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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이 그곳을 지나가지 아니할 것이며...

박종각 2021. 9. 15. 00:00

                              사람의 발이 그곳을 지나가지 아니할 것이며...

                                                     9월15일(수)

 

                                          겔29:11-12절 말씀입니다.

 

11사람의 발이 그곳을 지나가지 아니할 것이며 짐승의 발도 그곳을 지나가지 아니할 것이요, 그곳은 사십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아니할 것이라. 12내가 이집트 땅을 황폐한 나라들 가운데서 황폐하게 하리니 삭막하게 버려진 성읍들 가운데서 그녀의 성읍들이 사십 년 동안 황폐하게 되리라. 또 내가 이집트인들을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 버리고 또 나라들 속에 그들을 분산시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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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1절에 [사람의 발이 그곳을 지나가지 아니할 것이며 짐승의 발도 그곳을 지나가지 아니 할 것이요, 그곳은 사십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집트의 황폐화 는 역사적으로도 여러 번에 걸친 외적의 침략으로 끊임없이 진행돼 왔지만, 그것은 정치적, 경제적 황폐화였을 뿐, 자연적, 기후 풍토적 황폐화는 아니었습니다.여기서 언급 하는 황폐화는 역시 재림 시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문자 그대로의 자연 환경적 황폐화를 말합니다. 말하자면,[사십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아니할 것]이라는 예언은 환경 적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하게 된다는 것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미래의 일이라는 말입니다. 12절에 [내가 이집트 땅을 황폐한 나라들 가운데서 황폐하게 하리니 정막하게 버러진 성읍들 가운데서 그녀의 성읍들이 사십 년 동안 황폐하게 되리라 또 내가 이집트인들 을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 버리고 또 나라들 속에 그들을 분산시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0 이 말씀역시 앞 절에 이어 재림 관련 구절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집트의 과거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나마 생각해 보면, 이집트의 고대사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에스겔 29장 언저리부터 시작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집트라는 한 왕국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역사를 걸어왔는지를 한번 살펴보면, 이집트는 느코 2세 시절 B.C. 605년 바빌론에 패망하기 이전에도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멤피스에서 패망하더니, 그 뒤 얼마 안 되어 바빌론의 침공을 받게 되었고 B. C. 525년에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받아 페르시아의 속주로 전락했으며, B.C. 332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제에게 정복되었는가하면, 알렉산더 대제가 사망한 뒤에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새로운 왕조를 열었습니다.

 

0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하여 신왕조가 건설 되고 수도가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졌다고는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 이미 뿌리를 내린 그리스의 절대적인 지배하에 놓여 있는 상태 그대로였고, 그 영향으로 헬레니즘 문화가 여기에서 꽃피웠다고는 하지만, B.C. 30년에 클레오파트라 7세를 끝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마저 로마 제국의 치하로 들어갔습니다.로마의 손에 들어간 이집트는 그 후 약 700년 동안 로마의 속주가 되어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기타 농산물들이 모두 로마에 의하여 수탈됨으로써 이집트인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 시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그리스어와 함께 라틴어가 공용어로 채택되었고 철학, 종교, 수학, 의학 등이 발달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모두가 로마인들에 의하여 이룩된 것이었기 때문에, 이집트 자신의 토착 문화는 오히려 쇠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0 그러다가 로마가 멸망한 다음에는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단결된 아랍인들이 A.D.640년에 이집트를 정복하였고 알렉산드리아 역시 아랍인들의 손에 떨어지면서 바빌론 성이 있던 푸스타트가 아랍인들의 이집트 지배 거점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이집트는 사라센 제국의 한 개 주로 취급되어 식민 정책에 의한 세금 수탈에 희생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집트의 풍요한 농토에서 생산되는 모든 부가 시리아와 이라크를 위한 젖줄 노릇만 했을 뿐, 이집트 자체의 번영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정치적 황폐화가 경제적 황폐화를 초래하는 것은 다른 민족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님을 역사가 증명합니다. 그 뒤 AD. 969년에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세력을 펴온 파티마 조에 의하여 정복되어 이집트의 이슬람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0 아라비아인이 이집트를 정복했을 무렵 이집트 주민들은 대부분 원시 카톨릭 종교 (역사책에서는 “기독교” 라고 말하지만)를 신봉하고 있었고, 지배 계급인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정교를 신봉하고 있었는데, 아라비아인의 지배 시대로 접어들면서 200년도 지나지 않아 대다수가 이슬람도화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구나 12세기초 십자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라딘에 의하여 파티마 조 대신 아이유브즈조가 세워진 다음부터는 이집트의 이슬람화가 더욱 가속화 되었습니다.그 와중에서 크고 작은 내전들을 여러 차례 겪고 있던 이집트는 한편으로는 인도양이나 지중해 무역으로 경제가 번영하여 시리아까지도 지배하기에 이르렀지만 인도항로의 발견에 따라 포루투칼에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넘겨야만 했고 동서 교통의 중계지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16세기 초에는 오스만 터키에 정복됨으로써 세계의 한 변방으로 쇠퇴하게 되었고 문화적으로도 침체를 계속했습니다.

 

0 그러자 1798년 나폴레옹이 거느린 프랑스군이 알렉산드리아에 침공하여 카이로까지 정복해 들어갔는데, 1801년까지 계속된 프랑스 점령 기간 동안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프랑스에 의 하여 탈취 당했습니다. 지금도 프랑스 파리를 위시한 도시들 광장 이곳저곳에 서있는 오벨리스크들이 모두 이집트에서 가져간 것들이고, 루브르 박물관의 이집트관은 이때 탈취해간 수많은 유물들로 가득 차 있대 l9세기 초 프랑스군이 철수한 뒤에는 다시 터키족의 지배하로 되돌아갔고, 이때 카이로를 중심으로 저항하던 맘루크 왕조의 잔존 세력들과 터키 지배세력 사이에 충돌이 심하여 혼란에 빠졌으며, 그 와중에 영국 과 프랑스의 세력이 또 이집트로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0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 하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민족 독립의 기운이 일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1936년 거의 완전에 가까운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1948년에 일어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참 패함으로써 1952년 민족사상으로 단결한 소장 장교들이 정변을 일으키더니 나기브 장군을 대통령으로 세워 이집트 공화국이 세워진 것입니다.

 

0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것처럼 이집트는 B. C. 600년경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에 의하여 정복된 이후로 무려 2,500년 동안 끊임없이 외족의 지배를 받았고 수탈을 당해왔습니다.이러한 과거 역사만으로도 여기 에스겔 29장에서 예언되고 있는 이집트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들이 모두 성취되었다고 설명하더라도 거의 무리가 없을 정도 인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0 그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이집트 땅을 황폐한 나라들 가운데서 황폐하게 하리니 삭막하게 버려진 성읍들 가운데서 그녀의 성읍들이 사십 년 동안 황폐하게](12절)되어 [사람의 발이 그곳을 지나가지 아니할 것이며 짐승의 발도 그곳을 지나가지 아니할 것이요, 그곳은 사십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아니할 것] (11절)이라는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된 적은 역사에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더구나 다음 13절에서 보듯이 이집트인들이 다른 나라들에 흩어져 있다가 [사십 년의 끝에]다시 모아진 사례는 더더구나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일들은 사실적으로 일어날 일들이지만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련되는 미래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