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10월10일
은혜가 너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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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너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딤전6:1-21절 말씀입니다.
먼저 1-8절을 보겠습니다. [멍에 아래 있는 모든 종은 자기 주인들을 모든 공경을 받을 자로 여기라.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교리가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2 믿는 주인을 섬기는 자들도 그들이 형제라고 해서 경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더욱 잘 섬겨야 하리니, 이는 그들이 신실하고 사랑받는 자들이며, 선한 일에 동참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라. 3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 5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 6 그러나 만족할 줄 아는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니 8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0 딤전 5장에서는, 특별히 나이든 남자들과, 나이든 여자들, 특히 과부들과 젊은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 6장은 돈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래서 5절에서 돈, 7절에서 돈, 9절에서 돈, 10절에서 돈, 17절에서 돈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독하게 탐욕스런 죄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잘 다스리는”인체 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1절에 [멍에 아래 있는 모든 종은 자기 주인들을 모든 공경을 받을 자로 여기라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교리가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863년1월1일,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O 반란상태에 있는 노예를 모두 해방하고, O 해방된 흑인은 폭력을 삼가고 적절한 품삯으로 충실히 일하고, O 흑인에게 연방 군대에 들어갈 기회를 제공할 것 등을 규정하는“노예해방”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예해방 선포는, 오늘 본문 앞에서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어야만 합니다.
O 왜냐하면, 멍에 아래 있는 자들은 마땅히 그 주인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예들은,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고 외치며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자들이 아니라,“멍에”아래 있는 자들은 그 주인을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고전7:20-24절에서 바울은 다시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안에 거하라. 21 네가 종일 때 부르심을 받았느냐? 그로 인하여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스럽게 될 수 있거든 차라리 그것을 사용하라. 22 이는 종도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으면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마찬가지로 자유인도 부르심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라. 23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본문1절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교리가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0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교리가 모독을 받는”세 경우를 말씀하시는데, 첫 번째는,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딛2:5절에 [신중하며 정숙하고 집안일에 힘쓰며 선하고 그들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O 두 번째는, 유대인이 자신들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롬2:24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당하는 도다.]고 말씀 하십니다. O 세 번째는, 종들이 자신의 주인들에게 반역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멍에 아래 있는 모든 종은 자기 주인들을 모든 공경을 받을 자로 여기라.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교리가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2절에서 [믿는 주인을 섬기는 자들도 그들이 형제라고 해서 경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더욱 잘 섬겨야 하리니, 이는 그들이 신실하고 사랑받는 자들이며, 선한 일에 동참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노예가 구원받았다면, 주인이 그를 놓아 주지 않는 이상, 그는 노예 상태로 주인을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섬기되, 최선을 다해 순전한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엡6:5절에 보면, [종들아, 육신에 따른 주인들에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복종하되 순전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하고]라고 말하시면서, 골3:22절에서는 [종들아, 육신에 따른 너희의 주인들에게 모든 일에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눈가림으로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순전한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젊은 목사“디모데”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야 하고 권면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O 이것으로 다가 아닙니다. 3-5절에 보면,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 5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노예가 구원받았다면, 노예 상태로 주인을 섬겨야 한다는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누가 되었든지 간에 그는, 1. 교만한 사람으로, 2.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으로, 3. 다툼과 악담을 일삼는 사람으로 분류하라고 성령께서는 명령하신다는 말입니다.
O 6절에 [그러나 만족할 줄 아는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경건”이라고 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모습을 닮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경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경건하게 사는 삶인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받아 드리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봉사하고, 구제하며,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고, 주 오심을 소망하면서 육신의 정욕을 쫓아 세상을 따라 살지 않고,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주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며 감사 하면서 사는 것이“경건의 삶”인 것입니다.
O 그리고 이런 만족할 줄 아는“경건”은, 영적으로 큰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상태에 처하든지 만족할 줄 아는 사람, 어떤 상태에 있든지 여전히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빌4:11절에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내가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O 8절에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 항목입니다. 그리스도인은“먹을 것과 입을 것”에(마6;31-33절) 만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탐욕을 가지고 세상에서 부자로 살려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서 재물을 모으고 또 세상에서 큰 부자로 살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것들은 결과적으로“내 것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다윗은 시39:6절에 [진실로 사람마다 헛된 그림자같이 걸어 다니며 진실로 그들이 헛되이 분주하니 재물을 쌓으나 누가 그것을 가질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은 결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주께 소망을 두고 살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시39:7절에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기다리겠나이까?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직, 주 하나님, 바로 그 한분만이 우리의 참 소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O 7절에서 다시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욥도 이에 대해서 욥1:21절에 [말하기를“내가 내 어미의 태에서 맨몸으로 나왔으니 내가 맨몸으로 그리 돌아 가리이다. 주신 분도 주시요, 빼앗아 가신 분도 주시니 주의 이름을 송축하나이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주를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벗은 채로 와서 갈 때 모든 것을 허무한 곳에 남겨두고 가는 것입니다(전9:3-6).
O 9-12절에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지리니, 이는 사람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11 그러나, 오, 하나님의 사람인 너는 이것들을 피하라. 그리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라.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 이를 위하여 네가 또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고백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9-10절에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지리니, 이는 사람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돈 그 자체는, 악의 뿌리가 아닙니다. 그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11절에서 [그러나, 오, 하나님의 사람인 너는 이것들을 피하라].고 말씀 하십니다.무엇을 피하라는 말입니까? O 1.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피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3절에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롬16:18절에 보면, 이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것이니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2. 질문, 언쟁, 시기를 피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4절에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O 3. 실제로는 육신적이면서도, 이익을 누리는 것이 자신이 경건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피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5절에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고하십니다.
O 4.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피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9절에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지리니, 이는 사람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O 5.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10절에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의(선함)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경건”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이것들은 성령의 열매들입니다.(갈5:22). 그래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천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동안, 반드시 거룩한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항상 이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반드시 그것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O 그래서 12절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 이를 위하여 네가 또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고백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O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와의 싸움입니까? O 이단들을 대적해서 싸우고, O 성경대로 전하지 않은 자들과 싸우고, O 성경을 대적하는 자들과 싸우고, O 제 멋대로 혓바닥 돌아가는 대로 짓거리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거짓말로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시키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과 함께 협력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있다면 그것은 싸우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합니다. 바로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은“율법과 선지서들에 기록된 모든 것을”믿었습니다.(행24:14). 바울이 이렇게 성경대로 믿은 결과, 바울은 결국 성경대로 믿지 않는 자들이 말하는 이단의 도를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믿음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행24:14절에서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오니 즉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도를 따라서 내가 내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서들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O 다시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현재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고(요일5:10-13), 또 앞으로도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요10:24-28),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자들이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 영원한 생명을“붙잡지”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즉시로 영원하신 분 앞에(사57:15) 서게 됩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소유하게 되었던 그분 안에 있는 생명(골1:17)은, 마침내 실재화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이를 위하여 네가 또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고백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디모데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했습니다. 그러기에 디모데는, 자신이 고백한 것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봐야 할 삶인 것입니다. O 그래서 고후4:2절에 [오히려 감추어진 수치스러운 일들을 버리고 교활함 가운데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되이 다루지 아니하며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각 사람의 양심에 추천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O 13-16절에 [만물을 살리시는 하나님 앞에서와 폰티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증거하셨던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자기 때가 되면 주께서 나타나시리니 그분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통치자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 16 오직 그분만이 불멸하시며,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분께 영원한 존귀와 능력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라고 말씀합니다.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폰티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증거 하셨습니다. 그래서요18:36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나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나의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라. 그러나 지금은 나의 왕국이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또, 요19:11절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위에서 네게 주신 것이 아니라면 너는 나를 대적할 아무런 권세도 갖지 못하였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겨준 자는 더 큰 죄를 진 것이라.”고 하니]고 말씀하십니다.
O 다시 1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흠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이 명령은, 11-12절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러나, 오, 하나님의 사람인 너는 이것들을 피하라. 그리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 이를 위하여 네가 또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고백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명령을 언제까지 지켜야 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 나타나시는 것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나타나시는 것”은, 복된 소망입니다. 그래서 딛2:13절에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나타나심은 매우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않은 자들에게“나타나시는 것”은, 불의 날이요(말4:1-3), 진노의 날이요(욜2:1-11), 심판의 날입니다. 그래서 살후1:7-9절에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유다서 14-15절에 [아담의 칠 대 손 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예언하여 말하기를“보라, 주께서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시나니 15 이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그들 가운데 있는 경건치 않은 모든 자가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말한 모든 거친 말에 대하여 정죄하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로 올라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습니다.(살전4장, 고전3:10-15). 이것을“그리스도의 심판석”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명령을“흠 없이”지킨다면, 우리들은 더러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고, 모든 오염으로부터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명령을 지킨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책망 받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1:10-11절에 [너희가 가장 좋은 것들을 분별하며 또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수하고 흠 없게 되기를 바라며 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의의 열매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이 되기를 바라노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상을 받을 것입니다.(고전3:10-15). 그리고 난 다음, 재림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함께 내려오십니다.(마25:30-40). 15절에 [자기 때가 되면 주께서 나타나시리니 그분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통치자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께서는 자기 때가 되면, 나타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마치 이삭이 자신의 신부인 리브카를 만나기 위해서 들에 나갔던 것처럼(창24:63), 주께서는 자신의 신부를 만나기 위해서 대기권으로, 그래서 주님은 공중으로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4: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리고 주께서는 천 년간 땅을 통치하기 위해 신부와 함께 돌아오는 것입니다.(계19,20장). 그리고 다윗의 보좌에 앉아 민족들을 심판하고, 예루살렘이 온 세계의 수도가 되는 천년왕국을 세우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때”는, 신부에게 나타나는 시점부터 백보좌 심판까지 확장되어 펼쳐지는 것입니다. 다시 [통치자시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계19:15절에서는 [그의 입에서는 예리한 칼이 나와서 그것으로 민족들을 칠 것이요 또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O 16절에 [오직 그분만이 불멸하시며,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 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16절에서 말하는“불멸”이란 부패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하면, 죽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존재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3:14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나는 곧 나니라.”하시고...‘나이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유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육체의 생명을 죽기 전이나, 죽은 후에나 관계없이 유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영의 생명도(엡2:1-8,고후5:1-10) 죽기 전이나, 죽은 후에나 유지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멸을 소유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멸의 하나님께서는 이 불멸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10:28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고전15:50-56절에서[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17-21절에 [이 세상에 있는 부유한 자들에게 명하여 마음이 교만해지지 말고 불확실한 재물을 신뢰하지 말며,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요하게 주셔서 향유케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라. 18 곧 그들이 선을 행하고, 선한 일에 부요하며, 기꺼이 나누어 주고, 아낌없이 베풂으로써,19 자신들을 위하여 오는 때를 대비한 좋은 기초를 쌓도록 하라. 이는 영원한 생명을 붙들기 위함이라. 20 오 디모데야,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라.21 이것을 공언하는 어떤 사람이 믿음에 관해서는 정도를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다시 5-11절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17절에 [이 세상에 있는 부유한 자들에게 명하여 마음이 교만해지지 말고 불확실한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며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요하게 주셔서 향유케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O [마음이 교만해지지 말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2:16절에 [서로 같은 생각을 품고 높은 것들을 생각하지 말며 낮은 데 처한 사람들과 같이 하고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을 거두어 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12:20절에 [그는 신실한 자의 말을 거두어 가시며 늙은 자들의 명철을 제하시는 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불확실한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은 시간과 기회에 따라 오고 가기 때문에 재물은 불확실한 것입니다. 그런 불확실한 것에 소망을 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9:11절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경주가 빠른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쟁이 힘센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며, 먹을 것이 현명한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고, 재물이 명철한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며, 은총이 재주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 때와 기회가 그들 모두에게 일어나는 도다.]라고 하십니다.
0 이렇게 바울은 불멸하시는 하나님, 썩는 것과는 상관없는 하나님을 설명하고 나서, 썩어질 재물에 관한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를 신뢰합니다.(눅18;24). 그래서 주가 없는 세상에서는 돈이 곧, 능력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재물”은, 믿을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지 않은 재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은,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대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선을 행하고, 선한 일에 부요하며, 기꺼이 나누어 주고, 아낌없이 베풂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할 대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저 몸을 살찌게 하고, 몸에 좀은 낳은 옷을 해 입고, 생활이 좀 편해 질수 있는 일 정도입니다.
O 그래서 재물로 사역의 재정을 담당하지 않고, 전도지를 출판하지 않고,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돕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돈으로 잘 먹고, 잘 입는 좀 편리하게 사는 것, 외에는, 돈으로 할 일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돈을 가지는 목적이라면, 그것처럼 허망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불확실한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며, 오직....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라]고 하십니다. 재물들은 생명이 없습니다. 죽은 것입니다. 재물은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렘10:11-14). 생명을 주시는 분은(요일5장)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요일5:10-12). 이십니다. 바로 이 분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요하게 주셔서 향유케 하시는”하나님이신 것입니다. (17절). 어떻게 말입니까? 18절에 [아낌없이 베풂으로써]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래서 19절에서 [자신들을 위하여 오는 때를 대비한 좋은 기초를 쌓도록 하라, 이는 영원한 생명을 붙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자신들을 위하여 오는 때”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그리스도인들과 결산을 보는 때를 말합니다(눅19:15). 그리고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맡았던 청지기 직에 대하여(눅19:1-3), 평가받는 때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죽어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0절에 [오 디모데야,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 디모데야,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 재산, 시간, 생명, 가족, 물질, 은사, 재능, 교회, 직업, 건강 등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청지기 직분을 평가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평가 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을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었는가에 대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O 또,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장난 이라는 말은 “바벨”(창11장)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허풍”을 언급하는 말입니다.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은, 아무 의미가 없는 그야말로 무익한 토론이고,“빈 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B.C. 4000년 이래로 지금까지 존재하는 인류의 주요 문제들에 대해서, 다시 말하면, 가난, 기근, 전쟁, 죄, 죽음, 종교적 불화, 경제적 재앙 등을 단 한 가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1절에 [이것을 공언하는 어떤 사람이 믿음에 관해서는 정도를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공언하는 어떤 사람이 믿음에 관해서는 정도를 벗어났느니라]. 여기에서“어떤 사람”은, 소위 믿는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믿음에 관해서 이미 벗어나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성경보다는 오히려 과학의 힘을 믿습니다. 그들은 과학이 참된 지식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믿음에 관해서는 정도에서 벗어나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습니다. 틀려도 아주 많이 틀렸습니다.
O 왜냐하면, 참된 지식은, 과학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111:10절에 [주를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이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모든 자들은 좋은 지각을 가졌나니 그를 찬양함이 영원히 지속되는 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골2:8절에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 이를 위하여 네가 또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고백하였느니라.](l2절).고 말합니다. 디모데처럼 우리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혼을 구원하신다는 고백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며, 주께서 존재하심으로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고백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몸을 주실 것이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쇠퇴하거나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O 4. 예수 그리스도는, 이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나 앞으로 다가올 생에 있어서 우리의 소망이고,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이며, 우리의 확신이 되시는 분이시므로, 가장 안전하게 우리의 모든 것들, 즉 우리의 생명, 삶, 재산, 건강, 직업, 가족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맡길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거짓되이 일컬어지는‘과학’은 “과학”이 아닙니다. 진짜 참된 과학은, 거짓되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잠언, 욥기, 창세기, 전도서, 골로새서, 에베소서, 로마서, 갈라디아서, 요한계시록”이 진짜 과학인 것입니다. 그리고 21절에서 바울은 [은혜가 너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축복하면서, 이 시대에 배교자들이 그토록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책들 가운데 하나인 디모데전서가 마침내 끝이 납니다.
O 이 6장에는, 배교자들이 그렇게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세 구절이 있습니다. 이 세 구절은 바로 5절,10절, 20절입니다. O 다시 보면, 읽어 봅시다. 5절에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 10절에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 20절에 [오 디모데야,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라.] 이 세 구절은, 바로 우리들을 위한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한 해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를 만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 주변에서 소위 자신도 믿는다고 떠들어 대면서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한 사람과는 아예 논쟁하지 말고, 그런 자들이 있는 곳에는 아예 가지도 말고,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지 말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에 불과한 거짓되이 일컫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는 삶을 살다가 예수의 날, 그리스도의 날에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주와 영원히 사시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