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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남아 있으나 ...

박종각 2022. 1. 17. 00:00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남아 있으나 ...

                                              고후3:12-16절입니다.

[정녕 우리가 그러한 소망을 가졌으므로 담대하게 말하노니 1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이 지금은 없어진 그것의 종말을 지켜보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 얼굴에 수건을 가리는 것 같이는 아니하노라. 14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옛 언약을 읽을 때에 그와 같은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남아 있으나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지는 것이라. 15 그러나 오늘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들의 마음을 덮는 도다. 16 그렇지만 주께로 돌아서면 그 수건은 벗겨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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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3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이 지금은 없어진 그것의 종말을 지켜보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 얼굴에 수건을 가리는 것 같이는 아니하노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방식에 관해서 분명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는 [과장 하는 말](유16, 벧후2:18)이나, [말의 지혜]를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1:17절에 [...말의 지혜로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단지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은 [담대하게] 말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12절에 [정녕 우리가 그러한 소망을 가졌으므로 담대하게 말하노니 ]라고 말합니다.

 

0 우리가 본문 13절에서 한 번 더 주목할 것은, 율법과 구약이, 신약의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구원받기 위해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의 영광이 모세의 얼굴에서 빛나는 동안, 모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0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백성들과 대화할 때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 다시 돌아갈 때면 언제나 그 수건을 벗곤 했습니다.

 

0 그런데 본문 14-16절에서, 사도 바울은, 모세가 쓴 그 수건을 이스라엘이“눈먼”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적]수건은, 유대인들의 눈을 가리는, 눈가리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아무리 구약을 읽을지라도 구약에서 계시된 그리스도를 그들은 전혀 발견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사야 53장을 읽을 때면 그것이 [이스라엘]에 관해 말한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시편 22편을 읽을 때는 그것이 [다윗]에 관해 애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0 이처럼 그래서 영적인 수건이 유대인들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셨을 때 그들은 주 예수그리스도를 완강히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행28:27절에서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는 데 둔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회심하지도 못하게 되어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0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사6:10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백성의 마음으로 살찌게 하고, 그들의 귀로 둔해지게 하며, 그들의 눈으로 감기게 하라. 그리하여 그들이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회심하지도 못하고, 치유 받지도 못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0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다른 누군가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두 눈을 감기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두 눈을 감기게 하는 그[누눈가]는 누구인가? 입니다.

 

0 그런데 그“누군가”가 바로 요12:40절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나니,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며, 회심하지도 못하게 되어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라.] 여기에 보면 [그(하나님)가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라고 말씀 하십니다.

 

 

0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메시아를 고의적으로 거절한 후로 메시아에 대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1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였고 오히려 선택된 자들이 그것을 얻었으며 그 나머지는 오늘까지 완고해졌느니라] 그리고 다시 롬11;25절에서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0 그래서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오늘날 이“교회 시대 동안”에는,“눈멀어 있다”는 것은 변할 수 있는 하나님의“법칙”인 것입니다. 0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다릅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16절에[그렇지만 주께로 돌아서면 그 수건은 벗겨지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혼한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유대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벗겨 주셔서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므로 그는 결국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0 구원받은 유대인이 구약 전체에 걸쳐 예언과 예표를 통해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에스겔 14장을 보면 성령께서 유대인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겔14:3-4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그들의 마음에 우상들을 세워 놓은 걸 알 수 있습니다. 0 그래서 겔14:4절에서 [나 주가 그의 우상의 많음을 따라 나오는 그에게 응답하리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0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주께서 선지자들을 속여서 엉터리 응답을 주어서 그들을 멸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겔14:9절에 [만일 선지자가 속아서 어떤 일을 말하였다면 나주가 그 선지자를 속인 것이니 내가 내 손을 그에게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로부터 그를 멸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그들의 선지자를 통해 그들을 속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말하신 분은 다름 아닌 바로“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저주하기 위해 그들의 사역자들, 곧 랍비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0 주님께서는 겔14:5절에서 [이는 그들이 그들의 우상들로 인하여 모두 나를 배반하였기 때문에 내가 그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스라엘 집을 취하려 함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0 그러나 바로 그 다음 6절에서 주님은 [회개하라. 그리고 너희 우상들로부터 너희 자신을 돌이키고]라고 말씀 하십니다.

 

0 그래서 유대인은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의 쌍방 통로를 얼마나 깨끗하게 유지하느냐에 비례하여 주님 안에서 성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주님을 자신의 모든 것들 중에 첫째로 모시는 한,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베풀고 또 베푸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내 혼과, 구주 사이에 그 어떤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