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일 예 배
2월28일.
에스더가 자기에게 명한 대로 행하였더라.
에4:1-17절 말씀입니다.
먼저 1-3절을 보겠습니다.[모르드캐가 행해진 모든 것을 알자,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 성읍 한가운데로 나가 대성통곡하며, 2 왕의 문 앞까지 갔으나 굵은 베옷을 입고는 아무도 왕의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더라. 3 왕의 명령과 그의 칙령이 도착한 각 지방에서도 유대인 가운데 큰 애곡과 금식과 울음과 통곡이 있었으며 많은 사람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 누웠더라.]고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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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본문 1절에 보면, 모르드캐를 통해서 애곡하는 모습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모르드캐는, 자기“옷을 찢”습니다. 이것은 육체가 찢기는 것을 묘사해 줍니다. 그래서 히10:20절에서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해 바치신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휘장, 곧 그의 육체를 통하여 들어가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휘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지는데, 이때 휘장은, 이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는 칸막이 역할을 하는 청색, 자색 주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그룹들의 문양을 넣어 만들어진 특별한 “천”입니다.
O 그래서 출26:31,33절에 [ 청색, 자색, 주홍색 실과 정교한 솜씨로 가늘게 꼰 베실로 휘장을 만들되, 그것을 그룹들과 더불어 만들지니라. 너는 걸쇠 아래에 휘장을 걸고 증거 궤를 그 휘장 안에다 들여 놓을지니, 거기 휘장이 너희에게 성소와 지성소를 나눌 것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리고 휘장 안쪽을 지성소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금향로와 언약궤와 그 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자비석이 있고, 그리고 그 자비 석을 덮는 그룹들이 있습니다(출26:34.히9:4-5). 이 지성소는 대 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만 피를 가지고 들어가 자신과 백성들을 위해 피를 드리는 곳입니다.(히9:7,13:11) 그러나 성소는 제사장들이 언제나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수행합니다.(히9:6) 그리고 이 성소 안에는 촛대와 상과 그 위에 차려 놓은 빵이 있습니다.
O 그래서 히9:2-3절에 보면 [한 성막이 마련되어 첫째 부분에는 촛대와 상과 차려 놓은 빵이 있었는데 그곳을 성소라 부르고 두 번째 휘장 뒷부분은 지성소라 불리는 성막인데]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가로막인 휘장이 찢어지면 성소와 지성소는 하나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육체가 바로 이 성소와 지성소의 중간을 막고 있는 휘장과 같아서 십자가에서 주님의 육체가 찢어짐으로 성소와 지성소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소를 들어가는 사람은 은혜의 보좌인 이 지성소로 곧 바로 들어 갈수 있는 길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O 그래서 성전의 휘장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육체와 동일시되는 것으로, 성전의 휘장이 찢어는 것은 곧 주님의 육체가 찢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27:50-51절에 [예수께서 다시 큰 음성으로 소리 지르신 후, 숨을 거두시더라.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두 번째는, 모르드캐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있습니다. 굵은 베옷은, 슬픔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30:11절에 [주께서 나를 위하여 나의 슬픔이 춤이 되게 하셨으며 주께서 나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를 둘러 주셨나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베옷은 사람이 죽었을 때 입은 수의로, 또 이것을 사람이 입었을 때는 장사되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재]는, 대개 먼지를 수반하며 머리 위에 뿌려집니다. 욥2:12절에 보면 욥의 세 친구들도 그랬습니다.
O 그래서 장례에서 마지막 하관 식 때 목사가 관에 흙을 뿌리는 것은 이제 죽은 자는“흙에서 흙으로”돌아간다는 것을 선언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재는 장사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르드캐가 재를 뒤집어 쓴 것은 그들에게 닥칠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O 세 번째는, 그는“대성통곡”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주를 모르는 한 사람이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난후, 그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지옥에서 [울며 이를 갈고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13:50절에서 [그들을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던지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O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날마다 호화로이 왕래하며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인생의 대부분을 건강하게 살던 어떤 부자가 죽어서 지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충분이 지옥에 갈 사람이 지옥에 간 사람보다는, 이 부자가 지옥 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거의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그 구원을 놓쳐버리고 지옥에 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O 이 부자는, 교만하고 악행을 행하는 다른 부자와는 달리 매우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 대문 앞에 항상 자리를 펴고 누어있는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에 대해서도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사로는 온 몸이 곪아 터지고 지독한 악취를 풍기면서 이 부자 집 대문 앞에 누어있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 거지였습니다. 이 거지 주변에는 항상 동래 개들까지 모여들어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고, 그뿐만 아니라, 그의 몸에는 수백 마리의 파리 떼들이 모여들어 이 부자 집으로까지 들어와 집안사람들까지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O 그럼에도 이 부자는, 이 거지를 자기 집 대문에서 쫓아내지도 않고 오히려 그가 죽을 때까지 자기 집 대문 앞에 누어있게 하면서 자기 식탁에서 남은 부스러기들까지 잘 챙겨서 이 거지에게 줄 정도로 마음이 후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부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옥에 가 있으면서도 마치 매일 아버지를 찾아 문안 인사를 드리는 착한 아들처럼 아브라함을, 아주 친근히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라고 불렀습니다.
O 그래서 이 부자가 죽었을 때,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식으로 말한 다면,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에 갔다고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사람들이 생각한 대로 하늘나라에 간 것이 아니라 지금 불구덩이 지옥으로 떨어져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세상 적으로는 좋은 사람, 세상에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는 들었을지 모르나, 그러나 정작 이 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O 왜냐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지 않아도, 자기 나름대로 정직하게 살고,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남을 배려하고 가난한 자를 도우며 세상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하면, 죽어서도 좋은 곳, 낙원에 갈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자기 나름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그가 누구든 간에 그분의 말씀에 경청하지 아니하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지 아니하면, 그가 아무리 착하고 선량하게 살면서 매일 수백, 수천의 배고픈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어 그들을 먹이고, 그들과 더불어 살며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 내 주어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해도, 그가 갈 곳은 오직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던져서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게 된다는 사실뿐인 것입니다.
O 그래서 1절은, 죽어가고 있으며 지옥을 향해가고 있는, 죄인들에 대해서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모르드캐가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 성읍 한가운데로 나가 대성통곡 하”는 것은, 그의 백성들에게 닥칠 일에 대해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땅히 자리해야 할 [왕의 성문]에는 앉아 있지 않고(에2:19). [왕의 성문 앞까지]만 가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2절에 [왕의 문 앞까지 갔으나 굵은 베옷을 입고는 아무도 왕의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는 밖에 있을 뿐, 왕이 있는 그 안으로는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슬퍼하거나 우울한 상태로는 왕의 궁정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100:2,4절에서 주님은 [기쁨으로 주를 섬기라. 노래하며 그의 임재 앞으로 나마오라....감사함으로. 그의 문들로 들어가고 찬양으로 그의 뜰들로 들어가라. 그분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러므로 왕은 슬픈 기색이 있는 사람이 자신 앞으로 들어오는 것을 한 발자국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와 동일한 제한을 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우리는 그저 감사할 뿐인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울 수도, 주님께 울며 부르짖을 수도 없을 것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오히려 그것을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O 그리고 본문에 보면 1절의 동일한 상황이, 왕국 전역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간 모든 유대인들은 이제 곧 닥칠 일로 인해 애곡 하고 있고, 금식까지 해가면서 매우 슬퍼했습니다. 그래서 3절에 [왕의 명령과 그의 칙령이 도착한 각 지방에서도 유대인 가운데 큰 애곡과 금식과 울음과 통곡이 있었으며 많은 사람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 누웠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삼가하며 이 극한 환난에서 살려달라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O 다시 4-12절에 [그리하여 에스더의 시녀들과 내시들이 와서 그 일을 그녀에게 고하니 왕후가 심히 슬퍼하며 모르드캐에게 옷을 보내어 입게 하고 그의 굵은 베옷을 벗기려 하였으나 그가 그것을 받지 아니하므로 5 에스더가 왕이 그녀에게 시중들도록 임명한 왕의 내시 중 한 사람인 하탁을 불러 그에게 명령을 내려 모르드캐에게 가서 그것이 무슨 일이며 무슨 이유인가를 알아보게 하니라. 6 이에 하탁이 왕의 문 앞에 있는 성읍의 거리로 모르드캐에게 가니 7 모르드캐가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대인들을 멸하는 대가로 왕의 보물창고에 지불키로 약속한 돈의 양을 하탁에게 말하였으며 8 또 수산에서 받은, 유대인들을 멸하라는 칙령서의 사본을 하탁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주고 알게 하며 그녀로 왕에게 들어가 왕에게 간구하고 그녀의 백성을 위하여 왕 앞에서 간청할 것을 당부하였더라. 9 하탁이 돌아가서 에스더에게 모르드캐의 말을 고하니라. 10 에스더가 다시 하탁에게 일러 모르드캐에게 전할 명을 내렸으니 11“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부름을 받지 아니한 자가 안뜰로 왕에게 나아가면 그를 사형에 처하는 한 법이 있음을 왕의 모든 신하들과 왕의 지방들의 백성들이 아나니 왕이 금홀을 내미는 경우에만 그가 살리라. 그런데 내가 근 삼십 일 동안을 왕에게 들어오라고 부름을 받지 못하였도다.” 하더라. 12 그들이 모르드캐에게 에스더의 말을 전하자]고 말씀합니다.
O 4절에 보면, 에스더는, 왕국 전역의 모든 유대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통곡하며 금식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모르드캐가 어떤 연유로 슬퍼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모르드캐의 슬픔과 근심이 무엇이든 간에 덜어줄 생각으로 그에게 옷 한 벌 보냈지만, 그러나 그 옷은 다시 에스더에게로 돌려보내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시중 중 하나인 “하탁”을 보내어 모르드캐가 왜 그렇게 슬퍼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게 했던 것입니다.
O 그래서 5절에 [에스더가 왕이 그녀에게 시중들도록 임명한 왕의 내시 중 한 사람인 하탁을 불러 그에게 명령을 내려 모르드캐에게 가서 그것이 무슨 일이며 무슨 이유인가를 알아보게 하니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을 멸하라는 하만에 의해 왕의 칙령이 나갔을 때, 수산 성읍은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그러나 “하탁” 조차 이 모든 것들에게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드캐는 그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을 설명을 해주고 그리고 하만에 의해 통과된 법령의 사본 한 장을 주면서 이것을 에스더에게 주고 이 일에 대해서 백성을 위해 왕께 간청할 것을 당부합니다.O 그래서 8절에 [또 수산에서 받은, 유대인들을 멸하라는 칙령서의 사본을 하탁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주고 알게 하며 그녀로 왕에게 들어가 왕에게 간구하고 그녀의 백성을 위하여 왕 앞에서 간청할 것을 당부하였더라.]고 말씀 합니다. 모르드케는 이 일을 해결할 분은 오직 왕뿐이고, 그리고 왕 앞으로 나가 왕께 간청할 사람은 오직 에스더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캐는 에스더가 왕에게로 나아가 유대인들의 생명을 위해 간청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O 사실 이것은 에스더의 백성들을 위해 에스더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에스더가 모르드케가 간청한 그 일을 충분히 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2:20절에 보면, 에스더는 이미 모르드케의 명령에 기꺼이 순종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스더가 왕께 나아가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인들에게는 왕이 부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왕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왕의 부름을 받지 않았는데도 왕의 궁정으로 들어왔을 경우, 왕이 자신의 금 홀을 그에게 내밀어 그 사람을 맞이해 주지 않는다면, 그는 살아날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에스더는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부름을 받지 아니한 자가 안뜰로 왕에게 나아가면 그를 사형에 처하는 한 법이 있음을 왕의 모든 신하들과 왕의 지방들의 백성들이 아나니 왕이 금홀을 내미는 경우에만 그가 살리라. 그런데 내가 근 삼십 일 동안을 왕에게 들어오라고 부름을 받지 못하였도다.”]고 말합니다.
O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딤전6:16절에서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출33:18-20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구했을 때, 주께서는 그에게 [네가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이는 나를 보고서 살 자가 아무도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O 그래서 요1:18절에서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독생자, 그가 하나님을 분명히 밝히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자 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14:9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O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직접 주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와서 간구하므로 은혜를 받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히4: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자. 이는 우리가 자비를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발견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O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받는데 우리에게는 어느 누구의 중보도 필요지 않은 것입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직접 주께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나 베드로, 혹은 침례 요한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중보 할 어떤 사제도, 교황도, 어떤“성자”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해성사를 받아 줄 “사제”같은 것은 처음부터 필요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에스더에게는 우리처럼 담대히 왕 앞으로 나 갈수 있는 그러한“보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한 달 내내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만약 그것을 무시하고 왕 앞으로 나가게 된다면,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 놔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자신의 처지를 모르드캐에게 알려 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모르드케는 단호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O 다시 13-17절에 [모르드캐가 에스더에게 대답하도록 명하기를“너는 왕궁 안에서 모든 유대인보다 잘 피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14 만일 이 때에 너까지도 잠잠하면 유예와 구원이 다른 곳으로부터 유대인에게 있겠으나 너와 네 조상의 집은 멸망을 당하리라. 네가 이 때를 위하여 왕국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누가 알겠느냐?”하더라.15 그러자 에스더가 그들을 시켜 모르드캐에게 이런 회답을 보내도록 명하였으니 16“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소서. 그리고 여러분은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삼 일 밤낮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와 나의 여종들도 마찬가지로 금식하리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법을 어기고 왕에게 들어가리니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니라. 17 그리하여 모르드캐가 가서 에스더가 자기에게 명한 대로 행하였더라.] 고 말씀하십니다.
O 여기서 모르드캐는, 에스더에게 너 또한 유대인이고. 그리고 네가 왕후라는 이유만으로 이 환란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르드캐는 에스더가 왕궁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결코 우연한 것으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O 에스더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을 몰아 부치는 모르드캐가 야속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드케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를 통해서든 하나님께서는 이 위기에서 반드시 유대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바로 너인 줄 누가 알겠는가 하는 것입니다.O 그래서 14절에서“만일 이 때에 너까지도 잠잠하면 유예와 구원이 다른 곳으로부터 유대인에게 있겠으나 너와 네 조상의 집은 멸망을 당하리라. 네가 이때를 위하여 왕국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만의 손에서 유대인을 분명히 구해 내실 것입니다. 사실 에스더가 왕궁으로 들러올 때는 에스더가 무슨 임무를 가지고 왕궁으로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간악한 하만을 통해서 유대인들의 씨를 말리는 유대인들의 인종 청소의 위기가 닥칠 것을 아시고 계셨으며 그리고 그 악한 하만의 손으로부터 유대인들을 구해 내기 위해서 미리 에스더를 왕궁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만 믿고 신뢰하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는 우리를 구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O 그런데 만약 에스더가 하나님께서 그를 왕궁에 두신 목적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면, 주께서는 즉시 유대인을 구할 다른 사람을 찾으실 것이고, 그리고 정말로 에스더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 일이 이루어지게 된 다면, 주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에스더의 집안을 심판하시고 멸하실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주께서는 특별한 이유와 목적을 위해 나를 지금 현재의 위치에 두셨다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그 사명을 잃어버리고 왕궁에서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는 고통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O 다시 말하면, 주께서는 우리들이 우리의 현재의 위치에서 주께서 주신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 원하시는데 그 임무를 하지 않고 있다면, 주께서는 우리들 대신 그 임무를 수행할 다른 사람을 찾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엉뚱한 짓을 행하자, 주께서는 즉시 주께 마음이 맞는 다른 사람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삼상13:13-14절에서 사무엘은“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나이다...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그러나 이제 왕의 왕국은 지속되지 못하리이다. 주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한 사람을 찾으셨으며...이는 왕이 주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O 사실 에스더는 자신에게 어떠한 손해가 주어진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옳은 판단을 할 만한 충분한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갈 기회를 얻어 볼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모르드캐에게 자신도, 그리고 자신의 여종들도 그렇게 할 테니, 수산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자기를 위해 3일 동안 특별 금식과 기도를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O 그래서 16절에 [“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소서. 그리고 여러분은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삼 일 밤낮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와 나의 여종들도 마찬가지로 금식하리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법을 어기고 왕에게 들어가리니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고 말합니다.
O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주께로 향해 있다면, 그리고 지금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책이 되지 않는 어떤 문제에 부딪쳐 있다면, 정말로 주님으로부터 응답받아야 할 기도 제목이 있다면, 방법은 하나, 그것은 바로 온 마음으로 3일 정도 금식과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O 주께서도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금식과 기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마17:21절에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14:23절에 [두 사도는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선임하고 금식 기도하며 자기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의탁하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바울도 자주 금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11:27절에 [수고하고 애쓰며 자주 깨어 있고 배고프며 목마르고 자주 금식하며 춥고 헐벗었노라.]고 말씀 하십니다.
O 16절에서, 에스더의 결단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괴로운 상황을 만났을 때 취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에스더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주 앞에서 옳은 일을 행할 것이라고 결심했다는 말입니다.O 우리는 어리석기 때문에 사실 인생의 어떤 문제에 봉착하여“잘못된”결정을 내린 대가로“심한 징계를 받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3일정도 금식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에 관해서 주께 진지하게 기도하고 우리의 진심을 하나님께 보여 드렸다면, 그때부터 주께서는 우리를 돌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O 주께서 우리의 진심을 보고 계신다면, 우리의 올바른 행보에 대해 주님은 반드시 복을 베푸실 것입니다. 주께서는 우리들이 미련해서 자초한 혼란 속에서 우리들을 건져내시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을 단번에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리석은 일을 행했다면, 주께서는 우리들의 그 어리석음까지도 지워 버려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서는 우리는 때로 에스더와 같이 좀더 담대하게 행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손길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욥13:15절에 [그분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 하리라]고 말합니다.
O 삼하l0:11-12절에 보면,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은 암몬인들과 시리아인들에게 앞뒤로 완전하게 포위당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때 요압은 그의 아우를 암몬인들과 대치하게 하고, 자신은 시리아인들을 맡기로 하고 요압은 11절에서 자신의 아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시리아인들이 내게 너무 강하면, 그 때 너는 나를 도우라, 그러나 암몬 자손이 네게 너무 강하면, 그때는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고 말합니다. 요압은 두 대적이 동시에 이스라엘보다 강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에서 요압은 자기 아우에게 [담대하라. 그리고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을 위하여 그 사람들을 조롱거리로 삼자. 주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리라]고 말합니다. 이제 모든 결정권은 모두 주께 있다는 말입니다.
O 그리고 주께서 어떻게 결정하시든 우리에게 좋게 결정해 주시든, 우리에게 나쁘게 결정해 주시든 우리는 주께서 그 결정대로 행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들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 승리를 거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O 어쩌면 지금 우리들은 주께서 원하는 것을 충실히 아주 충실히 잘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전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든 간에 그 결과가 무엇이든지 기꺼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O 그래서 단3:16-18절에서 세 명의 히브리 자손들은 느부캇넷살 왕에게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께 담대히 말하나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 해도 즉, 만일 우리가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 해서 왕께서 우리를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던진다 해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에서 우리를 구해 내실 수 있으며,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지 아니할지라도, 오,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할 것이며 왕께서 세우신 금상에 경배하지도 아니할 것을 왕께서는 아소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O 다시 17절에 [그리하여 모르드캐가 가서 에스더가 자기에게 명한 대로 행하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4장에서, 이 17절에 나오는 한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시점까지는 에스더가 모르드캐의 명령을 행했었습니다. 그래서 에2:20절에 [모르드캐가 에스더에게 명한 대로 그녀가 자기 동족과 자기 백성을 알리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에스더가 모르드캐와 함께 있어 양육 받던 때와 같이 그의 명령을 행하였음이더라.]고 말합니다.
O 그런데 이제부터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모르드캐가 에스더의 명대로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어떤 책임을 떠맡게 되었고,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생명을 무릅쓰고서라도 모르드캐의 요청대로 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모르드캐는 그녀가 요구한 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남편들은, 자신의 아내가 자신보다 옳을 때가 있다는 것을 꼭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때 남편들은 아내가 자신에게 요청하는 것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O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쫓아내 달라고 말했을 때, 사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사라가 말한 대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까지 나서십니다. 그래서 창21:12절에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네게 말한 모든 것에 있어 그녀의 음성에 경청하라]고 권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사라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이삭에 관해 말씀하셨던 것에 대해 무언가를 보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사랑한 나머지 육신적인 생각 때문에 그 사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마엘을 쫓아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네게 말한 모든 것에 있어 그녀의 음성에 경청하라”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O 또,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가 믿는 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지고 혼자서도 주를 능히 섬길 수 있을 때까지 양육해야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 부모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믿음 안에서 그렇게 행하고 있을 때는, 이제는 부모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의견에 존중하고 따라 줘야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O 이것이 바로 17절의“모르드캐”와 “에스더”사이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어린 사무엘을 사용하셔서 90세가 넘은 제사장“엘리”에게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삼상3장). 바울은 딤전4:12절에서, 디모데에게 [아무도 너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너는...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O 오늘 본문 마지막 17절에서 [그리하여 모르드캐가 가서 에스더가 자기에게 명한 대로 행하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주 앞에서“옳을 때”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에게 복종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복종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다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휴거되어 주와 함께 영원히 사시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