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편안한 가운데...
시4:5-8절 말씀입니다.
“의의 희생제들을 드리고 주를 신뢰하라. 6“누가 우리에게 선을 보여 주겠느냐?”
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사오니 주여, 주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들어 주소서.
7주께서 내 마음에 기쁨을 두셨으니 그것이 그들의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했던 때보다 더 크니이다. 8내가 평안 가운데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리니 이는 주여, 주만이 나를 안전한 가운데
거하게 하심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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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에 [의의 희생제들을 드리고 주를 신뢰하라.]고 말합니다.[의의 희생
제들]은 “상한 마음과 참회하는 영”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시
51:16-17절에 [주께서는 희생제를 원치 아니하시나이다. 그렇지 아니하
였으면 내가 그것을 드렸으리이다. 주께서는 번제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
이다.17 하나님의 희생제들은 상한 영이니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상하
고 참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희생제는 주께 가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
15:8절에 [악인의 희생제는 주께 가증한 것이나,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
의 기쁨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악한 마음으로” 가져 오는 희생
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잠21:27절에 [악인의 희생제는 가증한 것이거늘 하물며 악한 마
음으로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야 더욱 악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특히 “믿음과 행위” 에 대한 부분을 우리가 관찰할 수 있습니
다. 그래서 희생제라고 하는 “행위”와 신뢰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6절에 [“누가 우리에게 선을 보여 주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사오
니 주여, 주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들어 주소서.]라고 말합니다. [주여, 주
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들어 주소서]라는 이 말은 주의 백성을 “축복 하소
서” 또는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소서”라고 하나님께 드리는, 단순히 경건
한 요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앞서 나온 [셀라]라는 말이 우리를 시
37:6, 43;3, 89;15절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51:18절에서 이스라엘의 회복 때에 “의의 희생제들”이 드려질
것임(시51:19)을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51:18-19절에 [주
의 선하신 기쁨으로 시온을 향하여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벽들을 쌓
으소서.19 그때 주께서는 의의 희생제들과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
시리니 그때 그들이 주의 제단에 수송아지들을 드리리이다.] 라고 말합니
다. 우리는 천년왕국 기간 동안에 성전 제사가 행해질 것이라는 시실을
에스겔 40-48장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7절에 [주께서 내 마음에 기쁨을 두셨으니 그것이 그들의 곡식과 포도주
가 풍성했던 때보다 더 크니이다.]라고 말합니다.[그들의 곡식과 포도주]
에서 [그들의]라는 말은 2절에서 말한 [사람들의 아들들]에 대한 것이지
만, 그러나 민족적으로 이것은 재림 때에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유대
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26:2절에 [그때 우리의 입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우리의 혀는
노래로 가득 찼도다. 그때에 이방 가운데 있는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다.” 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또 이
것이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영적인 복을 받고 기도와 교제로 그분
을 존중하며 그분의 임재를 의식하는 성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8절에 [내가 평안 가운데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리니 이는 주여, 주
만이 나를 안전한 가운데 거하게 하심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8절은,
시3:5절과 아주 조화가 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시3:5절에[내가 누워 자
고 또 깨었으니 이는 주께서 나를 붙드심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수많은 적들로부터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3:6절에 [수만
이 나를 대적하여 포위해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으리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을 편히 잘 수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내일이면 참수를 당할 사람입니다. 그럼에
도 베드로는 아주 잠을 잘 자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두 병사 사이에서 두
쇠사슬에 묶인 채로 말입니다.(행12:6). 천사가 와서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할 정도로 푹 잠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아주 끝없이 평온한 저녁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윗
은 나는 두려움으로 앉아 있지 않고 ‘누울’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
실을 말한다면 다윗은 지금 아무 근심 없이 평안하게 누어 잘 수 있는 상
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안 가운데 누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를 철저하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잠 못 이루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오직 주를 신뢰
하므로 그것들을 물리치고 두려움 없이 누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들
판이든, 토굴이든 아니면 자기 궁궐이든 간에 다윗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의 보호하심의 날개는, 이 세상 그 어떤 다른 보호막도 필요 없게 만들었
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이 솔로몬의 침상을 경호했습니다. 그러나 피에 굶주린 적
병에게 노출된 딱딱한 땅바닥에서 잠자던 그의 부친 다윗보다 그가 더 편
안하고 더 깊이 잠을 잘 수 있었다고는 나는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오
직’하나님만이 자신을 지키시는 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
사람도 우리 곁에 없는 순간에도 우리들이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잠 못 이루는 시간들은 대개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
는 가운데서 우리들의 마음이 뒤 엉클어진 결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주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진정될 때, 우리는 포근히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베개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처럼 포근할 수
는 결코 없습니다. 어떤 이불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의 확신처럼 아
늑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우리의 “안전” 은, 강력한 우리의 우방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강력한 전쟁무
기에 있는 것도 아니며, 강력한 경제력에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어떤 교회나, 어떤 목사나, 어떤 단체나, 어떤 종교 연합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여, 주 만이] 우리의 안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
리도 다윗처럼 이 세상에 우리가 사는 날 동안 평안히 눕고 자게 하시며 약
속된 시간이 올 때 기쁨으로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꾸준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