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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박종각 2020. 5. 24. 00:00

                                    주   일   예   배 
              왕후 와스티가 왕의 명령에 따라 오기를 거절하였으니...

 


                                  에1:10-22절 말씀입니다.
[일곱째 날 아하수에로왕의 마음이 술로 즐겁게 되자 왕의 면전에서 섬기는 일곱 내시 므후만, 비스다, 할보나, 빅다, 아박다, 세달, 칼카스에게 그가 명하여 11왕후 와스티로 왕후의 관을 쓰고 왕 앞에 오게 하여, 백성과 고관들에게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 하였으니 이는 왕후가 보기에 아름다웠음이라. 12그러나 왕후 와스티가 왕의 내시들이 전한 왕의 명령에 따라 오기를 거절하였으니 왕이 심히 노하고 그의 분노가 그의 속에서 불타더라. 13그때 왕이 때를 아는 현자들에게 말하기를 (법과 심판을 아는 모든 자들에 대한 왕의 규례가 그러하였더라. 14왕의 다음에는 칼스나, 세달, 앗마다, 타시스, 메레스, 말스나와 므무칸으로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일곱 고관이 있으니 왕을 대면하며 왕국 안에서 첫째 자리에 앉은 자들이더라.) 15“왕후가 내시들이 전한 아하수에로왕의 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하니 법에 따라 우리가 왕후 와스티에게 어떻게 하랴?” 하니  16므무칸이 왕과 고관들 앞에서 대답하기를 “왕후 와스티는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아하수에로왕의 모든 지방에 있는 모든 고관들과 모든 백성들에게 잘못하였나이다. 17아하수에로왕이 명하여 왕후 와스티로 왕 앞에 오게 하였으나 그녀가 오지 아니하였다는 소문이 알려져 왕후의 그런 행실이 모든 여자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면,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자기의 남편을 멸시하리이다. 18페르시아와 메디아의 여인들이 오늘이라도 왕후의 행실을 듣고 왕의 모든 고관들에게 그와 같이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너무 많이 일어나리이다. 19왕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왕명을 내리시어 페르시아인들과 메데인들의 법률 가운데 기록하게 하고 변경시키지 못하게 하여, 와스티로 다시는 아하수에로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고 왕께서는 그녀의 왕후의 지위를 그녀보다 나은 다른 사람에게 주소서. 20왕께서 내리실 왕의 칙령이 왕의 제국 전체에 걸쳐 공표되면, (나라가 크오니) 모든 아내들이 자기 남편이 크든지 작든지 간에 존경하리이다.” 하니 21왕과 고관들이 그 말을 좋게 여기고 므무칸의 말대로 행하더라. 22왕이 모든 지방에 칙서를 보내되, 각 지방에 그 백성의 글과 언어대로 보내어 모든 남자들로 자기 집을 주관하게 하였으니 그 칙서가 자기 백성의 언어로 공표되게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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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오늘 본문 10절에는, 왕의 면전에서 섬기는 [일곱 내시]의 이름과, 그리고 14절에서는, 왕을 대면하여 왕국 안에서 첫째 자리에 앉은 [일곱 고관]이 나옵니다. O 첫 번째 나오는 “일곱 내시”는 왕의 면전에서 섬겼던 종들인 반면, O 두 번째 나오는 “일곱 고관”은, 왕을 대면하고 있는 특권 계층입니다. “일곱 명의 내시들이 왕의 종들”이라는 것을 볼 때, 이와 가장 유사한 모습을 신약에서 찾아본다면, 요한계시록에 등장 하는 “일곱 교회들의 천사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1:20절에 [네가 본 것은 나의 오른손 위의 일곱별과 일곱 금촛대의 신비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요, 네가 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말씀 하십니다. 


O 하지만, 왕의 면전에 있는 이 특권 계층에 있는 일곱 [고관들]은, 얘기가 좀 다릅니다. 그들은 단순하게 [왕의 면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제로 [왕을 대면]하며 왕과 함께 통치하는 통치자들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있는 [하나님의 일곱 영]을 묘사해 줍니다. 그래서 계4:5절에 [그 보좌에서는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나오고,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불타고 있었으니, 그것들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리고 본문 14절에서 왕의 면전에서 통치하는 일곱 [고관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처럼, 성경에는 [하나님의 일곱 영]의 이름들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11:2절을 보면 [주의 영이 그의 위에 머물리니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획과 능력의 영이며,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하나님의 “일곱 영”은, 1) “주의 영” 2) “지혜의 영” 3) “명철의 영” 4) “계획의 영” 5) “능력의 영” 6) “지식의 영” 7) “주를 두려워하는 영”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본문 12절에서는 왕이 “심히 노하고 그의 분노가 그의 속에서 불타더라”고 하시는데. 이유는, 왕후 에스티가 자신의 명령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분노한 왕은 자신의 명령을 거역한 왕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의논하기 위해서 현자들을 소집합니다.





O 그래서 13절에 [그때 왕이 때를 아는 현자들에게 말하기를 (법과 심판을 아는 모든 자들에 대한 왕의 규례가 그러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때]는, 문맥상 그들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를 말합니다.(대상l2:32) 그러나 성경에서 [때]라는 말은, “마지막 때”와 관련해서 예언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겔12;27절에 [그가 보는 이상은 여러 날 후의 것이며 그가 먼 때를 예언하는 도다]라고 말씀 하시면서, 단2:21절에서는 [그는 때와 시기를 바꾸시며]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이것은 하나님께서 느부캇넷살의 형상의 제국들을 다루시는 것과 관련된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또, 눅21:24절에 보면,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행1:7절에서는 [너희에게는 그 때나 시기를 알게 하신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한에 두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왕국의 회복의 때에 관해 제자들이 한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변입니다.


O 또, 행3:19절에서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메시야를 거부했던 그들의 죄들이 용서받는 때를 [새롭게 되는 때]로 언급하십니다. 그리고 바울이 살전5:1절에서 [그 때와 시기]라는 말을 하는데 [이때]는, 바로 “교회의 휴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살전 4장에서 묘사했던)O 그래서 에스더에 전반적인 내용은 단순히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어떤 사악한 자에 의해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에스더라고 하는 한 여인에 의해서 구출 받은 그런 사건이 아니라, 이것은 미래의 어느 날 짐승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악한 자가 나타나 유대인들을 멸망시키려는 대환란에서 구원받은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때]란, 바로 “교회의 휴거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서 천년왕국의 시작까지 이어지는 바로 때의 기간”을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O “솔로몬의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것이 마치 “솔로몬과 술람미”라고 하는 여인과의 사이에 있었던 단순한 사랑이야기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솔로몬의 노래”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사이에 있었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그 내용전체는 주와 함께 성장해 가던 그리스도인이 마침내 언제 어떤 식으로 휴거되는 가를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께 솔로몬의 노래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더니 아주 정색을 하면서 “아가 서에 무슨 그런 내용이 있는가, 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봤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단 한구절도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O 15-18절을 다시보면 [“왕후가 내시들이 전한 아하수에로왕의 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하니 법에 따라 우리가 왕후 와스티에게 어떻게 하랴?” 하니 16) 므무칸이 왕과 고관들 앞에서 대답하기를 “왕후 와스티는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아하수에로왕의 모든 지방에 있는 모든 고관들과 모든 백성들에게 잘못하였나이다. 17) 아하수에로왕이 명하여 왕후 와스티로 왕 앞에 오게 하였으나 그녀가 오지 아니하였다는 소문이 알려져 왕후의 그런 행실이 모든 여자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면,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자기의 남편을 멸시하리이다.18)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여인들이 오늘이라도 왕후의 행실을 듣고 왕의 모든 고관들에게 그와 같이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너무 많이 일어나리이다.] 고 말씀합니다.


O 본문에 아하수에로왕이 갖고 있던 문제는, 단순히 왕 자신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므무칸은 “왕후 와스티는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아하수에로왕의 모든 지방에 있는 모든 고관들과 모든 백성들에게 잘못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O 그래서, 만약 와스티가,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도 무사했다는 소문이 왕국에 퍼지게 되면, 그 왕국의 모든 여인들도 그들의 남편들을 거역한다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편들은 자신의 부인으로부터 멸시는 받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O 여기 19절에 그 유명한 [페르시아인들과 메데인들의 법률]이 나옵니다. 페르시아의 법률은 매우 엄중합니다.





0 그래서 왕이 구두로 내린 명령은 그 명령을 왕이 다시 번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그러나 일단 왕의 명령이 문서로 기록되고 거기에 왕의 인장으로 봉인되고 나면, 그 법은 설령 왕이라 하더라도 결코 다시는 변경시킬 수 없게 됩니다. 바로 이 구절에서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명령의 특징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O 그런데 19절에서 “므무칸”은 계속해서 왕께 [왕께서는 그녀의 왕후의 지위를 그녀보다 나은 다른 사람에게 주소서]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왕께서는 “와스티” 보다 더 “나은 자”를 왕후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 말속에 숨겨진 의미는 이렇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그동안 버젓이 유대인의 자리를 찾지 하고 있던 “이방인들”을 제치고, 그 자리에 “유대인들”에게 주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이 본문은 대 환란에서 불러냄을 받은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지위를 대신하게 될 것을 말씀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이방인의 때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이방인의 때가 끝난 후에는 이 본문의 말씀대로 그 자리를 더 나은 “유대인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O 물론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약속된 첫 번째 대상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유대인들의 메시아로, 유대인의 왕으로, 유대인들의 구세주로, 그리고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찾기 위해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15:24절에서 주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O 그러므로 구원이라고 하는 복음의 음식상에 둘러 앉아 먹어야 할 첫째 사람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있다면, 마치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어먹은 개들처럼, 이방인들의 것 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순서는 먼저 유대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16절에 [...이 복음이...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O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전해지는 복음의 음식을 단호하게 거절해 버리고 밟아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복음은 다름의 차례인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거절한 것을 이방인들은 기쁨으로 받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그 구원의 기회는 한시적입니다. 그래서 대환란 때는 그 특권이, 이방인들에게서 다시 유대인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롬11:25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0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한 그 막간의 시간을 사용하시여 이방인들을 구원 하시는데, 그런데 구원받을 이방인의 그 숫자를 정해 놓으셨다는 말씀이고, 그리고 그 숫자가 차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다시 흩어진 유대민족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O 그래서 본문 19절의 내용을 보면, 주께서는 그 유대인을 가리켜 이방인들보다 더 [나은]사람으로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유대인을 마지막으로 다루실 때는, 유대인은 어떤 민족보다 더 나은 민족으로 대우하시며 부르시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러나 지금은 복음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바로 이방인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유대인들도 이방인들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는 단지 죄인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O 그래서 롬3:9절에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나은 것이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도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증거하였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지만, 앞으로 [주의 임재하심으로부터 새롭게 되는 때](행3:19),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그 메시야를 거절한 죄에 대해 용서를 받게 될 때는, 상황은 전혀 달아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이스라엘은 전혀 새로운 생명과 부요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롬11:15절에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해가 된다면 그들을 받아들임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는 생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유대인 신부가 이방인들보다 더 낫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바로 이것을 의미하시는 것입니다.





O 그러나 그 때가 될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이방의 한 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죄에 대해 심판 하실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게 되자 주께서는 바빌론을 데리고 와서 자신이 택한 이스라엘민족을 쓸어버리게 하신 것입니다. O 그러나 바빌론 왕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여 하나님의 유업을 더럽히자(단5.6장). 이번에는 주께서 메데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을 바빌론으로 보내셔서, 바빌론을 쓸어버리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동안에도, 주께서는 다시 페르시아인들을 쓸어버리실 목적으로 이번에는 헬라인들을 준비시키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헬라인들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페르시아인들을 쓸어버리고 있을 때, 주께서는 이번에는 헬라인들을 쓸어버리실 목적으로 로마를 준비시키십니다. 


O 그리고 로마도 역시 부패하여 존립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반달족, 훈족, 고트족을 보내어 로마를 제거해 버리셨습니다. 그런 후, 주께서는 다른 몇몇 족속들을 보내시어 이번에는 반달족, 훈족, 고트족을 쓸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O 오늘날 사람들은 어느 민족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강한 민족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들이 어떤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자신들이 강한 민족인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주도권은 어떤 강력한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전쟁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쟁은 강력한 군대나, 탁월한 무기나 누구도 감이 넘볼 수 없는 국력에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창시자는 인간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삼상17:47절에 [또 이 온 무리는 주께서 칼과 창으로 구원하지 않으심을 알게 되리니, 이는 전쟁이 주의 것이므로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다윗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철저하게 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죄에 대한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이고, 지옥은, 죄에 대한 “저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죄의 문제”인 것입니다.





O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전쟁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헛된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죄를 제거하기 전까지는 전쟁을 제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적 문제는 죄이지, 전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죄에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O 그래서 주께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징계로, 여지없이 칼과 기근과 전쟁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전쟁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근본 문제는 전쟁이 아니라, 죄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의 문제는, 나라나, 민족이나, 개인이나 모두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죄의 문제이고, 그리고 그 심판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O 그래서“하늘에서 주께로부터”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리셨습니다.(창19:24절) “주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향을 피우던 반역자 이백오십 명을 소멸시켰습니다.(.민16:35). 또한 무서운 소문이 주께로부터 나옵니다. O 그래서 겔21:6-7절에 [그러므로 탄식하라, 너 인자야, 네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그들의 눈앞에서 심히 탄식하라. 그러면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리니 너는 대답하기를 “소문으로 인함이니 그것이 오기 때문이라. 모든 마음이 녹아내리고 모든 손이 힘이 빠지며 모든 영이 기운을 잃고 모든 무릎이 물처럼 약해질 것이라.” 하라. 보라 그것이 오나니 오고야 말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물론 주께로부터 오는 것이 그것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부와 존귀가 다 주께로부터 나오고 주께서는 모든 것을 치리하시며, 권세와 능력이 주의 손에 있고, 모든 것을 위대하게 만들고 힘을 주시는 것”이 또한 주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대상29:12) 우리의 도움이 주께로부터 나옵니다.(시121:2). 성경은 신중한 아내도 주께로부터 나온다고 말씀 하십니다. (잠19:14). 그래서 결론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대상29:14).O 주께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주께서 모르시는 것도 단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주께서 간섭하시지 않는 것도 단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모든 문제, 죽고 사는 모든 문제가 주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0 그래서 내가 어느 곳에 설 것인가, 내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내가 어디에 속할 것인가? 내가 누구를 기쁘게 하고, 내가 누구의 마음에 들어야 내가 살 수 있는가? 숨이라도 제대로 쉬면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앞에서는 “복과 저주”가 놓여있는 상대 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신11:26-28절에 [보라,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노니, 만일 너희가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복종하면 복이요, 만일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복종하지 않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에서 벗어나서 너희가 알지 못하였던 다른 신들을 따라가면 저주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갈 것인지도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앞에는 생명과 사명의 길이 놓여 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렘21:8절에 [너는 이 백성에게 말할지니라.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고 말씀 하십니다.





O 22절에 [왕이 모든 지방에 칙서를 보내되, 각 지방에 그 백성의 글과 언어대로 보내어 모든 남자들로 자기 집을 주관하게 하였으니 그 칙서가 자기 백성의 언어로 공표되게 하였더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11:3절에서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라고 말씀 하십니다.O 바울은 엡5:22-24절에서 [아내들아, 너희는 너희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라....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아내들도 자기 남편에게 매사에 그렇게 해야 할지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므무칸의 말”은, 창3:15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브에게 [너의 바람은 네 남편에게 있을 것이니, 남편이 너를 주관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O 그래서 므무칸이 아하수에로왕에게 올린 충언은 창세기 3장에서 요한계시록 20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가정 안에 정해 놓으신 무너져서는 안 되는“질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안을 성공으로 이끌든지, 파산으로 이끌든지 그 책임은 절대로 남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O 아브라함이 사람들 앞에서 위대하게 된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는 아내에게 어떤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것과 관련해서 그의 부인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O 만약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100년 만에 얻은 아들이삭을 제물로 받치라고 하시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떻소? 라고 묻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사라는 아브라함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대신 자기 집에 있는 신실한 늙은 종을 불러 말하기를 “너는 지금 급히 가서 치매병원이 어디 있는지 빨리 알아오라, 네 주인이 지금 치매에 걸렸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O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런 사실을 사라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얼굴에 아무런 내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이 어디를 가는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고, 아브라함처럼 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O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주요 세 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것이고, 둘째는, 단순히 들은 정도가 아니라 경청했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이 문제에 관해 누구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의 자세가 된 사람은 지금 이 세 가지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O 여호수아는 수24:15절에서 [만일 주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악하게 보이거든 하수 건너편에서 너희 조상이 섬기던 신들이거나 너희가 거하는 땅의 아모리인의 신들이든 간에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날 너희가 택하라.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주를 섬기리라.]고 말합니다.


O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주를 섬기리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여호수아가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의론하고 상의 한 끝에 내린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온 가족을 위해 그가 내릴 수 있는 최상의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앞에서 그것이 결코 옳은 일이라고 알고 있다면, 남편은 기필코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오직 주께서 우리들에게 하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느 누구의 의견이나, 상의나, 의론 같은 것은 전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명령받은 자에게는 오직 “예”라고 하는 순종만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O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사신 우리의 주인이시고, 그러기에 우리는 그 주인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종일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들은 오늘 본문의 말에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가정에서 아내를 무시해 버리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이 말은 아내는 남편과 같이 주를 따르며, 또, 아내는 남편이 주를 따르듯이 남편을 그렇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설명할 것은, 아하수에로는 [모든 지방에 칙서를 보내되, 각 지방에 그 백성의 글과 언어대로 보내어...그 칙서가 자기 백성의 언어로 공표되게]했습니다.(22절). 에스더에는 나라 전역에 보내는 네 가지 칙령이 나옵니다. 이 칙령들은 페르시아 제국 내에 있는 역마를 통해 각 지방과 언어로 전달됩니다. (첫 번째 칙령 에1:22, 두 번째 칙령은, 에3:12-15, 세 번째 칙령 에8:9,14, 네 번째 칙령 에9:29,30)





O 그러나 이 칙령들은 교리적으로 대 환란 때 하나님의 말씀이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24:14절에 보면 [이 왕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 계14:6절에는, 한 천사가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O 이 두 개의 복음, 즉 “왕국복음”과 “영원한 복음”은, 바울이 전파했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행20:24)과는 전혀 다른 복음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들은 지금 이 교회 시대에 전파되지 않습니다.  만약 오늘날 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사도 바울을 통해 주어진 고전15:1-4절의 복음 대신에 이 “다른 복음” 즉, 이 “영원한 복음”들을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여전히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O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왕(마24:14)이나, 창조주(계14:5)로 신뢰함으로써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죄들을 속죄하기 위해 피를 흘리시고 그를 하늘로 데려가기 위해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신 구세주를 신뢰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왕과 창조주로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믿음이, 구원을 위해 믿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O 여기서 대 환란 때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l) 왕께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신다는 것이고 2) 그러기 때문에 오직 그분만을 믿고 그분의 명령만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계12:17.14:12). O 첫 번째 메시지는, 대 환란이 시작될 때 남아있는 죄인들을 위한 것이고, 두 번째 메시지는, 대 환란이 끝날 무렵에 남아 있는 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O 이 말씀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는 아니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오직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믿음에 굳게 서서 이 세상으로 넘어지지 않고 미끄러지지 않고, 이 세상과 일치하지 않도록 항상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믿음 안에 거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삶, 주 오심을 기다리고 소망하는 삶을 사시다가 주께서 공중으로 내려오실 때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