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
주일예배
“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
에10:1-3절 말씀입니다.
[1 아하수에로왕이 땅과 바다의 섬들에 조공을 부과하였더라. 2 그의 권세와 능력의 모든 행적과 왕이 모르드캐를 승격시켜 그의 위대함을 알림이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왕들의 역대서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 3 유대인 모르드캐가 아하수에로왕의 다음이 되고 유대인 중에서 위대하게 되었으며 그의 많은 형제들에게서 인정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구하였으며 그의 모든 씨에게 화평을 말하였더라.]
O 오늘 본문 에스더 10장에서는 마침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그 결말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서를“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그 결말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저런 여러 가지의 힘든 문제들을 만날지라도 그러나 결국 승리자는 그리스도인이될 것이요,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0 그러나 세상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의 이야기들이 처음 시작할 때는 매우 매력적이고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화려하고 빛나고 형통하고 마치 자신의 때를 만난 것 것처럼 시작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야기들의 결말은 참으로 비참하고 슬프게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잠14:12절에 보면,[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0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헬라인을 성전으로 데려가서 성소를 더럽혔다는 이유로(행21:28)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에 의해서 고발을 당하게 되고 그리고 그 일로인해 바울은 결국 로마로 호송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울을 로마까지 호송할 책임자는“율리오”라는 백부장이었습니다.
0 그런데 로마로 출항하는 바로 그 아침에 바울은 자신을 호송하는 백부장 불러“ 이번 항해에는 화물과 배뿐만 아니라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의 생명에도 상당한 손실과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항을 연기하는 것을(행27:10)조언을 합니다. 그러나 호송 책임자인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항해에 경험이 풀부한 선장과 선주들의 말을 [더 믿]고 (행27:11)항해를 시작 말씀합니다. 그날따라 구름 한 점 없은 맑은 날씨에 남풍까지 순하게 불고 있습니다. 항해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없습니다. 그래서 행27:13절에 보면 [남풍이 순하게 불자 그들은 자기들의 뜻을 이룬 줄로 생각하고 닻을 올리고 ... 항해하는데]라고 말합니다.
0 사실 선장과 선주들은 이 지중해 바다에 대해서는 그리고 지중해를 항해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 큰 바람과 큰 파도가 일어나고, 언제 계절풍이 몰려오고 있는지, 어디에는 어떤 암초들이 있는지를, 잘 알고 잇기 때문에 자신들의 경험과 노련한 항해 기술로 로마까지 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믿고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바울의 조언은 이들에게는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호송책임자는 바울의 조언보다는 선장과 선주들의 말을 더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에게 조언한 것은 바울이 선장과 선주보다 항해에 대해서 지중해 바다에 대해서 그들보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0 사실 따져보면 바울은 항해에 대해서, 지중해 바다에게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에게 조언한 것은 하나님의 영적 지식에 의해서 조언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째거나 지금“기도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의 조언은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엉터리 조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0 그래서 선장과 선주들은 이 엉터리 조언자 바울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들의 신께 감사하면서, 바울을 비웃고 조롱하며 자신들의 풍부한 경험에 따라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콧노래를 부르며 항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모든 항해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로마로 가는“지중해”뱃길은 멀기만 합니다.
0 그런데 그들의 콧노리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떠들어대던 그 소리가 아직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엉터리 조언자라고 쑥덕거리던 그들의 말들이 아직도 그들의 혓바닥 끝남아 있는데 갑자기“유로 클리돈”이라는 폭풍이 들이 한 순간에 들이닥쳤습니다.그래서 행27:14-15절에 [얼마 안 되어 “유로 클리돈”이라는 폭풍이 그곳을 향해 불어서 배를 덮치니 배가 바람을 거슬러 갈 수 없어서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게 두었더라.]고 말씀합니다.
0 그렇습니다. 전혀 예측할 수도 없었습니다. 폭풍이 들이 닥칠 것이라는 어떤 조짐도 없었습니다. 그거 한 순간에 “유로 클리돈”이 들이 닥친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과 파도가 배를 덮치니] 한 순간에 배는“통제불능”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배는 [바람이 부는 대로 계속 흘러가게 두었더라.](행27:15)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바람과 파도는 점점 더 강하게 불어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자신 손으로 배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바다에 내버리기를 시작합니다.(21절)
0 그러나 가면 갈수록 폭풍은 더욱 기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낮인지 밤인지 조차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와 별들이 보이지 않은 캄캄한 지중해 바다 한 가운데서 무려 14일 동안이나 시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제 [자신들은 구조될 가망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 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27: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와 별들이 보이지 않고 적지 않은 풍랑이 우리를 몰아치니 우리가 구조될 소망이 모두 사라져 버리니라.]고 말합니다.
0 그때 다시 바울이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여러분, 여러분이 내게 경청하고 크레테를 떠나지 아니하였으면 이와 같은 타격과 손실을 입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그러나 여러분가운데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을 것이고, 단지 배만 상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속해 있고 또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간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기를‘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반드시 카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그러므로, 보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너에게 주셨느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기운을 내십시오, 나는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나님을 믿습니다.](행27:22-25) 그리고 바울의 말 대로 배는[두 물살이 합치는 곳에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행27:41)
0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세상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어옵니다. 모든 만사가 다 잘되어 갑니다. 날씨는 화창하고 산에서는 꾀꼬리 종달새 노래 부르고, 산과 들에서는 향기로운 꽃들이 만발합니다. 가계를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하루 벌어들이는 수입이 서초동에 있는 50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살만큼 벌어드립니다. 세상만사가 모두 자신을 위해 있는 것 같은 것입니다. 0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일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집 한 채 살 수 있던“남풍”은, 갑자기 돌변하더니 이매서운“찬바람”으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루에 집을 두 채를 팔아야만 겨우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0 자신의 손으로 자신들의 것들을 세상이라고 하는 바다에 계속 내던져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유로 클리돈”라고 하는“폭풍”을 만난 것입니다. 해도 보이지 않고 별빛조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삶이라고 하는 배는 좌초되어서 산산이 부셔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다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이런 식으로 끝나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0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선장과 선주처럼”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남풍을 만났다고 좋아하지만, 그러나 그 남풍 속에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무서운 “유로 클리돈”라고 하는 무서운 폭풍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0 “하만”처럼, 세상 사람들은 흥하고 번성하고 창대하며 자신의 권력이 왕처럼 높아져 있으나 하지만, 한 순간 갑자기 자신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그 형틀에 자신이 매달려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비웃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은 비참하게 끝을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인 것입니다.
0 그래서 욥은 욥24:24절에 [그들이 잠시 동안 높여질지라도 없어지고 낮아지나니 그들은 모든 다른 사람들처럼 길에서 제해지고 곡식의 이삭 끝처럼 잘려지는 도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의 인간들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세심한 감찰을 받으면서 결국 악한 자는“악한 것을 거두고”, 의로운 자는“의”를 거두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삶에는 결코 요행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0 단지, 하나님께서 세우신“자연의 법칙”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자신이 심은 대로, 자신이 뿌린 대로, 자신이 행한 대로 거두어 들릴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끝날 수 있을까? 사실 이 방법은 이미 오래전“에덴동산”에서 인류가 시작할 때부터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은 그 에덴동산에서부터“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되는 길로는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0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자신들의 인생의 결과만큼은,“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되기를 바라면서 세상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연의 법칙, 즉 “순종의 법칙”인,“자신이 심은 대로, 자신이 뿌린 대로, 자신이 행한 대로 거두어 들릴 뿐”이라는 이 사실을 결코 피해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0 왜냐하면, 주께서“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살 수 있는 정확한 답을 제시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가 출생해서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이라고 하는 답안지에는 언제나 틀린 답만을 기록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0 그 방법은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종”을 이루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들어 있는데, 그것은 1)“주를 두려워하라. 2) 주를 사랑하라.3) 주를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은 하되, 이런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된 순종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순종이 바로 이와 같은“순종”이었던 것입니다.
0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창22:12절에서“네 손을 아이에게 대지 말고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0 다시 읽어드리면,“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순종하는 줄을 아노라”가 아니라,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순종”이고, 이것이 바로 대광교회에서 가르치고 전하는 진짜“순종”인 것입니다.
0 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곳에는 죄가 있습니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곳에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 있습니다. 주를 신뢰하지 않는 곳에는, 사람을 신뢰하고, 세상을 의지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런 삶을 “저주받은 삶”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저주 받은 삶,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구원받지 못한 삶은, 결코“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0 그래서 렘17:5-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과 육신을 그의 무기로 삼는 사람과 그의 마음이 주로부터 떠나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 6 그는 사막에 히스 나무같이 되어 좋은 일이 오는 때를 보지 못하고 광야와 소금 땅과 사람이 살지 않는 바싹 마른 곳들에 거하리라.] 그래서 주를 모르는 자들의 그 끝은 수치와 치욕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0 그리고 그를 최종적으로 맞이하는 곳은 바로 영원한 불 못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이야기의 끝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의 핵심은 바로“마지막”인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 끝이 나고 마침내“마지막”이라고 하는 그“선”에 내가 섰을 때, 나의 인생의 모습이, 나의 삶의 모습이, 나의 신앙의 모습이 어떠한가? 가 비로소 들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에스더의 그“출발”이 아니라, 에스더의 그“끝”에 있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경고합니다.[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잠27:1) 그러나“하만”은, 오늘의 자신의 권력으로 여전히 내일을 자랑하면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0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일을 자랑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일이 오기 전에 오늘 아침 열시에 그를 매달아 죽이기로 이미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0 눅12장에 어리석은 부자는 오늘의 자신의 부요함으로 여전히 내일을 자랑하면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그 밤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0 오늘날 어떤 사람은 오늘의 자신의 건강으로 여전히 내일을 자랑하면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도 내일을 자랑하며 사는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본문의 에스더와 같이 모두,“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결말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0 본문 1절에 보면, [아하수에로왕이 땅과 바다의 섬들에 조공을 부과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에스더서가 끝나는 오늘 본문을 보면, 왕은, 땅과 바다의 모든 섬들, 그리고 모든 문명 세계들을 통치하고, 그리고 그들로부터 조공을 가져오게 합니다. O 마찬가지로 그날에, 천년왕국의 때는 이방인들은 그들의 조공을 주께로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계21:24-26절에 [그리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 가운데서 걷겠으며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곳으로 가져오리라. 25 또 그곳의 성문들을 낮에는 결코 닫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곳에 밤이 없음이라. 26 그들이 민족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곳으로 가져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0 그리고 본문 2-3절에 [그의 권세와 능력의 모든 행적과 왕이 모르드캐를 승격시켜 그의 위대함을 알림이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왕들의 역대서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 3 유대인 모르드캐가 아하수에로왕의 다음이 되고 유대인 중에서 위대하게 되었으며 그의 많은 형제들에게서 인정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구하였으며 그의 모든 씨에게 화평을 말하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0 모르드캐는 왕에 의해[승격]되어 왕의 다음 가는 사람이 되어 [유대인 중에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또 [그의 많은 형제들에게서 인정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모든 씨에게 화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캐에 관한 내용의 상당수가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에 관한 내용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0 이집트의 종이었던 요셉의 마지막은 왕 다음으로 권력 서열 제2인자의 위치에 서게 되고, 그의 모든 형제들이 그에게 절을 하고(창50:18:22), 또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돌보고 그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 그리고 증손들까지 양육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0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 에스더 10장을 통해서도 우리는 성경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를 확실하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 및 유대인들과 관련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22장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보좌 위에 앉아 계시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삼위일체의 제2의 위치에서 그분의 아버지와 함께 통치하십니다.
O 그래서 계22:3,5절에 [다시는 저주가 없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안에 있을 것이며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리니 5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그들에게는 촛불도 햇빛도 필요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고 그리스도의 위대함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계22:10.19절에 [10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봉인하지 말라. 이는 그 때가 가까움이라.19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고 유대인들은 마침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세상과 세상의 모든 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그의 씨”들인 우리들에게 온전하고 영원한 화평을 주시는 것입니다.
0 그래서 계21:4절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내시며,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 또한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음이라.”고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결말을 맺는 방법입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은 완벽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완벽하다면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함 이란 말 속에는“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를 벌하시고, 의로운 자에게 보상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0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것 같으니 무신론자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보니까, 자기 동래에 아주 소문난 어떤 나쁜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 나쁜 짓을 다 하면서 살아도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또 어떤 사람을 보니까, 이 사람은 매우 올바른 삶을 살고 정직하게 살고 착하게 사는 사람인데도 그러나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경험할 수 없는 않은 온갖 고난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다.
0 그래서 이 사람은 이 불공평한 모습을 보고, 너무 성급하게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이 한 가지 중요한 실수는 그들은 영원이란 시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현 이 세상에서 보는 것으로 너무 성급하게 무신론자가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영원”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고”계산에 보니까,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0 그러나 우리 인생은 이곳 지상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은 끝도 없는 세상, 바로“영원”이라는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 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격적인 삶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영원의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영원의 삶을 살기 위해서 잠시 준비하는 준비 기간인 것입니다.
0 그런데 문제는 그 영원의 시간을, 영원의 삶을 어디에서 보내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위에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 영원을 위해서 “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대비하고 준비하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이것에 대비하면서 사는 사람이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0 그래서 우리가 보상을 받은 것도 이 땅에서 받는 보상이 있는가 하면, 저 영원의 세계에서 받는 보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이곳 지상에서 받아야 할 벌을 주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틀림없이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주께서 이 땅에서 보상을 주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필히 영원에서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0 이것이 바로 영원의 세계에서 있게 될 일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많은 범죄들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73:1-14절을 보면 시편기자는 이것을 바라보면서 보며 한탄했던 것입니다. 그 악인들은 체포되거나 벌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진 악행을 다 행하고서도 잘만 살고 부를 누리며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누리고 마치 의인처럼 매우 선량한 사람처럼 살다가 죽을 때도 호화롭게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0 흔히들 완전 범죄 따위는 없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씩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모든 범죄자들을 다 잡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0 동시에, 온갖 선한 행위들을 했으면서도 단 한 번도 그 대가를 보장받지 못했던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들도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보상 같은 것은 그림자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0 그러다가 병들어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곳 지상에서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진리를 설교하다가 그 대가로 스테판은 보상이 아니라, 화살처럼 쏟아져 들어오는“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침례인 요한은 왕에게 옳은 일을 하라고 조언하다가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0 요15:20절에 보면 주님은 겟세마네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종이 자기 주인보다 더 위대하지 못하다’고 너희에게 일렀던 나의 말을 기억하라. 만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다면 너희도 박해하리라](요 15:20)고 말씀 하셨습니다. 0 A.D. 67년에 로마의 제6대 황제 네로가 통치할 때 일어났습니다. 이 독재자가 벌인 일들 가운데 유명한 것이 바로 로마 시를 불태운 일이었습니다. O 황제의 위용을 자랑하던 로마가 불길에 휩싸였을 때, 황제“네로”는, 마캐나 탑에 올라가 하프를 타며‘불타는 트로이’를 노래했고,‘내가 죽기 전에 모든 것이 다 폐허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공개적으로 외쳐댔습니다.
0 그는 마귀 들린 미치광이 군주였습니다. 웅장한 건축물과 수많은 궁전들과 가옥들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수천만 명이 불길에 타 죽거나 연기에 질식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너진 건물더미 밑에 파묻혔습니다. 이 가공할 대화재는 9일 동안이나 그 불길이 꺼질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네로의 소행에 대해 맹렬한 비난과 증오가 빗발치자, 네로는 그 모든 원인을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게로 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화재에 대한 책임을 면함과 동시에, 자신의 마귀적 성품을 즐겁게 해줄 또 다른 잔악 극을 실컷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0 이를 계기로 첫 번째 박해가 일어난 것입니다.
0 네로는, 잔인함의 극치를 보이며 극악하기 짝 없는 상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온갖 처형 수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짐승 가죽에 꿰매어 넣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개들에게 물어 뜯기게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밀랍을 먹인 딱딱한 속옷을 입혀 마차 차축에 고정시킨 후, 자신의 정원에서 불태워 칠흑 같은 정원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습니다.
0 그러나 로마 제국 전반에 걸쳐 총체적으로 일어난 이 잔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경대로 믿는 기독 신앙은 오히려 더 강성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마침내 사도 바울이 순교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네로가 보낸 근위병들을 회심시킨 후, 그들에 의해 처형장으로 끌려갔고, 거기서 기도를 끝낸 뒤 자신의 목을 칼날에 내어주었습니다.
0 바울 외에도 고린도 재무관인 에라스토, 마케도니아의 아리스타코, 바울을 통해 회심한 에베소인 트로피모,바울의 동역자요 바사바라고 불리는 요셉, 다마스커스 감독 아나니아등이 순교했습니다. O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언젠가 반드시 주께서 이 불공평한 거래를 청산하실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우리들은 지금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날 주께서는 그 의에 대해 보상하실 것입니다.
O 그리 멀지 않는 날입니다. 주께서는 반드시 우리들에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멀지 않는 그날에는 더 이상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으며, 청구서도 없고 세금도 없으며, 가정의 근심거리도 없고 어떠한 갈등이나 어떠한 질병도 없습니다. 만사가 아주 잘될 것입니다.“이후 내내 행복하고 복되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그곳에 우리가 오늘이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한”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0 그 영광스러운 날이 오는 순간까지 설령 비록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주께는 한없는 영광을 돌리며 성경대로 믿는 하나님의 형제자매들에게 영적인 이익을 주고 주님의 화평의 사람으로 복음의 일꾼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더욱 힘써 주를 섬기는 자들이 되사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원토록 “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한”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욱 중요한 사실은 주께서 오실 날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0 그렇습니다. 성경대로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주님, 그리고 성경대로 다시 부활하셔서 셋째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 곧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을 고대하고 열망하면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다가 예수의 날, 그리스도의 날에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휴거되어 저 영광의 나라에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
작품번호33-019-400-11-2번
에10:1-3절 말씀입니다.
[1 아하수에로왕이 땅과 바다의 섬들에 조공을 부과하였더라. 2 그의 권세와 능력의 모든 행적과 왕이 모르드캐를 승격시켜 그의 위대함을 알림이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왕들의 역대서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 3 유대인 모르드캐가 아하수에로왕의 다음이 되고 유대인 중에서 위대하게 되었으며 그의 많은 형제들에게서 인정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구하였으며 그의 모든 씨에게 화평을 말하였더라.]
O 오늘 본문 에스더 10장에서는 마침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그 결말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서를“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그 결말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저런 여러 가지의 힘든 문제들을 만날지라도 그러나 결국 승리자는 그리스도인이될 것이요,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0 그러나 세상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의 이야기들이 처음 시작할 때는 매우 매력적이고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화려하고 빛나고 형통하고 마치 자신의 때를 만난 것 것처럼 시작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야기들의 결말은 참으로 비참하고 슬프게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잠14:12절에 보면,[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0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헬라인을 성전으로 데려가서 성소를 더럽혔다는 이유로(행21:28)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에 의해서 고발을 당하게 되고 그리고 그 일로인해 바울은 결국 로마로 호송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울을 로마까지 호송할 책임자는“율리오”라는 백부장이었습니다.
0 그런데 로마로 출항하는 바로 그 아침에 바울은 자신을 호송하는 백부장 불러“ 이번 항해에는 화물과 배뿐만 아니라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의 생명에도 상당한 손실과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항을 연기하는 것을(행27:10)조언을 합니다. 그러나 호송 책임자인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항해에 경험이 풀부한 선장과 선주들의 말을 [더 믿]고 (행27:11)항해를 시작 말씀합니다. 그날따라 구름 한 점 없은 맑은 날씨에 남풍까지 순하게 불고 있습니다. 항해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없습니다. 그래서 행27:13절에 보면 [남풍이 순하게 불자 그들은 자기들의 뜻을 이룬 줄로 생각하고 닻을 올리고 ... 항해하는데]라고 말합니다.
0 사실 선장과 선주들은 이 지중해 바다에 대해서는 그리고 지중해를 항해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 큰 바람과 큰 파도가 일어나고, 언제 계절풍이 몰려오고 있는지, 어디에는 어떤 암초들이 있는지를, 잘 알고 잇기 때문에 자신들의 경험과 노련한 항해 기술로 로마까지 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믿고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바울의 조언은 이들에게는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호송책임자는 바울의 조언보다는 선장과 선주들의 말을 더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에게 조언한 것은 바울이 선장과 선주보다 항해에 대해서 지중해 바다에 대해서 그들보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0 사실 따져보면 바울은 항해에 대해서, 지중해 바다에게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에게 조언한 것은 하나님의 영적 지식에 의해서 조언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째거나 지금“기도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의 조언은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엉터리 조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0 그래서 선장과 선주들은 이 엉터리 조언자 바울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들의 신께 감사하면서, 바울을 비웃고 조롱하며 자신들의 풍부한 경험에 따라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콧노래를 부르며 항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모든 항해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로마로 가는“지중해”뱃길은 멀기만 합니다.
0 그런데 그들의 콧노리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떠들어대던 그 소리가 아직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엉터리 조언자라고 쑥덕거리던 그들의 말들이 아직도 그들의 혓바닥 끝남아 있는데 갑자기“유로 클리돈”이라는 폭풍이 들이 한 순간에 들이닥쳤습니다.그래서 행27:14-15절에 [얼마 안 되어 “유로 클리돈”이라는 폭풍이 그곳을 향해 불어서 배를 덮치니 배가 바람을 거슬러 갈 수 없어서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게 두었더라.]고 말씀합니다.
0 그렇습니다. 전혀 예측할 수도 없었습니다. 폭풍이 들이 닥칠 것이라는 어떤 조짐도 없었습니다. 그거 한 순간에 “유로 클리돈”이 들이 닥친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과 파도가 배를 덮치니] 한 순간에 배는“통제불능”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배는 [바람이 부는 대로 계속 흘러가게 두었더라.](행27:15)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바람과 파도는 점점 더 강하게 불어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자신 손으로 배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바다에 내버리기를 시작합니다.(21절)
0 그러나 가면 갈수록 폭풍은 더욱 기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낮인지 밤인지 조차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와 별들이 보이지 않은 캄캄한 지중해 바다 한 가운데서 무려 14일 동안이나 시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제 [자신들은 구조될 가망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 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27: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와 별들이 보이지 않고 적지 않은 풍랑이 우리를 몰아치니 우리가 구조될 소망이 모두 사라져 버리니라.]고 말합니다.
0 그때 다시 바울이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여러분, 여러분이 내게 경청하고 크레테를 떠나지 아니하였으면 이와 같은 타격과 손실을 입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그러나 여러분가운데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을 것이고, 단지 배만 상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속해 있고 또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간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기를‘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반드시 카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그러므로, 보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너에게 주셨느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기운을 내십시오, 나는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나님을 믿습니다.](행27:22-25) 그리고 바울의 말 대로 배는[두 물살이 합치는 곳에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행27:41)
0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세상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어옵니다. 모든 만사가 다 잘되어 갑니다. 날씨는 화창하고 산에서는 꾀꼬리 종달새 노래 부르고, 산과 들에서는 향기로운 꽃들이 만발합니다. 가계를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하루 벌어들이는 수입이 서초동에 있는 50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살만큼 벌어드립니다. 세상만사가 모두 자신을 위해 있는 것 같은 것입니다. 0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일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집 한 채 살 수 있던“남풍”은, 갑자기 돌변하더니 이매서운“찬바람”으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루에 집을 두 채를 팔아야만 겨우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0 자신의 손으로 자신들의 것들을 세상이라고 하는 바다에 계속 내던져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유로 클리돈”라고 하는“폭풍”을 만난 것입니다. 해도 보이지 않고 별빛조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삶이라고 하는 배는 좌초되어서 산산이 부셔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다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이런 식으로 끝나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0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선장과 선주처럼”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남풍을 만났다고 좋아하지만, 그러나 그 남풍 속에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무서운 “유로 클리돈”라고 하는 무서운 폭풍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0 “하만”처럼, 세상 사람들은 흥하고 번성하고 창대하며 자신의 권력이 왕처럼 높아져 있으나 하지만, 한 순간 갑자기 자신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그 형틀에 자신이 매달려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비웃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은 비참하게 끝을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인 것입니다.
0 그래서 욥은 욥24:24절에 [그들이 잠시 동안 높여질지라도 없어지고 낮아지나니 그들은 모든 다른 사람들처럼 길에서 제해지고 곡식의 이삭 끝처럼 잘려지는 도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의 인간들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세심한 감찰을 받으면서 결국 악한 자는“악한 것을 거두고”, 의로운 자는“의”를 거두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삶에는 결코 요행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0 단지, 하나님께서 세우신“자연의 법칙”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자신이 심은 대로, 자신이 뿌린 대로, 자신이 행한 대로 거두어 들릴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끝날 수 있을까? 사실 이 방법은 이미 오래전“에덴동산”에서 인류가 시작할 때부터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은 그 에덴동산에서부터“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되는 길로는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0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자신들의 인생의 결과만큼은,“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되기를 바라면서 세상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연의 법칙, 즉 “순종의 법칙”인,“자신이 심은 대로, 자신이 뿌린 대로, 자신이 행한 대로 거두어 들릴 뿐”이라는 이 사실을 결코 피해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0 왜냐하면, 주께서“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살 수 있는 정확한 답을 제시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가 출생해서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이라고 하는 답안지에는 언제나 틀린 답만을 기록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0 그 방법은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종”을 이루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들어 있는데, 그것은 1)“주를 두려워하라. 2) 주를 사랑하라.3) 주를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은 하되, 이런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된 순종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순종이 바로 이와 같은“순종”이었던 것입니다.
0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창22:12절에서“네 손을 아이에게 대지 말고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0 다시 읽어드리면,“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순종하는 줄을 아노라”가 아니라,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순종”이고, 이것이 바로 대광교회에서 가르치고 전하는 진짜“순종”인 것입니다.
0 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곳에는 죄가 있습니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곳에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 있습니다. 주를 신뢰하지 않는 곳에는, 사람을 신뢰하고, 세상을 의지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런 삶을 “저주받은 삶”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저주 받은 삶,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구원받지 못한 삶은, 결코“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0 그래서 렘17:5-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과 육신을 그의 무기로 삼는 사람과 그의 마음이 주로부터 떠나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 6 그는 사막에 히스 나무같이 되어 좋은 일이 오는 때를 보지 못하고 광야와 소금 땅과 사람이 살지 않는 바싹 마른 곳들에 거하리라.] 그래서 주를 모르는 자들의 그 끝은 수치와 치욕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0 그리고 그를 최종적으로 맞이하는 곳은 바로 영원한 불 못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이야기의 끝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의 핵심은 바로“마지막”인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 끝이 나고 마침내“마지막”이라고 하는 그“선”에 내가 섰을 때, 나의 인생의 모습이, 나의 삶의 모습이, 나의 신앙의 모습이 어떠한가? 가 비로소 들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에스더의 그“출발”이 아니라, 에스더의 그“끝”에 있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경고합니다.[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잠27:1) 그러나“하만”은, 오늘의 자신의 권력으로 여전히 내일을 자랑하면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0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일을 자랑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일이 오기 전에 오늘 아침 열시에 그를 매달아 죽이기로 이미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0 눅12장에 어리석은 부자는 오늘의 자신의 부요함으로 여전히 내일을 자랑하면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그 밤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0 오늘날 어떤 사람은 오늘의 자신의 건강으로 여전히 내일을 자랑하면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도 내일을 자랑하며 사는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본문의 에스더와 같이 모두,“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결말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0 본문 1절에 보면, [아하수에로왕이 땅과 바다의 섬들에 조공을 부과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에스더서가 끝나는 오늘 본문을 보면, 왕은, 땅과 바다의 모든 섬들, 그리고 모든 문명 세계들을 통치하고, 그리고 그들로부터 조공을 가져오게 합니다. O 마찬가지로 그날에, 천년왕국의 때는 이방인들은 그들의 조공을 주께로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계21:24-26절에 [그리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 가운데서 걷겠으며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곳으로 가져오리라. 25 또 그곳의 성문들을 낮에는 결코 닫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곳에 밤이 없음이라. 26 그들이 민족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곳으로 가져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0 그리고 본문 2-3절에 [그의 권세와 능력의 모든 행적과 왕이 모르드캐를 승격시켜 그의 위대함을 알림이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왕들의 역대서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 3 유대인 모르드캐가 아하수에로왕의 다음이 되고 유대인 중에서 위대하게 되었으며 그의 많은 형제들에게서 인정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구하였으며 그의 모든 씨에게 화평을 말하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0 모르드캐는 왕에 의해[승격]되어 왕의 다음 가는 사람이 되어 [유대인 중에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또 [그의 많은 형제들에게서 인정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모든 씨에게 화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캐에 관한 내용의 상당수가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에 관한 내용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0 이집트의 종이었던 요셉의 마지막은 왕 다음으로 권력 서열 제2인자의 위치에 서게 되고, 그의 모든 형제들이 그에게 절을 하고(창50:18:22), 또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돌보고 그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 그리고 증손들까지 양육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0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 에스더 10장을 통해서도 우리는 성경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를 확실하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 및 유대인들과 관련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22장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보좌 위에 앉아 계시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삼위일체의 제2의 위치에서 그분의 아버지와 함께 통치하십니다.
O 그래서 계22:3,5절에 [다시는 저주가 없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안에 있을 것이며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리니 5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그들에게는 촛불도 햇빛도 필요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고 그리스도의 위대함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계22:10.19절에 [10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봉인하지 말라. 이는 그 때가 가까움이라.19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고 유대인들은 마침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세상과 세상의 모든 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그의 씨”들인 우리들에게 온전하고 영원한 화평을 주시는 것입니다.
0 그래서 계21:4절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내시며,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 또한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음이라.”고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결말을 맺는 방법입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은 완벽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완벽하다면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함 이란 말 속에는“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를 벌하시고, 의로운 자에게 보상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0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것 같으니 무신론자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보니까, 자기 동래에 아주 소문난 어떤 나쁜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 나쁜 짓을 다 하면서 살아도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또 어떤 사람을 보니까, 이 사람은 매우 올바른 삶을 살고 정직하게 살고 착하게 사는 사람인데도 그러나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경험할 수 없는 않은 온갖 고난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다.
0 그래서 이 사람은 이 불공평한 모습을 보고, 너무 성급하게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이 한 가지 중요한 실수는 그들은 영원이란 시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현 이 세상에서 보는 것으로 너무 성급하게 무신론자가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영원”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고”계산에 보니까,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0 그러나 우리 인생은 이곳 지상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은 끝도 없는 세상, 바로“영원”이라는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 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격적인 삶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영원의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영원의 삶을 살기 위해서 잠시 준비하는 준비 기간인 것입니다.
0 그런데 문제는 그 영원의 시간을, 영원의 삶을 어디에서 보내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위에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 영원을 위해서 “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대비하고 준비하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이것에 대비하면서 사는 사람이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0 그래서 우리가 보상을 받은 것도 이 땅에서 받는 보상이 있는가 하면, 저 영원의 세계에서 받는 보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이곳 지상에서 받아야 할 벌을 주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틀림없이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주께서 이 땅에서 보상을 주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필히 영원에서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0 이것이 바로 영원의 세계에서 있게 될 일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많은 범죄들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73:1-14절을 보면 시편기자는 이것을 바라보면서 보며 한탄했던 것입니다. 그 악인들은 체포되거나 벌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진 악행을 다 행하고서도 잘만 살고 부를 누리며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누리고 마치 의인처럼 매우 선량한 사람처럼 살다가 죽을 때도 호화롭게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0 흔히들 완전 범죄 따위는 없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씩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모든 범죄자들을 다 잡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0 동시에, 온갖 선한 행위들을 했으면서도 단 한 번도 그 대가를 보장받지 못했던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들도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보상 같은 것은 그림자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0 그러다가 병들어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곳 지상에서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진리를 설교하다가 그 대가로 스테판은 보상이 아니라, 화살처럼 쏟아져 들어오는“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침례인 요한은 왕에게 옳은 일을 하라고 조언하다가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0 요15:20절에 보면 주님은 겟세마네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종이 자기 주인보다 더 위대하지 못하다’고 너희에게 일렀던 나의 말을 기억하라. 만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다면 너희도 박해하리라](요 15:20)고 말씀 하셨습니다. 0 A.D. 67년에 로마의 제6대 황제 네로가 통치할 때 일어났습니다. 이 독재자가 벌인 일들 가운데 유명한 것이 바로 로마 시를 불태운 일이었습니다. O 황제의 위용을 자랑하던 로마가 불길에 휩싸였을 때, 황제“네로”는, 마캐나 탑에 올라가 하프를 타며‘불타는 트로이’를 노래했고,‘내가 죽기 전에 모든 것이 다 폐허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공개적으로 외쳐댔습니다.
0 그는 마귀 들린 미치광이 군주였습니다. 웅장한 건축물과 수많은 궁전들과 가옥들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수천만 명이 불길에 타 죽거나 연기에 질식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너진 건물더미 밑에 파묻혔습니다. 이 가공할 대화재는 9일 동안이나 그 불길이 꺼질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네로의 소행에 대해 맹렬한 비난과 증오가 빗발치자, 네로는 그 모든 원인을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게로 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화재에 대한 책임을 면함과 동시에, 자신의 마귀적 성품을 즐겁게 해줄 또 다른 잔악 극을 실컷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0 이를 계기로 첫 번째 박해가 일어난 것입니다.
0 네로는, 잔인함의 극치를 보이며 극악하기 짝 없는 상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온갖 처형 수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짐승 가죽에 꿰매어 넣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개들에게 물어 뜯기게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밀랍을 먹인 딱딱한 속옷을 입혀 마차 차축에 고정시킨 후, 자신의 정원에서 불태워 칠흑 같은 정원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습니다.
0 그러나 로마 제국 전반에 걸쳐 총체적으로 일어난 이 잔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경대로 믿는 기독 신앙은 오히려 더 강성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마침내 사도 바울이 순교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네로가 보낸 근위병들을 회심시킨 후, 그들에 의해 처형장으로 끌려갔고, 거기서 기도를 끝낸 뒤 자신의 목을 칼날에 내어주었습니다.
0 바울 외에도 고린도 재무관인 에라스토, 마케도니아의 아리스타코, 바울을 통해 회심한 에베소인 트로피모,바울의 동역자요 바사바라고 불리는 요셉, 다마스커스 감독 아나니아등이 순교했습니다. O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언젠가 반드시 주께서 이 불공평한 거래를 청산하실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우리들은 지금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날 주께서는 그 의에 대해 보상하실 것입니다.
O 그리 멀지 않는 날입니다. 주께서는 반드시 우리들에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멀지 않는 그날에는 더 이상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으며, 청구서도 없고 세금도 없으며, 가정의 근심거리도 없고 어떠한 갈등이나 어떠한 질병도 없습니다. 만사가 아주 잘될 것입니다.“이후 내내 행복하고 복되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그곳에 우리가 오늘이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한”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0 그 영광스러운 날이 오는 순간까지 설령 비록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주께는 한없는 영광을 돌리며 성경대로 믿는 하나님의 형제자매들에게 영적인 이익을 주고 주님의 화평의 사람으로 복음의 일꾼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더욱 힘써 주를 섬기는 자들이 되사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원토록 “이후 내내 복되고 행복한”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욱 중요한 사실은 주께서 오실 날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0 그렇습니다. 성경대로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주님, 그리고 성경대로 다시 부활하셔서 셋째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 곧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을 고대하고 열망하면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다가 예수의 날, 그리스도의 날에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휴거되어 저 영광의 나라에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