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내가 편안한 가운데...

박종각 2017. 4. 11. 03:55

                                                내가 편안한 가운데...  


                
                                   시4:5-8절 말씀입니다.


“의의 희생제들을 드리고 주를 신뢰하라. 6“누가 우리에게 선을  보여 주겠느냐?”
   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사오니 주여, 주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들어 주소서.
      7주께서 내 마음에 기쁨을 두셨으니 그것이 그들의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했던 때보다 더 크니이다. 8내가 평안 가운데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리니 이는 주여, 주만이 나를 안전한 가운데
                           거하게 하심이니이다.”
                                  *******
                             
5절에 [의의 희생제들을 드리고 주를  신뢰하라.]고  말합니다.[의의 희생
제들]은  “상한  마음과  참회하는  영”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시
51:16-17절에 [주께서는 희생제를 원치  아니하시나이다.  그렇지  아니하
였으면 내가 그것을 드렸으리이다. 주께서는 번제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
이다.17 하나님의 희생제들은 상한 영이니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상하
고 참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희생제는 주께 가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
15:8절에 [악인의 희생제는 주께 가증한 것이나,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
의 기쁨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악한 마음으로” 가져 오는  희생
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잠21:27절에 [악인의 희생제는 가증한  것이거늘  하물며  악한 마
음으로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야 더욱 악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특히 “믿음과 행위” 에 대한 부분을 우리가  관찰할 수  있습니
다. 그래서 희생제라고 하는 “행위”와 신뢰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6절에 [“누가 우리에게 선을 보여 주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사오
니 주여, 주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들어 주소서.]라고 말합니다.  [주여, 주
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들어 주소서]라는 이 말은 주의  백성을  “축복 하소
서” 또는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소서”라고  하나님께 드리는, 단순히  경건
한 요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앞서  나온  [셀라]라는  말이  우리를 시
37:6, 43;3, 89;15절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51:18절에서 이스라엘의 회복  때에 “의의 희생제들”이  드려질
것임(시51:19)을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51:18-19절에 [주
의 선하신 기쁨으로 시온을 향하여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벽들을  쌓
으소서.19 그때 주께서는 의의 희생제들과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
시리니 그때 그들이 주의 제단에 수송아지들을 드리리이다.] 라고  말합니
다. 우리는 천년왕국 기간  동안에 성전 제사가  행해질  것이라는  시실을
에스겔 40-48장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7절에 [주께서 내 마음에 기쁨을  두셨으니 그것이 그들의  곡식과  포도주
가 풍성했던 때보다 더 크니이다.]라고 말합니다.[그들의  곡식과  포도주]
에서 [그들의]라는 말은 2절에서  말한 [사람들의 아들들]에  대한  것이지
만, 그러나 민족적으로 이것은 재림 때에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유대
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26:2절에 [그때 우리의 입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우리의  혀는
노래로 가득 찼도다. 그때에 이방 가운데 있는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다.” 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또  이

것이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영적인 복을 받고 기도와 교제로  그분
을 존중하며  그분의  임재를  의식하는  성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8절에 [내가 평안 가운데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리니 이는  주여, 주
만이 나를 안전한  가운데  거하게 하심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8절은,
시3:5절과 아주 조화가 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시3:5절에[내가  누워 자
고 또 깨었으니 이는 주께서 나를 붙드심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수많은 적들로부터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3:6절에 [수만
이 나를 대적하여 포위해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으리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을 편히 잘 수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내일이면 참수를 당할  사람입니다. 그럼에
도 베드로는 아주 잠을 잘 자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두 병사   사이에서 두
쇠사슬에 묶인  채로  말입니다.(행12:6). 천사가  와서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할 정도로 푹 잠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아주 끝없이 평온한 저녁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윗
은 나는 두려움으로 앉아 있지 않고 ‘누울’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
실을 말한다면 다윗은 지금 아무 근심 없이 평안하게 누어 잘 수  있는  상
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안 가운데 누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를 철저하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잠 못 이루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오직  주를  신뢰
하므로 그것들을 물리치고 두려움 없이 누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들
판이든, 토굴이든 아니면 자기 궁궐이든 간에  다윗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의 보호하심의 날개는, 이 세상 그 어떤 다른 보호막도 필요 없게  만들었
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이 솔로몬의 침상을 경호했습니다. 그러나  피에  굶주린 적
병에게 노출된 딱딱한 땅바닥에서 잠자던 그의 부친 다윗보다 그가  더 편
안하고 더 깊이 잠을 잘 수 있었다고는 나는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오
직’하나님만이 자신을 지키시는 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

사람도 우리 곁에  없는  순간에도  우리들이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잠 못 이루는 시간들은 대개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
는 가운데서  우리들의  마음이  뒤 엉클어진  결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주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진정될 때,  우리는  포근히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베개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처럼  포근할  수
는 결코 없습니다. 어떤 이불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의  확신처럼  아
늑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우리의 “안전” 은, 강력한 우리의 우방에 있는 도 아니고,  강력한 전쟁

기에 있는 것도 아니며, 강력한 경제력에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어떤 교회나, 어떤 목사나, 어떤 단체나, 어떤 종교  연합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여, 주 만이] 우리의  안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

리도 다윗처럼 이 세상에 우리가 사는 날 동안  평안히 눕고 자게 하시며 약

속된 시간이 올 때 기쁨으로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꾸준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