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 폰티오 빌라도에게 넘겨주더라.
마27:1-8절 말씀입니다.
[아침이 되니, 모든 선임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에 대하여 의논하고 2 주를 결박한 후에 끌고 가서 총독 폰티오 빌라도에게 넘겨주더라. 3 그때 주를 배반한 유다가 주께서 정죄 받으신 것을 보고, 스스로 후회하여 은 삼십 개를 선임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되돌려 주며, 4 말하기를 “내가 그 무죄한 피를 배반한 죄를 지었다.”고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그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고 하더라. 5 그러자 그가 은전들을 성전에 내던지고, 나가서 목매어 죽으니, 6 선임 제사장들이 그 은전을 거두며 말하기를 “이 돈은 피 값이므로 금고에 넣는 것이 합당치 않도다.” 라고 하더라. 7 그들이 의논한 후에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으니, 이는 타국인들을 위한 묘지로 쓰려 함이라. 8그러므로 그 밭을 오늘까지 피 밭이라 부르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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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생애 중 가장 마지막 때를 기록합니다. 26 장에서 제자들에게 새 언약을 말씀하신 후 겟세마네에서 마지막 고통의 기도를 드 리시고, 제자에게 배반 받으사 제사장들에게 잡혀가셨습니다. 베드로에게 가장 길었던 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자(수요일 아침)유대인들은 주님을 빌라도에게 데려갑니다.26장의 후반부에서는 베드로에 대해서 많은 구절들을 할애하는데,27장에 서는 몇 구절을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 할애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와 유다 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유다가 후회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3절)그러나 그는 주님을 배반하기 몇 달 전부터 이 일을 계획했습니다. 그는 원래 마귀였고,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것을 계획하여 잘 실천했습니다.그러나 그는 “무죄한 피” 를 배반했다고 후회하고 말았습니다.(4절).그러므로 유다는 여기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유다 못지않게 커다란 죄를 지었고, 그들은 둘 다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후회는 베드로의 후회와 달랐습니다. 이 둘에 대한 대조는 고후7:10절에 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은 구원을 위한 회개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세상의 슬픔은 사망에 이르느니라](고후7:10). 베드로의 슬픔은 전자와 같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돌아 보셨을 때 찔림을 받고 후회하였는데(눅22:6l). 그는 자기가 옳지 못한 일을 했다는 것에 대해 후회했습니다. 그의 슬픔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의 슬픔은 달랐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에 따르면 그의 슬픔은 세상적인 것이었고 인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자기의 계획이 잘못 되어가는 것에 대해서 후회했을 뿐입니다.
그가 후회한 동기는 아무 것도 없었고, 단지 “스스로” 후회했을 뿐입니다.(3절). 베드로와 유다는 둘 다 잘못했고, 둘 다 후회했으나, 베드로는 후회했을 때 주님을 향해서 후회했고 유다는 후회했을 때 제사장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유다는 자 신의 잘못에 대한 고백을 제사장들에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죄를 주님께 고백하지 않고 사제(제사장)에게 고백하는 로마 카톨릭의 회개는 유다의 후회처럼 멸망하는 후회라는 사실입니다. 딤전 2:5절은 우리가 누구에게 고백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 이시니,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딤전2:5). 베드로는 회개했을 때 상한 영과 겸손한 마음이 되었으나(마26:75,요21:15). 유다는 후회했을 때 목매달아 자살했으며 그의 거처인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말했으며 (삼하l2:13). 아버지를 떠난 탕자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눅15:18).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그러나, 마찬가지로 파라오와 발라암도, 똑같이 말했으나 (출10:16, 민 22; 34) 그들의 후회는 유다의 후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실수 했구나 내가 행한 일이 뭔가 잘못되었구나.” 베드로와 유다는 둘 다 주님을 따랐고 둘 다 기적을 행했으며, 둘 다 주의 만 찬에 참여했고 둘 다 교회의 멤버가 되었으나, 하나는 진정한 제자였고 하나는 마귀였습니다.
5절에 [그러자 그가 은전들을 성전에 내던지고 나가서 목매어 죽으니]라고 말합니다. 유다가 은전을 성전에 던진다는 것은 스카랴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그것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그들이 나를 매긴 좋은 값이라” 하시기에 내가 은 삼십 개를 취하여 주의 집에 있는 토기장이에게 던졌더라](슥11:13).“주의 집” 에 있는 토기장이 이 정확한 예언에 따라 성전에 던져진 이 은전들은 즉시로 토기장이에게 주어졌습니다. 토기장이로부터 산 그 밭은 “피 밭” 이라 불려 졌는데(8절).이곳은 게헨나 골짜기에 있으며, 이곳은 또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라고 불리는 곳입니다.(렘19:1,2, 18:1-10) [나가서 목매어 죽으니](5절)라고 말합니다. 자기의 행위를 후회한 유다의 행동을 주목하라 사탄이 하나님을 가장 잘 모방 하는 자라는 것을 중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유다는 “나무에 매달린다” 성경은 [나무에 매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은 자라] (갈 3:13) 고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는 우리를 위해 죄와 저주가 되시어 나무에 달리신 것이지만(고후5:21,갈3:13) 유다는 자기의 죄로 인해 저주받아 나무에 달렸습니다.유다의 죽음에 관해 사도행전에서는 좀 다른 기술을 합니다. [곤두박이로 떨어져 서 몸의 중간이 터져](행1:18). 마태복음에서는 유다가 목매어 죽었다고 말하고, 사도행전에서는 몸의 중간이 터졌다고 말함으로 이 두 부분은 모순처럼 느껴지게 되었고 몇몇 사람들은 이 두 “모순 구절” 들을 일치시키기 위해 사사로운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담 클락은 마27:5절의 [목매어 죽으니]를 “질식했다” 는 의미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유다는 질식하여 창자가 터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진술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유다는 꼭을 매달았는데, 마27:51절에서는 그 땅에 큰 지진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질 정도의 지진이라면 유다를 떨어뜨려 그의 배를 가르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4절에 [내가 무죄한 피를 배반한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참으로 무죄한 피였습니다. 그 피에 대해서는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골1:14,20, 엡1:7, 2:3, 벧전1:2,19,히9:14,13-l2 등).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무죄한 피라는 것은 그 피가 “하니님의 피” 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 피는 인간의 피가 아닙니다.그 피는 죄 없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죄 없으신 생명의 죄 없는 피였습니다. 행20:28절에서는 이 점을 명확히 말해줍니다. [...하 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느니라] (그러나 대부분의 변개된 성경들 )은 “하나님”을 “주”로 바꿈으로서 “하나님의 피” 라는 말을 지워버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의 피라는 사실을 가려버립니다.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무죄한 피 이고, 하나님의 피 입니다. 그래서 그 피는 영원합니다. 이 사질은 히브리서에서 잘 나타내고 있는데, 구약이나 신약에서 피는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히 9:22). 그러나 구약에서 동물들의 피가 일시적인 피여서 대제사장 이 그 피를 드리는 일을 해마다 반복해야 했다면, 새 언약의 피로 제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하신 피여서 단번에 드려진 그 피는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었습니다.(히9:12,25,26, 10;12,14). 히9: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피 에는 생명이 있습니다.(레 17:11).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의 피 이며 (행20:28).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요일 5:10-1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피 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끊임없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