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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영을 다스리는 자는...

박종각 2017. 10. 14. 01:21

 
                                           자기의 영을 다스리는 자는...

 


                                     잠16:23-25,32절 말씀입니다.


[ 23 현명한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가르치며 그 입술에 학식을 더하느니라.  24 즐거운 말들은 벌집 같아서 혼에 달고 뼈에 건강이 되느니라. 25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  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영을 다스리는 자는 성읍을 차지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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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3절에[현명한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가르치며 그 입술에 학식을 더 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현명한 사람의 마음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서는   안 되는지, 그리고  언제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24절에 [즐거운 말들은 벌집 같아서 혼에 달고 뼈에 건강이 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0 여기서 말하는“즐거운 말들은 벌집 같아서 혼에 달고”라는 이 말씀은, 요한이 계10:9-10절에서 “입에 꿀처럼 달다”라고 했던 바로 그 주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꿀은,  뼈에  건강이 되는 것입니다. 꿀은“건강식품”중에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0 25절에,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고  하십니다. 적그리스도도 버터처럼 꿀처럼 아주부드럽게 말할 수 있으며(시55:2l), 거짓선지자도(잠5:3), 꿀처럼 부드러운 입술을 가지고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사람들의 혼을 사정없이 유린합니다. 그러나 잠7:21절의 이 [달콤한 말]은, 하늘나라 나,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고객들은 모두 지옥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0 그래서 잠9:18절에 [그러나 그는 죽은 자가 거기 있고, 그녀의 객들이 지옥의 깊은 곳들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0 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영을 다스리는 자는 성읍을 차지하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통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여기서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하지만 자기 통제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불교, 힌두교, 도교, 유교 등, 모두 내부의  명상으로 내적 사람을 통제해 보려고 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나 육신의  것으로는  결코 내적인 영을 통제할 수없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요3:6절에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 이기 때문이라고 주님은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사람이 거듭나기 전에는 거듭나서 새로운 사람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자기 영을 통제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거듭남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 주님께서 니코데모와 대화하시던 바로 그날 밤 그 장소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0 니코데모가 [밤에] 조용히 주께 찾아 왔습니다. 그가 밤에 찾아 왔다고해서 그가 꼭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을 두려워서 그렇게 했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었고, 유대인 최고 회의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매우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 앞에서도 할 말은 하고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0 그래서 요7:50-51절에 보면, [그때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는 그들 중의 한 사람으로 밤에 예수께 왔던 자라, 우리의 율법이먼저 당사자로부터 들어 보고 그가 하는 일을  알기도  전에 아무나 심판하는 것이냐?,]라고 그는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그릇되고 잘못된 편견을 대담하게 지적했던 것입니다.


0 또, 요19:39-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후 아리마대 요셉이 그분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를 지낼 때도 니코데모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지금 니코데모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면서는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머리만, 즉 지성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때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믿는 믿음여야 주님을 신뢰할 수 있고, 주님을 의지하게 되며,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0 그래서 구원받는 믿음에는, 그 믿음과 더불어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1.마음과 2, 신뢰와 3, 의지함과 4. 그리고 맡김입니다.이것이 바로 마음으로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기는 믿되 신뢰하지 못하거나, 주를 의지하지 못한다거나, 주께 맡김이 없다면 지금 나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알고 있는 지성으로만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0 마음으로 믿는 믿음에서는 그분께서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이심을 신뢰하게 되고,  그분을 나의 구원주로 의지하게 되며, 그래서 나의 혼을 그분께 맡기게 되고, 나의 모든 삶과 나의 일들에 대해 그분께서 인도해 주시도록 그분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니코데모의 동료들인 바리새인,  산헤드린 회원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알고 그것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0 그것은 그들이 본 봐 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이런 그런 기적들을 행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요8:12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시고]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침례인 요한은 모든 사람이 이것을 믿게 하려고, 이 빛에 대하여 증거 하였던 것입니다.(요1:8절). 그러나 그들은 끝내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0 어째서 믿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이상하게도 그리스도께서 진리를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이 세상 사람들은 거짓을 증거 하면 믿어도 진리를 증거 하면 오히려 믿지를 않는 아주  묘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8:45절에 주님은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0 그래서 요8:44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하기 때문이라...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자기 안에  진리가 없는 사람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네가 마귀 들린 것이라]8:52) 고 몰아붙이며 심지어 돌을  집어서  주께 던지려고(요8:59)까지 했습니다.


0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그들의 속마음을 훤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 때에 니코데모가 그리스도를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께서 그를 향해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씀이 두 번 겹칩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너무나 엄중한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중한  예를  갖추고 주를 마주 대하고 있는 니코데모로서는 너무나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는 말씀입니다.





0 아마 제 삼자가 듣기로도 이건 예수님의 말씀이 좀 심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존경심을 가지고 자기에게 찾아온 손님에게 도저히 이해  할 수도 없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황당한 말로 니코데모를 당황하게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그것도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 아닌가? 앞으로 많은 일들이 서로 간에 갈등이 있을 것이고,  고소고발이  끊임없이 이어질 당사자들 관계인데 그렇다면 시간을 내서 일부러 먼저 찾아가서 산헤드린 회원들께 인사라도 하면서 얼굴이라도 좀 익혀두는 편이 낳을 것인데, 그런데 그렇게는 못할지라도 이것은 자기스스로   찾아온사람이 아닌가?


0 그러면 따뜻하게 환영하고 좋은 말로 인사라도 몇 마디 오고간  다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상대방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리고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는 범위에서 넌지시 말해도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지혜도 없이 만나자 마자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고 그렇게 냉혹하게 말씀 하셔야 하겠는가?입니다.


0 그러나 주님은 단호해도 너무 단호 하셨습니다. 주님께는 사탕발림 같은 말 따위는 필요가 없었습니다. 인사치레 같은 것도 필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서론. 본론 .결론 따위는 필요 없으신 분이 섰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오직 [진실로, 진실로] 뿐이셨습니다.





0 무슨 말입니까?“자네, 지금 나에게, [하나님 어쩌구, 저쩌구 말했는가? 그러나 자네가 알아야 할 상항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지옥행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좋아,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 사실을 먼저 알아 두게, 그것이 급선무야!  자네들은 지금 하나님을 아주 잘 섬기는 바리새인이라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라고, 종교지도자라고, 목사라고, 그리고 그 회원 수가 수천,  수만 명이라고 자랑하면서, 마치 하나님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이 떠들어 대고 있는 모양인데, 그러나 이것을 아시게, 그것은 너희들 중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네, 내 말이 좀 심하게  들리는가?  그러나 이것은 분명하고 또 분명한 사실이네, 왜냐하면, 너희 중에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거든,“ 이 말입니다.


0 이때, [니코데모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사람이 자기 어머니의 태에 두 번째 들어 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주께서이 말씀을 하실 때  아마  니코데모의 마음은 굳을 대로 굳어지고, 그의 머리는 멍멍해 졌을 것입니다.


0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아무리 학교는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두 번 태어나야 하다니,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래서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하는  거야,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니코데모는 몹시 화가 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상기된 얼굴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0 니고데모의 이 말은 풀어보면 이렇습니다.“예수님! 이 말씀은  인간의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애기 같군요. 예수님의 입에서 이런 말씀이 나온다는 것은 정말 실망했습니다.  예수님과 단둘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누가 옆에서 듣기라도 했다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저  사람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야?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니코데모는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질문은  [내가 어떻게]가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입니다.


0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지금 이 세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알고 싶은 마음도 없고 거기에 대해 사실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이 세상이 하늘과 땅에서, 마구 흔들어 대도 그래도 그들은 여기가 “좋사오니”여기에 우리들의 초막을 짓겠다는 것입니다.


0 [사람이 자기 어머니의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야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요3:5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0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이라는, 이 주님의 말씀을 참 많이들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과]라는 이 말씀에서 [물]을  [물 침례]로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시는 물로 태어남은, [물 침례] 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0 또, 어떤 사람은, 엡5:26절의 말씀인 [이는 그가 교회를 말씀에 의한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고 깨끗게 하사]라는 것과 연관해서, 물로 태어남을, 말씀으로 태어나는 것이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물은 그 말씀하고도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로 태어남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0 예수님은 요3:3절에서 니고데모에게 먼저 [거듭남] 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요3:4절에서 [물과 성령]에 대해 말씀 하십니다. 그렇다면, [물과 성령]이라는 이 두 말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이 두 말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것입니까?





0 니코데모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면,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사람이  자기 어머니의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이에  대해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이 물과...]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하면, [사람이 물로 한번 태어 났으면, 사람이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났으면, 사람이 어미의 태에서 육으로 한번 태어났으면], 바로 이 말입니다.


0 그리고 난 후에 어찌 라는 말입니까? 거기에서 다시, 한번 태어남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태어남은 다시 육신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영으로,  성령으로  태어나야]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육으로 사는 육의 세상이지만, 그래서 육으로 왔지만, 그러나 영원한 세계, 영의 나라는, 육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영으로만 들어갈 수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6절에서 간명하게 결론을 내려 주십니다.[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으로 난 것], 즉  어미의  태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 아니라,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이십니다.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 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이거,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알고 보면 이해가 되고, 알고 보면, 이치에 맞는 애기고, 또 알고 보면, 참 쉬운 말이라는 말입니다.





0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단 어미의 태속에 잉태되어 그 태로부터 한번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의 육신의 생명이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서는 살수는 있을지라도, 그러나 영적으로   들어가는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단 한번 육으로 밖에 태어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육신으로 한번 태어난 육신의 사람은 그 육신의  생명이  다 끝이 나면, 그 육의 사람의 혼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것입니다.


0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살다가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영원한 생명으로 가지고 영원의 나라에서,  영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다시, 한번 영으로, 성령으로 태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0 그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육신의 생명은 이미 물서 한번 태어났습니다. 어미의 태는 물주머니입니다. 그래서 아기가 태속에 있을 때, 그 아기는 물속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물은 생명의 원천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주의깊게 읽어 보면, 유대인들은 물이 생물학적인 출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0 그들은 이 사실을 산부인과 의사한테서 배운 게 아니라, 바로 성경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창1:2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물들은 생명이 있는 동물들과 땅 위 하늘의 넓은 창공에 나는 새를 풍성히 내라, 하시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지구상에 존재 하는 최초의 생명은 모두 물에서 나왔습니다.


0 결국 요3:5절의 [물로 태어남]은 생물학적인 출생을 의미하며, 그 사실을 성경 자체가 해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의 생명은, 육신의 생명으로 그 육으로 난 생명은 결코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0이 말씀은 오늘날 모든 복음 전파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구령하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단호하게 딱 잘라 말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육신의 어미의 태로부터 태어난 물의 탄생, 육신의  출생만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짐승의 생명이나 다를 바라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시, 한번 영으로의 탄생,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혀 가망 없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0 사람에게는 가장 먼저 행해야 할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최우선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살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내가 살고부터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일만은 아무리 바빠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러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살면서 그토록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그 고생이 모자라서 죽어서까지 고생할 영원한 불바다의 지옥으로 번지점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0 그러나 그것이 싫은 사람은, 뱀의 형상을 하고 영원한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싫고, 불구덩이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이 싫고, 불구덩이에서 영원히 몸서리치는 두려움과 공포가 싫은 사람은, 반드시 두 번째 출생의 과정, 성령으로 태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0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다시한번 새롭게 태어나야만 합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남편이고, 아내고, 자녀고, 일가친척이고, 그날에 모두 다 냉정하고, 몰인정하게 각각의 제 길로, 그것도 아주 급작스럽게, 전혀 예상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결코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