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는 시련 때문이니...

박종각 2021. 8. 3. 00:00

                                                 이는 시련 때문이니...

                                                         8월3일(화)

                                                겔21:13-17절 말씀입니다.

 

[이는 시련 때문이니 만일 그 칼이 그 막대기까지도 경멸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 막대기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14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라. 그리고 손뼉을 치고 그 칼을 세 번 겹 씌울지니 곧 살해의 칼이요, 밀실에 들어가서 위대한 자들을 살해하는 칼이라. 15내가 그들의 마음이 기진하고 그들의 넘어짐이 많아지도록 칼끝을 그들의 모든 성문을 향하여 겨누었도다. 아! 그 칼이 빛나고 그 칼이 살육을 위하여 싸매져 있도다. 16너는 이 길로나 저 길로나 오른편이나 왼편이나 얼굴이 향한 곳이면 어디로든지 가라. 17내가 또 내 손뼉을 쳐서 내 진노를 쉬게 하리라. 나 주가 그것을 말하였노라.]

 

                                                               ******* * ******* * *******

 

O 13절에 [이는 시련 때문이니 만일 그 칼이 그 막대기까지도 경멸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두드러진 두 개의 막대기가 있다면, 그것은 모세의 막대기와 아론의 막대기대, 모세의 막대기는 뱀이 되었었고(출4:2-4), 이집트의 나일강 물을 피로 변하게도 하여 강에 있는 물고기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강물을 온통 썩게 만들어 악취가 풍기게 하기도 했습니다.(출7:17-24).

 

O 이 막대기는 또 땅의 흙을 쳐서 이가 되게 만들었고 (출8:16-18), 하늘을 향하여 뻗쳤을 때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우박이 쏟아져 내리게 했으며(출9:23-25), 이집트 땅에 대고 뻗쳤더니 동풍과 함께 메뚜기 떼가 날아왔고(출10:13), 바다에 뻗쳤더니 홍해가 갈라졌으며(출14:21,22), 호렙 산에서는 반석을 치자 바위에서 물이 솟았습니다.(출l7:6). 이 막대기는 주로 재앙을 가져 왔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반석을 쳤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손에 들고 있던 이 기적의 막대기는 실은 마귀를 예표 하는 막대기였습니다.

 

O 반면에 민17:7-8절에 보면 그 유명한 [아론의 막대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제가 증거의 성막 안 주 앞에 그 막대기들을 두었더라.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성막으로 들어갔더니, 보라, 레위 집을 위한 아론의 막대기에 움이 돋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아 몬드 열매들이 열렸더라]고 말씀합니다.이 [아론의 막대기]는 죽었던 막대기였으나 거기에 생명이 부활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막대기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아론의 막대기는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대제사장의 신분을 나타내는 막대 기였고, 그 막대기가 생명을 갖는 나무로 부활함으로써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세워지실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히4:14).

 

 

 

O 그러니까, 성경에는 두 개의 막대기가 있는데, 하나는 마귀를 예표 하는 막대기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막대기입니다. 마귀의 칼은 자신의 막대기는 보살피지만 아들의 막대기에는 대적하고,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칼](엡 6: 17)은 아들의 막대기는 보살피지만 마귀의 막대기에는 대적합니다.

 

O 그런데, 여기 에스겔 21장에서 언급되는 막대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막대기임이 분명합니다. 10절에서 [내 아들의 막대기] 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내 아들의 막대기” 를 죽이는 “칼’’ 은 곧 마귀의 칼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이 마귀의 칼은 예수 그리스도를 갈보리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0절에 [그 칼이 내 아들의 막대기를 모든 나무처럼 경멸 하는 도다. ]라고 말씀 합니다. 마귀의 칼이 하나님의 아들까지도 십자가에 달아 처형할 정도로 무서운 위력을 가진 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 앞에서 부들부들 떨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O 그런데 여기서, [그 막대기까지도 경멸] 하는 마귀의 칼은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 쥐어 주신 칼입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를 경멸하도록 하나님께서 시키셨단 말이냐? " 하고 놀라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죽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보리의 십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였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님 께서는 숨을 거두시면서 [다 이루었다] (요20;30)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저항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고난 받으시고 죽기까지 하심으로써 구원의 근원이 되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히5:8).

 

 

 

O 하나님께 대한 아담의 불순종은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은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롬5:19).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그 뜻을 행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던 것이며,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으셨던 것입니다.(히10:9).

 

O 13절에 [그 막대기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의 통치자는 마귀입니다.(요14:3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구가 멸망을 맞이할 때가 되어서야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인류 역사를 종결지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천년왕국의 왕으로서 이 땅을 통치하실 때 그분의 손에 들려져 있는 막대기는 더 이상 나무 막대기가 아니라 [철장]인 것입니다.(시2:9,계2:27, 12:5, 19:15). 그때가 되기까지 이 세상은 마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O 14절에[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라. 그리고 손뼉을 치고 그 칼을 세 번 겹 씌울지니 곧 살해의 칼이요, 밀실에 들어가서 위대한 자들을 살해하는 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의로 끝나지 않고, 두 번, 세 번까지 휘둘러댐으로써 죽이고 또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총이라면 일종의 확인 사살과도 같은 것으로, 살해를 확실하게 해두는 칼 놀림인 것입니다. [밀실]이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요즘으로 치자면 아주 깊은 방공호 같은 것을 말합니다. 핵전쟁이 벌어지면 대통령과 고위 관리들 및 작전 사령부가 이 [밀실]로 들어가 전쟁을 지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20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의 벤하닷이 싸움에 참패한 뒤 성읍 안으로 패주하여 골방에 들어가 숨었습니다. (왕상20:29,30).

 

 

 

O 이 경우 벤하닷이 숨었던 [골방]이 바로 여기 14절에서 말하는 [밀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의 칼이 뽑혀지면 아무리 든든하게 잘 만든 방공호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O 15-17절에 [내가 그들의 마음이 기진하고 그들의 넘어짐이 많아지도록 칼끝을 그들의 모든 성문을 향하여 겨누었도다. 아! 그 칼이 빛나고 그 칼이 살육을 위하여 싸매져 있도다. 너는 이 길로나 저 길로나 오른편이나 왼편이나 얼굴이 향한 곳이면 어디로든지 가라. 내가 또 내 손뼉을 쳐서 내 진노를 쉬게 하리라. 나주가 그것을 말하였노라. ]고 말씀하십니다.O “싸매져” 있다고 해서 헝겊이나 보자기로 칼을 싸맸다는 게 아닙니다. 짐을 다 싸면 이제 떠날 준비가 다 끝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들은 이미 다 고려해 보았고 이제는 행동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습니다. 칼이 날카롭게 갈리고 날은 시퍼렇게 세워 놓았습니다.

 

0 이제는 [살육을 위하여] 내두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든 방향을 일단 잡았으면 칼을 뽑아들고 그리로 내닫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할 것 없이 방향이 정해진 곳으로 집중하여 칼을 내리치기만 하면 됩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길이면 [오른편이나 왼편이나... 어디로든지] 진격하기만 하면 됩니다. 바빌론 군대가 북동쪽에서 내려와 작전상 우회하여 남쪽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항하여 북진해도 좋고, 북쪽 칼데아로부터 바빌론 군대가 직접 남진해 내려와도 좋습니다. 일단 공격 방향이 정해지면 그 길로 매진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예루살렘은 사방이 포위돼 있기 때문입니다.

 

 

 

O 그러나 우리는 l9절부터 “두 길 중 한 길을 정하라·”는 말씀과 그것을 정하기 위해 점을 치는 장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른편], [왼편]을 이에 관련지어 북쪽에서 쳐내려오는 군대가 팔레스타인 북쪽 어느 지점에서 오른쪽을 택하여 요단 강 서쪽 내륙 지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남진할 것인가, 아니면 왼쪽을 택하여 요단 강 동쪽 시리아와 요르단 땅으로 해서 요단강을 건너 여리코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접근할 것인가 하는 장면과 연결해야 합니다.

 

O 17절에 [내가 또 내 손뼉을 쳐서 내 진노를 쉬게 하리라 나, 주가 그것을 말하였노라]고 말씀 합니다. 여기서도 손뼉을 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분노를 나타내는 몸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대한 분노의 심판을 집행하셔야만 자신의 진노를 멈추시는 분이시십니다.

 

0 하나님께서는 은총과 자비가 넘치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O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주 앞에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