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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박종각 2022. 7. 3. 00:00

                                                        주일예배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주일예배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2:1-15절 말씀입니다.

 

0 먼저 2:1-5절을 보겠습니다.[그러나 너는 건전한 교리에 부합되는 것들을 말하며, 2 나이 많은 남자들은 신중하고 근엄하며, 절제하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건전하게 하고, 3 나이 많은 여자들도 이와 같이 되게 하여 행실이 거룩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며,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4 그들이 젊은 여자들을 가르쳐서 절제하고 남편을 사랑하며 자녀들을 사랑하고, 5 신중하며 정숙하고 집안일에 힘쓰며 선하고 그들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O 본문은 어느 정도는, 디모데전서 3장과 5장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딤전 5장처럼, 여기서도 “나이 많은 남자들”과“나이 많은 여자들” 그리고 “젊은 남자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훈계는 한결같이 “건전한 교리에 붙어 있는”내용들입니다. O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교리”는, “믿음의 근본 사항들”이나, “예언”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것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O 여러분들은 “믿음의 근본 사항”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근본 사항”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근본이 되는 원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그 믿음의 기본이 되는 절대로 변할 수 없는 법칙이나 원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의 근본사항(원리) 들은,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사항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의 근본사항을 믿지 못하면 그는 일단 믿음에서 타락자인 것입니다.

 

 

 

O 그러면 우리가 절대로 믿지 않으면 안 되는 믿음의 근본사항들을 살펴보면, 1) 창조론을 믿고, 2)성령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믿음, 3)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에 대한 믿음, 4)성령으로의 거듭남에 대한 믿음, 5)성도의 휴거에 대한 믿음, 6)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대한 믿음, 7) 7년 대환란에 대한 믿음, 8)재림에 대한 믿음, 9)천년왕국에 대한 믿음, 10)마귀에 대한 믿음, 11)지옥에 대한 믿음, 12)백보좌 심판, 13)영원의 세계, 14) 영원한 생명. 15)영원한 멸망 16) 원한 불못, 17)죄인들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 18) 성경에 대한 오류가 없음을 믿고, 19) 전천년주의를 믿고, 20) 성도의 성별. 21) 복음 전파의 임무를 믿고, 22) 이교도인 카톨릭을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 것 등등이 믿음의 근본사항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O 그리고 이런 믿음의 근본 사항은 성령으로 거듭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절대적으로 믿고 절대로 지켜야 하는 사항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근본사항들의 출처는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믿지 아니하면 사실 그들은 믿음의 근본사항을 믿지 않는 자들인 것입니다. 교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옳으지 않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옳은 행동과, 옳지 않은 행동이 무엇인가를 지금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딤전6:1.3-6).

 

O 2절에 [1.신중하고 2.근엄하며, 3.절제하고 4.믿음과 5.사랑과 6.인내함에 7.건전하게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첫 번째 나오는 “신중하다” 라는 말은, 술 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을 말합니다. 그래서 나이든 남자들은 술 취하면 안 된다는 것 즉, 술을 끊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근엄하다”라는 이 말에는 “진지한 마음으로 존경을 모은다.” 는 뜻과 함께 “영원한 것에 마음을 고정시키는 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잖하고 엄숙한 태도를 말할 때 보통 “위엄있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위엄’ 도, 바로 이 “근엄”이라는 말과 더불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위엄 있는 사람들”하면, 먼저 떠올리는 대상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O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에 완전하고 신중하고 근엄하며 진지하고 교양 있는 신성한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위엄을 가지고 행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구기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처벌하기 위해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어떤 비밀스런 행동을 행하며 백성들을 동원하여 아무런 증거도 없는 엉터리 재판을 열기도 했습니다.

 

O 그래서 14:55-56절에 [그때에 선임 제사장들과 온 공회는 주를 사형에 처하려고 예수에 대하여 증거를 찾으려 하였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하더라. 56 이는 많은 사람이 주께 대하여 거짓 증거를 대나, 그들의 증거가 서로 일치하지 않음이더라.]고 말합니다.

 

O 세 번째는, “절제하고”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데 쓰이는 말입니다. 그래서 절제하는 사람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적에 먹지도 않고,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너무 적게 자지 않고, 일을 너무 많이 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식사시간에 너무 짧거나 오래 기도하지 않습니다.

 

 

 

O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카톨릭 조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어떤 수단과 방법도 죄가 되지 않고 모두 정당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그 사악한 일을 절제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행하기 때문입니다.

 

O 3절에 [나이 많은 여자들도 이와 같이 되게 하여 행실이 거룩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행실이 거룩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거룩함”을, “아름다운”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래서 시29:2절에 보면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주께 돌리고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시96:9절에서도 [오, 거룩하심의 아름다움 가운데서 주를 경배하라. 온 땅아, 그의 앞에서 두려워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시110:2절에 보면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들이 아침의 태로부터 오는 거룩함의 아름다운 것들 가운데서 자원하리니 주께서는 주의 젊음의 이슬을 가지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O 그래서 “거룩함의 아름다운 것” 들이라고 하는 것은, 1) 하나님을 드높이는 것이고, 2) 죄를 억제하여 죄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3) 죄인들을 주께 인도하여 더 좋은 것을 원하게 해주는 것이고, 4) 하나님의 약속을 더 강력하게 붙들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함의 아름다움”, 즉 “행실이 거룩한 것들”인 것입니다.

 

 

 

O 그리고 이제 3-4절에서 거룩해지는 것들에 관해서 말씀하십니다.[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며](3절)라고 말합니다. 나이 많은 여자들은 상습적으로 술 취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본문은 교회 직분에 대한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 가운데 있는 여자 성도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O 그리고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3).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누구를 보고선생이 되라고 합니까? 나이 많은 여자들입니다.” ,이 나이 많은 여선생들이 누구를 가르치라고 입니까? 4절에 젊은 여자들 입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라고 합니까? 모두 여덟 가지입니다. 1) 절제하고(4), 2) 남편을 사랑하며(4), 3) 자녀들을 사랑하고,(4), 4) 신중하며(5), 5) 정숙하고(5), 6) 집안일에 힘쓰며(5), 7) 선하고(5), 8)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5)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O 그래서 4절에 [절제하고 남편을 사랑하며 자녀들을 사랑하고]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느 때나 여자들이 배워야 할 “필수과목”입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이 “마지막 날들”에는 절대적으로 이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마24:12절에 보면, 불법이 성행하므로“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O 5절에 [집안일에 힘쓰며]라고 말합니다. “집안을 지킨다는 말입니다.” 물론, 1. 집안을 지키지 않고서도 가정을 만들 수 있는 여자도 있습니다. 2. 집안을 지키지 않고서도 집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3. 집안을 지키지 않고서도 가정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4. 가정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서도 가정에서 매우 바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집안을 지키는 여자를 말합니다.

 

O 집안을 지키는 여자는, 집안을 지키는 모든 일, 즉 가정에서 하는 모든 일을 총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구체적인 내용은 바로 잠언3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사는 것, 파는 것, 여행하는 것,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 등등의 일들은 여자가 음식을 만들고 옷들을 손질하는 것처럼 가정을 지키는 한 부분의 일들이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자가 남편과 자녀들을 잘 보살피고 집에 관한 일들을 운영하면서 집안일을 훌륭하게 잘 유지하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집안을 “지키는”것입니다. 그렇다고 여자는 온종일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여자가 건강하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집안에만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O 다시 5절에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의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하고 엄중합니다. 이런 표현이 성경에서 여기 말고, 두 번 더 말씀하십니다.(롬2:24, 딤전6:1).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모독”을 받는 것입니까?

 

O 1, 자신이 실행하지도 않는 말씀을 설교하거나 실행하지도 않는 말씀을 가르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23-24절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위반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당하는 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O 2.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도 종이 주인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딤전6:1절에 [멍에 아래 있는 모든 종은 자기 주인들을 모든 공경을 받을 자로 여기라.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교리가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O 3. 그리스도인 여인이 자신의 남편과 다투거나 싸울 때,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 [신중하며 정숙하고 집안일에 힘쓰며 선하고 그들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 경우는 모두 “순종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에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전7:21-22,창3:16).

 

O 유대인의 경우(2:24), 그들이 순종해야 할 대상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3:1-4).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므로 하나님을 모독 받게 했습니다. , 오늘날 모든 주의 이라고 하는 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 모독하는 자들 중에서도 가장 앞줄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O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종”로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도 않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도 않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도 않으면서도 설교하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O 또한 모든 성경 번역가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 받게 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말씀을 고치고 변개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순종의 세 가지 경우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독했었고, 지금도 모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모독할 것입니다. 그래서 계13:5절에 [짐승이 큰일들과 모독하는 말들을 하는 입을 받았으며 또 마흔두 달 동안 활동할 권세를 받았더라.]고 말씀합니다.

 

O 5절은 다시 [신중하며 정숙하고 집안일에 힘쓰며 선하고 그들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중하며 정숙하고]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젊은이는 이 시대의 유행에 따라서 흥청거리지 말고, 자신의 인생의 실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O 그래서 4:23절에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이는 삶의 문제들이 거기서 나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신중한 사람이라면, 1) 하나님에 대해서, 2) 하늘나라에 대해서, 3) 지옥에 대해서, 4)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5)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6) 육신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 7) 성경의 진리의 지식을 알아가는 것에 대해서, 8) 젊음의 정욕을 피하는 것에 대해서, 9) 그리스도인 아내, 남편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 10) 가족을 부양 하는 것에 대해서, 11) 복음을 전하고 혼들을 그리스도께 이겨오는 것에 대해서, 12) 온전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들에 자신의 마음을 두라, 는 말입니다.

 

 

 

O 다시 6-10절에 [6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에게도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권하되 7 매사에 네 스스로가 선한 일에 본을 보이고 교리에 있어서는 부패치 않음과 신중함과 진실함을 보이며 8 건전한 말을 하여 정죄 받지 않도록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부끄러움을 당하여 너희를 악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9 종들에게는 권하되 자기 주인에게 복종하고 매사에 그들을 기쁘게 하며, 거슬러 말하지 말고 10 착복하지 말며, 온전히 선한 충성을 보이게 하라. 이는 그들이 매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리를 돋보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O 바울은, 디도에게 성도들이 어떻게 처신을 해야 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인 디도에게 권면하는데, 이런 것들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실행에 옮김으로 디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7절에 [매사에 네 스스로가 선한 일에 본을 보이고]라고 말합니다.

 

O 그리고 다시 “신중함”과“진실함”을 보이며 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믿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행위로써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며, 자신의 삶이, 자신이 말하는 내용과 일치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지 아니할 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O 구령에 관해 설교를 하면서 구령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속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라고 설교하면서 자신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고 속이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지 말고, 입 다물고 조용히 있어라, 는 것입니다. O 믿음을 위해 “담대하게 거짓과 사탄”을 대적하고 싸우라고 말하면서도, 로마카톨릭이 하는 대로 그들을 따라 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설교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O 8절에 [건전한 말을 하여 정죄 받지 않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건전한 말을 하면 주께로부터 정죄 받지 않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말을 하면, 우리는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정죄 받고 비난받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바울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바울은 건전한 말을 하므로 세상으로부터 정죄 받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고후10:10.11:6).

 

O 그래서 “건전한 말”은, 항상 성경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처럼”(벧전4:11) 말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건전한 말을 하여 정죄 받지 않도록 하라”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은 진리를 말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도를 세워 주고, 고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O 10절에 [이는 그들이 매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리를 돋보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종이 신실하다면, 그를 통해 복음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다루고 있는 교리들이 더 돋보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를 통해서 교리가 더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그의 아들은 의로우시다는 성경의 교리가, 주인에게 순종하고, 주인에게 정직하고 신실한 종을 통해서 그 교리가 더욱더 잘 드러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O 다시 11-15절에 [이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서, 12 우리를 가르치시되, 불경건과 세상 정욕들을 거부하고, 우리로 신중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이 현 세상을 살아가게 하시며, 13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 14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5 이런 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를 가지고 책망하여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O 11절에 [이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서]라고 말합니다. 칼빈의 5대강령과는 전혀 다르게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말씀하십니다. 딤전2:4,6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 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할 목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대상은 선택된 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O 그래서 본문에서는“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격화”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마치 “사람”처럼, 하나의 인격체로 나타난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죄들을 없애시려고 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히9:26) 그런데 무엇으로 나타났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O 12절에 [우리를 가르치시되, 불경건과 세상 정욕들을 거부하고, 우리로 신중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이 현 세상을 살아가게 하시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선택받은 자들이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택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창조이전에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가르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은 물론이고, 모든 종류의 것들에 대해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르치신다는 말입니까?

 

 

 

O 첫째는, 구원받았다면 불경건한 모든 것들을 거부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둘째는, 세상의 정욕을 거부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셋째는, 신중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넷째는, 올바르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다섯째는, 경건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여섯째,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려 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O 그러나 그가 구원받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 중, 단 하나도 가르침이나,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받은죄인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죄인들에게 가르치시는 것들입니다.(1:12.3;36.5;24.10:9-10).

 

O 그래서 [불경건](12절).이라는 이 말은, 하나님을 존경하지도 않고, 경외하지도 않는 삶을 말합니다.(히12:28 ). 그러기 때문에 [불경건]한 삶에는 “주를 두려워함” 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불경건한 사람들에 대해서((시1:1,4,5,6. 3:7.73:12,삼하22:5, 잠16:27.19:28등). 악하고, 왜곡되어 있고, 불손하며, 가치가 없는 자들 즉, 이들을 벨리 알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경건함”의 특징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이 없다.” 는 것입니다. 생각에 있어서도, 대화에 있어서도, 생활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도, 행동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O 그러나 [경건하게]라는 이 말은(12절). 그 삶에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은 그의 생각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있고 (시10:4) 행동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있는(약1:22)사람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이라면, 무엇을 시도하거나 결정하기 전에 우선 하나님과 상의합니다. 그것을 놓고 먼저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O 어떤 사람을 바라보기 전에,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하기 전에, 어떤 책을 보기 전에,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먼저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현 세상](12), 디도가 살았었던 과거의 세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현 세상, 이 악한 세상(1:4)입니다. 이 세상은 데마가 사랑하여 쫓아간 그 세상입니다. 그래서 딤후4:10절에 [데마는 이 현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현 세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O 13절에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 시대에 이 위대한 복된 소망,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자”들은 극히 적은 소수의 사람들뿐이기 때문입니다.

 

 

 

O 14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라는 이 말씀은 “저당물을 되찾아 오는데” 지불된 구속의 대가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골1:14,갈3:13,히9:15). 주님은 “모든 죄악”에 대해 값을 지불하셨습니다.(고전6:20). 그럼으로 우리를 주님의 소유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엡1:14).

 

O 그러므로 우리는 주를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03:2-3절에 [오 내 혼아, 주를 송축하고 그의 모든 베푸심을 잊지 말라. 그는 네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며....]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법적인 면에서 보아도, 그렇고, 죄 없는 면에서 보아도 그렇습니다. O 그래서 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 하시면서, 3:21절에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시리라.]말씀 하십니다.(요일3:-4)

 

O 다시[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14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죄 없는 완전한 상태에 이르기 전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세상과 분리되어 세상과 일치 하지 않으므로 정결케 되어야 하며(히10:8-12). 또한 믿음으로 정결케 되어야 하고(행15:9). 성령으로 정결케 되어야 하며(고전6:11).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 가운데서(요일3:1-3). 정결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진리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혼들이 정결케 되었다고 말합니다.

 

 

 

 

O 그래서 벧전1:22절에 [너희가 성령을 통하여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너희 혼들을 정결케 하여 가식 없는 형제 사랑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O 성경은 14절에서 우리를 향해 [독특한 백성](l4절)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어떤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O 그렇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우리들의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보기에 우리들이 어딘가 독특해보이고, 자신들보다 어딘가 모르게 유별나게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그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다면, 자신들과 우리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면, 그래서 우리가 그들이 보기에 독특해 보이지 않다면, 우리는 타락한 그들과 함께 이미 타락해 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독특한이라는 말은, , 구약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붙여진 이름인 것입니다.(19:5). 그리고 이 말은, 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 진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독특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우리는 아주 독특한 백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독특한 백성이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은 우리가 살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우리의 집은 바로 저 위에, 저 하늘, 저 셋째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복된 소망을 가지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면서 복음의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사람으로 살다가 예수의 날, 그리스도의 날에,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주와 영원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