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마10:16-17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
그러나
사람들을 조심하라.
이는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또 그들의 회당에서
너희를 매질할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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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여기에서 말씀 하시는 네 동물들은 영적 전쟁에서 두드러지게 대조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영적 전쟁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천국]과 사탄의 왕국과의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양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입니다.
0 그래서 구약에서에는 항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또한 하나님의 양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의 초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목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양 무리는 동서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9:36절에 [주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가엾게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지치고 흩어졌음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0 그리고 흩어진 양들은 지금 “이리들”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들은 자신들이 지금 이리가운데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리들은 양들을 속이기 위해서 양처럼 위장하고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리들은 계속 양들을 훔쳐가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0 그런데 이때 양들은, 주께로부터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고 경고를 받게 됩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는 교회(성도)를 양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주님의양 됨이 요10:16절을 근거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0 요10:16절에서 주님은 [또 나에게 이 양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있어 내가 그들도 데려와야 하리니, 그들도 나의음성을 듣게 되리라 그리하여 한 양떼에 한 목자만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0 여기에 보면, 우리 안에 있는 양이 있고, 그리고 우리 밖에 있는 양이 있습니다. 이 양들은 모두 한 목자에 의해서 길러진 양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불리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우리 밖에 있는 다른 양들이 있는데, 그 양들을 데려와 우리에 있는 양떼들과 한 양떼들이 되게 하고, 그리고 목자도 한 목자만 있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0 그런데 이 16절에 대해서 전혀 다른 두 가지 해석이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로마 카톨릭 측의 해석입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는 이 구절에서 “양 우리”에 들어있는 양들은, 자신들이고,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은, 종교개역에 의해서 나갔던 프로테스탄트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들이 한 양이 되도록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0 그리고 그들은 요17:21-22절의 주님의 기도를 여기에 적용합니다. 요17:22절에 보면, 예수님은 이는 그들 모두가 하나 되게 함이오니,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서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0 다시 말하면 종교개역이다 무어다 해서 “프로테스탄트”들이 양 우리에서 뛰쳐나가 [다른 양들]이 되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양 우리를 뛰쳐나간 그 프로테스탄트들이 다시 양 우리로 돌아와 로마 카톨릭과 한 양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지금까지, 로마 카톨릭이 붙잡고 늘어지는 주제가 바로 [교회통합]인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는 [교회 통합 운동]은, 사악한 이리가, 양가죽을 뒤집어쓰고 양떼들을 모두 한 입에 삼키려는 수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0 그리고 또,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이 해석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그렇게 알고 있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이 해석을 성경을 덮어 놓고 생각 없이 들으면, 매우 그럴듯하게 들리는 해석이기도 합니다.
0 이 구절에서 [이 양 우리]는, “유대인의 양 우리”를 말하는 것이고,[다른 양들]은, 바로 “이방인들”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나의 음성을 듣게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방인들도 예수님의 복음을 듣게 되어서 “유대인 양 무리”와, “이방인 양 무리들”이, 한“양 우리”에 들어와, “한 양떼”를 이루고, “한 목자”가 그 양떼를 인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0 정신 줄을 놓고 들으면 그럴듯하고. 여기에는 아무런 어떤 의문도 없는 것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섬세하게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면 여기에는 아주 깊은 함정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은 결코 “구원 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주님의 [양들] 이라고 불려 진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결코 주님의 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엡2:3절에 보면,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은[본래 진노의 자녀]이고, [불순종의 자녀](엡5:6)로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은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행하는(엡2:2) 자들로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이스라엘 나라에 속하지 않는 타국인이요, 약속의 언약들로부터는 생소한 사람]이며, 그래서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는(엡2:12) 사람들이었습니다.
0 그러므로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은 구원받아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 아니라, 진노의 자식이요,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된 자로서 소망도 없이 사는 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양이 아니라, 아주지저분하고 더럽고 추잡한 개와 돼지라는 말입니다.
0 그래서 벧후2:22절에 [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 어진 것이니, 개가 스스로 토해 낸 것에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였도다]라고 말씀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게 되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그때는 완전히 애기가 달라집니다.
0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면, 우리의 신분이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짜 주님의 양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 [다른 앙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교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0 이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 성령이 오시기 전이었으며, 그래서 이방인들은 결코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해석들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 하고는 전혀 다른 것으로 오직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자신들이 유리는 쪽으로 풀어낸 엉터리 해석인 것입니다.
0 그러면 주께서 말씀하신 우리 안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성경에서 유일하게 [양]이라 불리는 것은 오직“이스라엘”뿐입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 있어도 양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더라도 그들은 주님의 양들이었고, 그들이 주를 배반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주님의 양이었으며, 그들이 [잃어버린 상태]에 있어도, 그들은 주님의 양이라고 불렸습니다.
0 그래서 겔34:6절에 [내 양이 모든 산들과 높은 언덕마다 유리하였으며, 정녕 내 양 무리가 땅의 모든 지면에 흩어졌으나 그들을 찾거나 찾아 나선 자가 아무도 없도다]라고 하시면서, 겔34:12절에 가서는 [목자가 흩어져 있는 자기 양들 가운데 있는 날에 그가 자기 양 무리를 찾아냄같이 나도 내 양을 찾아내고]말씀 합니다.
0 또, 겔34:16절에 보면, [내가 잃어버린 자를 찾을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16절에서의[다른 양들]이란, 이방인들이나, 프로테스탄트가 바로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진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진짜 주님의 양으로 변했습니다.
0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의 목자장이십니다. 그래서 벧전5:4절에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너희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교회 안에는 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리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0 그래서 행20:29절에 [또 내가 이것을 아노니,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0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주께서 [비둘기처럼 순수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본 방침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뱀처럼 지혜로 와야]한다는 말입니다.
0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이리 가운데 있을 때는, 어떤 전략과, 재치와, 수완 같은 것을 재빠르게 사용해서 대처함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자들에게 좋은 전략을 주시고, 재치를 주시며, 또한 수완을 발휘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0 그래서 대상14:8-16절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전략을 주셨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필리스티아인들이 다윗을 치러 올라 왔습니다. 그때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주여 “내가 필리스티아인들을 대항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주시겠나이까?”라고 주께 묻습니다.
0 그러자 주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올라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필리스티아인들을 대항해 올라가서 싸워 승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그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0 그러자 다윗은 또다시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시작합니다. 물론, 다윗에게는 용맹스런 군사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은 전쟁에 매우 능한 자들이었고, 거기에 다윗은 뛰어난 전략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군이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께 물을 것도 없이, 다윗은 나가서 필리스타인들을 대항하여 싸울 수가 있었습니다.
0 그럼에도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승리는 용맹한 군사와, 좋은 무기와, 인간의 좋은 전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은 바로 주께 속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거인 골리앗과 싸울 때, [너는 칼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내게 오지만나는 만군의 주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이는 전쟁이 주의 것이므로로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0 이처럼 전쟁은 주께 속한 것이고, 승리는 주께서 주셔야만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필리스타인들이 두 번째 쳐들어왔을 때도 주께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지난번 하고는 다른 전략을 주십니다.
0 그래서 대상 14:14-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너는 그들을 쫓아 올라가지 말고 그들로부터 우회하여 뽕나무들 맞은편으로 그들을 엄습하되, 뽕나무들 꼭대기에서 걸어가는 소리를 듣거든 그때에 싸우러 나가라.]고 말씀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이 네 앞에 가서 필리스티아인들의 군대를 치시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0 그러므로 다윗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과 직접 싸워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단지 다윗은 그 말씀에 순종만 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코 성을 무너뜨릴 때도 여호수아에게 전략을 주셨습니다.
0 그래서 수6:2-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 하시기를, 여리코 성을 에워싸고 성읍 주위를 하루에 한 번 돌되, 육 일 동안 그리하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 모든 백성은 큰 소리를 지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리코 성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0 그런데 하나님의 전략 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해서 마치, 어린아이 장난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보기에는 너무나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들의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전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직접 싸워주시겠다는 약속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믿고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승리는 주께로부터 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0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여리코 성은 단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리들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다윗처럼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묻고,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서 주께서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자신을 믿고 신뢰하며 순종하는 자에게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전략과 전술은, 끝임 없이 주님께 기도하고,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0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이 어디에서나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숨기지 않고 여러분들의 믿음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하며 주께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위에 굳건히 서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늘의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전략과 재치와 수완을 여러분들에게 주시므로 여러분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나, 여러분들이 만난 어려운 상황에서 승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알려드립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마태복음 1-10장까지
끝냈습니다. 토요일부터는 잠언13장부터 31장까지
전달하겠습니다. 여러분께 기도 부탁하겠습니다.
전달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