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7:5-6절 말씀입니다.
[5 아하수에로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감히 그런 일행하기를 마음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 자가 어디 있느냐?”하니 6 에스더가 말하기를“그 대적과 원수는 이악한 하만이니이다.”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무서워하더라.]
O 에스더에 관한 이야기는, 예언적인 예표로(미리 보여 주는 조짐으로)볼 때, 왕이신 여호와의 아내이자 왕후로서 회복된“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그리고 모르드캐는 대환란에서 구원받은 유대인“남은 자”의 예표 합니다. 그리고“하만”은, 물론, 사탄을 예표 합니다.
O 그래서 6절에서, 하만을 [대적] 으로 부릅니다. 왜냐하면,“사탄”이란, 이름이“대적”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전5:8절에 보면,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고 예표 론으로 오늘 본문은, 신약의 두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바로 마22:11-13절에 나오는“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거기에서 하만은,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들어왔다가 결국 묶여서 [바깥 흑암] 에 던져지게 되는“마귀”에 비유 됩니다.
O 그리고 두 번째 그림은, 주님과 함께 교회가 끌려 올라가고 마귀가 더 이상“주님과 교회”사이에서“어떠한 유익도”취할 수 없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귀는,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 그리스도인들을 깊은 속까지 샅샅이 고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우리를 주님께 고소하고 있는 것들은 거의 다 사실입니다.
O 또,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이브에게 조용히 다가서 하나님을 비난한 것처럼, 우리에게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속삭입니다. 하나님은 너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0 그리고 진짜로 그렇게 보이도록 거짓 상황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마귀가 우리를 주님께 고소하는 것은 모두다 사실이지만, 마귀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은 100%거짓말입니다.
O 이렇게 간악한 마귀는 어떤 문제를 두고 주님과 우리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면서, 주님과 우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풍성한 사랑의 교재에 초를 치고, 손상시키고 파괴하면서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아주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사탄은 더 이상 그런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침내 하만이 쫓겨나듯이, 마귀가 쫓겨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계12:10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한 큰 음성이 하늘에서 말하기를“이제 구원과 능력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임하는 도다. 이는 우리 형제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고소하던 그 고소 자가 쫓겨났기 때문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에스더서에서는“주께서”라는 말이나,“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께서는 에스더의 무대의 모든 것을 총괄하시고 총 지휘하시면서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따라 무대 전체를 운영하시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O 그래서 주께서는 어느 시점에서 모르드캐를 높이 세우시고, 또, 어느 시점에서 하만을 끌려내려야 하는지, 또 어느 시점에서, 어떤 방법으로 유대민족에게 대 번전을 주실 것인지에 대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 하시고 모든 상황들을 준비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악한 대적 자 하만의 머리에다 말 그대로 올가미를 씌우실 차례가 된 것입니다.
O 이 시점까지 만해도“하만”은, 왕후가, 자기의 절대적인 지지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만은 자기가 왕후로 부터 특별한 호의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왕을 위한 특별한 잔치에 특별히 자신만을, 그것도 두 번 씩이나 초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하만은 에5:12절에 보면 [또 하만이 말하기를“실로 왕후 에스더가 마련한 잔치에 왕과 함께 들어간 사람은 나 외에는 없었으며 내일도 내가 왕과 함께 에스더에게 초청을 받았노라.]고 자랑을 하며, 자신을 추겨 세웠습니다. 그러나 왕후 에스더는, 하만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고자 해서 그를 잔치에 두 번씩이나 초대한 것이 아닙니다.
O 하만은 아주 간사하고 간교한 자이기 때문에 그의 목에 절대로 빠져나 갈수 없는 완벽한 올가미를 씌울 기회를 주께로부터 얻기 위해서 그를 잔치에 초대한 것뿐이었습니다. 에스더의 호소를 듣던 왕은 벌꺽 화를 내면서“감히 그런 일행하기를 마음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 자가 어디 있느냐?”고 에스더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왕후는, 상기된 얼굴로 하만을 가리키며“그 대적과 원수는 이악한 하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O 그동안 하만은 너무나 잘 나갔습니다. 무엇을 해도 잘 되었습니다. 자기가 세운 공도 아닌데, 자기 것으로 인정받고 거기에 큰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암살범은 모르드캐가 잡았는데도 보상은 오히려 하만이 받았고, 그리고 하만은 국무총리로 승진을 했던 것입니다.
0 그러나 모르드캐는 공을 세웠어도 보상도 없고, 승진도 없이 평소와 다름없이 왕의 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에스더 2:19). 하지만, 모르드캐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께서는 자신과 유대민족을 도우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0 그래서 주께서 자신의 공을 하만에게 돌리고, 자신이 받을 보상도 하만에게 돌리셨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계시다는 것을 모르드캐는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하만은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습니다.
O 너무도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하만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후 에스더가 유대인인지는 하만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째 거나 에스더로부터“그 대적과 원수는 이악한 하만”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하만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만은 지금 자신이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O 그것도 이 일이 왕과 왕후와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최상의 만찬 자리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하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그 일이 왕과 함께 하는 바로 그 잔치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께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복 주시고자 기뻐하시는 그런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O 그렇지 않다면 지금 우리가 앉은 그 자리, 우리가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가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게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그 일이, 내가 살게 되는 일인지, 죽게 되는 일인지, 그 자리가 내가 흥하고 번창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자리일지, 아니면, 나의 모든 것들이 살아져 버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자리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에 대한 모든 것들의 일들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O 인간의 모든 답은, 세상에도, 왕에게도, 사람에게도 있지 아니고, 바로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 하나님께서만이, 나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분을 신뢰하지 않고, 그분을 의뢰하지 않는다면, 비록 그 자리가 왕과 왕후와 함께 있는 자리라 할지라도 결국은 하만이 경험한 것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자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전능하신 주 하나님을 믿는다면, 모르드캐가 경험한 대 반전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 일에 대해서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잠27:1절에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오늘만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자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눅12장에 보면 내일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부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O 이 부자는 그해 자신의 땅에서 아주 많은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자는 속으로 생각하면서“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지금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니 지금 있는 곳간들을 헐고 더 큰 것으로 지어서 거기에 나의 모든 곡물과 물건들을 쌓아 둬야 하겠다고 말하면서“이렇게 여러 해 동안 쓸 물건들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이제 좀 편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면서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봐야 되겠다.”고 말합니다.
O 그때 하나님께서 이 부자에게“너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가리니 그러면 네가 장만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러므로 자신을 위하여 는 보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 앞에 부요하지 못한 자는 다 이러하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부자의 눈앞에 문제는 내일이 아니라, 바로“오늘밤”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가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것이 사람이든지, 동물이든지, 바다 속에 있는지, 땅위에 있든지, 공중에 있든지 모든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눅12:6절에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 그 중 한 마리도 하나님 앞에서는 잊혀 지지 않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0 그래서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의 생명을 취하여 가져가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일을 행하시는 데는, 그 사람의 생각과, 그 사람의 사정과, 그 사람의 형편을 고려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시는데 있어서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O 주께서 오늘 밤에 그의 생명을 취하여 가시겠다는데, 어느 누가, 하나님의 앞을 가로막고는 나는 아직은 젊어서 못갑니다. 나는 아직은 할 일이 있어서 못갑니다. 나는 아직은 쓸 만해서 못갑니다. 나는 아직은 갈 때가 안돼서 못갑니다. 나는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서 못가겠습니다. 말할 수 있겠는가 ? 이 말입니다.
O 이 부자의 잘못은, 부자로 산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복 주시면 얼마든지 부자로 부요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의 잘못은 자신의 작은 곡간을 헐어버리고 더 크게 짓는 것에도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곡식 창고가 부족하다 싶으면 얼마든지 더 크게 그리고 더 많은 곡간을 지을 수 있습니다.
O 이 사람의 잘못은 여러 해 동안 쓸 수 있는 물건을 쌓아 놓은 것에 있지 아니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많은 것들을 저축을 해서 필요할 때 쓸 수 있습니다. 또 이 사람의 잘못이 여행을 다니면서 좀 쉬겠다는 것에도 있지 아니합니다. 모든 면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O 그렇다면, 이 사람의 잘못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없이 인생을 산 것이 잘못이고, 자신의 모든 것은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것처럼 생각한 것이 잘못입니다. 또, 자신이 부요하게 된 것은 자신의 능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데(신18:17-18),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 또한 잘못입니다.
0 또, 자신은 부유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부요치 못한 것이 또한 잘못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사람의 잘못은, 자신의 생명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내일도 오늘처럼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자랑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O 그렇습니다. 오늘 형통했다 해서, 내일도 형통할 것이라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슬프다고 해서 내일까지도 슬픔이 계속될 것이라고 해서 낙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밤 세도록 울음이 지속된다고 해서, 그 울음이 아침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밤 세도록 울부짖은 그 성도의 기도와 눈물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침에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기쁨을 주시기로 계획하시고 계시지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시30:5절에 [그의 진노는 한순간이어도 그의 은총은 평생임이라. 밤새도록 울음이 지속될지라도 아침이면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이면 무슨 일이 일어나서 우리가 어떻게 바뀔지,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오직 모른 것을 계획하시고 집행하시는 하나님만 아실뿐인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