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8월15일(일)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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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일)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마19:1-30절 말씀입니다.
0 먼저1-9절을 보겠습니다.[예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시어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가시니, 2 큰 무리가 그를 따랐으며, 주께서 거기서 그들을 고쳐 주시더라. 3 바리새인들도 주께 와서 주를 시험하여 말하기를“사람이 무슨 사유로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이 타당하니이까?”라고 하니, 4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처음에 사람을 지으신 분이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이런 까닭에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고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6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결합시켜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느니라.”고 하시더라. 7 그들이 주께 말하기를“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령하였나이까?”라고 하니, 8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모세는 너희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요, 또 버려진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시더라.]고 말씀하십니다.
O 19장에서도, 주님의 치유의 표적은, 지속적으로 행해집니다. 그래서 1-2절에서 [예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시어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가시니, 큰 무리가 그를 따랐으며, 주께서 거기서 그들을 고쳐 주시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과 그 외의 여러 부류의 사람들은“언제나 까다로운”문제들을 가지고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O 3절에서도 보면, 바리새인들은 다시 주께 와서 주를 시험하여“사람이 무슨 사유로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이 타당하니이까?”라고 묻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주께 걸고넘어진 문제는“이혼”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3절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인용한 말씀은 신24:1절입니다. O 그 내용을 보면, [어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그녀와 혼인을 했는데, 그녀에게서 어떤 불결함을 발견했기에 그녀가 그의 눈에 은총을 얻지 못하여 좋아지지 않게 되면, 그가 이혼증서를 써서 그녀에게 주어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어떤 불결함을 발견했을 때”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말을 쏙 빼고“무슨 사유로든지”라고 말합니다. O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는, 주께서 말씀하신 것에, 더하든지, 빼든지 해서 인용합니다. 에덴동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창3:1절에 보면,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의 어떤 짐승들보다도 뱀은 더욱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말하기를“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하시더냐 ?”]고 말합니다.
O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창2:16-17절에 보면,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17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O 그래서 성경을 자신들 마음대로 더하든지, 빼든지, 변개하든지, 삭제하든지 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그것은 절대적으로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O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성경은 절대 무오한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그 기록된 말씀을, 수정하고, 변개하고, 삭제하고, 첨가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22:18-19절에 [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 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바리새인들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창2:24절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께서 합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령하였나이까?”]라고 말합니다. 그때 주께서 모세가 허락한“이혼증서”는, 사람들의 완고함 때문에“허용”하신 것뿐이지, 결코“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혼이란 기본적으로“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O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결혼”이란,“육체적 결합”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는“육체적으로 결합”하지 않은 두 사람은, 갈라져도 그것은 이혼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설령“결혼식”을 올렸어도 그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결합하지 않았으면, 설령“결혼식”을 한지, 100년이 되었어도 그들은 아직 결혼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O 이것이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만을 성경은“결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6:16절에서 [또한, 창녀와 합하는 자는 한 몸인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가 말씀하시기를“둘이 한 몸이 되리라.”고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적 의미의 결혼은“결혼식”도,“혼인신고”도 아니라, 오직“육체적 결합”이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예수님은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요, 또 버려진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바울은“믿지 않는 자”가 이혼하기 원하면“이혼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혼이 옳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7:10-11절에 [내가 혼인한 사람들에게 명하노니 명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시니라.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서 떠나지 말라. 여자가 설령 떠났다고 해도 재혼하지 말고 지내든지 아니면 남편과 화해하든지 하라. 남편도 자기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지체”는, 불신자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7:15절에 [그러나 만일 믿지 아니하는 자가 떠나겠다면 그를 떠나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그런 일에 매여 있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평으로 부르셨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단지, 그의 구원을 위하여 적절히 행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는 점을 말씀합니다.
O 그래서 고전7:16절에 [오 아내여, 네가 네 남편을 구원할지 어찌 알겠으며, 오 남편이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지 어찌 알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와의 결혼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합”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불신자와의 결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O 그러기에 고후6:14절에서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결혼해도 그들은 육체적 결합을 했으므로 분명히“한몸”인 것입니다. 그래서 창녀와 합하는 자는, 창녀와“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합을 하지 않았습니다. O 다시 말하면, 이것은 6절에서 말씀하시는“하나님께서 결합시켜 주신 것이”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결합 것이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합이 아닐 경우에는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떼어내 버리시고, 갈라내 버리시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에스라 10:10-12절에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그들에게 말하기를“너희가 범죄하여 타국의 아내들을 취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증가시켰도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 조상의 주 하나님께 자백하고 그의 기쁘심을 행하여 그 땅의 백성과 타국 아내들로부터 너희 자신을 분리시킬지니라.”하니 온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말하기를“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또, 느헤미야13:3절에서도 [그들이 그 율법을 듣자 혼혈의 모든 무리를 이스라엘로부터 분리하였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O“아브라함의 여종 하갈”도, 바로 이와 같은 경우입니다. 그래서 창21:10-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녀의 아들을 내어 쫓으소서. 이는 이 여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상속받지 못할 것임이니이다.”하니, 그의 아들로 인하여, 그 일이 아브라함의 눈에 큰 근심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인하여 네 눈에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말한 모든 것에 있어 그녀의 음성에 경청하라. 이는 이삭 안에서 난 자가 네 씨라 불릴 것임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속에서는 때로는 음행한 여자라도 취하게 하기도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호세아 선지자의 경우입니다. 그래서 호3:1-3절에 [그때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너는 가서...간음하는 여인인 한 여인을 사랑하라.”하시기에, 내가 나를 위하여 그녀를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과 보리 반 호멜로 사서 그녀에게 말하기를“너는 많은 날들 동안 나를 위하여 거하고 창녀 짓을 하지 말며 다른 남자와 함께하지 말지니라. 나도 너를 위하여 그리하리라.”]고 말합니다.
O 성경은 이혼의 사유에 대해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죽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배우자가 죽으면 그는 다른 사람과 재혼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전7:39절에 [아내가 자기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에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자유롭게 되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혼인하게 되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롬7:1-4)
O 2. 간음입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요, 또 버려진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고전6:16절). O 3. 믿지 않는 자가 이혼을 원할 때입니다. 그래서 고전7:15절에 [그러나 만일 믿지 아니하는 자가 떠나겠다면 그를 떠나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그런 일에 매여 있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평으로 부르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까닭에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되리라는 본문 5절의 말씀은, 기본적으로“예수 그리스도”와“교회”즉,“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왜냐하면,“주 예수 그리스도”와“그리스도인”는,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갈라지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8: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박해나 기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말씀하십니다.
O 그래서“이혼증서”(헬라어-비블리온 아포스타시우) 은,“배교한 성경”이라는 뜻입니다. O 그래서 음행한 아내에게“이혼증서”를 준다는 것은, “배교한 교회”에게,“배교한 성경”을, 즉 “변개된 성경”을 주어서 그들이 마음대로 세상과 결합하는 것을 허락해 버리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라오디케아교회 시대의 배교한 교회는, 이“이혼증서”인,“배교한 성경”즉,“변개한 성경”을 가지고, 자신들의 혀 바닥 돌아가는 대로 짓거리면서 세상과 결합하고, 세상과 일치하며, 세상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O 이들이 무엇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간섭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형통하는 사람, 복 받은 사람,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복을 받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로부터 버려진 상태에서,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와 징계 속에서 이뤄지는 형통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종말에는 결코 그들이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것들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계속해서 악을 행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22:11절에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함에 있게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러움에 있게 하라. 반면에 의로운 자도 그대로 의로움에 있게 하고 거룩한 자도 그대로 거룩함에 있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배교한 교회들에게는 이보다 더 두렵고도 떨리는 없는 것입니다.
O 다시 10-12절에 [제자들이 주께 말씀드리기를“만일 그 남자와 그의 아내와의 경우가 그런 것이라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고 하니 11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다 이 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이 말이 주어진 자들만이 받느니라. 12 모태로부터 고자로 태어난 자들도 있고, 사람에 의해서 고자 된 자들도 있으며, 또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 된 자들도 있느니라.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이라.”하시더라.]고 말씀합니다.
O 이 말씀은 결혼이“육체적 결합”이라는 성경적 정의를 정확히 뒷받침해 줍니다. 그래서 세 가지 경우의 “고자”가 있는데, 1) 태어날 때부터 고자 된 사람과, 2) 사람에 의해 고자 된 사람인데, 이들은 궁중에서 내시들입니다. O 3) 천국을 위해서 고자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 모두의 특징은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들은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고 여자와 함께 살기도 하지만, 그들은 육체적 결합을 할 수 없기에 성경적 의미의 결혼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O 10절에서 제자들이“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고 한 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11절에서“이 말이 주어진 자들만 받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이 말씀은 아무나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결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2:24절에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결합하리니, 그들이 한 몸이 될 것임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은 결혼할 권리가 있었으나 그는 하지 않았습니다.
O 다시 13-15절에[그때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주께 데려오니, 이는 주께서 그들에게 안수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람이라. 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더라. 14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금하지 말라.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고 하시며, 15 주께서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그곳을 떠나시더라.] 고 말씀 하십니다.
O 어린 아이에 관한 문제는, 마18:1-10절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천국에서 누가 가장 크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주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불러서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회심하지 아니하고, 또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고 말씀 하시면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면 그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마18:1-3). 고 말씀하셨습니다.“천국”은,“영적으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육신의 몸”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들어가는“왕국”입니다.
O 그러므로“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듭나는 것하고는“상관없이”회심하고, 어린 아이처럼 겸손하게 주를 영접하면 들어가는 것입니다.“천국과,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다르다, 라는 것을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여기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어린아이의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O 그래서 성경은 이 부분에서“어린 아이는 천국에 합당한 자라”고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에 보면, 유대인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고, 율법이 주어지지 않은 이방인은“양심”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율법도 주어지지 않고, 어떠한 법령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들에게 주어진“양심”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 사람들이 마음에 가지고 있는“양심”을, 마음에 기록된“율법”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롬2:15절에 [그들의 양심도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율법이 주어진 유대인들이“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율법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주어지지 않은 이방인들이“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은, 그들의“양심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기록한“양심”조차도,“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는“어린 아기”에 대해서는 판단 받을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물론, 이 말이“어린 아기”은,“죄인이 아니라”는 말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O 이 말은, 막 태어난 아기든, 어른이든 간에 죄인 아담 아래 있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은 지옥으로 들어갈 멸망의 죄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 죄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어린 아이”은, 심판을 받을 어떠한 근거도 없기 때문에 심판을 면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형벌이 면제가 되었다면, 그 아기는 죄의 형벌로 가야하는 지옥도 또한“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성경 롬5:13절에서는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롬4:15절에서는 [율법은 진노를 일으키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죄를 지었다 해도 그 죄를 심판할 수 있는 율법이 없다면, 그 죄는. 죄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는 세상 법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분명히 죄를 지어 붙잡았지만, 그러나 아직은 어떤 죄목으로도 그를 처벌할 법 조항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무죄로 풀어줘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율법이 나타나자 그 율법은 즉시 우리의 그 행동이 죄라는 사실을 지적해 줍니다. 하지만, 율법도 없고, 뿐만 아니라, 그 양심마저도 아직은 선악을 분별할 줄 모르는 어린 아기는 그가 비록 죄와 사망과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 죄인으로 태어났고, 그래서 죄인이지만, 그러나 그에게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아직 자신들의 죄들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O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에게는 예수님의 구속의 피, 속죄의 피가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피는 일차적으로 어린 아기에게 뿌려졌고, 그리고 죄의식이 없는 어린 아기는 그 피에 의해서 심판 받지 않고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할 만큼 어린 상태에서 죽은 아기들은 예수님의 피를 거부하지도 않았고, 죄 의식도 없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죄인일지라도 그 책임을 면제받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아기가 자신의 책임을 면제받을 수“없는 상태”가 있습니다.
O 그래서“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가 자라면서“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그는 자동적으로 죄에 대한 면제 범위에서“벗어나”죄의 법 아래로 들어오게 되어 죄에 대한 책임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제 그는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자로서,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반듯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즉,“선과 악”의 분명한 의식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의 피의 속죄 사역을 믿지 않으면서,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다면, 자기를 피로 사신 그 피와, 자신을 위해 죽으신 그분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거부한 죄로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어린 아기가 이 시점에 이르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하면, 어린 아이가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받을 정도로 죄의식을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될 때, 부모들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피의 속죄 사역을 믿으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해서 그들의 혼을 지옥으로부터 안전하게 주께로 인도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O 다시 l6-19절에[그런데, 보라, 어떤 사람이 와서 주께 말씀드리기를“선한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하리이까?”라고 하니,17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어찌하여 네가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그러나 네가 생명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시더라. 18 그가 주께 말씀드리기를“어떤 계명이니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19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O 여기서는 오늘날 이 시대의 구원과는“다른”, 실제적인 천국의 문제가 제시됩니다. 한 관원이(눅18:18) 예수님께 와서 영생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16절에 보니까, 그는 [선한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하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해야 할 실제적인 행위를 말씀하십니다.
O 그래서 17절에서 [네가 생명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구약적인 구원 방법과 더불어 신약적인 구원 방법이 제시된 것입니다. 주께서 이 관원에게 “네가 생명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자, 18절에 [어떤 계명이니이까?]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면 자신 있다, 는 것을 암시합니다.
O 이때, 예수님께서는 그가 지켰던 계명들을 아시고, 십계명의 앞과 뒤의 계명들을 언급하지 않으신 채, 18절에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도덕률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부족한 것 한 가지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바로“재물”과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십계명의 첫 두 계명은“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고, 그리고 마지막 계명은“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마6:24절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 고 하시면서 골3:5절에서는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첫 두 계명도“탐심”과 관련되어 있으며, 결국 이 부자 관원이 지키지 못한 계명은, 바로“탐심”에 관한 계명이었던 것입니다.
O 다시 20-26절에[그 청년이 주께 말씀드리기를“이 모든 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지켜 왔나이다. 아직도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니이까?”하니, 2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네가 온전해지기를 원하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있는 보물을 가지게 되리니, 그런 후에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더라. 22 그러나 그 청년이 그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가더라. 이는 그가 많은 재산을 가졌기 때문이라. 23 그후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24 또다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우니라.”고 하시더라.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심히 놀라며 말하기를“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고 하니,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이 일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고 하시더라.]고 말씀합니다.
O 이 젊은 관원은, 예수님의 요구가 자신을 빈털터리로 만드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요구는 결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십자가 이전에 있었던 사건으로서, 구약적인 구원 방법을 제시하신 것입니다.O 왜냐하면, 그는 구약적인 방법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분명히“계명들”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계명을 하나 더 그에게 주십니다. 그것은“와서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령 그가“가서”“팔아”“나누어 주지”못했다 하더라도, 그 다음 명령인“와서 주님을 따르는데”순종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께 온 것을, 신약 적 구원의 모형으로 제시하셨을 것입니다.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을 행할 수 없는 죄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선생”입니다. 그래서 갈3:24절에 [그리하여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우리의 지도교사가 되었으니 이는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러므로 만약 이 젊은 관원이,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구약 적 구원의 방법인, 율법의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없었다면,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께로 나와서 주님께 고백하고(롬10:9,10), 주를 믿고(행16:31),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요1:12). 그러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 관원과 주님과의 대화는“율법의 의”에서,“그리스도의 의”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행위에서 믿음으로 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롬9:10).
O 그러나 이 관원은 둘 다 하지 않고“슬퍼하며 돌아간 것입니다.”(22절). 그리고 23-26절에 보면, “예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은 차라리“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우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고 말합니다. 이때 예수께서 ....“이 일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도 가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워서 못하시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창18:14절에 [주께 너무 어려워서 못 할 일이 있겠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정해진 기간에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가 아들을 가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렘32:27절에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어려워서 못 할 일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막10:27절에 [또 예수께서 그들을 주시하며 말씀하시기를“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이는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눅18:27)
O 부자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부자 삭케오를 구원하셨고, 부자 니코데모도 구원하셨고, 부자 코넬료도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부자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시므로 그들을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부자 청년에게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주께서 이 청년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네가 가진 것을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청년 관원에게 삭캐오와 같은 구원받기를 열망하고 갈망하는 마음만 있었다면, 그는 삭캐오처럼 행하므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O 그래서 눅19:8-9절에 보면, [그때 삭캐오가 서서 주께 말씀드리기를“보소서, 주여,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나이다. 그리고 내가 누구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착취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아 주겠나이다.”라고 하니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그도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O 성경은,“돈은 모든 악의 뿌리”라고 결코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단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딤전6:10절에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볼 때, 이 사람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O 다시 27-30절에[그때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보소서, 우리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랐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갖게 되겠나이까?”라고 하니, 2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새 세대에,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누구든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일백 배로 받을 것이요 또 영생을 상속받으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들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들로 먼저 될 자들이 많으리라.”]고 말씀합니다.
O 27절에서 [그때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보소서, 우리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갖게 되겠나이까?”]라고 말합니다. 이때 주께서는 베드로의 요구에 쓸데없는 것을 바란다고 예수님은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요구는 정당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28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새 세대에,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는“새 세대”에, 다시 말하면, 주께서 재림하실 때, 이스라엘의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O 그리고 29절에서 [누구든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일백 배로 받을 것이요 또 영생을 상속받으리라.]고 하신 후에 30절에서 [그러나 먼저 된 자들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들로 먼저 될 자들이 많으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된 자들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들로 먼저 될 자들이 많으리라.”그래서 주를 섬기는 일에 방심하거나 나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있어 우리의 길을 다 마칠 때까지 인내로서 최선을 다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0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딛3:5) 이제 멀지 않아 주께서 말씀하시는 새로운 세대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주를 섬기며 주와 영원히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우리는 그 영광의 날을 항상 고대하고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순간까지 주께로부터 받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0 그래서 딤후4: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견책하고 책망하며 권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일에 나중 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휴거되어 주를 만나는 그 순간까지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고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하고 이 마지막 때 믿음의 근본 사항을 온전하게 전파하는 앞선 자로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복음전파의 그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주와 함께 영원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