니다. 유대인의 시간개념으로 저녁 6시에 하루가 시작되고 열 두 시간이 지나 아침 여섯 시에 다시 시간이 계산됩니다. 그러므로 “이른 아침”은 이방인의 시간으로 오전 6시, 삼시면 오전 9시, 육시면 정오, 구시면 오후 세 시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이 시간개념은 유대인에게 맞추어져 있지 않고 이방인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요19:14절에 보면, 그 날은 유월절 예비일이고 제 육지쯤이더라. 그가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왕을 보라”고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이방인 의 시간에 맞추어 빌라도가 주님을 심문한 시간을 육시. 즉 오전 6시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날 예수님께서 재판받으시고 돌아가실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전 6시에서 6시 30분 사이에, 빌라도 앞에서 마지막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빌라도의 군사들의 마지막 조롱은 오전 7시쯤이었고,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주님은 갈보리로 끌려가셨습니다. 주님께서 못 박히신 것은 오전 9시였습니다.마가는 제 삼시, 즉 오전 9시에 주께서 못 박히셨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막15:25절에 [제삼시가 되니 그들이 주를 십자가 에 못박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까지 약 세 시간 동안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그 사이에 주님은 포도주도 거절하셨고 사람들에게 비난받으셨으며, 행악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도 이 시간 중에 있었던 사건입니다.그 후 12시가 되자 오후 3시까지 온 땅은 어두움에 덮였고, 오후 3시 경에 주님은 죽으셨습니다.45절에 [어두움이 온 땅을 덮었더니]라고 말씀 합니다. 누가복음은 여기에다 [해가 어두워지고] 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눅23:45). 이 어두움은 초자연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어두워질 때 먹어야 하는데 아직 낮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양이 죽으시는 그 순간 온 땅을 어두움으로 덮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이 현상은 희석 되고 맙니다. ASV와 RSV는 누가복음의 [해가 어두워지고]를 “해가 빛을 잃었다” 라고 고쳤습니다. 더욱이 RSV에서는 각 주에다 “이것은 일식현상이었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NIV에서는 이 구절이 “해가 비추 는 것을 멈추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해가 어두워졌다”고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그 순간 물리적인 태양은 위대하신 태양 (말 4:2) 의 죽음 앞에 빛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양은 실제적으로 어두워진 것입니다. 어둠이 깔렸고, 마치 해가 진 것같이 되었습니다. 태양이 어두워지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셨습니다.(요19:26-27).그러나 주님께선 결코 마리아에게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어머니라 부른 성경구절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녀를 “여인이여”라고 부르셨습니다. (요2:4, 19:26). [여인이여. 당신의 아들을 보소서] (요19:26).46절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사탄과 벌이시는 영적 전쟁이 치열하며 매우 힘든 상황임을 보여줍니다. 범죄자도 아닌 주님께서 범죄자들과 더불어 버림을 받는 순간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전설은 마태가 마태복음을 히브리어로 썼고, 헬라어로 번역했다. 는 것인데, 이 구절은 마태가 원래 헬라어로 마태복음을 기록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저자는 히브리어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라고 쓴 후에 바로 그 뜻을 헬라어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만약 마태가 이 책을 히브리어로 썼다면 이 부분에서 헬 라어로 번역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히브리어로 된 전체의 책이 헬라어로 번역 되었을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이라는 번역은 굳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마태는 분명히 헬라어로 기록했고, 부분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히브리어를 삽입 하고 바로 헬라어로 해석해 놓았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말이 아람어로 기록된 후에 헬라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타니](막15:34). 마가복음과 더불어 아람어로 된 Q 문서를 참조하여 마태복음을 기록했다고 하는 “두 문서 이론” 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조차도 “엘로이, 엘로이,”라고 고치기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분명히 아람어로 된 Q 문서를 참조 하여 기록되지 않았고 성령님의 직접적인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께선 아람어를 기록하시지 않고 히브리어로 “엘리, 엘리,”라고 기록하셨습니다.이것이 마태복음이 마가복음과 달리 히브리어를 사용한 이유입니다. 46절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니까?]라고 말씀 합니다. 주님은 이미 열 두 시간 전에 이 일이 임할 줄 아셨습니다. 주님은 가능하다면 이 일이 임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피할 수 없이 임하고 말았습니다. 이 부르짖음은 순교자 의 부르짖음이 아니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생명의 보장과 하나님의 축복을 확신하는 가운데 죽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버림받은 슬픔에 대하여 부르짖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라고 부르짖지 않으시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이 순간 버림받은 것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인성을 소유하신 완전한 인간으로서 그분은 죄인 위에 부어 지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에 완전히 휩싸여서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의 부르짖음으로 부르짖으신 것입니다.“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부르짖음은 지옥에 있는 모든 죄인들의 부르짖음입니다. 이 순간주님은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위해 친히 죄가 되시고(고후5:21) 저주가 되시어(갈3:13)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신 것입니다.(마26:39).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입니다.(출12:1-12). 그 양은 물에 삶아지지 않았고 불에 구워졌습니다.(출12:9). 그분은 태양 아래서 “목마르다” 고 말씀하셨다(요19:28절). 그 어린 양은 대속 물로 드려졌습니다.(출13:13). 그 양은 누군가를 대 신하여 고통 받는 어린 양이었습니다.(사53:6,12,요1:29, 히 9:28, 벧전 2:24). 그분은 화해를 위해 드려졌고, 속죄를 위해 드려지신 제물이셨습니다.
그 제물의 유효성은 너무도 놀라워 그분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누구나 즉시로 구원받을 수 있고, 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안전한 보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생명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분을 영접한사람의 것이 될 것입니다. 47절에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고 말합니다.물론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을 잘못 듣고 엘리야를 부른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태양이 어두워지는 이 순간과 엘리야에 대해서 어떤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것입니다. 엘리야는 해가 어두워지는 크고 무서운 주의 날이 있기 이전에, 재림해서 주의 재림의 길을 예비할 것입니다.(암8:9,사5:30,13:10,암5:18,20,말4장, 숲1:15). 이제 주님은 고개를, 떨구시고 “목마르다”(요 19:28)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누가복음 l6장에서 지옥에 있는 부자의 말과 같은 말입니다.
사람들은 목마른 그에게 엘리야가 와서 도와줄 것이라고 조롱했으나, 엘리야는 주님을 도우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생애에서 주님께서 목말라 물을 필요로 하신 때는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물을 요구할 때 였고, 두 번째는 십자가상에서 죽음의 절규 가운데 목말라 하질 때였습니다. 주님은 쓸개탄 식초(발효된 포도주, 막15:23)는 받으시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해면에 적신 식초는 받으셨습니다.(요19;30). 50절에 [예수께서 다시 큰 음성으로 소리 지르신 후 숨을 거두지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마가복음은 이 일을 동일하게 기록하고 (마15;37). 누가복음은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씀하신 내용을 기록합니다. ([아버지시여,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나 이다] 눅23:46).주님께서 이렇게 부르짖으신 것은 스테판의 부르짖음과 같았습니다.
[주 예수여, 나의 영을 받아 주소서](행7;59) 그리고 이 부르짖음 뒤에 즉시, 용서의 간구를 드렸습니다. 그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여기에다 [다 이루었다](요19:30)는 말씀을 추가합니다.“다 이루었다”는 말은 그야말로 다 이루셨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선 큰 소리로 자기의 영을 하나님께 맡기신 후, 그분의 지상생애의 모든 사역을 다 마쳤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모든 사역이 끝났습니다. 구원이 완성되었습니다. 새 언약이 시작되었습니다. (히9:15-17). 구약의 희생제사는 완전히 끝났습니다.(히10:9). 더 이상 속죄를 위한 제물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히9: 12). 할렐루야!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끊임없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