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두려워함이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니,
잠19:23-24절 말씀입니다.
[23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니, 그것을 행하는 자는 만족하게 거할 것이요, 그는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리라. 24 게으른 사람은 자기 손을 품에 감추고 자기 입으로 다시 가져오는 것조차 하지 않으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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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절에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니, 그것을 행하는 자는 만족하게 거할 것이요, 그는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이 말씀을 보면구약 창세기5장에 보면, 세상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은 바로 므두셀라”입니다.
이 사람은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노아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8-900세 이상을 살았던 시대인 만큼 설령 므두셀라가 969살까지 살았다고 해도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다가“노아”이후에 와서는, 인간들의 수명이 반으로 짧아 졌습니다. 그래서 노아 이후에 제일 오래 산사람이 에벨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430년을 살았습니다(창11:17).
그리고“아브라함”의 시대가 열립니다. 그런데 이때 와서는 인간의 수명이 다시 반 이하로 짧아졌습니다. 그래서“에벨”이라고 하는 사람은 430년을 살았지만,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시대에는 그나이로도 충분히 장수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창25:8절에 보면,[아브라함이 연수가 차고 늙어 충분히 장수하고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후부터 인간들의 수명은 또 다시 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시90:10절에서 인간의 평균 수명을 7-80세로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가니 우리가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다음 다윗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시144:4절에서 [사람의 날들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 나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 야고보 는 아침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약4:14절에서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인간에게 생명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수명이라고 하는 것은, 하루 정도만이라도 느긋하게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그런 생명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 인간들의 수명은, 어느 누구로부터 보장받고 사는 생명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루 중, 어느 순간, 우리의 생명의 셔터 문이 내려지면, 우리의 생은 그것으로 그렇게 쉽게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혼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애기는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물론 그의 육은 죽으나, 그는 영원히 죽지 않은 또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혼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엄밀히 생각해 보면, 육신의 죽음은 그렇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죽음이라는 것은, 잠시 한 순간에 그가 거하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는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의 모든 것은 한 순간, 지옥의 멸망으로 떨어져 거기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안에는 죽어도 사는 생명이 있는가? 나는, 지금 죽어도 죽지 않은 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설령 일생동안을 병든 거지 나사로처럼 산다 해도 그는 인생의 최고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말입니다.
지금 자신의 생명이 안녕하신지, 아닌지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보는 대로 먹고, 보는 대로 마시고, 보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다못해 선풍기를 24시간을 켜놓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혹시나 고장이 날까봐서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일년에 한번 정도는 적어도 한 3일 정도는 금식하면서 내 몸속에 오장 육부도 좀 쉼을 주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데 수십 년을 살면서도 그런 일 한번 없습니다. 그러고 먹고, 또 먹으며, 계속 먹습니다. 밤에도 먹고, 낮에도 먹고, 금방 먹었는데, 뒤돌아서 또 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조깅도 하며, 걷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등산도 하면서 자신의 몸을 아주 잘 관리하고, 오장육부를 아주 튼튼하게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대로 가면, 100살은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사람의 육신의 생명은 지금 극도로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혹, 그 육신의 생명은 그 무거운 육체를 견디다 못해 어느 날 갑자기 숨을 헐떡거리며 나 죽네, 하고 길바닥에 푹 쓰러질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자동차에는 연료 계기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없다면,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져 도로 위에서 있는 차들로 도로는 날마다 생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동차에는 연료 계기판이라는 것이 있어서 운전자는 그 계기판을 항상 보면서 갑자기 연료가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준비를 합니다.
심지어는 휴대폰의 밧데리에도 앞으로 얼마나 쓸 수 있는지 표시가 되어서 사용자들은 계속 남은 밧데리용량을 확인 하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의 생명의 연한에는 계기판이 부착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그러기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수명이 지금 얼마나 남아있는지, 자신의 인생이 지금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더 살 것인가를 젊음이나, 자신의 나이로 가늠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믿을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지금 막 태어난 갓난아이라고 해서 80대 노인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장담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이 불문 하고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모습으로, 나의 생명의 기름이 떨어져서, 나 의 인생 길이 멈춰 설지 전혀 모른다는 말입니다. 설령 자동차가 달리다가 기름이 떨어져 도로상에서 멈춰 서 버리면, 보험사에 전화를 하면, 1리터 정도는 긴급히 가져다줍니다. 저도 언젠가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우리의 생명의 기름이 어디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이런 불안한 생명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들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마치 자신에게는“죽음" 이라고 하는 것이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면서 장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산다는 말입니다. 물론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사는것은 매우 좋은 일이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우리는 5년 후나 10년 후 계획이 아니라, 하루의 계획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들에게 먼 장래를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단지 오늘이라고 하는 시간만을 말씀하실 뿐입니다. 나머지 시간들은 생명의 주인이신 주 하나님께 숨겨진 시간들입니다. 그래서 잠27:1절에서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내게 올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매일 같이 오늘만 있다고 살수만은 또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말입니다. 정말 너희가 구원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하루를 살아도 생명의 주인이신 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라, 는 말입니다.
정말 너희가 구원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하루를 살아도 이 세상을 바라보며 살지 말고저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살아라는 말입니다. 정말 너희가 구원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삶의 목적을 땅에 두지 말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두고 살아라, 는 말입니다. 그래서 골3:1-3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라.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어느 순간 예고 없이 갑자기 육신의 생명이 끝나면, 영원으로 들어가는 두 길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한길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은 죽으면 그뿐이라고 말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정말 죽으면 그뿐입니까? 그리고 나의 인생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옥은 정말로 무서운 곳입니다. 지옥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어떤 상상력을 다 동원해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무슨 아이들 장난쯤으로 생각하고 옥상에서 뛰어 내리기도 하고 한강에 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후에 자신이 생각했던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생명을 연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순간 까지는 아직 지옥의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옥이 두려운 사람은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은, 우리의 혼과 몸을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10:28절에 [또 너희는 몸은 죽여도 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를 믿고 의지 하는 자는 영원한 지옥의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니 그것을 행하는 자는 만족하게 거할 것이요 그는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오래 살 수있는 것은 분명히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그리고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만족한 삶을 살게 되며, 그리고 영원히 지옥의 재앙을 만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우리의 육신의 생명에도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것입니다.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주를 두려워하면 죄를 멀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를 멀리하면 주께서 그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어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위험한 곳에서도 주께서 돌보시고 보호하심의 은총을 받을수 있기 때문에 그 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그 사람에게 생명이 길어질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