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처녀들의 등불은...
마 25:7-13절 말씀입니다.
[그때 그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서 각기 자기 등을 조절하는데,8 어리석은 처녀들이 현명한 처녀들에게 말하기를‘우리의 등불이 꺼졌으니, 너희 기름을 좀 달라.’고 하더라. 9 그러나 현명한 처녀들이 대답하여 말하기를‘아니라. 우리와 너희에게 충분하지 못하니, 차라리 장사꾼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하더라.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으니, 준비하였던 처녀들만 그와 함께 혼인식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더라. 11 그후에 나머지 처녀들도 와서 말하기를‘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하더라. 12 그러나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13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는 인자가 오실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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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에서 가장 유심히 보아야 할 낱말은“처녀들”입니다. 제시된 것처럼 이들은 처녀 “들”이라는 복수형으로 쓰였는데, 그것으로, 우리는 이들이“한”처녀로 제시되는 교회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두 번째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이 처녀들은 신랑과 결혼하러 가는 신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신랑을 맞으러 가는 처녀들일 뿐입니다. 눅 12:36절에 보면 밤중에 돌아오는 한 주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신부와 결혼을 하고 돌아오는 신랑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이미 결혼하고 돌아오는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만약 이 열 또는 다섯 처녀가 신부라면 신랑, 즉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 명의 신부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두말할 나위 없이 여기의 처녀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름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열 명의 처녀 모두는 불을 붙일 만한 기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 다섯 명의 처녀들에겐 기름이 고갈됩니다.(현명한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을 기름통에 가지고 있었으나 어리석은 처녀들도 현재 불이 탈 만한 기름은 갖고 있었다.).
만약 기름이 성령의 모형이라면 더 분명해지는데,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 비유대로라면 성령은 행위로 얻어지게 되는 것입니다.(8,9절). 또 현명한 처녀들이 혼인식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눈 깜짝하는 순간”이라든지(고전15:52) 어떤 다른 어휘로도 휴거에 대해 묘사되는 말은 사용되지 않습니다.이 비유의 주인공이 “인자”라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자라는 말은 초림이든지 재림이든지 주님의 지상사역과 연관되어 사용됩니다.교회의 휴거를 비롯하여 교회와 관련해서는 인자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습니다.그 예로 바울서신에서는 인자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처녀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이 비유도 교회 시대에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시대를 위해서는“고백하는 사람들이 모두 믿는 것은 아니다”라는 일반적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약간의 영적인 적용만을 할 뿐, 교리적으로는 교회와 먼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비유는 누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까?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처녀 들” 은 누구이며, 행위로 성령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는 유대인 환란성도들인 것입니다.“처녀들” 이라는 말은 교회 시대가 아니라 환란 시대에 등장합니다. 계14:16절에 이 “처녀들” 이 등장하는데, 거기에는 “동정들” 이리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에서 “처녀들” 이나 “동정들” 이나 모두 “virgins" 임) 이들 처녀들은 어린양 혼인식 을 묘사하는 시편 45편에서 신부를 따르는 자들로 등장하는 것입니다.(시45;13,14). 그리고 이 일은 환란 끝에 있게 됩니다.(마 24: 29-30, 시 50: 3-5). 나타나는 행위의 요소들은 구원과 관계 됩니다.(마24:13-15,20,계 14;12). 그래서 이 “처녀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고, 실제로 그들 중 얼마는 구원을 잃어버립니다.
히9:28절은 그분을 성실히 기다리는 사람만을 구원하시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히9:28). 이 구절은 분명히 신약 그리스도인의 휴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는 육신적이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여 기다리지 않는 사람도 있게 마련인데, 비록 그들이 타락했을지라도 거듭나기만 했다면 분명히 휴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환란성도는 다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성실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와 비슷한데, 구약 시대에는 성령이 오셨다가 떠나가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다윗은[주의 면전에서 나를 내어 쫓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라고 고백합니다.(시51;11).여기서 어리석은 처녀들이 주님께 애원하는 말은 “주여, 주여” 이고, 주님이 대답하시는 말은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입니다.(11,l2절).이것은 마태복음7:21-23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데, 마태복음 7장에서 이와 같이 저주받는 무리들은 왕국을 가로막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들입니다.
이 어리석은 처녀들은 거짓 선 지자들과 같이 취급받습니다. 13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는 인자가 오실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 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이 말씀은 인자의 재림을 분명히 해주는 말씀입니다. 이들에게 이 말씀을 주실 때 그 재림은 멀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말씀은 사도행전의 초기에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10장에서 왕국 복음을 위임해 줄 때부터 제자들이 당할 환란을 경고해 주고 있었습니다. 대 환란에 관한 위대한 장인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주님은 제지들이 그 일들을 직접 당할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본문은 심각하게 제시되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테반이 죽기까지 이 일은 진행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40일 동안 부활의 주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던 제자들은 왕국의 회복을 자신들의 때에 이루어질 것처럼 물었고, 주님도 그것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2장에서 베드로가 왕국 복음을 전할 때도 그는 주님이 당대에 오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요엘서를 인용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받아들일 번하였으나, 결국“위선자” 그룹들에 의해 그 길은 막히게 되고, 7장에서 스테반의 설교에 이르러 이스라엘이 완전히 거부함에 따라 마태복음 25장의 이 구절은 미래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 구절에 대한 교리적인 적용입니다. 인자가 오실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미래에 있을 대 환란 기간에 정확히 지켜질 것입니다. 그 때에 현명한 다섯 처녀와 같은 유대인 환란성도들은 일어나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을 것입니다. 대 환란에 대해서는 욥3:6절에 나와 있는 밤의 모습과도 같은데, 그 어두움은 고통의 기간입니다.(욥기는 특히 대 환란을 잘 말해주고 있는데, 욥의 고통은 대 환란의 고통과 비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욥기는 4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대 환란의 후 삼년반의 42개월과 일치합니다. )이 어두움에 사는 자들은 빛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이 빛은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 4:2,마 l7:1-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비온 후에 맑게 개인 아침 빛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끊임없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