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교회들을 강건케 해 주니라.
행15:1-41절 말씀입니다.
O 먼저 본문1-5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유대에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형제들을 가르치며 말하기를 “너희가 모세의 율례에 따라 할례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노라.”고 하더라. 2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 차이와 논쟁이 일어나니 형제들이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중에서 몇 사람을 더 선정하여 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올라가도록 하니라. 3 이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페니케와 사마리아를 경유하며 이방인들의 개종을 설명하니 모든 형제가 크게 기뻐하더라. 4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을 설명 하니라. 5 그러나 바리새파에서 믿는 몇 사람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그들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니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권고하라.”고 하더라. ]고 말씀합니다.
O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거짓 교리”를 보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1절에 있습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유대에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형제들을 가르치며 말하기를 “너희가 모세의 율례에 따라 할례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노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구원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행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0 다른 하나는 바로 5절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나 바리새파에서 믿는 몇 사람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그들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니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권고하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두 가지”거짓 교리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지역 교회들에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O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헌신과 봉사는, 구원을 위해서도 아니요, 받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헌신과 봉사는 구원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는 우리가 장차 천년왕국에서 받아야 할 유업과,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주께로부터 받는 상급을 위한 것입니다.
0 그래서 성경은 이 두“이단 교리”를 반박하며 본문 11,19,24절에서 그것들을 바로잡아 잡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교리는 쉽게 뽑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독보리”가 알곡들보다 더 강력하게 성장하고 뻗어나가는 것처럼, 교회가 시작된 이래로 이 거짓 교리들은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행위”를 강요하면서 성도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히브리서 6,10장과, 마태복음 24장이나 산상수훈을 이 시대의 교리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0 그러나“율법과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교회시대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환란시대에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교리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진리의 지식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시대에 교리로 가르치면서 오히려 성경적 교리는 배격하고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0 사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O 1절에 보면,[어떤 사람들이 형제들을 가르치며]라고 말합니다. 여기 이“어떤 사람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가짜들이면서도 그러나“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가짜들은, 진짜 서기관인 에스라(스7:6)을, 공격하고 반대하는 가짜 서기관들입니다.(마23:1-4). 이 가짜들은, 바울 같은 진짜 사역자들을, 대적하고 반대하는(고후11:l-l4) 가짜 사역자들입니다.(고후11:12-14).이 가짜들은, 진짜 사도들을 공격하면서 자신들도 사도들이라고 말하는 가짜 사도들입니다.(고후11:12-15).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진짜 성경 교사들을, 대적하고 반대하는(행l3:1-20)가짜 성경교사들인 것입니다.
O 2절에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 차이와 논쟁이 일어나니...]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논쟁을 통해서, 의견 차이가 어느 정도 해소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쟁은, 상황을 더 악화 시킬 뿐입니다. 그래서 행9:29-30절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이“유대주의자들”(2절)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들에 의해서 죽을 뻔 했던 것입니다.
0 그래서 가급적 논쟁을 피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때로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서는 논쟁을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불가피한 경우, 우리는 논쟁을 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편과 논쟁을 하게 될 때는 우리는 더욱 차분하고 정연하게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근거한 논쟁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시 5절에 [... 믿는 몇 사람이 일어나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믿는”이란 말이 오히려 우리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성도도, 성경의 진리를 떠나 전혀 다른 견해에 참여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0 그래서“이단의 시작”은 처음에는 분명히 성경대로 믿는 믿음에서 시작을 했다가 그러나 그 믿음이 진리의 지식 위해 든든하게 서기도 전에, 점점 성경의 진리를 벗어나 전혀 다른 이단의 견해에 참여하다가 결국 거기에 걸려들어“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본문 5절의 말씀은,“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관한 구절입니다. 그래서 [바리새파에서 믿는 몇 사람이 말하기를 “그들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니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권고하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죄에 빠지게 된다면(히3:13), 설령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구원의 은혜”에서 떨어져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0 이런 일이 생기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분별하고 말씀을 나누고 그리고 이 말씀이 어디에 적용되는지를 철저하게 배우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도기적 책인“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에 관해서 자주 말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성경을 잘못 인용하고 잘못 적용해서 가르치므로 우리를 지옥으로 인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O 다시 6-12절을 보겠습니다. [그때에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려고 함께 모였는데 7 많은 논의가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하기를“형제 여러분, 당신들이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우리 가운데 택하시어 나의 입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느니라. 8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행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증거 하시어 성령을 주셨으며 9 우리와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도 두지 아니하셨으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케 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의 조상이나 우리도 감당할 수 없었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걸려고 하느냐? 11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믿으며 그들도 마찬가지니라.”고 하더라.12 그러자 모든 무리가 조용해지며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어떠한 기적들과 이적들을 행하셨는가를 설명하니 듣더라.]고 말씀합니다.
O 그리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예루살렘교회에“사도들과 장로들의 모임”이 열렸습니다. 여기 예루살렘 교회에서 논의되는 문제는 교리적인 문제였습니다. 0 그리고 이 논의는 바울 서신들이 기록되고 있는 동안, 신약 교리를 결정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9절에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정결케 함”은“믿음”(9절)과“은혜”(10절)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O 다시 l3-23절을 읽습니다. [그들이 잠잠해진 후에 야고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형제 여러분, 내게 경청하라.14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한 백성을 취하시려고 처음에 어떻게 그들을 찾으셨는가를 시므온이 설명하였으니 15 이것은 선지자들의 말과 일치된 것이라. 기록된 바 16 ‘이 일 후에 내가 다시 돌아와서 쓰러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울 것이며 또 거기에 파괴된 것들을 다시 세워 일으키리라. 17 그리하여 남은 자들로 주를 찾게 할 것이며 또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이방인들도 그러하리라.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주가 말하노라. 18 세상의 시작부터 그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께 알려졌느니라.’고 함과 같으니라.19 그러므로 내 판단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을 우리가 괴롭히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글을 보내어 우상으로 더럽혀진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삼가게 하자는 것이라.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읍에서 모세를 전파하는 자들이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이 읽혔음이라.”고 하더라.22 그리하여 사도들과 장로들이 온 교회로 더불어 그들 가운데 사람들을 선정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티옥으로 보내는 것을 좋게 여기니 곧 형제들 중에서 지도자인 바사바라 부르는 유다와 실라더라.23 그들이 이렇게 그들 편에 써 보내기를“사도들과 장로들과 형제들은 안티옥과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O 이제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주의 형제. 갈1:19)가 그 모임을 이끌고 있으면서 그들의 많은 논의는 마침내 종결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초대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도달한 결론”인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 [하나님께서...이방인들 가운데서...처음에 어떻게 그들을 찾으셨는가를 시므온이 설명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l0장과 연관됩니다. 그래서 본문 8-9절을 보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행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증거 하시어 성령을 주셨으며 9 우리와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도 두지 아니하셨으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케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O 14절에 [그의 이름을 위하여...한 백성을 취하지려고]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주제에 접근합니다. 그래서 16-17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다시 돌아와서 쓰러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울 것이며, 또 거기에 파괴된 것들을 다시 세워 일으키리라. 그리하여 남은 자들로 주를 찾게 할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구약은 모두, 솔로몬의 물리적이고, 눈에 보이는, 문자 그대로의 성전이 예루살렘에(겔40,48장)다시 세워질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계11:1-3). 다윗의 보좌(마19:28)는, 눈에 보이며 물리적이고 지상에 세워지는 문자 그대로의 보좌(마25:3l)를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실도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습니다(눅1:30-33).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내가 그것을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O 17절에 [남은 자들로...또 내 이름으로 불리우는 모든 이방인들도...]라고 말합니다. 14절에서처럼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들]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남은 자들]은 지상의 인구 중, “3분의 2가 죽은 후에 남은 사람들”입니다.(계4-l9장). 그들이 하나님께 경배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한 백성에게 적용될 것인데(약2:7) 그 환란때 하나님의 이름은“여호와”가 될 것입니다. O 18절에 [세상의 시작부터 그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께 알려졌느니라.’고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알려졌느니라] 인간에게 계시되었건, 그렇지 않건 간에(엡3:1-6) “하나님께는 알려졌”습니다.
0 그래서 세상의 시작부터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선택(벧전l:2)과 미리 정하심(롬8:29)은 “미리 아심” 뒤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만세전부터“선택되었다.”는 칼빈의 교리는“거짓교리”인 것입니다. 칼빈의 교리는 선택되어야 예수 믿고, 선택되어야 거듭나고, 선택되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을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고, 거듭나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이 되고, 주 예수를 믿어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이 되는 참된 교리를, 완전하게 거꾸로 뒤집어서, 말한 거짓 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어서 거꾸로 말한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O 그래서 18절은 환란과 천년왕국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며“왕국을 이어받는”(마25:34) 환란에서 나온 사람들이“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그들을 위하여 준비된”(마25:34) 왕국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두 번”불러 냄을 받으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교회 시대의 계시를 기록하게 하시기 전이지만, 그러나 야고보는 환란 구절을 사용해서 교회 시대에 그것을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O 여기서 야고보는 [판단]을 내립니다. 구원의 간증을 잃지 않기 위해 이방인 성도가 지켜야 할, “네 가지”가 있습니다.“구원을 받기 위해서”나“구원을 유지하기”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네 가지는, 1. 우상으로부터 더럽혀진 것. 2. 음행. 3. 목매어 죽인 동물들. 4. 피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것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거나 구원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21절에 [예로부터 여러 성읍에서 모세를 전파하는 자들이 있어 안식일마다회당에서 그 글이 읽혔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들과 장로들과 교회와 성령께서 내린 결론은, 어떤 사람이 믿게 된 후 행위는 어떤 형태로든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간증을 잃어버리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O 그래서 20절에 있는 모든 경고는, 5절에서 유대인들이 말한 [... “그들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니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권고하라.”.]고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레l7장, 신I2장,창9:1-16). O [바사바라 부르는]유다는(22절), l5장 이후로 성경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실라”(22절)는, 다른 곳에서는“실루아노”라고도 불렀습니다.그래서 고후1:19절에서 [우리, 즉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너희 가운데서 전파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예’와‘아니오’가 아니라 그분 안에는‘예’만 있었느니라.]말합니다.(살전l:1,벧전5:l2절) 그리고 그는 다음 선교여행(행16)에서 바울의 동역 자가 되었습니다.
O 다시 24-35절을 읽습니다. [우리가 듣기로는 우리 가운데서 나간 몇몇 사람이 말로 너희를 괴롭히고 너희의 혼을 파멸시키며 말하기를‘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그러한 지침을 준 적이 없노라. 25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나바와 바울과 더불어 사람들을 선정하여 너희에게 보내기로 일치 가결하였으니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 같도다. 26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들의 생명을 바친 사람들이라. 27 따라서 우리가 유다와 실라를 보내는 것도 그들 역시 동일한 것을 너희에게 입으로 전하게 하려 함이라. 28 다음의 필요한 것들 외에는 너희에게 더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는 것이 성령과 우리에게 좋은 것 같으니 29 곧 우상들에게 바친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삼가라는 것이라. 이와 같은 것들로부터 너희가 스스로 조심하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비노라.”고 하더라.30 그리고 나서 그들을 보내니 그들이 안티옥으로 가서 함께 무리를 모으고 그 편지를 전해 주더라. 31 그들이 읽고 그 위로하는 말로 기뻐하니라. 32 그때 유다와 실라도 그들 자신이 선지자이므로 여러 말로 형제들을 권고하고 강건케 해주더라.33 그곳에서 잠시 지체한 후 그곳 형제들로부터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받고 사도들에게로 가려 하되 34 실라는 오히려 그곳에 머무는 것을 좋게 여기니라. 35 바울과 바나바도 안티옥에 머물면서 많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전파하니라.]
O 24절에 [우리가 듣기로는 우리 가운데서 나간 몇몇 사람이 말로 너희를 괴롭히고 너희의 혼을 파멸시키며 말하기를‘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그러한 지침을 준 적이 없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을“괴롭히는”(24절)이들은, 대개가 자칭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는 그들의 무기는 말입니다. 그들의 입에는 사악함으로 차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떨어져 나간 자들입니다. 그래서[우리 가운데서 나간 몇몇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만나게 되는 악당 중에 아주 고약한 악당은 바로 자칭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가짜 그리스도인들에게“공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입니다. 다시 [우리는 그들에게 그러한 지침을 준 적이 없노라](24절).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구원받은 제자들은 구원과 연관해서 할례나 율법(l,5절)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O 그리고 25절에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나바와 바울과 더불어 사람들을 선정하여 너희에게 보내기로 일치 가결하였으니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 같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의 첫 번째 교회”는, “두 가지 거짓 교리”에 대해서 논의하고 그것들을 바로 잡고,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침서를 내려 보내는데 일치가결 했습니다.
O 그러나 [일치 가결]이 있다 하더라도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의“일치가결”아니면, 다시 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하는데 일치 가결한 것이라면, 오히려 하나님의 화를 불러오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바로 창세기 11장에서 있었던“일치”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6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들의 생명을 바친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
0 바울과 바나바가 보냄을 받을 때, 아무도 바울의 교육 조건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4,5개국의 언어로 말할 수 있었고, 당시 최고의 학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가말리엘제자.행22:3) 그러나 바울의 교육 배경이나 지적 성취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주를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를 섬기는데 이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0 주께서는 적과 타협하지 않고 전쟁에서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신실하고 충성된 군인들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적과의 싸움이 불가피 한 것이라면(삼상4:9), 기쁘게(행l6:25) 그리고 용감하게(빌1:28)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들의 생명을 바친 사람들이라.](26절)고 말합니다.(고후11:23-27)
O 바울과 바나바를 보낸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기독교 교육을 받았는가? 학교는 어를 나왔고, 그의 환경은 어떠 했는가? 에대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담대히 주를 전할 수 있는가?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가? 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바울과 바나바”는 보내심을 받은 대로 그 편지(30절)를 직접 전달했고,“유다와 실라”는 그것을 “입으로” 전했던 것입니다.
O 28절에 [다음의 필요한 것들 외에는 너희에게 더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는 것이 성령과 우리에게 좋은 것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몇 가지 필요한 것]은,“간증”에 필요한 것(2l절)이지,“구원”에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안티 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0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은혜의 대로를 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루살렘에서 반대되는 결정이 왔다면 그들은 바울의 사역에 의심을 품었을 것입니다.(갈2:1-4) 유다와 바나바는 에루살렘으로 되돌아가고(33절“실라”는 머무릅니다.(34절) 안티옥에는“많은 선생들”이 있었습니다.(35절). 안티옥은“선교사들”과,“성경 교사들”로 알려진 곳곳입니다. 이곳이 바로 성경이 강조하는 곳입니다.“안티옥”은 신약 기독교의“근거지”입니다. 안티옥에는 [주의 말씀](35절)과“많은”교사들(35절)이 있었습니다.
O 36-41절을 읽습니다.[며칠이 지난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하기를“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파한 각 성읍의 우리 형제들에게 다시 가서 방문하여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고 하니 37 그때 바나바는 마가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결심하였으나 38 바울은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사역하러 가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더라. 39 그러므로 그들 간에 심한 의견 대립이 있어 서로 헤어지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로 쿠프로로 떠나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떠나니 형제들이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에 의탁하더라.41 그는 시리아와 킬리키아를 경유하며 교회들을 강건케 해 주니라.]
O 바울의 두 번에 선교여행은 개종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36절)시작됩니다. 그래서 36절에 [며칠이 지난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하기를“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파한 각 성읍의 우리 형제들에게 다시 가서 방문하여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고 하니]라고 말합니다. 안티옥 사람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들에게 영항을 미칠 수 없는 완전한 구원을 소유한 것을 기뻐합니다. 이제 그들은“좋은 소식”을 전파해야 할 위치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각 성읍의...다시 가서](36절). 바울의 선교일행들은 13,l4장에서 말한 도시들을 다시 거쳐 가려 하고 있습니다.
O 그런데 여기서 누군가가“형제들 사이에 불화를 뿌려 놓았습니다.”잠6:19절에 보면, [거짓을 말하는 거짓 증인과, 형제간에 불화를 일으키는 자니라.]고 말합니다. 요한 마가로 인해 교회 안에 작은 분열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37-38절에[그때 바나바는 마가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결심하였으나 38 바울은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사역하러 가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더라.]고 말합니다. 본문에는 이 의견대립이“심했다.”고 말씀합니다.
0 그래서 39절에 [그러므로 그들 간에 심한 의견 대립이 있어 서로 헤어지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로 쿠프로로 떠나고]라고 말합니다. 두 명의 성령 충만한 사람을“서로 헤어지게”할 만큼 심한 대립이었습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취약한 곳이 있습니다.
O 그래서 세상의 모든“목사, 장로, 집사”가, 딤전3:l-9절의 요구사항인[절제하고 신중하며, 예의 바르고 대접하기에 힘쓰며, 가르치기를 잘하고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오직 잘 참고, 다투지 아니하며, 탐욕스럽지 아니하고, 교만으로 높아져 있지 않고 외부 사람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으며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않고 일구이언하지 아니하며, 순수한 양심 안에 온전한 믿음의 신비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왜냐하면 육신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로 쿠프로로 떠나고]그리고 바울은“실라”는 대리고 곧장 본토를 가로질러 소아시아로 가는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40-41절에 [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떠나니 형제들이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에 의탁하더라.41 그는 시리아와 킬리키아를 경유하며 교회들을 강건케 해 주니라.] 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주님께서는 하나에서, 두 개의 선교 팀을 갖게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바울은 실라”와 함께 그동안 주의 말씀을 전파한 각 성읍의 우리 형제들에게 다시 가서 방문하여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육로로 더베, 루스트라, 이코니움, 프리기아를 통과해서 순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바친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0 그래서 고후11:23-27절에 보면 바울은 더 많이 수고하였고 매도 헤아릴 수 없이 맞았고 더 빈번히 감옥에 갇혔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당하였고, 몽둥이로 한번에 39대를 맞는 그런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세 번 몽둥이로 맞았으며 돌로 맞았고 세 번 파선을 당하였는데 그 중에 한번은 하루 밤과 낮을 깊은 바다에서 보내게 되었고, 그 뿐만 아니라, 여러 번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으로부터의 위험과 이방인들로부터의 위험과 성읍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O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우리가 복음을 전한 다 해서 때로 비난과 모욕을 당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러나 바울이 당한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편안함과 안전함 속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잊지 말고 열심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이때를 놓치지 말고 보다 더 많이, 주를 위해 수고하고, 보다 더 열심히 믿는 자들을 강건케 해 주고, 보다 더 열심히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시다가 예수의 날, 그리스도의 날에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주와 영원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