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
주 일 예 배
[롬10:1-10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의 소원과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그들이 구원받게 되는 것이라. 2 내가 그들에 대해 증거하노니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열성은 있으나 지식을 따라 된 것은 아니니라. 3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4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느니라. 5 모세도 율법에서 난 의에 대해 기록하기를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였느니라. 6 그러나 믿음에서 난 의는 이같이 말하기를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인가?’하지 말라.”하였으니(그것은 그리스도를 위로부터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7 또한 “‘누가 깊은 곳으로 내려갈 것인가?’하지 말라.”하였으니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노라.”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9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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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절에 [형제들아, 내 마음의 소원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니, 즉 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9장 마지막 33절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보라, 내가 시온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두노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참으로 위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그들 앞에 놓여 진 [하나님의 의]이신, 반석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오히려 그분께서 그들에게는, 넘어지는 돌과 거침이 되고, 함정이 되고, 올무가 되어 구원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O 그러나 반대로 주를 모르는 자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오히려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바로 그 [주를 믿고, 구원을 받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의]이신 [산돌]과, [반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놀라운 은혜로 구원을 받아 생명을 얻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우리는 롬10장을 맞이했습니다.
O "l0" 이라는 숫자는, [이방인들의 숫자] 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에서는, 이방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특별히 이방인들을 위해 세우신 사도 바울의 입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O 1절에서 [형제들아, 내 마음의 소원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니, 즉, 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니라.]라고 말씀 합니다.
O 바울은, 신약 시대의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유대인들 스스로가 그것을 깨닫고,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 9:32절에서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느냐? 이는 그들이 믿음으로 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율법의 행위로 구하였기 때문이라.그들이 그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에 넘어진 것이라.]고 바울이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가, 마치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으로 알고,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 채 그냥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문제는, [율법을 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지 않고, 율법의 의를 구하는 자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2절에[내가 그들에 대해 증거 하노니,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열성은 있으나, 지식을 따라 된 것은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사역자들이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제대로 알았다면, 성도들에게 [지성감천]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잘못되게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성감천]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입니다.
O 그러므로 [지성감천]은, 하늘이 감동할 만큼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땀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성감천]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공적을 내 세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을 섬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고, [나를 섬기라]고만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복을 받기 위해서 정말 [지성감천]으로 하나님께서 감동할만한 열성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자신을 섬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시기 않으시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주께서 주신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을 섬기도록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복종하지 아니하고, 예전에 우상을 섬기던 그 열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한다면, 그는 단지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는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리의 지식]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지성감천]으로 섬긴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기도에 응답이 없고, 복을 받지 못하며, 만사가 잘 풀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로 향한 [정성이 부족하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성이 부족하다]는 말은 어디에서 쓰는 말입니까? 무당들이 하는 말입니다. 사이비 종교에서, 그리고 거짓 목자들, 사기꾼들이 쓰는 말입니다.
O 그러나 바울은 이런 그릇된 신앙을 단호하게 책망합니다.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께 대한 열성은 대단한 같은데, 그 열심만 보면, 너희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이 보이는데, 그러나 너희의 그 열성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성경의 진리에 입각한 [진리의 지식]에 따른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열성은 하나님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O 인간들은 항상 자기 나름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기에 열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주도 없이 자신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이름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섬김은 그 육신이 앞서있기 때문에 오히려 대단하게 보일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는 항상 [나]라는 말이 붙어 다닙니다. 나도 내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내 나름대로 기도도 하는 사람이고, 내 나름대로 봉사도 하는 사람이고, 내 나름대로 헌신하며,내 나름대로 내 할 일을 다 하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내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 이제부터는 우리의 이름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버린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나 하나님의 방식에 따르고 그분의 지시에만 복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에게 자신의 [지시한대로 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O 주께서 지시하시고, 말씀 하신 일에다, 너희 생각을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는 말입니다. 주께서 말씀 하신 것에, 빼거나 더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주께서 말씀 하신 것보다 더 좋게 하려고 해서도, 주께서 말씀 하신 것보다 더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둘기 새끼를 받치라 했으면,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데 어떻게 비둘기 새끼를 드리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양 새끼를 드려서도 안 되고, 하나님께서 양 새끼를 들리라고 말씀 하셨는데, 나는 그런 형편이 안 되니, 비둘기 새끼를 들려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께서 말씀 하신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증거 궤]를 만들라고 말씀 하실 때, 단순히 증거 궤를 만들라고 말씀 하신 것이 아니라, 모양과, 크기와, 재료와, 증거 궤의 정확한 것을 보여 주시면서 증거 궤를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증거 궤는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 그대로 만들어져야만 합니다. 증거 궤를 만드는데 있어서 단 하나도 인간의 생각에 의해서 빼거나 첨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그들을 축복하니라.]고 출39:43절에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냥 방주를 지으라고만 말씀 하신 것 이 아니라, 방주의 재료와 그 규모까지 정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O 그래서 주께서 노아에게 [너는 고펠 나무로 방주를 만들되...방주 안에 방들을 만들고 역청으로 안팎을 칠하고 그리고 네가 만들 방주 의 규격은, 방주 의 길이가 삼백 큐빗이요 너비가 오십 큐빗이며, 높이가 삼십 큐빗으로 하고, 그리고 방주 에다 창문을 만들되, 위로부터 일 큐빗 되는 곳에서 마무리하고 또 방주 의 문은 측면에 내고 아래층, 이층, 삼층으로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지었을 때, 물로 지구가 가라앉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 방주만큼은 안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게 되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앞세우고,그분의 말씀대로 행할 때, 복을 받는 것이지,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내 열심과 내 노력을 앞세워서 내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므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절에서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 의를 모르고 그들의 종교적 열성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의]에 이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들의 의를 세우는 것,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들이 지금 얼마나 열성을 내고 있는 것인가가 하는 것이 전부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였음]이라는 판결을 받는다면, 하나님께 대한 열성이 아무리 지극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것이지, 우리들의 의를 세우는 우리의[지극한 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성경이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것은 그분의 진리의 지식에 따라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면,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주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고, 우리의 간구에 따라 주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외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복을 받은 방법인 것입니다.
O 4절에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는 자기 의를 요구하는 율법에 대해서 [끝]이 되셔서 율법에 종지부를 찍으시고, 그리스도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의를 가지게 되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율법으로 인하여 얻는 의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의]인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는 방법입니다.
O 그러나 율법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주께서는 [하나님의 의]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고, 그분의 의를 우리들이 갖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5-6절에 보면[모세도 율법에서 난 의에 대해 기록하기를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나 믿음에서 난 의는 이같이 말하기를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인가?' 하지 말라."하였으니,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로부터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라고 말씀합니다. O 구약의 구원 계획을 아주 명쾌하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행하는 사람은...살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행함]은, 바로 구약 시대에 구원 계획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6절은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5절과는 그 문장 내용이 전환됨으로써, 6절에서는 구약의 구원 계획과는 다른 내용을 말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O 구약의 구원은 [율법에서 난 의]가 핵심 요소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구원 계획은, [믿음에서 난 의]가 핵심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왔으나, 그러나[은혜와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습니다. 구약에서는 구원받은 자들이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으나, 그러나 신약에서는 구원받은 자들이 [하늘나라]로 갑니다. O 구약에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다시 죄를 짓지 않고, 범죄 하지 않아야 하였지만, 그러나 신약에서는 옛 사람은 죽었고, 아예 새롭게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O 구약에서는, 누구도 거듭나지 못하였고, 누구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지만, 그러나 신약에서는, 구원받은 자가 새 사람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과 신약, 그리고 율법과 믿음에서 난 의]라고 하는 이 양자 사이의 차이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구원으로, 신약 시대의 구원과 유사했던 사례가 있었다면, 그것은 오직 율법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의 구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구약의 사람이지만, 아브라함의 구원은 신약 적 구원의 모형으로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O 모세는, [율법에서 난 의를 앞세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율법에서 난 [의]라고 하는 것은 원래부터 철저하게 행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이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신약 시대에는 율법에서 난 의로 구원 받는 게 아니라, 오직 믿음에서 난 의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O 또, 6절에서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인가?' 하지 말라."하였으니,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로부터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믿음과 행위에 의한 구약 적, 구원 계획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은 신약 적, 구원체계를 대조하면서 우리에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O 신30:11-14절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명들을 지킬 것을 말하면서, 계명들이 그들에게 가려진 것도 아니고, 그리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 건너 멀리에 있는 것도 아니라, 그 말씀은 네게 아주 가까워 네 입에 있고, 마음에 있으니, 너는 그것을 행할 수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들이 어디 있는가를 찾기 위해서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인가]하고 쓸데없이 궁리하지 말고, 믿음으로 계명들을 믿고, 그리고 행위로는 그 계명들을 지키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모세는 다시 신30:15-20절에서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선, 그리고 죽음과 악을 네 앞에 두어...너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너로 그분의 음성에 복종하게 하며, 또 그분께 밀착하게 하려 함이니 그분은 너의 생명이시오, 네 날들의 기한이시니 이는 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기로 맹세하신 그 땅에서 너로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모세의 말에서 행위가 무엇이고, 또, 믿음은 무엇인가를 아주 분명하게 알 수가 있는데, 행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음성에 복종하는 것] 이 행위고, 그리고 믿음은 [그분께서 생명이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는 [행위와 믿음]을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대 환란 때,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대 환란 때, 반듯이[행위와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14:12절에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계명들은]바로 율법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고 예수의 믿음은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대환란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그들은 이 [믿음과 행위]를 끝까지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신약 시대에 구원받기 위해서는 단지,[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그분을 믿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 있는지, 누가 하늘에 올라가 찾아볼 것인가?] 하고 궁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로부터 모셔 내리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또한 그것은 주를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지도 아니하면서, 실상을 보여 달라고 한다든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믿는가]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로부터 모셔 내리려는] 사악한 행동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O 7절에 [또한 누가 깊은 곳으로 내려갈 것인가? 하지 말라 하였으니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이 먼 곳에 있지나 않을까 생각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또 땅속 깊은 곳이나, 바다 속 깊은 곳에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까?
O 8절에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말씀합니다. O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 해결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구약 신30장에서의 모세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신30:14절에서 말했던 [말씀]은, [계명의 말씀]이었지만, 그러나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계명의 말씀]이 아니라, [믿음의 말씀]입니다. 이 믿음의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노라]고 바울은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읽어 봅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이 바로 신약 적 구원의 체계입니다. 그래서 신약 적 구원의 체계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이심을 입으로 시인하되, 부활의 능력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또 마음으로 믿되,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절에서 이렇게 말씀 합니다.
O 10절에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믿는데,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믿어]만,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마음으로 믿는 그 상태에서 입으로 고백할 때만,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 머리로만 믿으면 안 되는 것인가? 머리로만 믿으면 서령 어떤 사실에 대해서 알고는 있을지라도,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자신을 온전히 맡길 만큼 신뢰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으면 그것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것은 그것에 대한 신뢰를 의미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안심하고 탈수 있는 안전한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자동차를 내가 타도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내 마음에 없다면, 그 자동차를 타지 않습니다. O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음도,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을 믿을 수 있으며, 그분의 동정녀 탄생과,그분의 재림도 믿을 수 있다 할지라도,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음을 마음으로 믿고, 그분을 나의 주세주로 영접하므로 그분을 신뢰하고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지 못한다면, 나는 여전히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O 그러나 그분을 믿지 않고는 내가 도저히 지옥을 면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면, 머리로가 아니라, 그분을 내 마음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두말할 것 없이 참으로 참혹하고 끔찍한 곳입니다. 오직 끝도 없는 고통만이 있은 곳, 자신의 형체까지 마귀의 형상 뱀의 형상 벌레의 형상으로 변형되어 버리는 불타오르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그 누구라도 그 지옥을 모면하기 위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O 왜냐하면, 지옥을 모면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방법뿐인 바로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지옥을 깨닫게 된다면, 그는 그분을 마음으로 믿고,그리고 그 입으로 그분이 자신의 구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고백의 순간, 그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입은 마음의 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은 우리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인가를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바로 [신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믿음과 신뢰는 같이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뢰는 내 자신을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내 마음에서 주를 믿으면, 나는 자연히 주를 신뢰하게 되는 것이고, 주를 신뢰를 하면 우리는 그분의 뜻에 따르고 그분에게 복종하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며,그분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그 믿는 것과는 상관없는 행동, 그분의 말씀과는 동 떨어진 삶을 살아갔다면, 그것은 우리가 정말 마음으로 고백한 것이 아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자칫 거짓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이런 연유로 인해서 어떤 사람은 평생동안 교회와 함께 하지만, 그러나 구원받은 자로서가 아니라,일생동안 교회만 다니는 교인으로만 살다가 죽은 후에는 전혀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내 마음으로부터 하는 고백이 아니라면, 그 고백은, 거짓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으로 고백했다 해서, 단지 그 고백만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소리가 배에서 나오지 않고, 목에서만 나오는 사람이라면, 그는 성악가가 될 수가 없듯이, 내 마음에서 나오는 고백이 아니고, 단지 입에서만 나오는 고백이라면,그 고백은 진실이 아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는 그분을 아노라고 고백하지만, 그러나 그분을 안다는 우리의 고백이 거짓말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안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 석자를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분은 나의 주이요,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는 그분의 것이요, 나는 그분의 종이며, 그리고 나는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은 또한 내 안에 있으며 그래서 나는 지금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일2:3-4절에[...“나는 그분을 아노라.”하면서 그의 계명들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쟁이니,진리가 그 사람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우리가 나는 주 안에 거한다고 고백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분께서 행하신대로 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말이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일 2:6절에 [그분 안에 거한다고 말하는 자는 그가 행하신 대로 자기도 행해야 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고백하는 그 사랑이 진실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14:15, 21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들을 지키라...나의 계명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바울은 고후4:20절에서 [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음이라.] 말합니다. 여기 이 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일단 믿음이 그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토대 위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실천적인 삶을 살 때,거기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하지 않는데,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천적인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그리고 그에게 실천적인 삶이 없는데, 그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는 곳에는 결코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믿음도 없고, 실천적 순종도 없는 사람이, 말만 앞 세워, 아무리 [나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고 떠들어 봐야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는 것이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입으로 하는 우리의 신앙 고백은, 반드시[주께서 나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부활로 인하여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을 때, 나오는 그 고백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O 왜냐하면, 그럴 때, 그 믿음의 고백으로 통해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지 않는 입의 고백은 평생 동안 공염불만 하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중들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고백 했다 해서 그것이 믿음의 증거, 구원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입으로 고백했을지라도 그러나 마음으로는 믿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입으로는 고백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비록 사람들 앞에서 입으로는 고백하지 못할지라도, 그러나 마음으로 뜨겁게 주를 믿는 믿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벙어리는 마음으로만 믿어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또, 비록 벙어리는 아닐지라도 마음으로 주를 믿는 것을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아주 특수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12:42절에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고 말합니다. 유대교에서 쫓겨나면, 그것은 [사망선고]와 같은 것입니다.
O 그래서 예수님 당시 많은 유대 관원들이 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신들의 메시아요, 왕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는 굳게 믿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유대사회에서 출회를 당할까 봐서 고백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아주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O 그러므로 이들이 입으로 주를 시인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그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입에서는 주를 말하지 않을 없고, 주를 고백하지 안할 수 없으며, 주를 찬 양하지 안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그러므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른 대광의 여러분들은, 나를 구원해 주신 그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 찬양하며, 주를 모르는 자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 줌으로 주를 믿고 참혹한 지옥의 고통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선교사로, 또 복음 전하는 전도자로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